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52칙 조주(趙州)의 도려도마(渡驢渡馬) _나귀도 건네고 말도 건네기

碧雲 2023. 8. 13. 11:01

 趙州和尚은 「平常心是道」라는 馬祖道一의 宗風을 계승하여
「喫茶去(차나 마시게)」와 같은 平常의 言語로 學人의 悟性을 啟發하였다.
  『금부처는 용광로를 넘지 못하고 (金佛不度爐)
   나무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木佛不度火)
   흙부처는 물을 거너지 못하거니와 (泥佛不度水)
   참부처는 그대 안에 앉아 있다네 (真佛內裏坐).』
나귀도 건네고 말도 건네는 趙州의 石橋를 본따서 
동시대의 灌谿는 劈箭急을 말하고 후세의 黃龍은 拖拖地를 말했으나 

모두 우스꽝스러운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다.

 

 【五二】舉。  【제52칙】 조주의 돌다리[石橋] 
   僧問趙州。
   久響趙州石橋。
   到來只見略彴
   (也有人來捋虎鬚。
   也是衲僧本分事)
   州云。汝只見略彴。
 且不見石橋
   (慣得其便。
   這老漢賣身去也)
   僧云。如何是石橋
   (上釣來也。果然)
   州云。渡驢渡馬
   (一網打就。
   直得盡大地人無出氣處。
 一死更不再活)
   어떤 중이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오랫 동안 조주 석교(石橋)의 명성을 듣고
   와보니 작은 외나무 다리만 보입니다."
   (또 누가 와서 범의 수염을 건드리는데
   이 역시 납승의 본분사이다.)
   "너는 작은 외나무 다리만 보고
   다시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그 편의에 빠져
   이 늙은이가 몸을 팔아 가는구나.)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낚시에 걸려드는구나. 과연.)
   "나귀를 건네고 말을 건네는
   (일망타취<一網打就*>로구나.
   온 대지인의 숨쉴 곳이 없어졌다.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實若切)。                                              * 彴는 實若切임.

*久響; 「오래 명성이 나다」. 향(響)은 [動] 울리다. 명성이 나다.
*略彴; 작은 외나무 다리[小木橋]. 작(彴)은 외나무 다리[獨木橋].
*一網打就; 양손으로 떠서 한 번에 남김없이 건져내다.
선림에서는 「師家가 말 한마디로 불법의 진수를 남김없이 담아냈다」는 뜻으로 쓰인다.
*慣得; ~에 익숙해지다. 

 

趙州有石橋。
蓋李膺造也。
至今天下有名。
略彴者。即是獨木橋也。
其僧故意減他威光問他道。
久響趙州石橋。
到來只見略彴。
趙州便道。汝只見略彴。
且不見石橋。
據他問處。
也只是平常說話相似。
趙州用去釣他。
這僧果然上鉤。
隨後便問。如何是石橋。
州云。渡驢渡馬。
不妨言中自有出身處。
趙州不似臨濟德山。
行棒行喝。
他只以言句殺活。
這公案好好看來。
只是尋常鬥機鋒相似。
雖然如是。也不妨難湊泊。
조주(趙州)에 석교(石橋)가 있어
이응(李膺*)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도 천하에 유명하다.
약작(略彴)이란 곧 외나무다리[獨木橋]인데
그 중이 그의 위광(威光)을 감하려는 의도에서
"조주석교(趙州石橋)의 오랜 명성을 듣고
왔더니 약작만 보이는군요." 하였다.
조주가 곧 "너는 약작만 보고
다시 석교는 보지 못하는구나." 하여
그 중이 질문한 근거가
다만 평상시의 대화와 같았는지라
조주가 그에게 낚시를 던진 것인데
이 중이 과연 낚시에 걸려들고서
뒤따라 "무엇이 석교입니까" 하고 묻자,
조주가 "나귀도 건네고 말도 건넨다." 하였으니,
말 속에 자연 출신처가 있어 마지않다.
조주는 임제(臨濟) 덕산(德山)이
방(棒)을 행하고 할(喝)을 행하는 것과 달리
그는 언구(言句)로만 살활(殺活)하니
이 공안을 잘 살펴보면
일상의 기봉(機鋒)을 다툰 듯 하다.
비록 그렇다지만 주박(湊泊)하기 어려워 마지않다. 
一日與首座看石橋。
州乃問首座。
是什麼人造。
座云。李膺造。
州云。造時向什麼處下手。
座無對。州云。
尋常說石橋。
問著下手處也不知。
又一日州掃地次。
僧問。和尚是善知識。
為什麼有塵。
州云。外來底。
又問。清淨伽藍。為什麼有塵。
州云。又有一點也。
又僧問。如何是道。
州云。牆外底。
僧云。不問這箇道。
問大道。
州云。大道透長安。
趙州偏用此機。
他到平實安穩處。
為人更不傷鋒犯手。
自然孤峻。用得此機甚妙。
하루는 수좌와 함께 석교를 보다가
조주가 이내 수좌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응(李膺)이 만들었습니다."
"만들 때 어디에 손을 댔는가?"
수좌가 대답을 못하자 조주가 말했다.
"석교는 예사로이 말하면서
물으면 손댄 곳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또 하루는 조주가 땅을 쓸던 차에
어떤 중이 "화상은 선지식이신데
어째서 티끌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는 "밖에서 온 것이다" 하였다.
또 "청정한 가람에 어째서 티끌이 있습니까?" 하니,
"또 한 점이 있구나" 하였고,
또 "무엇이 도(道)입니까?" 하니,
"담장 밖의 것이다" 하매,
중이 "그런 도를 물은 것이 아니라
대도(大道)를 물었습니다" 하자,
"대도는 장안으로 직통(直通)한다" 하였다.
조주는 이 기(機;言句殺活)를 치우쳐 씀이
평실(平實)하고 안온(安穩)한 경지에 이르렀고,
사람을 위하되 다시 칼날이나 손을 다치지 않았으니
자연 고준하게 이 기(機)의 심묘함을 쓸 줄 알았다. 

*李膺(110~169); 字는 元禮, 潁川郡襄城縣(지금의 屬河南省襄城縣)人이다.
東漢 때의 護烏桓校尉, 度遼將軍, 司隸校尉에 오른 名士로서
당시 재망있는 8인을 지칭한 「八俊」 중 한 사람이다. 

 

雪竇頌云。 설두(雪竇)의 송(頌)
 孤危不立道方高
   (須是到這田地始得。
   言猶在耳。
   還他本分草料)
  入海還須釣巨鼇
   (坐斷要津不通凡聖。
   蝦蜆螺蚌不足問。
   大丈夫漢。不可兩兩三三)
  堪笑同時灌溪老
   (也有恁麼人曾恁麼來。
   也有恁麼用機關底手腳)
  解云劈箭亦徒勞
   (猶較半月程。
   似則似是則未是)
 고위(孤危)는 세우지 않아야 비로소 높다 하는 것이요
   (반드시 이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말이 아직 귀에 있다.
   그에게 본분초료<本分草料>를 돌려주었다.)
 바다에 갔거든 반드시 큰 자라를 낚아야 하거늘
   (요진을 좌단하여 범성<凡聖>을 불통케 하는 일은
   하현나방<蝦蜆螺蚌*>은 물을 것이 못되고,
   대장부는 둘둘 셋셋 짝지을 수 없다.)
 우습구나. 그 무렵의 관계노(灌溪老*)여!
   (또 이런 사람이 일찍이 이렇게 왔었고,
   또 이렇게 기관<機關>을 쓰는 솜씨가 있었다.)
 「벽전(劈箭*)」이라 해설한 것이 또한 헛수고로다.
   (그의 짧은[半月] 여정에 비교하면
   비슷하기는 비슷하지만 옳지는 못하다.)

*坐斷要津不通凡聖; 此岸(凡)에서 彼岸(聖)으로 건너가는 요긴한 나룻터를 단절시켜
凡聖이 통하지 않는다. 범부와 성인, 중생과 부처, 미혹과 증오(證悟) 등의
양변을 단절하여 절대평등의 中道를 성취한다는 뜻.
*蝦蜆螺蚌; 새우,가막조개,소라,조개. 하찮은 것들에의 비유.
*大丈夫漢 不可兩兩三三; 대장부는 아무개와 아무개라고 짝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보적 존재를 대장부라 한다는 말.
*堪笑; 可笑

*灌溪老; 趙州와 同時代의 灌谿志閑禪師(臨濟義玄法嗣;南嶽下五世).
*劈箭; 劈箭急. 신속히 사물을 파괴시키는 화살.
학인의 고정관념을 신속히 깨뜨려 교화함에 비유하는 말. 

 

孤危不立道方高。
雪竇頌趙州尋常為人處。
不立玄妙。不立孤危。
不似諸方道打破虛空。
擊碎須彌。海底生塵。
須彌鼓浪。
方稱他祖師之道。
所以雪竇道。
孤危不立道方高。
壁立萬仞。
顯佛法奇特靈驗。
雖然孤危峭峻。
不如不立孤危。
但平常自然轉轆轆地。
不立而自立。不高而自高。
機出孤危方見玄妙。
所以雪竇云。
入海還須釣巨鼇。
看他具眼宗師等閑垂一語。

用一機不釣蝦蜆螺蚌。
直釣巨鼇。也不妨是作家。
此一句用顯前面公案。
「고위(孤危)는 세우지 않아야 비로소 높다고 한다」는
설두가 조주 평상시의 사람 위한 곳이
현묘(玄妙)도 고위(孤危)도 세우지 않았음을 송했거니와,
제방(諸方)이 말하는 허공을 타파했다거나
수미산을 쳐 부셨다, 해저(海底)에 티끌이 났다,
수미산에 풍랑이 일었다고 하는 것들과는 달라야만
비로소 그를 칭하여 조사(祖師)의 도(道)라 할 것이라
그래서 설두가 말하기를,
고위는 세우지 않아야 높다 한 것이다.
벽립만인(壁立萬仞)이란
불법의 기특한 영험(靈驗)을 드러내는 것인데
비록 그렇듯 고위(孤危)하고 초준(峭峻)하더라도
고위를 세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여
그저 평상에 자연스럽게 수레바퀴 구르듯이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서고, 높이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서
기(機)가 고위를 뛰어넘어야 현묘(玄妙)를 보일 것이라
그래서 설두가 이르기를, 「바다에 들어갔거든
반드시 큰 자라를 낚아야 한다」 한 것이다.
저 안목을 갖춘 종사(宗師)를 보건대
아무렇지 않게 말 한 마디를 하고,
한 번의 기(機)를 써서 하현나방(鰕蜆螺蚌)을 낚지 않고
바로 거오(巨鼇)를 낚으니 그야말로 작가여 마지않다.
이 1구(句)의 사용으로 앞 부분의 공안이 드러났다. 
堪笑同時灌溪老。
不見僧問灌溪。
久響灌溪。及乎到來。
只見箇漚麻池。
溪云。汝只見漚麻池。
且不見灌溪。
僧云。如何是灌溪。
溪云。劈箭急。
「우습구나. 그 무렵의 관계노(灌溪老)여!」 했는데,
보지 못했는가? 중이 관계에게 물어
"오랫동안 관계의 명성을 듣고 급기야 와보니
구마지(漚麻池*)만 보입니다" 하자,
관계가 "너는 구마지만 보고
다시 관계는 보지 못하는구나." 하니,
중이 "무엇이 관계입니까?" 하고 물었고,
관계는 "벽전급(劈箭急)이다" 하였다. 
又僧問黃龍。
久響黃龍。及乎到來。
只見箇赤斑蛇。
龍云。子只見赤斑蛇。
且不見黃龍。
僧云。如何是黃龍。
龍云。拖拖地。
僧云。忽遇金翅鳥來時如何。
龍云。性命難存。
僧云。恁麼則遭他食噉去也。
龍云。謝子供養。
此總是立孤危。
是則也是不免費力。
終不如趙州尋常用底。
所以雪竇道。
解云劈箭亦徒勞。
只如灌溪黃龍即且致。
趙州云。波驢渡馬。
又作麼生會。試辨看。
또 중(智岳了宗)이 황룡(黃龍)에게
"오래 황룡의 명성을 듣고 와보니
적반사(赤斑蛇;紅斑蛇)만 보입니다." 하자,
"그대는 적반사만 보고
다시 황룡은 모지 못하는구려."
"무엇이 황룡입니까?"
"타타지(拖拖地*)라네."
"홀연히 금시조(金翅鳥)를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성명(性命)을 보존키 여렵다네."
중이 "그러한 즉 그는 잡아먹히겠습니다." 하자
황룡은 "그대의 공양에 감사하네." 하였다.
이 모두가 고위(孤危)를 세운 것이거니와
옳기야 옳지만 힘만 낭비한 것이고
결국 조주(趙州)가 평상시 쓰던 것만 못하기에
그래서 설두가
"벽전(劈箭)이라 해설한 것이 헛수고다" 한 것이다.
다만 관계(灌溪)나 황룡(黃龍)은 곧 차치하고,
조주가 말한 "나귀도 건네고 말도 건넨다"는
또 어떻게 이회할 것인지 한 번 분변해 보거라. 

*漚麻池; 마(麻)를 담그는 못. 마의 껍집을 벗기기 쉽도록 물에 담근다 하니,
조그마한 물웅덩이라는 뜻이다.
*拖拖地; 滔滔地. 큰 물이 솟아나는 곳. 大事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
【五燈會元】福州皷山智岳了宗禪師(皷山神晏國師法嗣;青原下七世)章에
智岳이 流方타가 黃龍에 이르러 그와 나눈 문답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에는 「滔滔地」로 표기되어 있다.
*趙州(778~897); 趙州從諗禪師(南泉普願法嗣)南嶽下三世
*灌谿( ? ~ 895); 灌谿志閑禪師(臨濟義玄法嗣)南嶽下五世
조주와 관계는 같은 년대의 사람이지만 법계보상으로는 조주가 선대이다.
*黃龍; 鄂州黃龍山誨機超慧禪師(玄泉彥法嗣)青原下七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