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60칙 운문(雲門)의 주장화룡(拄杖化龍)

碧雲 2024. 1. 3. 08:09

 「주장자가 용으로 변한다 해서 운무를 거머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가 득도한다 해서 천하대지가 달라질 것은 없고 의구히 산은 산, 물은 물이다. 

 

垂示云。 수시(垂示) 
諸佛眾生本來無異。
山河自己寧有等差。
為什麼卻渾成兩邊去也。
若能撥轉話頭。坐斷要津。
放過即不可。若不放過。
盡大地不消一捏。
且作麼生是撥轉話頭處。
試舉看。
諸佛과 眾生이 本來 다름이 없거늘
山河와 自己인들 어찌 등급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무엇 때문에 도리어 뒤섞여서 兩邊을 이루어 가겠는가?
만일 話頭를 撥轉*하여 坐斷要津할 수 있다면
놓치기는 곧 不可하려니와, 놓치지 않는다면
모든 세상사에 손가락 까딱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무엇이 話頭를 撥轉할 곳인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撥轉; 마음을 돌려 생각을 굴리다(回心轉意).

 

 【六○】舉。  【제60칙】 주장자가 용으로 변화하기 
   雲門以拄杖示眾云
   (點化在臨時。殺人刀活人劍。
 換卻爾眼睛了也)
   拄杖子化為龍
   (何用周遮。用化作什麼)
   吞卻乾坤了也
   (天下衲僧性命不存。
   還礙著咽喉麼。
 闍黎向什麼處安身立命)
   山河大地甚處得來
   (十方無壁落。四面亦無門。
   東西南北四維上下。
   爭奈這箇何)。
   雲門이 拄杖子로써 示眾하여 이르되,
   (點化*에 臨했을 때 殺人刀요 活人劍이다.
 너희의 眼睛을 확 바꿔버린다.)
   "拄杖子가 龍으로 化하여
   (왜 周遮*를 쓰는가. 化하여 무얼하려고.)
   乾坤을 삼켜버리거든
   (天下衲僧의 性命이 존재치 못한다니
   咽喉가 막힌 것인가.
 선생은 어느 곳에서 安身立命하지?)
   山河大地는 어디서 얻어지겠는가?" 하였다.
   (十方에 壁落*이 없고 四面에 문도 없는데,
   東西南北과 四維上下인들
   어떻게 이를 어찌하겠는가?)。

*點化; 點과 化. 點은 點額, 化는 化為龍이니 실패와 성공을 말한다.
*周遮; 덮어 감춤. 여러가지로 에워싸고 보호함.   

*壁落; 창호(窗戶)

 

只如雲門道。挂杖子化為龍。
吞卻乾坤了也。
山河大地甚處得來。
若道有則瞎。
若道無則死。
還見雲門為人處麼。
還我拄杖子來。
다만 雲門의 말처럼 挂杖子가 化해 龍이 되어
乾坤을 吞卻한다면
山河大地는 어디서 得來하겠는가.
만약 있다고 하면 곧 눈 먼 것이요,
없다고 말하면 곧 죽은 것이다.
雲門의 為人處를 보는가?
나의 주장자를 되찾아 올지어다. 
如今人不會他雲門獨露處。
卻道即色明心。
附物顯理。
且如釋迦老子四十九年說法。
不可不知此議論。
何故。更用拈花。迦葉微笑。
這老漢便搽胡道。
吾有正法眼藏涅槃妙心。
分付摩訶大迦葉。
更何必單傳心印。
요즘 사람들은 저 雲門의 獨露處를 모르고서
도리어 色에 即하여 心을 밝히고
사물에 접하여 이치를 드러냈다고 하는데,
釋迦老子의 49년 說法 같은 것도
이 議論임을 몰라서는 안된다.
어째서냐. 다시 拈花을 쓰자 迦葉이 微笑하매
이 老漢이 곧 표정을 바꾸어[搽胡]
"내게 있는 正法眼藏과 涅槃妙心을
摩訶大迦葉에게 分付한다" 했기 때문이거니와,
굳이 왜 꼭 單傳心印*이라야 했겠는가? 
諸人既是祖師門下客。
還明得單傳底心麼。
胸中若有一物。
山河大地。摐然現前
胸中若無一物。
外則了無絲毫。
說什麼理與智冥境與神會。
何故一會一切會。
一明一切明。
여러분이 기왕 祖師의 門下客이라면
單傳하시는 그 마음을 밝혀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胸中에 一物이라도 있으면
山河大地가 어지러이 現前하려니와,
胸中에 一物도 없다면
外則이 了然하여 絲毫도 없을 터인데,
무슨 理와 智, 冥境과 神會*를 말하겠으며,
어째서 하나를 알면 일체를 알고,
하나를 밝히면 일체를 밝히겠는가? 
長沙道。
學道之人不識真。
只為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忽若打破陰界。
身心一如身外無餘。
猶未得一半在。
說什麼即色明心附物顯理。

古人道。一塵纔起。
大地全收。
且道是那箇一塵。
若識得這一塵。
便識得拄杖子。
纔拈起拄杖子。
便見縱橫妙用。
恁麼說話。早是葛藤了也。
何況更化為龍。
慶藏主云。五千四十八卷。
還曾有恁麼。說話麼。
長沙는 말하기를,
"學道인 사람이 진실을 모르고
그저 종전대로 識神*만을 따름이
無量劫을 흘러 온 生死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자는 사람이 본래 그렇다고 한다" 하였거니와,
홀연히 陰界를 타파하여
身心이 하나와 같고 몸 밖에 다른 것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절반을 얻었다 할 수 없을 터인데
무슨 '色에 即하여 心을 밝히고
物에 접하여 理를 드러냄'을 말하겠는가?
古人이 이르되 "티끌 하나가 일기만 하면
大地를 완전히 휩쓴다." 했는데
말해보라. 이것이 어떤 一塵인가?
만일 이 一塵을 識得한다면
곧 拄杖子를 識得*하려니와,
拄杖子를 집어 세우기만하면
곧 縱橫하는 妙用을 보일 것이다.
이런 說話도 일찌감치 葛藤인 것인데
하물며 다시 化하여 龍이 되는 것이겠는가?
慶藏主가 "5,048 卷에
일찍이 그런 說話가 있더냐?" 하였다.  

*單傳心印; 마음에 도장을 찍듯이 단순히 전하다. 不立文字의 教外別傳. 
*冥境與神會; 冥境은 어두운 경계, 神會는 귀신같이 아는 밝은 경계. 
*識神; ①viññāna 心識의 主體. ②jantu 生命이 있는 것. 
③禪林에서는 精神作用 즉 意識作用을 일으키는 주체를 지칭하여 쓴다.[佛光大辭典]
*識得拄杖子; 禪僧이 危險한 길을 갈 때 쓰는 보조도구이니, 
이를 '自己의 心性을 究明하는 수행의 伴侶'로 인용한다. 
따라서 '주장자를 안다[識得]'는 것은 '바른 수행의 길을 밟고 있다'는 뜻. 

雲門每向拄杖處。
拈掇全機大用。
活潑潑地為人。
芭蕉示眾云。
衲僧巴鼻。盡在拄杖頭上。
永嘉亦云。不是標形虛事褫。
如來寶杖親蹤跡。
如來昔於然燈佛時。
布髮掩泥。以待彼佛。
然燈曰。此處當建梵剎。
時有一天子。遂標一莖草云。
建梵剎竟。
諸人且道。這箇消息。
從那裏得來。
祖師道。棒頭取證。喝下承當。
且道承當箇什麼。
忽有人問。如何是拄杖子。
莫是打筋斗麼。
莫是撫掌一下麼。
總是弄精魂。且喜沒交涉。
 褫(音馳)。
雲門은 매번 拄杖處*를 향해
全機에서 나는 大用을 拈掇*하여
生動하는 경지[活潑潑地]에서 사람을 위했다.
芭蕉가 示眾하여 이르되
"衲僧의 巴鼻*는 다 주장자 끝에 있다" 하였고,
永嘉도 "虛事일 뿐인 것을 겉치레 한 것이 아니라
如來께서 친히 짚으신 寶杖의 蹤跡이다" 하였다.
如來는 과거 然燈佛 때에
포발엄니(布髮掩泥*)로써 저 佛을 기다리매
然燈佛께서 이 곳에다 梵剎을 세우라 하시니,
때에 한 天子가 이윽고 한 줄기 풀을 보이며
梵剎 세우기를 마쳤습니다" 하였다.
여러분이 말해보라. 이런 消息은
어느 속에서 얻어 오겠는가?
祖師께서 棒頭에 取證하고 喝下에 承當한다 했는데,
말해보라. 그 무엇에 承當하느냐?
홀연히 누가 "어떤 것이 拄杖子입니까?" 하고 물으면
곤두뱍혀버리거나,
손바닥만 비비고 있을 것 아니냐?
모두가 弄精魂이거니와, 웃기게도 아무런 交涉이 없다.
 *褫는 音이 馳이다. 

*拄杖處; 지팡이 짚을 곳, 즉 수행하고 체득해야 할 곳. 
*拈掇; 꺼내다. 제기하다. 
*巴鼻; 禪林用語. 把鼻, 巴臂, 把臂라고도 한다. 
巴는 把이고 鼻는 소의 코이니, 소 코에 줄을 꿰어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그 후에 붙들 수 있는 곳이라 하여 근거(根據)라는 의미로 쓰인다. 
*布髮掩泥; 머리칼이 흩어져 진흙창을 덮고 있다는 것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한 모습을 그린 표현이다. 

 

雪竇頌云 설두(雪竇)의 송(頌) 
 拄杖子吞乾坤
   (道什麼。只用打狗)
  徒說桃花浪奔
   (撥開向上一竅。
   千聖齊立下風。
   也不在拏雲攫霧處。
   說得千遍萬遍。
   不如手腳羅籠一遍)
  燒尾者不在拏雲攫霧
   (左之右之。老僧只管看。
   也只是一箇乾柴片)
  曝腮者何必喪膽亡魂
   (人人氣宇如王。
   自是爾千里。萬里。
   爭奈悚然)
 拄杖子가 乾坤을 삼킨다니
   (무슨 말이냐. 개 패는 데 쓰일 뿐이다.)
  공연히 桃花浪*의 내달림을 말하는구나.
   (向上一竅*를 쪼개 열어서
   千聖들의 윗자리에 올라서봐도
   雲霧를 거머쥐는 곳에 있지 않은지라
   千 번 萬 번을 말하느니
   손발 한 번 묶어두느니만 못하다.)
 소미자(燒尾者*)도 구름을 움켜 쥐지는 못하거늘
   (左之右之해도 老僧은 그저 보고만 있겠지만
   이도 또한 하나의 마른 장작[柴片]일 뿐이다.)
 폭시자(曝腮者*)가 왜 꼭 膽魂을 喪해야 하는가.
   (사람사람의 기개와 도량[氣宇]이 왕 같을 텐데
   이로부터 너는 아주 멀어졌으니,
   소름끼쳐서 어쩌냐?)

*桃花浪; 月令으로 仲春인 달에 물이 불기 시작하면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운다. 
桃花가 바야흐로 피기 시작하면 川谷의 얼음도 녹아 흘러 모여서 
波浪을 이룬다 하여 桃花浪이라 한다. 
*向上一竅; 竅는 사물의 핵심 부위를 말하니, 「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이 一竅가 百竅로 통하게 된다. 
*燒尾者; '꼬리를 사른 자'라 함은 '용이 되어 승천한 자', 
즉 '권세와 명망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에의 비유이다. 
*曝腮者; 【조정사원】 2권에 「上薄報切은 乾曝이고, 下蘇來切은 魚顂이다」 했으니, 
 '뺨을 햇볕에 쬐인 자'란 '붙잡혀 볕에 말려진 물고기'라는 뜻이니, 
 '실패하여 죽은 자'에의 비유이다. 
*喪膽亡魂; 膽魂을 喪亡하다. 놀람과 두려움이 극에 달하다.

  拈了也
   (謝慈悲。老婆心切)
 聞不聞
   (不免落草。用聞作什麼)
  直須灑灑落落
   (殘羹餿飯。
   乾坤大地甚處得來)
 休更紛紛紜紜
   (舉令者先犯。
   相次到爾頭上。
 打云放過則不可)
 七十二棒且輕恕
   (山僧不曾行此令。
   據令而行。
   賴值得山僧)
  一百五十難放君
   (正令當行。豈可只恁麼了。
   直饒朝打三千暮打八百
   堪作什麼)
  師驀拈拄杖下座。
   大眾一時走散
   (雪竇龍頭蛇尾作什麼)
  拈古해 마쳤으나
   (慈悲레 감사한다. 老婆心이 간절했다.)
 들어도 들음이 아니니
   (落草신세를 면치 못하거늘 들어서 뭐하겠느냐.)
 모름지기 쇄쇄락락(灑灑落落*)하여
   (남은 국과 쉰 밥이
   乾坤大地를 어디서 얻어 오느냐?)
 더는 분분운운(紛紛紜紜*)하기를 그친다면
   (舉令者*가 먼저 범하고
   다음 번에는 네 頭上에 이르렀구나.
 후려치고서 "봐줄 수 없다!")
 72棒으로 다만 가볍게 용서하겠지만
   (山僧은 이 令을 행한 적이 없고
   令에 의거해 行했지만
   다행히 山僧에게 그럴만 한 가치가 있었다.)
 150방을 그대에게 놓아주기는 어렵다.
   (正令을 행해야 하거늘 어찌 이렇게 하고 마는가?
   설령 아침에 3천 번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들
   감히 어쩔 것인가?)
 선사가 주장자를 집어들고 下座하거든
   大眾이 一時에 분주히 흩어지리라.
   (雪竇가 龍頭蛇尾해버렸는데 어쩌겠는가?)
  曝(音僕日乾也。
   通作暴。又薄報切)
 *曝(음성은 천하고 표정은 거칠음이다.
   暴으로 지어 통하며 또한 薄報切이다.)

*灑灑落落; 禪林用語. 灑灑는 마음이 迷惑되지 않음을, 
또 落落은 마음이 집착되지 않음 형용하니, 
束縛과 染污를 遠離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않는 自在한 境地를 뜻한다.
*紛紛紜紜; 여러 사람의 의논(議論)이 일치(一致)하지 않아서 
이러니 저러니 하며 시끄럽고 떠들썩함. 
세상(世上)이 떠들썩하여 복잡(複雜)하고 어지러움.

*舉令者; 正令을 거론한 자. 운문을 말한다. 
正令이란 禪門에 教外別傳하는 本分의 命令. 
   즉 棒과 喝 외에는 一法도 세우지 말라는 것이 禪門의 正令이다.
【雲門舉令】「雲門이 하루는 "宗門이 무엇을 舉令했느냐?" 묻고서, 대신하여 "훔(吽)" 했다.
(雲門一日云:宗門作麼生舉令?代云:吽。)」
*吽; ①梵語hūm的音譯。佛教의 咒文에 자주 보이는 聲符. 『옴 마니 반메 훔(唵嘛呢叭咪吽)』
②개들이 싸우는 소리. 

 

雲門委曲為人。
雪竇截徑為人。
所以撥卻化為龍。不消恁麼道。
只是拄杖子吞乾坤。
雪竇大意免人情解。
更道徒說桃花浪奔。
更不必化為龍也
蓋禹門有三級浪。
每至三月。桃花浪漲。
魚能逆水。
而躍過浪者即化為龍。
雪竇道縱化為龍。
亦是徒說。
雲門은 委曲*히 사람을 위했지만
雪竇는 截徑*히 사람을 위했기에
그래서 化為龍을 빼버리고 그런 말 필요 없이
다만 「拄杖子가 乾坤을 삼켰다」고 했으니,
雪竇의 大意는 사람의 情解를 면케하려 함이며,
다시 「공연히 桃花浪이 일어남을 말했다」 한 것은
더는 化하여 龍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禹門에는 三級浪이 있어
매년 三月이 되어 桃花浪이 일거든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오를 수 있어서
물결을 뛰어 넘는 자는 곧 化하여 龍이 된다고 하는데,
雪竇는 化하여 龍이 된다는 것도
공연한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燒尾者不在拏雲攫霧。
魚過禹門。
自有天火燒其尾。
拏雲攫霧而去。
雪竇意道。縱化為龍。
亦不在拏雲攫霧也。
曝腮者何必喪膽亡魂。
清涼疏序云。
積行菩薩。尚乃曝腮於龍門。
大意明華嚴境界
非小德小智之所造詣。
獨如魚過龍門透不過者。
點額而回。
困於死水沙磧中。
曝其腮也。
雪竇意道。既點額而回。
必喪膽亡魂
「燒尾者는 雲霧를 拏攫함에 있지 않다」 했는데,
魚가 禹門을 넘고
스스로 天火로 其尾를 태움이 있어야
雲霧를 拏攫해 가려니와,
雪竇의 의도에는 설령 化하여 龍이 되더라도
또한 雲霧를 拏攫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曝腮者가 何必 膽魂을 喪亡하는가」 한 것은
【清涼疏*】의 序文에 이르기를,
 '積行菩薩이 오히려 결국 龍門에서 曝腮했다' 했는데,
大意는 華嚴境界를 밝힌다는 것이
小德小智에서 이루지는 바가 아니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龍門을 넘어섬에 뚫고 지나가지 못한 놈은
點額*하고 돌아서서
썩은 물과 모래더미 속에 허덕이다가
그 뺨이 볕에 그을릴 것인지라
雪竇의 뜻에 기왕 點額하고 돌아서면
반드시 喪膽亡魂한다고 말한 것이다. 

*委曲; 委婉曲折(말이 매우 완곡하고 곡절 있다). 간접적 표현. 
*截徑; 徑截, 즉 첩경(捷徑). 직설적 표현.
*清涼疏; 華嚴宗 四祖인 清涼澄觀(737~838)이 저술한 《大方廣佛華嚴經疏》20卷을 말한다.
*點額; 옛부터 물고기가 龍門을 넘으면 곧 龍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點額하고 돌아간다고 전해 왔는데, 
후에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자에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拈了也。聞不聞。
重下注腳。
一時與爾掃蕩了也。
諸人直須灑灑落落去。
休更紛紛紜紜。
爾若更紛紛紜紜。
失卻拄杖子了也。
「拈하기를 마쳤으되 들어도 듣지 못했다」고
거듭 注腳(註釋)을 내려서
한꺼번에 너희의 의심을 쓸어 없애주었으니
여러분은 곧 모름지기 灑灑落落해 가고
더는 紛紛紜紜하지 않아야 하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紛紛紜紜하다면
拄杖子를 잃어버린 것이다. 
七十二棒且輕恕。
雪竇為爾捨重從輕。
古人道七十二棒。
翻成一百五十。
如今人錯會。卻只算數目。
合是七十五棒。
為什麼。卻只七十二棒。
殊不知古人意在言外。
所以道。此事不在言句中。
免後人去穿鑿。
雪竇所以引用。
直饒真箇灑灑落落。
正好與爾七十二棒。
猶是輕恕。
直饒總不如此
一百五十難放君。
一時頌了也。
卻更拈拄杖。重重相為。
雖然恁麼
也無一箇皮下有血。
「72棒 정도는 또 가볍게 봐주겠다」 한 것은
雪竇가 너희를 위해 重을 버리고 輕을 따른 것이다.
古人이 이르되, "72棒이
150방으로 바뀐다"고 했는데,
如今의 사람들은 錯會하여 숫자만 헤아리고서
적합한 것은 75棒인데
어째서 도리어 다만 72棒이냐고 하니,
古人의 뜻이 언구 밖에 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인지라
그래서 이 일[此事]은 言句속에 있지 않다고 하여
後人들이 억지로 해석해 가지 않게 한 것이다.
雪竇가 그래서 引用하여
가사 정말 灑灑落落하다면
너희에게 72棒을 주는 것이 꼭 맞겠지만
오히려 이는 가벼이 용서하는 것이고,
또 모든 것이 그렇지 못하다면
150棒을 그대에게 놓기가 어렵다고
一時에 頌해 마치고서
다시 주장자를 들고 거듭거듭 서로를 위했다.
비록 그러했을지라도
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