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59칙 조주(趙州)의 하불인진(何不引盡)

碧雲 2023. 12. 23. 06:44

 중이 신심명의 첫 구절 만을 간택하여 물은 것을 지적하며 
오직 至道만이 唯我獨尊할 뿐 유무, 시비, 장단 따위 간택의 대상은 실존치 않음을 밝혔다. 

 

垂示云。 수시(垂示) 
該天括地。越聖超凡。
百草頭上指出涅槃妙心。
干戈叢裏點定衲僧命脈。
且道承箇什麼人恩力。
便得恁麼。試舉看。
天地를 해괄(該括;包括)하고 凡聖을 초월하여
百草頭上*에서 열반의 妙心을 지적해 내고
干戈叢裏*에서 衲僧의 命脈을 점검하여 결정한다면,
말해보라. 그 어떤 사람의 恩力을 받아야
곧 그러해질 것인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百草頭上; 보통사람[百草;民草]의 머리 위. 즉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곳. 
*干戈叢裏; 창과 방패의 숲속. 치열한 공방이 불꽃튀는 논쟁 속. 

 

 【五九】舉。  【五九】 조주(趙州)의 다만 이 지극한 도[只這至道]
   僧問趙州。
   至道無難。唯嫌揀擇
   (再運前來。道什麼。
   三重公案)
   纔有語言是揀擇
   (滿口含霜)
   和尚如何為人
   (拶著這老漢。㘞)
   州云。何不引盡這語
   (賊是小人智過君子。
   白拈賊。
   騎賊馬趁賊)
   僧云。某甲只念到這裏
   (兩箇弄泥團漢。逢著箇賊。
 垛根難敵手)
   州云。只這至道無難唯嫌揀擇
   (畢竟由這老漢。
 被他換卻眼睛。
   捉敗了也)。
   중이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至道는 無難하되 오직 揀擇만을 꺼린다니
   (거듭 앞으로 몰아왔는데, 무슨 말이냐.
   세 번 중복된 公案이다)
   語言이 있기만 하면 揀擇일 터인데,
   (입안 가득 서리를 머금는다[滿口含霜])
   和尚은 어떻게 사람을 위하렵니까?"
   (이 老漢을 찔러갔다. 영차 영차.)
   "왜 이 語言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도적이 小人이지만 智가 君子를 超過하니
   백념적<白拈賊*>이다.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다니.)
   "저는 생각이 여기까지만 이르렀습니다."
   (두 흙장난이나 하는 놈이 그 적을 만났으니
 타근<垛根*>이 어려운 적수<敵手>다.)
   "다만 이 至道는 無難하되 오직 揀擇만을 꺼린다."
   (필경 이 老漢으로 말미암아
 그가 眼睛이 바뀌는 일을 당하겠다.
   패배해버렸구나.)。

*㘞; ①배의 밧줄을 당길 때 지르는 응원의 함성. ②힘쓰는 소리. 
*白拈賊; 백주에 집어가는 도적. 물건을 훔치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도적. 
*垛根; 한 곳에 머물러 있음. 
허망한 경계에 빠져있거나 言句와 知解에 집착해 있음. 
선가를 책망하는 말로 쓴다. 

 

趙州道。只這至道無難唯嫌揀擇。
如擊石火似閃電光。
擒縱殺活。得恁麼自在。
諸方皆謂。趙州有逸群之辯。
趙州가 「只這至道無難唯嫌揀擇」라 말한 것은
마치 石火 튀기고 電光 번쩍이 듯
擒縱과 殺活에 그렇듯 자재함을 얻었으니
諸方이 모두 '趙州는 逸群의 辯才가 있다'고 하였다. 
趙州尋常示眾。有此一篇云。
至道無難唯嫌揀擇。
纔有語言。是揀擇。是明白。
老僧不在明白裹。
是汝等還護惜也無。
時有僧問云。既不在明白裏。
護惜箇什麼。
州云。我亦不知。
僧云。和尚既不知。
為什麼道。不在明白裏。
州云。問事即得。禮拜了退。
趙州는 보통 示眾 때 이 一篇이 있기에
"至道는 無難하되 오직 揀擇을 嫌惡하는지라
語言이 있기만 하면 揀擇이고 明白인 것이다.
老僧은 明白 속에 있지 않거니와,
너희는 아직 아끼는 것 아니냐?"고 했다.
때에 어느 중이 묻기를, "기왕 명백 속에 있지 않다면
그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깁니까?" 하자,
조주는 "나도 모른다."고 하매,
중이 "和尚이 기왕 모르는데
어째서 명백 속에 있지 않다고 하십니까?" 하니,
조주는 "묻는 일은 그만 됐으니 절하고 가거라." 했다. 
後來這僧只拈他釁罅處去問他。
問得也不妨奇特。
爭奈只是心行。
若是別人奈何他不得。
爭奈趙州是作家。
便道何不引盡這語。
這僧也會轉身吐氣。
便道某甲只念到這裏。
一似安排相似。
趙州隨聲拈起便答。
不須計較。
古人謂之相續也大難。
他辨龍蛇別休咎。
還他本分作家。
後에 이 중이 틈새만 찝어내 그에게 물었으니
물음이 기특하여 마지 않기도 하나
다만 이것이 心行*인 것을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찌하지 못했겠지만
趙州는 作家인 것을 어찌하리오.
곧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는 것이냐?" 하자,
이 중도 轉身하여 氣를 토할 줄 아는지라
곧 "제가 다만 생각이 이 속에 이르렀습니다." 했으니,
安排해 준 것이나 다름이 없는지라
趙州가 그 소리에 拈起하여 곧 답하고
달리 計較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古人이 일러 相續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하였거니와
그 龍蛇를 分辨하고 休咎(吉凶)을 分別하는 일은
저 本分作家의 몫이다.

*흔하(釁罅); 釁이나 罅은 모두 過失, 갈라진 곳, 꿰맨 틈새를 뜻한다. 
*心行; 마음의 행위.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 

趙州換卻這僧眼睛。
不犯鋒鋩。不著計較。
自然恰好。
爾喚作有句也不得。
喚作無句也不得。
喚作不有不無句也不得。
離四句絕百非。
何故。若論此事。
如擊石火。似閃電光。
急著眼看方見。
若或擬議躊躇。
不免喪身失命。
躊躇(上音躊。下音除。
猶豫不進也)。
趙州가 이 중의 眼睛을 바꾸어버리되
칼끝을 범하지 않고 計較를 붙이지도 않아서
自然스럽고 알맞거니와,
너희가 구가 있다[有句]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하지도 못하며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못하리니,
四句를 여의고 百非가 끊긴 것이다.
어째서냐? 이 일을 논하자면
石火 튀고 電光 번쩍이듯
급히 착안해서 살펴야 비로소 보려니와,
혹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는
喪身失命을 면치 못할 것이다.
*躊躇(上音은 躊, 下音은 除이니,
 '猶豫하고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雪竇頌云 설두(雪竇)의 송(頌) 
 水灑不著
   (說什麼太深遠生。
   有什麼共語處)
 風吹不入
   (如虛空相似。硬剝剝地。
   望空啟告)
 虎步龍行
   (他家得自在。不妨奇特)
  鬼號神泣
   (大眾掩耳。草偃風行。
   闍黎莫是與他同參)
 頭長三尺知是誰
   (怪底物。何方聖者。
   見麼見麼)
 相對無言獨足立
   (咄。縮頭去。放過一著。
   山魈。放過即不可。便打)
 물을 뿌려도 묻지 않고
   (무슨 太深遠生*을 말하며,
   무슨 함께 말할 곳이 있느냐?)
 바람을 불어도 들어가지 않으니,
   (마치 虛空과 같아서 끄떡도 하지 않거늘
   허공에다 대고 啟告하는 것이다.)
 범이나 용의 행보(行步)요
   (他家가 自在를 얻다니 기특하여 마지 않다.)
  귀신도 울고 갈 노릇이다.
   (大眾은 귀를 막아라. 초언풍행<草偃風行*>이다.
   선생이 혹시 그와 同參한 것 아닌가?)
 두장삼척(頭長三尺)*이 누구라고 아느냐?
   (괴이한 물건이다. 어느 방면의 聖者냐?
   보는가 보는가?)
 상대하여 말 없이 외발로 서있다.
   (쯧쯧! 움츠러드니 한 수 봐주겠지만
   산소<山魈*>라면 봐줄 수 없다. 곧 후려치다.)

*太深遠生; 너무 深遠한 것. 
*硬剝剝地; 사물의 견고함을 형용하는 말.
*草偃風行; 風行草偃. '윗사람이 덕으로 백성을 교화함'에 비유한 표현. 
*莫是; 설마 ...란 말인가. 아마, 혹시. 
*頭長三尺; 《文獻通考》에 기재된 바 비건국(毗骞国;고대 동남아의 나라명)의 王은 
身長이 一丈二尺이고, 頭長이 三尺인데 천만 년에도 죽지 않는다 했는데, 
이를 가져다 '괴이한 모습의 죽지 않는 왕, 
즉 범부의 안목으로 헤아릴 수 없는 常住하시는 佛陀'에 비유한 것이다. 
*咄; [歎] ①'꾸짖는 호통'을 表示 ②'몹시 애석함'을 表示 
*山魈; 전설 속의 산에 사는 괴물. 

 

水灑不著。風吹不入。
虎步龍行。鬼號神泣。
無爾啗啄處。
此四句頌趙州答話
大似龍馳虎驟。
這僧只得一場懡㦬。
非但這僧。直得鬼也號神也泣。
風行草偃相似。
末後兩句。可謂一子親得。
頭長三尺知是誰。
相對無言獨足立。
不見僧問古德。如何是佛。
古德云。頭長三尺頸長二寸。
雪竇引用。
未審諸人還識麼。
山僧也不識。
雪竇一時脫體畫卻趙州。
真箇在裏了也。
諸人須子細著眼看。
「水灑不著。風吹不入。
虎步龍行。鬼號神泣。」라 했는데,
너희가 쪼아볼 데가 없거니와,
이 四句는 趙州의 答話가
龍虎馳驟*와 매우 흡사하다고 송한 것이다.
이 僧이 한 바탕 마라(懡㦬;慚愧)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僧만이 아니라 곧 귀신도 울고 갈 지경이었으니
바람이 불자 풀이 눕는 것과 같았다.
末後의 兩句는 可히 一子親得*이라 하겠다.
「頭長三尺知是誰。
相對無言獨足立。」이라 했는데,
보지 못했는가. 僧이 古德에게 물어 "如何是佛?" 하니,
古德이 "頭長이 三尺이요 頸長이 二寸이다" 한 것을
雪竇가 引用한 것이다.
未審커라 여러분은 도리어 아는가?
山僧도 모른다.
雪竇가 一時에 趙州를 통째로 그리되
진짜가 그 속에 있게 했으니,
여러분은 모름지기 子細히 著眼하여 볼지어다. 

*龍馳虎驟; 龍虎가 馳驟(치달리다)하다. 羣雄逐鹿. 
群雄이 제왕의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다투는 것. 
*一子親得; '父母의 마음은 오직 친자식만이 안다' 즉 「지음(知音)」에 비유한 말이다. 
*古德; 〈五燈會元〉 瑞州洞山良价悟本禪師 章에 
「僧却問 如何是沙門行 師曰 頭長三尺 頸長二寸」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