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 제4칙 위산긍정덕산(溈山肯定德山)

碧雲 2020. 4. 11. 06:56

 

벽암록(碧巖錄) 제 4칙 溈山肯定德山 (위산이 덕산을 인정하다)
   
垂示云。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青天白日。不可更指東劃西。 "청천백일(青天白日)에는 지동획서(指東劃西)할 수 없고, 
時節因緣。亦須應病與藥。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도 응병여약(應病與藥)해야 한다. 
且道。放行好。把定好。 말해보라. 방행(放行)이 좋겠느냐, 파정(把定)이 좋겠느냐? 
試舉看。 예를 들어서 살펴보자."
*青天白日 ; '푸른 하늘 밝은 낮'은 청정본심(淸淨本心)을 말한다.
*指東劃西 ;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을 긋는다'는 것은 '속셈과 상반된 표현'에 비유한 것이다.
*時節因緣 ; 때맞은 인연.   *應病與藥 ; 병에 따라 맞는 약을 투여함.
*把定放行 ; 把住放行, 一擒一縱, 一放一收와 같다. 금종여탈(擒縱與奪)을 자재히 하는 모양을 말한다. 
   
 【四】   [네 번째 들추는 예]
   德山到溈山 德山이 溈山에 이르러 
(擔板漢。野狐精) (널판 진 놈이고, 들여우 같은 놈이다.)
*擔板漢 ; 널판을 등에 졌으니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을 말한다.-德山
*野狐精 ; 들여우 혼령이란 변화무쌍한 사람을 뜻한다.-溈山
   挾複子於法堂上 바랑을 옆구리에 낀채 법당에서
(不妨令人疑著。納敗缺) (사람을 의아해하게 하는구나. 불리할텐데.)
   從東過西。從西過東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왔다갔다 하며  
(可殺有禪作什麼) (죽일듯한 선기로 무엇 하고 있지?)
   顧視云無無。便出 두리번거리더니, "없구나, 없어." 하고 나갔다. 
(好與三十棒。可殺氣衝天。真師子兒。善師子吼)
(좋게 30방을 멕였다. 살기가 충천하여 진정한 사자새끼가 사자후를 잘했다 하겠다.)
   雪竇著語云。勘破了也 설두스님은 '감파(勘破)했다.'고 착어(著語)했다. 
(錯。果然。點) (실패다. 과연 설두다. 점<點>.)
   德山至門首卻云。也不得草草 덕산은 문 앞으로 돌아와서 "서두르지 말자." 하고,
(放去收來。頭上太高生。末後太低生。知過必改。能有幾人)
(一放一收하며 제법 고자세로 시작하더니, 끝에 가서는 몹씨 저자세로 나온다.
잘못을 알았거든 반드시 고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便具威儀。再入相見 곧 위의를 갖춰 다시 뵈러 들어갔다.
(依前作這去就。已是第二重敗缺。嶮)
(이전대로 나가니, 이미 거듭된 패착이다. 아슬아슬하다.)
   溈山坐次 위산스님이 앉아 있었는데, 
(冷眼看這老漢。捋虎鬚。也須是這般人始得)
(냉철한 눈으로 이 늙은이를 살피면서 호랑이 수염을 만져보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라야 한다.) 
   德山提起坐具云。和尚 덕산은 방석을 들이대면서 "큰스님!" 하였다. 
(改頭換面。無風起浪) (겉탈만 바꿔 쓰고서 바람 없는데 풍랑을 일으킨다.) 
   溈山擬取拂子 위산이 불자(拂子)를 집어들자, 
(須是那漢始得。運籌帷幄之中。不妨坐斷*天下人舌頭)
(모름지기 저런 사람이라야 한다. 운주유악<運籌帷幄*> 중에 앉은채 천하인의 입을 막아버렸다.)
*坐斷 ; 원뜻은 '徹底한 坐禪', 坐禪의 힘으로 迷惑을 除斷한다, 언어와 알음알이를 截除한다는 뜻.
*運籌帷幄 ; 장막(帳幕) 안에서 산가지(算--)를 놀린다, 가만히 들어앉아 계책(計策)을 꾸미는 일. 
   德山便喝。拂袖而出 덕산은 갑자기 할(喝) 하고서 소매자락 떨치며 나갔다. 
(野狐精見解。這一喝。也有權。也有實。也有照。也有用。一等是拏雲攫霧者。就中奇特)
(들여우 같은 견해다. 이 일할<一喝>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고 비춤[照]도 작용[用]도 있어서
하나같이 구름을 붙잡고 안개를 움켜쥐는 것이라, 지금까지 한 것 중에 제일 나았다.)
*野狐精見解 ; 들여우 혼령처럼 변화무쌍한 견해.
   雪竇著語云。勘破了也 설두스님은 또 '감파(勘破)했다.'고 덧붙였다. 
(錯。果然。點) (실패다. 과연! 점<點>.)
   德山背卻法堂。著草鞋便行 덕산은 법당을 뒤로 하고 짚신 신고 곧 떠나버렸다. 
(風光可愛。公案未圓。贏得項上笠。失卻腳下鞋。已是喪身失命了也)
(풍광<風光>은 봐줄만 하나 공안은 아직 덜 되었다.
머리 위에 갓은 썼지만 발에 신을 신지 못했으니, 이미 잃은 목숨이다.)
   溈山至晚問首座。 위산이 저녁이 되자 수좌에게 물었다. 
   適來新到在什麼處 "아까 새로 온 스님은 어디 있느냐?" 
(東邊落節。西邊拔本。眼觀東南。意在西北)
(동쪽에서 잃고, 서쪽에서 본전 뽑는 격이요, 눈은 동남쪽을 보지만 뜻은 서북쪽에 둔 것이다.)
   首座云。當時背卻法堂。 "그 당시에 법당을 뒤로하고 
   著草鞋出去也 짚신 신고 떠났습니다."
(靈龜曳尾。好與三十棒。這般漢腦後合喫多少)
(영구예미<靈龜曳尾> 격이니, 좋게 삼십방을 멕였군. 이런 놈은 뒤통수를 몇 대나 갈겨주어야 좋을까?)
*靈龜曳尾 ; '만 년을 산다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진흙 위에서 꼬리를 끈다'는 뜻으로,
출세를 위해 무리하다가 일찍 죽기보다는 좋지 못한 환경에서 오래 사는 것이 낫다는 말. 
   溈山云。此子已後。向孤峰頂上。 "그자는 이 다음에 고봉정상(孤峰頂上)에 
   盤結草庵。呵佛罵祖去在 초암(草庵)을 엮고서 불조(佛祖)를 꾸짖을 것이다."
(賊過後張弓。天下衲僧跳不出)
(도적 떠난 뒤에 활 당기는구나. 천하의 납승들이 뛰어봤자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雪竇著語云。雪上加霜 설두스님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하였다. 
(錯。果然。點)。 (실패다. 과연! 점<點>.)
   
   
夾山下三箇點字。 본인[夾山]이 찍은 세 개의 '점(點)'을  
諸人還會麼。 여러분은 이해하겠는가? 
有時將一莖草。 어느 때는 일경초(一莖草)*로 
作丈六金身用。 장륙금신(丈六金身)*의 작용을 하고 
有時將丈六金身。 어느 때는 장륙금신으로 
作一莖草用。 일경초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夾山 ; 圓悟스님은 한 때 夾山의 靈泉禪院에 계셨다.
*一莖草(一枝草) ; 보잘것 없는 微物, 또는 衆生心.
*丈六金身 ; 1장6척 크기의 금빛나는 몸, 즉 佛의 具足十身을 말한다.
一莖草는 丈六金身와 함께 物我一如, 혹은 心佛不二의 뜻을 표하는 수단으로 쓰여진다.
   
德山本是講僧。 덕산(德山)은 본래 강승(講僧)으로 
在西蜀講金剛經。 서촉(西蜀)에서 금강경(金剛經)을 강의했다. 
因教中道。 교문(教門)의 말에 의하면, 
金剛喻定。後得智中。 금강유정(金剛喩定)과 후득지(後得智) 속에서  
千劫學佛威儀。 천겁 동안 佛의 위의(威儀)를 학습하고 
萬劫學佛細行。 만겁 동안 佛의 미세한 지계행(持戒行)을 배우고  
然後成佛。 그런 다음에 성불했다고 하며,  
他南方魔子。 남방의 마구니 자식들이
便說即心是佛。  '마음이 곧 부처다[即心是佛]”고 한다 하여,  
遂發憤。擔疏鈔行腳。 분노를 느끼고 「금강경소초」를 지고 행각에 나서서 
直往南方。破這魔子輩。 남방으로 그 마구니 자식들을 쳐부수러 갔다 하니,   
看他恁麼發憤。 그가 이렇게 분노를 일으킨 것으로 보아  
也是箇猛利底漢。 그야말로 용맹하고 예리한 사람이었다. 
   
初到澧州。 처음 예주(澧州)에 이르러  
路上見一婆子賣油餈。 노상에서 떡 파는 노파를 만나  
遂放下疏鈔。 「소초(疏鈔)」를 내려놓고 
且買點心喫。 떡을 사서 점심(點心)을 떼우려 하였는데 
婆云。所載者是什麼。 노파가 물었다. “지고 있던 것이 무엇이오?” 
德山云。金剛經疏鈔。 “「금강경소초」입니다.” 
婆云。我有一問。爾若答得。 “내가 하나 묻겠는데, 그대가 대답하면 
布施油餈作點心。 떡을 점심으로 보시해 드리겠지만, 
若答不得。別處買去。 대답하지 못했거든 다른 데로 가보시오.” 
德山云。但問。 “묻기만 하십시오.” 
婆云。金剛經云。 “「금강경」에 말하기를, 
過去心不可得。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現在心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未來心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하였는데, 
上座欲點那箇心。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렵니까[點心]?” 
山無語。 덕산이 대답을 못하자 
婆遂指令去參龍潭。 노파는 용담(龍潭)스님을 찾아가라고 가르켜주었다. 
纔跨門便問。 문에 들어서자마자
久嚮龍潭。及乎到來。 "오래전부터 용담(龍潭)을 보고싶었는데, 와보니 
潭又不見。龍又不現。 못[潭]도 없고, 용(龍)도 보이지 않는구나."고 하였다. 
龍潭和尚。於屏風後。引身云。 용담스님이 병풍 뒤에서 나오면서  
子親到龍潭。 “그대가 친히 용담에 왔구먼.” 하자,
*시작이 이미 '甚處來(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다. 
師乃設禮而退。 덕산이 곧 절을 올리고 물러 나왔다. 
至夜間入室。 저녁나절에 방으로 들어가서 
侍立更深潭云。 시립(侍立)한채 다시 밤이 깊어지니, 용담스님이  
何不下去。 “왜 내려가지 않는가?” 하였다. 
山遂珍重。揭簾而出。 덕산이 “주무십시요."하고, 주렴을 걷고 나와보니 
見外面黑卻回云。門外黑。 바깥이 캄캄한지라 돌아서서 “밖이 깜깜합니다.” 하자, 
潭遂點紙燭度與山。 용담스님이 종이에 불을 붙여 덕산에게 주었다. 
山方接潭便吹滅。 덕산이 막 받으려는데 용담스님이 훅 불어 꺼버렸다. 
山豁然大悟。便禮拜。 이에 덕산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 곧 절을 올렸다.  
潭云。 용담스님이 물었다. 
子見箇什麼便禮拜。 “그대는 무엇을 보았기에 갑자기 절을 하는가?” 
山云。某甲自今後。 “저는 지금 이후부터 
更不疑著天下老和尚舌頭。 다시는 천하 노화상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至來日。潭上堂云。 다음날 용담스님이 상당하여 말했다. 
可中有箇漢。 “만일 이 가운데 어떤 놈이 
牙如劍樹。口似血盆。 칼나무[劍樹] 같은 이빨에 핏동이[血盆] 같은 입으로  
一棒打不回頭。 한 방에 때려부수고[一棒打殺] 뒤돌아보지 않고 간다면, 
他時異日。 어느 때 다른 날에 
向孤峰頂上。立吾道去在。 고봉정상을 향해 나의 도를 세우고 있울 것이다.” 
山遂取疏鈔。 덕산은 금강경소초를 가져다 
於法堂前。將火炬起云。 법당 앞에서 횃불을 들더니, 
窮諸玄辯。 “온갖 현묘한 변론을 궁구한들     
若一毫置於太虛。 드넓은 허공에 털 하나 두는 것이요, 
竭世樞機。 세상 중요한 것을 다 갖춘들   
似一滴投於巨壑。 큰 골짜기에 물 한 방울 떨구는 것과 같다.” 하고서 
遂燒之。 이내 소초를 불태워버렸다. 
   
後聞溈山盛化。 후에 위산스님의 융성한 교화에 대해 듣고 
直造溈山。 곧바로 위산스님을 찾아가 
便作家相見。 작가(作家)로서 서로 만났는데,  
包亦不解。直上法堂。 포대도 풀지 않은채 법당으로 올라가서 
從東過西。從西過東。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왔다갔다 하며 
顧視云無無。便出。 두리번거리더니, “없구나, 없어.”하고 곧 나갔다. 
且道。意作生。莫是顛麼 말해보라, 뜻이 무엇인가. 미친 것은 아닌가?  
人多錯會。 사람들은 흔히 잘못 알고 
用作建立。 작용에 대한 법문을 마련한 것이라고 하지만
直是無交涉。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看他恁麼。 그의 그러한 면모를 보건대 
不妨奇特。 기이하고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所以道。 그래서 말하기를, <*五燈全書五十八, 元長禪師 篇>
出群須是英靈漢。  '무리를 초월하려면 아무튼 영특한 놈이라야 하고, 
敵勝還他師子兒。 적에게 이기려면 바로 그 사자새끼라야 한다.' 하였다. 
選佛若無如是眼。 선불(選佛)*하는데 이런 안목이 없다면 
假饒千載又奚為。 천 년을 살찌운[修行]들 어찌 뽑혀지겠는가?  
到這裏須是通方作者。 여기에 이르면  
  모름지기 다방면에 능통한 작자[作家]라야 
方始見得。何故。 비로소 알게 된다. 왜냐하면, 
佛法無許多事。 불법에는 그 어떠한 일도 없는데〔無許多事〕, 
那裏著得情見來。 어찌 정견(情見)*을 붙일 것이며,  
是他心機那裏有如許多阿勞。 그 심기(心機)에 무슨 수고로울 것이 있겠는가? 
所以玄沙道。 그래서 현사(玄沙)스님은  
直似秋潭月影。  “설사 가을 연못의 달 그림자나  
靜夜鐘聲。 고요한 밤의 종소리와 같이  
隨扣擊以無虧。 두드려도 찌그러지는 일이 없고,   
觸波瀾而不散。 파란(波瀾)을 당해도 흩어지지 않게 되었을지언정   
猶是生死岸頭事。 오히려 그것은 생사언덕(生死岸)*의 일이다” 하였다.
*選佛 ; 원래 佛祖라 칭할만 한 스님을 選出한다는 뜻이었는데, 후에 '坐禪修行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情見 ; 妄情의 所見
*生死岸 ; 輪迴는 生死海의 此岸이니, 涅槃은 곧
生死海彼岸이다. 
到這裏亦無得失是非。 여기에 이르면 득실(得失)도 시비(是非)도 없고, 
亦無奇特玄妙。 또 기특(奇特)할 것도 현묘(玄妙)할 것도 없다. 
既無奇特玄妙。 기왕 기특도 현묘도 없다면 
作麼生會他從東過西。 그가 동서로 왔다갔다한 것을 
從西過東。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且道。意作麼生。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지. 
山老漢。也不管他。 위산(溈山) 늙은이는 꿰이지 않았다. 
若不是溈山。 위산이 아니었다면 
也被他折挫一上。 그에게 단숨에 꺾여버렸을 것이다. 
看他溈山老作家相見。 그가 위산 노작가를 상대하는 것을 보건대   
只管坐觀成敗。 다만 앉아서 성패(成敗)를 지켜보았을 뿐인데도  
若不深辯來風。 만일 상대[來風]를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면  
爭能如此。 어떻게 그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雪竇著語云。勘破了也。 설두스님은 '감파(勘破)했다'고 덧붙였는데,  
一似鐵橛相似。 흡사 하나의 쇠말뚝과 같은 것이다.  
眾中謂之著語。 대중들은 이것을 착어(著語)라 하는데,  
雖然在兩邊卻不住在兩邊。 양변(兩邊)에 있는듯 하지만 양변에 있지 않다.
作麼生會他道勘破了也。 그의 '감파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什麼處是勘破處。 어느 곳이 감파한 곳인가? 
且道勘破德山。勘破溈山。 말해보라. 덕산을 감파했는가, 위산을 감파했는가?[兩邊]
德山遂出到門首。卻要拔本。 덕산이 나갔다가 본전을 뽑으러 문 앞으로 와서  
自云。也不得草草。  '서두르지 말자'고 한 것은 
要與山掀出五臟心肝法戰一場。 위산과 오장륙부[五臟心肝]를 드러내 놓고 
  한바탕 법전(法戰)을 치르려 한 것이다. 
再具威儀卻回相見。 다시 위의를 갖추고 뵈러 돌아와서   
溈山坐次。 위산이 앉아있는 자리 앞에 
德山提起坐具云。 덕산이 방석을 들이대면서 
和尚溈山擬取拂子。 “화상!” 하니, 위산이 불자(拂子)를 집어들었는데 
德山便喝。 덕산은 갑자기 일할을 하고서 
拂袖而出。 소매를 떨치며 나가버렸으니, 
可殺奇特。 사람 잡을 정도로 기특(奇特)하다 하겠다. 
眾中多道。 사람들은 대개 말하기를, 
溈山怕他有甚交涉。  '위산은 그가 두려웠으리라'고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溈山亦不忙。 위산도 또한 서두르지 않았다.  
所以道。智過於禽獲得禽。 그래서 말하기를, '새를 초과(超過)해야 새를 잡고,
智過於獸獲得獸。 짐승을 능가해야 짐승을 잡으며, 
智過於人獲得人。 남들보다 뛰어나야 사람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參得這般禪。 이렇게 선(禪)을 참구해 얻어야만   
盡大地森羅萬象。天堂地獄。 온 누리 삼라만상과 천당지옥, 
草芥人畜。 하찮은[草芥] 인간과 짐승들이 
一時作一喝來。 한꺼번에 일할(一喝)을 하더라도 
他亦不管掀倒禪床。 거기에 말려들어 선상(禪床)을 뒤엎지 않고, 
  (놀라지 않고, 또는 꿈쩍도 않고.)
喝散大眾。他亦不顧。 대중은 일할(喝)에 흩어질지라도  
  또한 돌아보지도 않아서 
如天之高。似地之厚。 하늘 같이 높고, 땅 같이 두꺼워질 것이다. 
   
溈山若無坐斷天下人舌頭。底手腳。 위산이 천하인의 혀끝을 
  좌단(坐斷)하는 수완이 없었다면 
時驗他也大難。 그때 그를 시험하기 몹씨 어려웠을 것이다. 
若不是他一千五百人善知識。 저 천오백 선지식이 아니라면 
到這裏也分疏不下。 이에 이르러서 분소(分疏)하지 못할 것이지만,  
山是運籌帷幄。決勝千里 위산은 운주유악(運籌帷幄*)하여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지어버렸다. 
* 運籌帷幄, 決勝千里 ; 《史記 高祖本紀》 中  「夫運籌帷帳之中,決勝於千里之外,吾不如子房。」을
인용한 말로, 장막 안에서 꾸민 책략으로 천리 밖의 작전과 형세를 장악하고 전과를 얻는다는 뜻. 
   
德山背卻法堂。 덕산은 법당을 뒤로하고  
著草鞋便出去。 짚신 신고 곧바로 가버렸는데,  
且道他意作麼生。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 
爾道德山是勝是負。 말해보라. 덕산은 이겼는가, 졌는가? 
溈山恁麼是勝是負。 위산이 그리 한 것은 이긴 것인가, 진 것인가? 
雪竇著語云。勘破了也。 설두스님은 “감파했다”고 착어했는데,  
是他下工夫。 그의 공부가 고인(古人)의 난해(難解)함이 
見透古人聱訛極則處。 극에 달한 곳을 꿰뚫어 보는 데에 이르렀기에 
方能恁麼。不妨奇特。 마침내 이렇듯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訥堂云。 내가 당상(堂上)에서 말하기를, 
雪竇著兩箇勘破。 설두스님이 두 번의 감파를 덧붙이고,          
作三段判。 세번째 단계의 판정을 내렸다고 하였는데,      
方顯此公案。  바야흐로 이 공안이  
似傍人斷二人相似。 옆에 있던 사람이 두 사람을 판단해 준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後來這老漢。 후에 저 늙은이가 
緩緩地至晚方問首座。 느긋하게 저녁에 이르러서야 수좌에게 묻기를, 
適來新到在什麼處。 “아까 새로 온 스님은 어디에 있느냐?” 하자, 
首座云。當時背卻法堂。 수좌가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著草鞋出去也。 짚신 신고 갔습니다” 하니, 
溈山云。此子已後向孤峰頂上。 위산은 “그자는 이 다름에 고봉정상을 향해 
盤結草庵呵佛罵祖去在。 암자을 짓고 불조를 꾸짖을 것이다”고 하였다. 
且道他意旨如何。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  
溈山老漢不是好心。 위산 늙은이는 좋은 뜻으로 한 것이 아니다. 
德山後來呵佛罵祖。 덕산이 후에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기를 
打風打雨。 비바람치듯 한다 하더라도  
依舊不出他窠窟。 예전대로 그의 소굴을 벗어나지 못하고, 
被這老漢見透平生伎倆。 그 늙은이에게 평생의 기량이 꿰뚫려버렸으니,  
到這裏喚作溈山與他受記得麼。 이에 이르러서는 
  위산이 그에게 수기(受記)를 준 것인가?   
喚作澤廣藏山。 못 넓다고 산을 묻으려는 것인가[固執]? 
理能伏豹得 도리(道理)로 표법을 굴복시킨다는 것인가?
若恁且喜沒交涉。 이렇게 한편으로 기뻐한다면 전혀 무관한 일이다. 
*澤廣藏山 ; 莊子 第六篇 大宗師 中에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
 (배를 골짜기에 감추려 하고, 산을 못에 묻으려 하는 것을 고집이라고 한다.
그러나 밤중에 힘센 놈이 짊어지고 달아나도 몽매한 놈은 모른다.) 하였다.
*理能伏豹 ; 柔能制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 유연한 수단으로 표범과 같이 강폭함을 제압한다는 뜻, 
雪竇知此公案落處。 설두는 이 공안의 궁극적 의의를 알았기에  
敢與他斷更道。 감히 덕산을 결단하여 다시   
雪上加霜又重拈起來人見。  '설상가상'이라고 거듭 착어함으로써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다.   
若見得去。 만일 알아차렸다면   
許爾與溈山德山雪竇同參。 그대는 위산, 덕산, 설두와 같이 참구했다 하겠지만
若也不見。 알아차리지 못했거든  
切忌妄生情解。 절대 허망한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一勘破 한 번 감파하고, 
(言猶在耳。過)  (그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있는데, 지나쳐버렸다.)
   二勘破 또 두 번 감파했다.  
(兩重公案)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雪上加霜曾嶮墮 게다가 설상가상이라 이미 위험에 빠졌는데,  
(三段不同。在什麼處)  (세 단계가 다른 점은 어디에 있는가?)  
   飛騎將軍入虜庭 비기장군처럼 오랑캐 진영에 들어갔다가 
(嶮。敗軍之將。無勞再斬。喪身失命)
(위태하다. 패장(敗將)은 다시 또 참수할 것 없다. 신명을 상실했으니.) 
 再得完全能幾箇 다시 온전해질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死中得活)  (죽었다가 살아났다.) 
   急走過 급히 달아나려 했으나  
(傍若無人。三十六策。盡爾神通。堪作何用) 
(곁에 사람이 없었다면 삼십육계책으로 그대의 신통을 다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不放過 놓아주지 않으니, 
(理能伏豹。穿卻鼻孔)  (도리로 표범을 굴복시키니, 콧구멍이 꿰였다.) 
   孤峰頂上草裏坐 고봉정상의 초암 속에 앉아 있구나.
(果然。穿過鼻孔。也未為奇特。為什麼卻在草裏坐) 
(과연, 콧구멍이 꿰였으니, 기특할 것이 못된다. 무엇 때문에 초암 속에 앉아 있을꼬?) 
   쯧! 
(會。兩刃相傷。兩兩三三舊路行。唱拍相隨。便打)
(알겠는가? 두 칼날이 다 상했으니[兩刃相傷]*  옛길을 둘셋으로 무리지어 가며
서로 함께 손뼉치고 노래하는구나. __갑자기 후려쳤다.) 
*兩刃相傷; 선림에서는 對立하는 雙方이 相互共鳴하여 同一方向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쓰인다. 
   
雪竇頌一百則公案。 설두스님은 일백칙(一百則) 공안을 송(頌)하면서 
一則則焚香拈出。 칙 하나 점출(拈出)할 때마다 향을 올렸다고 하니,  
所以大行於世。 이 때문에 세상에 더욱 유명해졌다. 
他更會文章透得公案。 그는 문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공안을 꿰뚫어  
盤礡得熟。方可下筆。 두 다리 뻗을 정도로 익히고서야 마침내 붓을 들었다는데  
何故。如此。 어째서 이와 같이 하였을까? 
龍蛇易辨。衲子難瞞。 용과 뱀 구분하기는 쉽지만 선승(禪僧) 속이기는 어렵다. 
雪竇參透這公案。 설두스님은 이 공안을 참구하여 꿰뚫고  
於節角聱訛處。著三句語。 난해한 구절의 모퉁이에 세 구(句)를 착어하고,
撮來頌出。 송(頌)으로 취합하였다.  
   
雪上加霜。幾乎嶮墮。 설상가상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으리오.  
只如德山似什麼。 덕산은 다만 누구와 비슷한가? 
一似李廣天性善射。 한 예로 이광(李廣)은 천성적으로 활을 잘 쏘았기에  
天子封為飛騎將軍。 천자가 비기장군(飛騎將軍)에 봉했는데,  
深入虜庭。 오랑캐 진영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被單于生獲。 선우[單于;匈奴族長]에게 사로잡혔다. 
廣時傷病。 이광은 그때 상처를 입었기에 
置廣兩馬間。絡而盛臥。 두 말 사이에 이광을 묶어 눕혀 두었다. 
廣遂詐死。 이광은 짐짓 죽은 척하고 있다가 
睨其傍有一胡兒騎善馬。 그 옆의 한 흉노가 탄 좋은 말을 탈취하여 . 
廣騰身上馬推墮胡兒。 이광은 말 위로 몸을 솟구쳐 그 흉노를 밀어내고 
奪其弓矢。鞭馬南馳。 활과 화살을 빼앗아 말을 채찍질하여 남으로 달리면서  
彎弓射退追騎。 활을 당겨 뒤쫓아 오는 기마병을 물리치고    
以故得脫。 그로써 벗어나게 되었으니,   
這漢有這般手段。 그 자는 그만한 수단이 있었기에 
死中得活。 죽은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 
雪竇引在頌中。 설두스님은 송(頌) 가운데 끌어다가 
用比德山再入相見。 덕산이 다시 들어가 뵙고  
依舊被他跳得出去。 위산의 도약법에 힘입어 예전의 모습으로 
  빠져나온 것에 비유하였다. 
看他古人。 그 고인(위산)을 살펴보건대, 
見到。說到。行到。用到。 견도(見到), 설도(說到), 행도(行到), 용도(用到)가 
不妨英靈。 영특하고 신령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有殺人不眨眼底手腳。 사람을 죽이고도 눈 깜짝하지 않는 수완이 있어야  
方可立地成佛。 비로소 성불의 기반(基盤)을 세울 수 있고, 
有立地成佛底人。 성불의 기반이 선 사람이라야 
自然殺人不眨眼。 자연히 사람 죽이고도 눈 깜짝하지 않아서 
方有自由自在分。 비로소 자유자재한 면이 있게 된다. 
   
如今人有底。問著頭上 요즈음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一似衲僧氣概。 하나같이 선승의 기개가 있는 척하지만 
輕輕拶著。便腰做段。 살짝만 건드려도 허리가 동강나고 
股做截。七支八離。 정강이가 끊어져서 지리멸렬해버리니,  
渾無些子相續處。 조금이나마 연속되는 곳이 도무지 없다. 
所以古人道。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洞山良价(807~869)
相續也大難。  '상속(相續)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看他德山溈山如此。 덕산과 위산의 이와 같은 것들을 살피건대   
豈是滅滅挈挈底見解。 어찌 절름발이[滅滅挈挈]*적 견해라 하겠는가?  
*滅滅挈挈; 滅은 앞다리가 긴, 은 앞다리가 짧은, 즉 절름발이.
*相續也大難;
僧便問︰如何是主中主﹖師曰︰闍黎自道取

曰︰某甲道得即是賓中主。(雲居代云︰某甲道得不是賓中主。)如何是主中主

師曰︰恁麼道即易
,相續也大難。遂示頌曰︰嗟見今時學道流,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祇到潼關便即休。<景德傳燈錄卷十五>
   
再得完全能幾箇。  '다시 온전해질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急走過。 빨리 달아나자.  
德山喝便出去。 덕산이 일할을 뱉고 곧 나와버렸으니, 
一似李廣被捉後設計。 흡사 이광이 사로잡힌 뒤에 계책을 세워 
一箭射殺一箇番將。 한 발의 화살을 쏴 적장을 죽이고 
得出虜庭相似。 오랑캐 진영을 벗어난 것과 같다. 
雪竇頌到此。大有工夫。 설두스님의 송은 여기에 도달한 큰 공부가 있다.  
德山背卻法堂。著草鞋出去。 덕산이 법당을 등지고 짚신 신고 가버린 것은 
道得便宜。 마땅했다고 하겠으나, 
殊不知。這老漢。 달리 저 늙은이(위산)가 
依舊不放他出頭在。 예전처럼 머리 내밀도록 봐주지 않을 것임을 몰랐으니, 
雪竇道。不放過。 설두스님이 '놓아주지 않으니'라고 말한 것이다. 
   
溈山至晚間問首座。 위산이 저녁이 되자 수좌에게 
適來新到在什麼處。  “아까 새로 온 스님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首座云。當時背卻法堂。 수좌가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著草鞋出去也。 짚신 신고 가버렸습니다.”라고 하니, 
溈山云。此子他日。 위산이 “그자는 다음날 
向孤峰頂上。盤結草庵。 고봉정상을 향해 초암을 짓고 
呵佛罵祖去在。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리라”고 하였는데, 
幾曾是放過來。 어찌 이것이 놓아준 것이겠느냐.  
不妨奇特。 기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到這裏。雪竇為什麼道。 여기서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孤峰頂上草裏坐。又下一喝。 “고봉정상 초암 속에 앉아 있다.”고 일할을 뱉었는가? 
且道落在什麼處。 말해보라. 귀결처가 어디에 있는가? 
更參三十年。 다시 30년을 참구하라. 
   
 
*[潭州溈山靈祐禪師] (771~853) ; 唐代의僧, 溈仰宗 初祖.
福州長溪(現 福建霞浦縣南)사람으로 俗姓은 趙, 法名은 靈祐.
15歲에 出家하여 建善寺의 法常(法恆)律師로부터 剃髮하고,
杭州龍興寺에서 具足戒를 받아 大小乘經律을 探求하였다.
23歲에 江西로 百丈懷海선사를 參謁하고서 上首弟子가 되어 
諸佛本懷를 大悟하고 百丈의 法을 繼承하였다.
憲宗元和末年 潭州大
山에 棲止하자, 고장 사람들이 感德하고 몰려와 
함께 절을 지으니, 李景讓이 奏請하여 敕號를 「同慶寺」라 하였으며, 
그 후(一說大中初年) 相國 裴休가 와서 玄旨를 諮問하고 가니 
名聲이 더욱 높아져서 禪侶와 대중들이 雲集하였다.  
會昌法難*이 일어나자 선사는 市井에 숨어 지내다가   
大中元年(847)에 다시 復
의 명이 내리자 대중들이 옛 절로 모셔왔으나
巾服으로 說法하고 더는 삭발염의(剃髮染衣)하지 않았는데, 
裴休가 듣고서 직접 가서 청하므로 비로소 다시 緇流(剃染)하였다.
산중 40年에 宗風을 크게 드높이니 세간에서
山靈祐라 불렀다.
大中7年 正月, 世壽 83, 法臘 64세로 입적하니, 「大圓禪師」라 諡號하였다。
語錄과 警策 各一卷이 세상에 전해지며, 嗣法弟子로는 慧寂, 洪
, 智閑 등 41인이 있다.
其中,仰山慧寂이 그 뒤를 이어 集大成하니, 世稱
仰宗이다。
*會昌法難 ; 唐武宗 會昌年에 武宗이 道를 숭상하여 일으킨 廢佛事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