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宗無門關

[제39칙] 운문화타(雲門話墮) _운문의 「말에 떨어짐」

碧雲 2021. 12. 10. 06:48
[무문관 제39칙] 운문화타(雲門話墮) _운문의 「말에 떨어짐」

 

雲門因僧問。
光明寂照遍河沙。
一句未絕。門遽曰。
豈不是張拙秀才語。
僧云是。
門云話墮也。
後來死心。拈云。
且道那裏是者僧話墮處。
운문(雲門)에게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온 세상을 광명으로 고요히 비추어 보니,…"
이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운문이 갑자기
"장졸수재(張拙秀才*)의 말이 아니냐?" 하니,
그 스님이 "그렇습니다." 하자,
운문은 "말에 떨어졌구나[話墮]" 하였다.
훗날 사심(死心)선사가 염(拈)하여 이르되,
"말해보라. 저 중의 말에 떨어진 곳이 어디냐?" 하였다. 

〈五燈會元〉卷6 張拙秀才(青原下五世 石霜諸禪師<805~888>法嗣)章에
"禪月대사가 시켜서 石霜선사를 참례했더니 석상이 물었다.
"秀才는 성이 무엇인가?"
"성은 張이고 이름은 拙입니다."
석상은 "교(巧)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졸(拙)은 어디서 왔을꼬?" 하였다.
(張拙의 '拙'자를 「巧拙有素(정교하고 서툴고는 천성이다)」는 속어에 빗대어 한 말이다.)
장공(張公)은 홀연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내 呈偈하였다.
  「광명이 온 세상을 고요히 비치니     (光明寂照徧河沙)
   범부와 성인, 함령이 다같은 내 식구네     (凡聖含靈共我家)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나타나고     (一念不生全體現)
   육근이 잠깐 동(動)하면 구름에 가려지거니와     (六根纔動被雲遮)
   번뇌를 단제하는 일도 병을 키우는 것이요     (斷除煩惱重增病)
   진여에 나아가는 일도 그릇된 것이니     (趣向真如亦是邪)
   세연(世緣)에 수순하여 가애(罣礙)가 없으면     (隨順世緣無罣礙)
   열반이나 생사 따위는 공화(空花)일 뿐이라네     (涅槃生死等空花)」

 

*寂照; 寂은 寂静, 照는 照鉴의 뜻. 本体가 空寂한 지혜로 觀照하는 作用,
坐禪하는 當體, 또는 止觀.
*河沙; 恒河沙의 略. 많은 數에의 비유. 

 

*死心(1044~1115); 宋代僧. 隆興府黃龍死心悟新禪師(黃龍慧南禪師의 法孫) 

 

無門曰。
若向者裏。見得雲門用處孤危。
者僧因甚話墮。
堪與人天為師。
若也未明。自救不了。
무문(無門)이 말했다.
"만일 이 속에서 운문의 용처(用處)의 고위(孤危)함과
저 중의 어디가 말에 떨어진 곳인지를 보아 얻는다면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어 줄 수 있겠지만
분명하지 못하다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頌曰。 게송으로, 
 急流垂釣 貪餌者著

 口縫纔開   性命喪却

 급류(急流)에 낚시를 던지거든
 미끼를 탐하는 놈은 걸려들 터이니,
 입을 봉해야지 잠깐이라도 열었다가는
   성명(性命)을 상실할 것이다.

저 중이 말에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재목이었다면
운문이 "장졸수재(張拙秀才)의 말이 아니냐?" 하고 물었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질문은 운문의 낚시였고, 저 중은 미끼를 덥썩 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