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如의 實相은 空空寂寂하여 一物도 없다.
그러나 거기에 한 생각[一塵] 일어나면 곧 거기에
山河도, 迷悟도, 染淨도, 佛凡도, 苦樂도 있어 千差萬別한 相을 羅列시키고,
반면에 一塵이 조금도 動하지 않으면 差別相이 없는 大用이 現前한 境界이니,
이 둘이 곧 둘이 아닌 것이요,
立과 不立, 興盛과 喪亡이 곧 同生同死하는 기틀인 것이다. [佛光大辭典]
垂示云。 | 수시(垂示) |
建法幢立宗旨。 還他本分宗師。 定龍蛇別緇素。 須是作家知識。 劍刃上論殺活。 棒頭上別機宜。則且置。 且道獨據寰中事一句 作麼生商量。 試舉看。 |
法의 기치와 宗旨를 세우기는 저 本分宗師에게 돌리고, 龍蛇와 흑백[緇素]을 定別하기는 모름지기 作家知識이라야 하거니와, 칼날 위에서 죽일지 살릴지를 논하고 棒 끝에서 機宜를 분별하기는 곧 且置하더라도 자 말해보라. 寰中事*를 독점한 一句는 어떻게 商量할 것인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機宜; ①시기(時期)나 형편(形便)에 알맞음.
②중생(衆生)에게 선근(善根)이 있어 교화(敎化)하기에 알맞음.
*寰中事; 천지 안의 일,
【六一】舉。 | 【제61칙】 풍혈(風穴)의 한 티끌[一塵] |
風穴垂語云 (興雲致雨。 也要為主為賓) 若立一塵 (我為法王於法自在。 花簇簇錦簇簇) 家國興盛 (不是他屋裏事) 不立一塵 (掃蹤滅跡。失卻眼睛。 和鼻孔失也) 家國喪亡 (一切處光明。用家國作什麼。 全是他家屋裏事) 雪竇拈拄杖云 (須是壁立千仞始得。 達磨來也) 還有同生同死底衲僧麼 (還我話頭來。雖然如是。 要平不平之事。 須於雪竇商量始得還知麼。 若知許爾自由自在。 若不知朝打三千暮打八百)。 |
風穴이 垂語하여 이르되, (구름을 일으키고 비 오게 하려면 主가 되고 賓이 되어야 한다.) "만약 一塵을 세우면 (내가 法王이 되어 法에 自在하니 花簇簇*하고 錦簇簇하다.) 집안과 나라가 興盛하고, (남의 집 일이 아니다.) 一塵을 세우지 못하면 (蹤跡을 쓸어 없애버리면 眼睛을 잃고 아울러 鼻孔도 잃는다.) 家國이 喪亡한다" 하였는데, (모든 곳이 환한데 家國을 써서 무엇하겠느냐. 온전히 남의 집 일이다.) 雪竇가 주장자를 쥐더니 (모름지기 壁立千仞이라야 한다. 達磨야 오너라.) "同生同死할 그런 衲僧이 있느냐?" 하였다. (내게 話頭를 돌리는 것인가? 비록 그렇더라도 평등치 못한 일을 평등케 하려거든 반드시 雪竇에게서 商量함이 옳다. 알겠느냐? 알면 네가 自由自在해도 좋겠지만 모른다면 아침에 3천 방, 저녁에 8백 방을 치겠다.)。 |
*簇簇; 빽빽히 가득한 모양.
只如風穴示眾云。 若立一塵。家國興盛。 不立一塵。家國喪亡。 且道立一塵即是。 不立一塵即是。 到這裏。須是大用現前始得。 所以道。設使言前薦得。 猶是滯殼迷封。 直饒句下精通。 未免觸途狂見。 |
風穴이 示眾하여 한 말대로 一塵을 세우면 家國이 興盛하고 一塵을 세우지 않으면 家國이 喪亡한다면 말해보라. 一塵을 세우는 것이 좋겠는가, 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大用이 現前해야 한다. 그래서 말하기를(法演禪師) '설사 말하기 전에 薦得한들 오히려 이는 체각미봉(滯殼迷封*)이요, 설령 句下에 精通했더라도 촉도광견(觸途狂見*)을 면치 못한다'고 하였다. |
*滯殼迷封; 껍데기에 같히고 미혹에 봉해지다.
*觸途狂見; 접하는 것마다 미친소견.
他是臨濟下尊宿。 直下用本分草料。 若立一塵。家國興盛 野老顰蹙。 意在立國安邦。須藉謀臣猛將。 然後麒麟出鳳凰翔。 乃太平之祥瑞也。 他三家村裏人。 爭知有恁麼事。 |
그(풍혈)는 臨濟下의 尊宿인지라 直下에 本分草料를 사용한다. 「一塵을 세우면 家國이 흥성한다」는데 野老가 눈살을 찌뿌리는 것은 뜻이 立國安邦이란 반드시 謀臣과 猛將을 의지한 然後에 麒麟이 나오고 鳳凰이 날아야 마침내 太平의 祥瑞라는 데에 있어서이지만, 저 시골[三家村] 속 사람이 어찌 이런 일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
不立一塵。家國喪亡。 風颯颯地。 野老為什麼。出來謳歌。 只為家國喪亡。 洞下謂之轉變處。 更無佛無眾生。無是無非。 無好無惡。絕音響蹤跡。 所以道。金屑雖貴。 落眼成瞖。 又云。金屑眼中瞖。 衣珠法上塵。 己靈猶不重。 佛祖是何人。 七穿八穴。神通妙用。 不為奇特。到箇裏。 衲被蒙頭萬事休。 此時山僧都不會。 若更說心說性。說玄說妙。 都用不著。 何故。他家自有神仙境。 |
「一塵을 세우지 않으면 家國이 喪亡」하여 바람이 쌩쌩 분다는데 野老가 왜 나서서 입을 모아 칭송하는가. 다만 家國의 喪亡을 위함이다. 曺洞宗에서는 이를 轉變處라 하거니와, 더는 부처도 중생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으며, 좋고 나쁨도 없어서 소리와 자취가 끊겼다. 그래서 이르기를 '금가루가 귀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티끌이 된다'고 하고, 또 이르되* '金屑은 눈 속의 티끌이요 衣珠는 法 위의 티끌이라 자기 혼령도 중하지 않거늘 佛祖 따위가 무엇이냐.' 하였으니, 七穿八穴한 神通妙用일지라도 奇特함이 되지 못한다. 그 속에 이르러 납피몽두(衲被蒙頭*)하고 萬事를 쉬어버리거든 이 때 山僧은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다시 心性을 설하고, 玄妙를 설하는 것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가문 스스로에 神仙境이 있어서이다. |
*德山緣密 法嗣 鼎州普安道禪師의 頌 【聯燈會要卷第30】
「 〈通襃貶〉
金屑眼中翳 衣珠法上塵
己靈猶不重 佛祖為何人」
*포폄(襃貶); 是非와 優劣을 가리다. 벼슬아치들의 성적을 고사하여 우열을 매기는 일.
*衲被蒙頭; 蒙頭衲被.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다.
세속의 일과 단절하고 사는 것에 비유하는 말.
南泉示眾云。 黃梅七百高僧。 盡是會佛法底人。 不得他衣缽。 唯有盧行者。不會佛法。 所以得他衣缽。 又云。三世諸佛不知有。 狸奴白牯卻知有。 野老或顰蹙。或謳歌 且道作麼生會。 且道他具什麼眼卻恁麼。 須知野老門前。 別有條章。 雪竇雙拈了。卻拈拄杖云。 還有同生同死底衲僧麼。 當時若有箇漢出來。 道得一句。互為賓主。 免得雪竇這老漢 後面自點胸。 |
南泉이 示眾하여 이르되, "黃梅의 七百高僧*이 다 佛法을 會*한 사람들이었는지라 그의 衣缽을 얻지 못하고, 오직 盧行者*만이 佛法을 不會*했기에 그래서 그의 衣缽을 얻은 것이다." 하였고, 또 "三世諸佛은 있음을 모르고 狸奴白牯가 도리어 있음을 안다.*" 하였는데, 野老가 顰蹙할지 謳歌할지 말해보라. 어찌 알고 있는가. 또 그는 무슨 안목을 구비했기에 그러한 것인가. 모름지기 野老의 門前에 별도의 조문(條文;條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雪竇가 쌍으로 拈古해 마치고서 주장자를 들고 "同生同死할 그런 납승이 있느냐?"고 했을 당시에 어떤 자가 앞에 나서서 一句를 말했더라면 서로 간에 賓主가 되었으리니 雪竇 이 늙은이가 다음과 같이 스스로 點胸*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
*黃梅七百高僧; 《六祖大師法寶壇經》 序에
「단 세 번 黃梅(五祖 홍인)를 대면했을 뿐이고 會中에는 高僧이 七百이었는데
오직 負舂居士(방아찧는 거사;혜능)만이 한 수의 게송으로 의발을 전수받아 六代祖가 되었다.
(三傳而至黃梅,會中高僧七百,惟負舂居士,一偈傳衣,為六代祖。)」 하였다.
*會; 世諦를 쫓아 알다.
*不會; 世諦를 쫓아 알지 않다. 즉 真諦를 쫓아 알다[知].
*盧行者; 六祖惠能의 俗姓이 盧씨이다.
*狸奴白牯; 黧奴白牯라고도 한다.
狸奴는 고양이, 白牯는 흰소이니 하근기 중생에 비유하는 말이다.
*點胸; 가슴에 점찍다. 마음에 와 닿다. 마음에 맺힘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 맺힘이 뻥 뚫림을 뜻하기도 한다.
公案 【南泉黧奴白牯】
「부처는 모르고 축생이 도리어 안다」는 것은
부처와 범부가 따로 있지 않는 同生同死의 관계이니,
상식적인 일반 고정관념을 초월하라는 것이다.
公案 【可真點胸】
翠巖可真이 石霜楚圓의 座下에 있을 때 楚圓이 勘驗하여
可真에게 「佛法의 大意가 무엇이냐?」 하고 물었는데,
可真이 「구름이 없으면 산봉우리가 나타나고,
달이 있으면 출렁이는 마음에 떨어집니다(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하자,
楚圓이 「머리 희고 이빨 누렇토록 아직도 그런 견해를 짓느냐.」고 꾸짖으매,
可真이 눈물을 흘리며 가르침을 구하니,
楚圓이 「네가 내게 물어보거라.」 하였다.
이에 可真이 「佛法의 大意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楚圓은 「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인연법)」이라고 같은 대답을 하매,
可真이 그 말을 듣고 豁然點胸(明達大法 了無所滯)하였다.
禪林에서 이 인연을 可真의 「真點胸」이라고 한다.
佛法의 大意는 雲,月이나 嶺,心 또는 有無를 여읜
山是山水是水 그대로 자연의 이치인지라
일체의 관념을 초월하여 직입해야 한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野老從教不展眉 (三千里外有箇人。 美食不中飽人喫) 且圖家國立雄基 (太平一曲大家知。 要行即行 要住即住。 盡乾坤大地是箇解脫門。 爾作麼生立) 謀臣猛將今何在 (有麼有麼。 土曠人稀相逢者少。 且莫點胸) 萬里清風只自知 (旁若無人。教誰掃地。 也是雲居羅漢) |
野老가 教를 쫓아 만족치 못한 것은 (三千里 밖에 그가 있다. 美食도 배부른 사람 먹기에는 맞지 않다.) 다만 家國을 도모하고 雄基를 세움이다. (太平歌 한 곡조를 大家가 알되,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만다. 온 천하가 바로 그 해탈문이거늘, 네가 어떻게 세우겠느냐?) 謀臣과 猛將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있는냐, 있느냐? 땅은 넓어도 사람이 귀해 相逢者가 적으니, 다만 마음에 두지[點胸] 말라.) 萬里清風*은 다만 스스로 알 따름이다. (곁에 사람이 없는데 누구더러 땅을 쓸라고 하겠느냐. 이 또한 雲居羅漢*이다.) |
*萬里清風; 만 리에 퍼지는 시원한 바람,
즉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清新하고 高潔한 風格.
*雲居羅漢; 구름 위에 사는 羅漢. 세속을 멀리 여읜 사람 또는
오만에 빠져 자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適來雙提了也。 這裏卻只拈一邊放一邊。 裁長補短。 捨重從輕。 所以道。野老從教不展眉。 我且圖家國立雄基。 謀臣猛將今何在。 雪竇拈拄杖云。 還有同生同死底衲僧麼。 一似道還有謀臣猛將麼。 一口吞卻一切人了也。 所以道。土曠人稀 相逢者少。 還有相知者麼。 出來一坑埋卻。 萬里清風只自知便。 是雪竇點胸處也。 |
앞서에는 쌍으로 拈提했으나 여기서는 한 쪽만 拈提하고 다른 한 쪽은 놓아버렸으니, 긴 데를 잘라 짧은 곳을 보충하고, 중한 것을 버리고 가벼움을 쫓은 것이다. 그래서 「野老가 教를 쫓아 展眉치 못함은 내가 다만 家國을 도모하고 雄基를 세움이다」고 하였다. 「謀臣과 猛將은 지금 어디에 있나?」는 雪竇가 拄杖을 들고 "同生同死할 자가 있느냐?" 한 것이 꼭 "謀臣과 猛將이 있느냐?" 한 것과 같아서 한 입에 모든 사람을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 넓어도 사람이 귀해서 만나는 자가 적다고 하는 것인데 서로 아는 자가 있느냐? 나서라.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겠다. 「萬里清風은 다만 스스로 알 뿐이다」는 곧 雪竇가 點胸한 곳이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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