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65칙 외도(外道)의 양마편영(良馬鞭影)

碧雲 2024. 3. 6. 10:23

 이 公案은 佛法의 真旨가 言語와 有無의 相對的 境界를 超越하였음을 
世尊께서 親히 보여주신 것으로 曹洞宗 宏智正覺(1091~1157)이 主唱한 
默照禪의  根幹을 이룬다. 
「外道問佛」, 「外道問佛有無」, 「世尊良久」라고도 한다. 

 

垂示云。 수시(垂示) 
無相而形。充十虛而方廣。
無心而應。遍剎海而不煩。
舉一明三 目機銖兩。

直得棒如雨點喝似雷奔。
也未當得向上人行履在。
且道作麼生。是向上人事。
試舉。
無相이 形이면 온 천지가 方廣*하고,
無心으로 應하면 온 우주가 번뇌롭지 않다.
하나를 들추면 셋을 알고
한 눈에 미세한 곳까지 알아채며,
棒을 빗방울 치듯 하고 喝을 우레치듯 해도
아직 向上人의 行履*를 얻지 못함에 있는 것이다.
자, 말해보라. 어떤 것이 向上人의 일인가?
예를 들어보겠다.

*十虛; 十方 虛空界. 
*方廣; 毘佛略(Vaipulya). 大乘經의 通稱. 12部經의 第10을 方廣經이라 別稱한다. 
「方」은 이치가 치우침 없이 方正함을 말하고, 「廣」은 言詞가 광범위 함을 뜻한다. 
*行履; 行은 進退, 履는 實踐이니, 日常의 모든 行為 즉 行住坐臥와 語默動靜, 
喫茶喫飯하고 屙屎送尿하는 일들을 말한다. 
衲僧의 行履는 佛祖가 規制할 수 없고, 外魔가 攪亂할 수 없는 
일거수 일투족 모두가 道의 現成인 것이다.

 

 【六五】舉。  【제65칙】 외도가 부처님께 묻다[外道問佛].
   外道問佛。不問有言。
   不問無言
   (雖然如是。
   屋裏人也有些子香氣。
   雙劍倚空飛。賴是不問)
   世尊良久
   (莫謗世尊。其聲如雷。
   坐者立者皆動他不得)
   外道讚歎云。
   世尊大慈大悲。開我迷雲。
   令我得入
   (伶俐漢一撥便轉。
   盤裏明珠)
   外道가 부처님께 "有言을 不問하고
   無言을 不問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비록 그렇더라도
   집안 사람이라야 조금 香氣가 있을 텐데
   雙劍이 허공을 날아도 묻지 않겠다니.)
   世尊께서는 良久*하셨다. 
   (世尊을 비방치 말라. 그 음성이 우레 같아서
   앉은 자나 선 자가 모두 그를 움직여볼 수 없다.)
   外道가 讚歎하여 말하기를,
   "世尊께서 大慈大悲로 저의 迷雲을 여시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셨나이다" 하였다.
   (伶俐漢이 一撥便轉*하다니,
   盤中의 明珠로구나.)
   外道去後阿難問佛。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不妨令入疑著。
   也要大家知。錮鐪著生鐵)
   佛云。如世良馬見鞭影而行

   (且道喚什麼作鞭影。
 打一拂子。
   棒頭有眼明如日。
   要識真金火裏看。
   拾得口喫飯)。
   外道가 간 뒤에 阿難이 佛께
   "外道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기에
   得入을 말합니까?" 하고 여쭈니,
   (의심케 할만 하여 마지 않고,
   또 大家가 알고자 함이지만 錮鐪著生鐵*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의 良馬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리는 것과 같다"
   (말해보라. 무엇을 鞭影이라 부르는가?
 拂子를 한 번 치고서...
   棒 끝에 있는 눈이 태양처럼 밝으니,
   真金을 식별하려거든 불 속을 보고,
   입을 拾得하여 밥을 먹거라.)。

*良久; 禪林用語。원 뜻은 오랜시간을 보냈다는 뜻인데, 
禪林에서는 「無言無語의 상태」의 뜻으로 쓴다.
*得入; 得은 證得 入은 悟入이니, 佛道를 證得悟入하다. 
*一撥便轉; 한 번의 撥開(열어젖침)에 문득 轉變(굴러변함)하다. 
단 한 번의 지도로 곧 바로 깨우침에 비유한다. 
*錮鐪著生鐵; 錮는 땜질이요, 鏴는 냄비나 솥 같은 것이니, 錮鏴는 냄비 때우기이다. 
錮鐪에 生鐵을 붙인다는 것은 제련하지 않은 生鐵로 
금속 그릇을 땜질하려 한다는 것이니, 
전혀 쓸데 없는 어리석은 잣에 비유하는 말이다.
*良馬見鞭影而行;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린다는 것으로 
才德 있는 자는 남의 감독 없어도 스스로 해쳐 나갈 수 있음에 비유하는 말이다. 

 

此事若在言句上。
三乘十二分教。豈是無言句。
或道無言便是。
又何消祖師西來作什麼。
只如從上來。許多公案。
畢竟如何見其下落。
這一則公案。話會者不少。
有底喚作良久。
有底喚作據坐。
有底喚作默然不對。
且喜沒交涉。
幾曾摸索得著來。
此事其實。不在言句上。
亦不離言句中。
若稍有擬議。
則千里萬里去也。
看他外道省悟後。
方知亦不在此。亦不在彼。
亦不在是。亦不在不是。
且道是箇什麼。
此事가 만일 言句上에 있다면
三乘十二分教가 어찌 無言句겠는가?
혹 無言이 곧 맞다고 말한다면
또 왜 꼭 祖師가 西來해서 무엇을 해야 했겠으며,
예로부터의 許多한 公案들은
畢竟 어떻게 그 下落*을 보겠는가?
이 한 則의 公案은 話會*하는 者가 적지 않아서
어떤 이는 良久라고 하고,
어떤 이는 據坐*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默然不對라고도 하는데,
그럴싸 하나 전혀 交涉이 없다.
언제 摸索하여 得著해본 적이나 있는가?
이 일은 사실 言句上에 있지 않고
言句中을 여의지도 않거니와,
만일 조금이라도 擬議가 있다면
곧 千里萬里 멀어지는 것이다.
저 外道를 보건대 省悟한 뒤에
바야흐로 此에도 있지 않고 彼에도 있지 아니하며
是에도 있지 않고 不是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는데,
말해보라. 이것이 무엇인가? 

*下落; 著落. 歸結處. 
*話會; 談論. 
*據坐; 穩定不動.
*幾曾; 何曾, 何嘗. 언제 …한 적이 있었느냐.
*得著; 得到. 손에 넣다. 되다. 얻다. 받다. (이룩)되다.

天衣懷和尚頌云。
維摩不默不良久。
據坐商量成過咎。
吹毛匣裏冷光寒。
外道天魔皆拱手。
百丈常和尚參法眼。
眼令看此話。
法眼一日問。爾看什麼因緣。
常云。外道問佛話。
眼云。爾試舉看。
常擬開口。
眼云。住住。
爾擬向良久處會那。
常於言下。忽然大悟。
後示眾云。
百丈有三訣。喫茶珍重。歇。
擬議更思量。
知君猶未徹。
翠巖真點胸拈云。
六合九有青黃赤白。
一一交羅 
天衣懷和尚*이 頌하여
「維摩는 默然하지도 良久하지도 않았거니와
據坐하거나 商量하면 過咎를 이룬다.
취모검 칼집 속에 冷光이 싸늘하니
外道와 天魔가 모두 拱手*하리라.」 하였다.
百丈常和尚*이 法眼을 참례하니,
법안이 이 얘기를 살피게 했다.
法眼이 하루는 "너는 무슨 인연을 보느냐?" 묻자
常이 "外道가 問佛한 이야기입니다." 하매,
眼이 "네가 한 번 들춰보거라" 하니,
常이 막 입을 열려는데
眼이 "멈춰라, 멈춰라!" 하더니,
"네가 良久處를 향해 알려고 하느냐?" 하매,
常은 言下에 忽然히 大悟했다.
後에 示眾하여 이르기를,
"百丈常에게는 喫茶, 珍重, 歇이라는 三訣이 있다.
擬議하거나 또 思量한다면
그대가 아직 未徹했음을 알라" 하였다.
翠巖真點胸*이 拈古하되,
"六合*과 九有*, 青黃赤白이
낱낱이 交羅*한다." 하였다. 

*天衣懷; 越州天衣義懷禪師(雪竇重顯法嗣)青原下十世
*百丈常; 洪州百丈道恒禪師(清涼文益法嗣)青原下九世. 百丈道常이라고도 한다.
*翠巖真點胸; 洪州翠巖可真禪師(石霜楚圓 法嗣)南嶽下十一世, 
號 真點胸(【禪林僧寶傳】 卷第25 大溈真如喆禪師 章).
*拱手;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공경을 표하는 예법. 
*六合; 東南西北上下.
*九有; 중생이 윤회하며 머무는 아홉 가지 境界. 
①欲界의 人과 六天 ②初禪天 ③二禪天 ④三禪天 
⑤四禪天中의 無想天 ⑥空處 ⑦識處 ⑧無所有處 ⑨非想非非想處
*交羅; 뒤섞여 나열되다. 

外道會四維陀典論。
自云。我是一切智人。
在處索人論議。
他致問端。
要坐斷釋迦老子舌頭。
世尊不費纖毫氣力。
他便省去。讚歎云。
世尊大慈大悲。開我迷雲。
令我得入
且道作麼生。是大慈大悲處。
世尊隻眼通三世。
外道雙眸貫五天。
溈山真如拈云。
外道懷藏至寶。世尊親為高提。
森羅顯現。萬象歷然。
且畢竟外道悟箇什麼。
如趁狗逼牆。
至極則無路處。
他須回來。便乃活鱍鱍地。
若計較是非。
一時放下情盡見除。
自然徹底分明。
外道가 四維陀典論*을 理會하고서
스스로 나는 一切智人이다 하며
가는 곳마다에서 論議할 사람을 찾았다.
그가 질문을 던진 端初는
釋迦老子의 舌頭를 坐斷하고자 함이었으나
世尊은 纖毫의 氣力도 消費하지 않으셨다.
그가 곧 省察하고서 讚歎하되,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시나이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무엇이 大慈大悲한 곳인가?
世尊의 隻眼은 三世를 通達하고
外道의 雙眸은 五天을 貫通했다(道吾悟眞).
溈山真如*는 拈하여
 '外道가 懷藏한 至寶를 世尊이 親히 高提하시니
森羅가 顯現하고 萬象이 歷然하다'고 하였다.
자, 畢竟 外道는 그 무엇을 悟했는가?
개를 쫓아 담벽에 맞닥뜨리듯이
極則의 막다른 곳에 이르거든
그가 반드시 돌아와야만 이내 活鱍鱍地일 것이요,
만약 計較와 是非를
一時에 放下하여 情이 다하고 見이 없어진다면
自然 徹底히 分明할 것이다. 

*四維陀典論; 고대 인도의 바라문들이 배웠다는 壽(養生繕性), 祠(享祭祈禱), 
平(禮儀,占卜,兵法,軍陣), 術(異能,伎數,禁呪,醫方)의 4典論.
維陀(veda)는 舊稱으로 韋陀, 圍陀, 毘陀, 皮陀라고도 했으나, 
新稱은 吠陀, 吠駄, 薜陀, 鞞陀이며, 譯하여 明智, 明分, 明法이라 한다. 
*溈山真如; 潭州大溈慕喆真如禪師(翠巖可真法嗣)南嶽下十二世

外道去後。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而言得入。
佛云。如世良馬見鞭影而行。

後來諸方便道。
又被風吹別調。
中又云。龍頭蛇尾。
什麼處是世尊鞭影。
什麼處是見鞭影處。
雪竇云。
邪正不分。過由鞭影。
真如云。阿難金鐘再擊。
四眾共聞。
雖然如是。大似二龍爭珠。
長他智者威獰。
外道가 간 뒤에 阿難이 부처님께 여쭙되,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得入을 말합니까? 하니,
부처님이 세간의 良馬가
鞭影을 보고 달림과 같다고 하셨는데,
후에 와서 諸方이 곧 이르되,
또 '風吹를 입은 유별한 곡조다' 하고,
그 중에는 또 '龍頭蛇尾다'라고도 하거니와,
어느 곳이 世尊의 鞭影이며,
어느 곳이 鞭影을 본 곳인가?
雪竇가 말하기를,
 '邪正가 불분명함은 허물이 鞭影에 있다' 하였고,
真如는 '阿難이 金鐘을 재차 울리니
四眾이 함께 듣는다.' 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꼭 두 龍이 구슬을 다투듯이
저 지혜로운 자의 위세의 사나움만 키운 셈이다. 

 

雪竇頌云。 雪竇의 頌
 機輪曾未轉
   (在這裏。果然不動一絲毫)
  轉必兩頭走
   (不落有必落無。不東則西。
   左眼半斤右眼八兩) 
      明鏡忽臨臺
   (還見釋迦老子麼。
   一撥便轉
   破也破也。敗也敗也) 
      當下分妍醜
   (盡大地是箇解脫門。
   好與三十棒。
   還見釋迦老子麼)
 機輪*은 구른 적이 없으나
   (이 속에서는 果然 一絲毫도 不動하다.)
  굴리면 반드시 兩頭로 달리거니와
   (有에 떨어지지 않으면 必히 無에 떨어지고,
   東이 아니면 곧 西이리니,
   左眼半斤이요 右眼八兩이다.) 
      明鏡이 홀연 臺에 걸리거든
   (釋迦老子가 보이더냐.
   一撥便轉*하다니
   졌다 졌다. 패하고 패했다.) 
      그자리에서 妍醜(美醜)가 나뉘리라.
   (온 大地가 그 解脫門이다.
   30棒을 유념하거라.
   釋迦老子를 만났느냐?)
  妍醜分兮迷雲開
   (放一線道。
   許爾有箇轉身處。
   爭奈只是箇外道)
  慈門何處生塵埃
   (遍界不曾藏。
   退後退後。達磨來也)
  因思良馬窺鞭影
   (我有拄杖子。不消爾與我。
      且道什麼處是鞭影處。
   什麼處是良馬處)
  千里追風喚得回
   (騎佛殿出三門去也。
   轉身即錯。放過即不可。
   便打)
  喚得回鳴指三下
   (前不搆村。後不迭店。
      拗折拄杖子。向什麼處去。
    雪竇雷聲甚大。雨點全無)
  妍醜가 나뉘면 迷雲이 열리거늘
   (한 가닥 길을 놓아
   너에게 어떤 轉身處가 있게 했으나
   다만 外道일 뿐임을 어쩌겠는가.)
  慈門의 어디에서 塵埃가 생기리오.
   (온 세계[遍界]가 숨기지 않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達磨가 왔다.)
  良馬의 채찍보기를 고려해보면
   (내게 拄杖子가 있으니 네가 내게 줄 필요 없다.
      말해보라. 어디가 鞭影處이고
   어디가 良馬處인가?)
  千里追風*을 불러 돌아오게 할 수 있나니
   (佛殿을 타고 三門을 나간다.
   몸을 굴린 즉 어긋나고, 지나칠 수도 없다.
   곧 무릎을 치다.)
  불러오려거든 손가락을 세 번 튕길지어다.
   (앞에 마을도 없고 뒤에 가게도 없다.
      拄杖子를 拗折내고 어디로 가느냐.
    雪竇가 雷聲은 甚大하나 雨點*은 全無하구나.)

*機輪; 기계의 톱니바퀴. 진리의 본래 모습. 
*左眼半斤右眼八兩; 1斤은 16兩, 半斤은 8兩이니,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마찬가지다는 뜻. 
*一撥便轉; 한 번의 撥開(열어젖침;자극)에 문득 變轉(변해 구름)하다. 
단 한 번의 지도로 곧 바로 깨우침에 비유한다. 
*妍醜; 美醜.
*好與; 留意, 留心.
*千里追風;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명마. 
*前不搆村後不迭店; 前不巴村 後不著店. 
앞에 마을도 없고 뒤에 점포도 없다 함은 
먼 길을 떠나 발 디딜 곳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을 말하며, 
난처한 처지나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비유한다.
*雨點; 빗방울 적심. 감동을 느끼게 하는 점. 

 

機輪曾未轉。轉必兩頭走。
機乃千聖靈機。
輪是從本已來諸人命脈。
不見古人道。
千聖靈機不易親。
龍生龍子莫因循。
趙州奪得連城璧。
秦王相如總喪身。
外道卻是把得住作得主。
未嘗動著。
何故他道。不問有言。
不問無言。
豈不是全機處。
「機輪은 구른 적 없으되
구르면 반드시 兩頭로 달린다」 했는데,
機는 바로 千聖의 靈機요,
輪은 본디부터 내려온 諸人의 命脈이다.
보지 못했는가? 古人*이 이르되,
「千聖의 靈機는 親하기 쉽지 않고
龍이 龍子 낳기는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趙州가 連城璧*을 奪得하매
秦王*도 相如*도 모두 喪身해버렸다」 하였다.
外道가 도리어 把住하고 主人이 되어
動著한 적이 없거늘
어째서 그가 「不問有言。
不問無言。」이라 했으며,
어찌 이것이 全機處가 아니겠는가? 
世尊會看風使帆。應病與藥。
所以良久。全機提起。
外道全體會去。
機輪便阿轆轆地轉。
亦不轉向有。
亦不轉向無。
不落得失。
不拘凡聖。
二邊一時坐斷。
世尊纔良久。他便禮拜。
如今人多落在無。
不然落在有。
只管在有無處。兩頭走。
世尊이 看風使帆*하고 應病與藥할 줄 아셨기에
그래서 良久하시어 全機를 提起하셨는데
外道가 온전히 알고
機輪이 곧 阿轆轆地*로 굴러
有를 향해 구르지도 않고
無를 향해 구르지도 않았으며,
得失에 떨어지지도 않고
凡聖에 구애되지도 않아서
二邊을 一時에 坐斷해버린지라
世尊이 겨우 良久했는데 그가 곧 禮拜했다.
如今의 사람들은 흔히 無에 떨어져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有에 떨어진 채
오로지 有無處에서만 兩頭로 달린다.

*古人; 雪竇. 설두가 趙州의 庭前柏樹子에 붙인 게송 2편중 하나이다.
*連城璧; 趙나라 惠文王이 楚의 和氏璧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秦 昭王이 趙王에게 親書를 보내 15개 城과 璧玉을 맞바꾸자고 제안했으니, 
이로 인해 후세에 和氏璧을 連城璧이라고도 하였다. 
*秦王; 秦 昭王.   *相如; 藺相如. (48칙 註 「相如奪璧」 참조)
*看風使帆; 看風使舵. 바람을 보아 돛을 조종하다. 정세를 살펴 가며 행동하다.
*阿轆轆地; 禪林用語。轉轆轆地。阿는 語助詞, 轆轆은 車輪이 굴러가는 소리, 
地는 語尾助詞이니, 곧 事物이 停滯없이 곧바로 進行한다는 것으로 
無礙自由하고 圓轉自在한 境地를 形容하며, 또 口才가 無礙함을 形容하기도 한다. 

雪竇道。明鏡忽臨臺。
當下分妍醜。
這箇不曾動著。
只消箇良久。
如明鏡臨臺相似。
萬象不能逃其形質。
外道云。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令我得入。
且道是什麼處。是外道入處。
到這裏。
須是箇箇自參自究。
自悟自會始得。
便於一切處。行住坐臥。
不問高低。一時現成。
更不移易一絲毫。
纔作計較。有一絲毫道理。
即礙塞殺人。
更無入作分也。
雪竇가 「明鏡이 홀연 臺에 걸리면
곧바로 연추(妍醜;美醜)가 나뉜다」 했는데,
이런 움직인 적 없고
다만 저 良久만 소용된 것이
마치 明鏡이 臺에 걸린 것과 같은지라
萬象이 그 形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外道가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得入케 하셨다」 했는데,
말해보라. 어느 곳이 외도가 들어간 곳인가?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箇箇가 自參自究하고
自悟自會해야 할 것이다.
문득 一切處의 行住坐臥에
高低를 不問하고 一時에 現成한다면
다시 한 絲毫도移易하지 않겠지만
잠깐 計較를 지어 한 絲毫의 道理가 있기만 하면
곧 礙塞이 심한 사람인 것이요,
다시 入作分*이 없는 것이다. 

*入作分; 대지주의 농토에 소작농으로 합세할 분수, 
즉 득입으로 나아가는 대열에 참여할 자격. 

後面。頌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當下忽然分妍醜。
妍醜分兮迷雲開。
慈門何處生塵埃。
盡大地是世尊大慈大悲門戶。
爾若透得。不消一捏。
此亦是放開底門戶。
不見世尊。於三七日中。
思惟如是事。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後面에서 「世尊의 大慈大悲가
저의 迷雲을 열어
저로 하여금 得入케 하셨나이다」를 頌하여
「當下에 忽然히 妍醜를 나눴다」고 하였다.
妍醜가 나뉘고 迷雲이 열리거든
慈門의 어느 곳에서 塵埃가 생기겠는가.
온 大地가 世尊 大慈大悲의 門戶이거니와,
너희가 透得하면 손가락 까딱할 필요가 없으리니
이 역시 그 門戶를 開放하심이다.
보지 못했는가? 世尊께서 21일 동안
이와 같은 일을 思惟하시고
 '내가 차라리 說法하지 않고
빨리 涅槃에 들리라' 하시니라.
因思良馬窺鞭影。
千里追風喚得回。
追風之馬。見鞭影而便過千里。
教回即回。
雪竇意賞他道。
若得俊流。
方可一撥便轉。
一喚便回。
若喚得回。
便鳴指三下。
且道是點破。是撒沙。
「'良馬 鞭影보기'를 생각하고서
千里追風을 불러 돌아오게 했다」고 했는데,
追風之馬는 鞭影을 보면 곧 千里를 가고
돌아오라 하면 곧 돌아온다.
雪竇의 뜻은 그를 補償하여
 '만일 俊流(걸출한 인물)를 얻는다면
바야흐로 一撥便轉할 수 있고
한 번 부름에 곧 돌아오게 되리니,
만약 불러 돌아오게 하려거든
곧 손가락을 세 번 튕겨라'고 말한 것인데,
말해보라. 이것이 點破*인가 撒沙*인가? 

*點破; 점검하여 파헤침. 
*撒沙; 모래를 뿌림.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에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