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公案은 佛法의 真旨가 言語와 有無의 相對的 境界를 超越하였음을
世尊께서 親히 보여주신 것으로 曹洞宗 宏智正覺(1091~1157)이 主唱한
默照禪의 根幹을 이룬다.
「外道問佛」, 「外道問佛有無」, 「世尊良久」라고도 한다.
垂示云。 | 수시(垂示) |
無相而形。充十虛而方廣。 無心而應。遍剎海而不煩。 舉一明三 目機銖兩。 直得棒如雨點喝似雷奔。 也未當得向上人行履在。 且道作麼生。是向上人事。 試舉。 |
無相이 形이면 온 천지가 方廣*하고, 無心으로 應하면 온 우주가 번뇌롭지 않다. 하나를 들추면 셋을 알고 한 눈에 미세한 곳까지 알아채며, 棒을 빗방울 치듯 하고 喝을 우레치듯 해도 아직 向上人의 行履*를 얻지 못함에 있는 것이다. 자, 말해보라. 어떤 것이 向上人의 일인가? 예를 들어보겠다. |
*十虛; 十方 虛空界.
*方廣; 毘佛略(Vaipulya). 大乘經의 通稱. 12部經의 第10을 方廣經이라 別稱한다.
「方」은 이치가 치우침 없이 方正함을 말하고, 「廣」은 言詞가 광범위 함을 뜻한다.
*行履; 行은 進退, 履는 實踐이니, 日常의 모든 行為 즉 行住坐臥와 語默動靜,
喫茶喫飯하고 屙屎送尿하는 일들을 말한다.
衲僧의 行履는 佛祖가 規制할 수 없고, 外魔가 攪亂할 수 없는
일거수 일투족 모두가 道의 現成인 것이다.
【六五】舉。 | 【제65칙】 외도가 부처님께 묻다[外道問佛]. |
外道問佛。不問有言。 不問無言 (雖然如是。 屋裏人也有些子香氣。 雙劍倚空飛。賴是不問) 世尊良久 (莫謗世尊。其聲如雷。 坐者立者皆動他不得) 外道讚歎云。 世尊大慈大悲。開我迷雲。 令我得入 (伶俐漢一撥便轉。 盤裏明珠) |
外道가 부처님께 "有言을 不問하고 無言을 不問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비록 그렇더라도 집안 사람이라야 조금 香氣가 있을 텐데 雙劍이 허공을 날아도 묻지 않겠다니.) 世尊께서는 良久*하셨다. (世尊을 비방치 말라. 그 음성이 우레 같아서 앉은 자나 선 자가 모두 그를 움직여볼 수 없다.) 外道가 讚歎하여 말하기를, "世尊께서 大慈大悲로 저의 迷雲을 여시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셨나이다" 하였다. (伶俐漢이 一撥便轉*하다니, 盤中의 明珠로구나.) |
外道去後阿難問佛。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不妨令入疑著。 也要大家知。錮鐪著生鐵) 佛云。如世良馬見鞭影而行 (且道喚什麼作鞭影。 打一拂子。 棒頭有眼明如日。 要識真金火裏看。 拾得口喫飯)。 |
外道가 간 뒤에 阿難이 佛께 "外道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기에 得入을 말합니까?" 하고 여쭈니, (의심케 할만 하여 마지 않고, 또 大家가 알고자 함이지만 錮鐪著生鐵*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의 良馬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리는 것과 같다" (말해보라. 무엇을 鞭影이라 부르는가? 拂子를 한 번 치고서... 棒 끝에 있는 눈이 태양처럼 밝으니, 真金을 식별하려거든 불 속을 보고, 입을 拾得하여 밥을 먹거라.)。 |
*良久; 禪林用語。원 뜻은 오랜시간을 보냈다는 뜻인데,
禪林에서는 「無言無語의 상태」의 뜻으로 쓴다.
*得入; 得은 證得 入은 悟入이니, 佛道를 證得悟入하다.
*一撥便轉; 한 번의 撥開(열어젖침)에 문득 轉變(굴러변함)하다.
단 한 번의 지도로 곧 바로 깨우침에 비유한다.
*錮鐪著生鐵; 錮는 땜질이요, 鏴는 냄비나 솥 같은 것이니, 錮鏴는 냄비 때우기이다.
錮鐪에 生鐵을 붙인다는 것은 제련하지 않은 生鐵로
금속 그릇을 땜질하려 한다는 것이니,
전혀 쓸데 없는 어리석은 잣에 비유하는 말이다.
*良馬見鞭影而行;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린다는 것으로
才德 있는 자는 남의 감독 없어도 스스로 해쳐 나갈 수 있음에 비유하는 말이다.
此事若在言句上。 三乘十二分教。豈是無言句。 或道無言便是。 又何消祖師西來作什麼。 只如從上來。許多公案。 畢竟如何見其下落。 這一則公案。話會者不少。 有底喚作良久。 有底喚作據坐。 有底喚作默然不對。 且喜沒交涉。 幾曾摸索得著來。 此事其實。不在言句上。 亦不離言句中。 若稍有擬議。 則千里萬里去也。 看他外道省悟後。 方知亦不在此。亦不在彼。 亦不在是。亦不在不是。 且道是箇什麼。 |
此事가 만일 言句上에 있다면 三乘十二分教가 어찌 無言句겠는가? 혹 無言이 곧 맞다고 말한다면 또 왜 꼭 祖師가 西來해서 무엇을 해야 했겠으며, 예로부터의 許多한 公案들은 畢竟 어떻게 그 下落*을 보겠는가? 이 한 則의 公案은 話會*하는 者가 적지 않아서 어떤 이는 良久라고 하고, 어떤 이는 據坐*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默然不對라고도 하는데, 그럴싸 하나 전혀 交涉이 없다. 언제 摸索하여 得著해본 적이나 있는가? 이 일은 사실 言句上에 있지 않고 言句中을 여의지도 않거니와, 만일 조금이라도 擬議가 있다면 곧 千里萬里 멀어지는 것이다. 저 外道를 보건대 省悟한 뒤에 바야흐로 此에도 있지 않고 彼에도 있지 아니하며 是에도 있지 않고 不是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는데, 말해보라. 이것이 무엇인가? |
*下落; 著落. 歸結處.
*話會; 談論.
*據坐; 穩定不動.
*幾曾; 何曾, 何嘗. 언제 …한 적이 있었느냐.
*得著; 得到. 손에 넣다. 되다. 얻다. 받다. (이룩)되다.
天衣懷和尚頌云。 維摩不默不良久。 據坐商量成過咎。 吹毛匣裏冷光寒。 外道天魔皆拱手。 百丈常和尚參法眼。 眼令看此話。 法眼一日問。爾看什麼因緣。 常云。外道問佛話。 眼云。爾試舉看。 常擬開口。 眼云。住住。 爾擬向良久處會那。 常於言下。忽然大悟。 後示眾云。 百丈有三訣。喫茶珍重。歇。 擬議更思量。 知君猶未徹。 翠巖真點胸拈云。 六合九有青黃赤白。 一一交羅 |
天衣懷和尚*이 頌하여 「維摩는 默然하지도 良久하지도 않았거니와 據坐하거나 商量하면 過咎를 이룬다. 취모검 칼집 속에 冷光이 싸늘하니 外道와 天魔가 모두 拱手*하리라.」 하였다. 百丈常和尚*이 法眼을 참례하니, 법안이 이 얘기를 살피게 했다. 法眼이 하루는 "너는 무슨 인연을 보느냐?" 묻자 常이 "外道가 問佛한 이야기입니다." 하매, 眼이 "네가 한 번 들춰보거라" 하니, 常이 막 입을 열려는데 眼이 "멈춰라, 멈춰라!" 하더니, "네가 良久處를 향해 알려고 하느냐?" 하매, 常은 言下에 忽然히 大悟했다. 後에 示眾하여 이르기를, "百丈常에게는 喫茶, 珍重, 歇이라는 三訣이 있다. 擬議하거나 또 思量한다면 그대가 아직 未徹했음을 알라" 하였다. 翠巖真點胸*이 拈古하되, "六合*과 九有*, 青黃赤白이 낱낱이 交羅*한다." 하였다. |
*天衣懷; 越州天衣義懷禪師(雪竇重顯法嗣)青原下十世
*百丈常; 洪州百丈道恒禪師(清涼文益法嗣)青原下九世. 百丈道常이라고도 한다.
*翠巖真點胸; 洪州翠巖可真禪師(石霜楚圓 法嗣)南嶽下十一世,
號 真點胸(【禪林僧寶傳】 卷第25 大溈真如喆禪師 章).
*拱手;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공경을 표하는 예법.
*六合; 東南西北上下.
*九有; 중생이 윤회하며 머무는 아홉 가지 境界.
①欲界의 人과 六天 ②初禪天 ③二禪天 ④三禪天
⑤四禪天中의 無想天 ⑥空處 ⑦識處 ⑧無所有處 ⑨非想非非想處
*交羅; 뒤섞여 나열되다.
外道會四維陀典論。 自云。我是一切智人。 在處索人論議。 他致問端。 要坐斷釋迦老子舌頭。 世尊不費纖毫氣力。 他便省去。讚歎云。 世尊大慈大悲。開我迷雲。 令我得入 且道作麼生。是大慈大悲處。 世尊隻眼通三世。 外道雙眸貫五天。 溈山真如拈云。 外道懷藏至寶。世尊親為高提。 森羅顯現。萬象歷然。 且畢竟外道悟箇什麼。 如趁狗逼牆。 至極則無路處。 他須回來。便乃活鱍鱍地。 若計較是非。 一時放下情盡見除。 自然徹底分明。 |
外道가 四維陀典論*을 理會하고서 스스로 나는 一切智人이다 하며 가는 곳마다에서 論議할 사람을 찾았다. 그가 질문을 던진 端初는 釋迦老子의 舌頭를 坐斷하고자 함이었으나 世尊은 纖毫의 氣力도 消費하지 않으셨다. 그가 곧 省察하고서 讚歎하되,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시나이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무엇이 大慈大悲한 곳인가? 世尊의 隻眼은 三世를 通達하고 外道의 雙眸은 五天을 貫通했다(道吾悟眞). 溈山真如*는 拈하여 '外道가 懷藏한 至寶를 世尊이 親히 高提하시니 森羅가 顯現하고 萬象이 歷然하다'고 하였다. 자, 畢竟 外道는 그 무엇을 悟했는가? 개를 쫓아 담벽에 맞닥뜨리듯이 極則의 막다른 곳에 이르거든 그가 반드시 돌아와야만 이내 活鱍鱍地일 것이요, 만약 計較와 是非를 一時에 放下하여 情이 다하고 見이 없어진다면 自然 徹底히 分明할 것이다. |
*四維陀典論; 고대 인도의 바라문들이 배웠다는 壽(養生繕性), 祠(享祭祈禱),
平(禮儀,占卜,兵法,軍陣), 術(異能,伎數,禁呪,醫方)의 4典論.
維陀(veda)는 舊稱으로 韋陀, 圍陀, 毘陀, 皮陀라고도 했으나,
新稱은 吠陀, 吠駄, 薜陀, 鞞陀이며, 譯하여 明智, 明分, 明法이라 한다.
*溈山真如; 潭州大溈慕喆真如禪師(翠巖可真法嗣)南嶽下十二世
外道去後。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而言得入。 佛云。如世良馬見鞭影而行。 後來諸方便道。 又被風吹別調。 中又云。龍頭蛇尾。 什麼處是世尊鞭影。 什麼處是見鞭影處。 雪竇云。 邪正不分。過由鞭影。 真如云。阿難金鐘再擊。 四眾共聞。 雖然如是。大似二龍爭珠。 長他智者威獰。 |
外道가 간 뒤에 阿難이 부처님께 여쭙되,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得入을 말합니까? 하니, 부처님이 세간의 良馬가 鞭影을 보고 달림과 같다고 하셨는데, 후에 와서 諸方이 곧 이르되, 또 '風吹를 입은 유별한 곡조다' 하고, 그 중에는 또 '龍頭蛇尾다'라고도 하거니와, 어느 곳이 世尊의 鞭影이며, 어느 곳이 鞭影을 본 곳인가? 雪竇가 말하기를, '邪正가 불분명함은 허물이 鞭影에 있다' 하였고, 真如는 '阿難이 金鐘을 재차 울리니 四眾이 함께 듣는다.' 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꼭 두 龍이 구슬을 다투듯이 저 지혜로운 자의 위세의 사나움만 키운 셈이다. |
雪竇頌云。 | 雪竇의 頌 |
機輪曾未轉 (在這裏。果然不動一絲毫) 轉必兩頭走 (不落有必落無。不東則西。 左眼半斤右眼八兩) 明鏡忽臨臺 (還見釋迦老子麼。 一撥便轉 破也破也。敗也敗也) 當下分妍醜 (盡大地是箇解脫門。 好與三十棒。 還見釋迦老子麼) |
機輪*은 구른 적이 없으나 (이 속에서는 果然 一絲毫도 不動하다.) 굴리면 반드시 兩頭로 달리거니와 (有에 떨어지지 않으면 必히 無에 떨어지고, 東이 아니면 곧 西이리니, 左眼半斤이요 右眼八兩이다.) 明鏡이 홀연 臺에 걸리거든 (釋迦老子가 보이더냐. 一撥便轉*하다니 졌다 졌다. 패하고 패했다.) 그자리에서 妍醜(美醜)가 나뉘리라. (온 大地가 그 解脫門이다. 30棒을 유념하거라. 釋迦老子를 만났느냐?) |
妍醜分兮迷雲開 (放一線道。 許爾有箇轉身處。 爭奈只是箇外道) 慈門何處生塵埃 (遍界不曾藏。 退後退後。達磨來也) 因思良馬窺鞭影 (我有拄杖子。不消爾與我。 且道什麼處是鞭影處。 什麼處是良馬處) 千里追風喚得回 (騎佛殿出三門去也。 轉身即錯。放過即不可。 便打) 喚得回鳴指三下 (前不搆村。後不迭店。 拗折拄杖子。向什麼處去。 雪竇雷聲甚大。雨點全無) |
妍醜가 나뉘면 迷雲이 열리거늘 (한 가닥 길을 놓아 너에게 어떤 轉身處가 있게 했으나 다만 外道일 뿐임을 어쩌겠는가.) 慈門의 어디에서 塵埃가 생기리오. (온 세계[遍界]가 숨기지 않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達磨가 왔다.) 良馬의 채찍보기를 고려해보면 (내게 拄杖子가 있으니 네가 내게 줄 필요 없다. 말해보라. 어디가 鞭影處이고 어디가 良馬處인가?) 千里追風*을 불러 돌아오게 할 수 있나니 (佛殿을 타고 三門을 나간다. 몸을 굴린 즉 어긋나고, 지나칠 수도 없다. 곧 무릎을 치다.) 불러오려거든 손가락을 세 번 튕길지어다. (앞에 마을도 없고 뒤에 가게도 없다. 拄杖子를 拗折내고 어디로 가느냐. 雪竇가 雷聲은 甚大하나 雨點*은 全無하구나.) |
*機輪; 기계의 톱니바퀴. 진리의 본래 모습.
*左眼半斤右眼八兩; 1斤은 16兩, 半斤은 8兩이니,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마찬가지다는 뜻.
*一撥便轉; 한 번의 撥開(열어젖침;자극)에 문득 變轉(변해 구름)하다.
단 한 번의 지도로 곧 바로 깨우침에 비유한다.
*妍醜; 美醜.
*好與; 留意, 留心.
*千里追風;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명마.
*前不搆村後不迭店; 前不巴村 後不著店.
앞에 마을도 없고 뒤에 점포도 없다 함은
먼 길을 떠나 발 디딜 곳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을 말하며,
난처한 처지나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비유한다.
*雨點; 빗방울 적심. 감동을 느끼게 하는 점.
機輪曾未轉。轉必兩頭走。 機乃千聖靈機。 輪是從本已來諸人命脈。 不見古人道。 千聖靈機不易親。 龍生龍子莫因循。 趙州奪得連城璧。 秦王相如總喪身。 外道卻是把得住作得主。 未嘗動著。 何故他道。不問有言。 不問無言。 豈不是全機處。 |
「機輪은 구른 적 없으되 구르면 반드시 兩頭로 달린다」 했는데, 機는 바로 千聖의 靈機요, 輪은 본디부터 내려온 諸人의 命脈이다. 보지 못했는가? 古人*이 이르되, 「千聖의 靈機는 親하기 쉽지 않고 龍이 龍子 낳기는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趙州가 連城璧*을 奪得하매 秦王*도 相如*도 모두 喪身해버렸다」 하였다. 外道가 도리어 把住하고 主人이 되어 動著한 적이 없거늘 어째서 그가 「不問有言。 不問無言。」이라 했으며, 어찌 이것이 全機處가 아니겠는가? |
世尊會看風使帆。應病與藥。 所以良久。全機提起。 外道全體會去。 機輪便阿轆轆地轉。 亦不轉向有。 亦不轉向無。 不落得失。 不拘凡聖。 二邊一時坐斷。 世尊纔良久。他便禮拜。 如今人多落在無。 不然落在有。 只管在有無處。兩頭走。 |
世尊이 看風使帆*하고 應病與藥할 줄 아셨기에 그래서 良久하시어 全機를 提起하셨는데 外道가 온전히 알고 機輪이 곧 阿轆轆地*로 굴러 有를 향해 구르지도 않고 無를 향해 구르지도 않았으며, 得失에 떨어지지도 않고 凡聖에 구애되지도 않아서 二邊을 一時에 坐斷해버린지라 世尊이 겨우 良久했는데 그가 곧 禮拜했다. 如今의 사람들은 흔히 無에 떨어져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有에 떨어진 채 오로지 有無處에서만 兩頭로 달린다. |
*古人; 雪竇. 설두가 趙州의 庭前柏樹子에 붙인 게송 2편중 하나이다.
*連城璧; 趙나라 惠文王이 楚의 和氏璧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秦 昭王이 趙王에게 親書를 보내 15개 城과 璧玉을 맞바꾸자고 제안했으니,
이로 인해 후세에 和氏璧을 連城璧이라고도 하였다.
*秦王; 秦 昭王. *相如; 藺相如. (48칙 註 「相如奪璧」 참조)
*看風使帆; 看風使舵. 바람을 보아 돛을 조종하다. 정세를 살펴 가며 행동하다.
*阿轆轆地; 禪林用語。轉轆轆地。阿는 語助詞, 轆轆은 車輪이 굴러가는 소리,
地는 語尾助詞이니, 곧 事物이 停滯없이 곧바로 進行한다는 것으로
無礙自由하고 圓轉自在한 境地를 形容하며, 또 口才가 無礙함을 形容하기도 한다.
雪竇道。明鏡忽臨臺。 當下分妍醜。 這箇不曾動著。 只消箇良久。 如明鏡臨臺相似。 萬象不能逃其形質。 外道云。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令我得入。 且道是什麼處。是外道入處。 到這裏。 須是箇箇自參自究。 自悟自會始得。 便於一切處。行住坐臥。 不問高低。一時現成。 更不移易一絲毫。 纔作計較。有一絲毫道理。 即礙塞殺人。 更無入作分也。 |
雪竇가 「明鏡이 홀연 臺에 걸리면 곧바로 연추(妍醜;美醜)가 나뉜다」 했는데, 이런 움직인 적 없고 다만 저 良久만 소용된 것이 마치 明鏡이 臺에 걸린 것과 같은지라 萬象이 그 形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外道가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得入케 하셨다」 했는데, 말해보라. 어느 곳이 외도가 들어간 곳인가?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箇箇가 自參自究하고 自悟自會해야 할 것이다. 문득 一切處의 行住坐臥에 高低를 不問하고 一時에 現成한다면 다시 한 絲毫도移易하지 않겠지만 잠깐 計較를 지어 한 絲毫의 道理가 있기만 하면 곧 礙塞이 심한 사람인 것이요, 다시 入作分*이 없는 것이다. |
*入作分; 대지주의 농토에 소작농으로 합세할 분수,
즉 득입으로 나아가는 대열에 참여할 자격.
後面。頌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當下忽然分妍醜。 妍醜分兮迷雲開。 慈門何處生塵埃。 盡大地是世尊大慈大悲門戶。 爾若透得。不消一捏。 此亦是放開底門戶。 不見世尊。於三七日中。 思惟如是事。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
後面에서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셨나이다」를 頌하여 「當下에 忽然히 妍醜를 나눴다」고 하였다. 妍醜가 나뉘고 迷雲이 열리거든 慈門의 어느 곳에서 塵埃가 생기겠는가. 온 大地가 世尊 大慈大悲의 門戶이거니와, 너희가 透得하면 손가락 까딱할 필요가 없으리니 이 역시 그 門戶를 開放하심이다. 보지 못했는가? 世尊께서 21일 동안 이와 같은 일을 思惟하시고 '내가 차라리 說法하지 않고 빨리 涅槃에 들리라' 하시니라. |
因思良馬窺鞭影。 千里追風喚得回。 追風之馬。見鞭影而便過千里。 教回即回。 雪竇意賞他道。 若得俊流。 方可一撥便轉。 一喚便回。 若喚得回。 便鳴指三下。 且道是點破。是撒沙。 |
「'良馬 鞭影보기'를 생각하고서 千里追風을 불러 돌아오게 했다」고 했는데, 追風之馬는 鞭影을 보면 곧 千里를 가고 돌아오라 하면 곧 돌아온다. 雪竇의 뜻은 그를 補償하여 '만일 俊流(걸출한 인물)를 얻는다면 바야흐로 一撥便轉할 수 있고 한 번 부름에 곧 돌아오게 되리니, 만약 불러 돌아오게 하려거든 곧 손가락을 세 번 튕겨라'고 말한 것인데, 말해보라. 이것이 點破*인가 撒沙*인가? |
*點破; 점검하여 파헤침.
*撒沙; 모래를 뿌림.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에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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