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법이 나를 떠나 있지 않고 나를 떠나 일체법이 없으니 만물과 나는 한몸이요,
그 속에서 인연따라 생사를 윤회하니 모두가 하룻밤 꿈과 같은 허무함이다.
그렇다면 그 진실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자 하나
진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런 법에 있지 아니하니,
물위에 비친 달 그림자를 쫓지 말고 달의 냉정한 참모습을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하거니와,
이 일은 세상 천지에 너와 함께 해 줄 사람이 없고 오직 너 스스로 밝혀야 할 일이다.
*陸亘; 宣州刺史 陸亘大夫(南泉願 法嗣) 南嶽下三世
垂示云。 | 수시(垂示) |
休去歇去。 鐵樹開花。 有麼有麼 黠兒落。節。 直饒七縱八橫。 不免穿他鼻孔。 且道誵訛在什麼處。 試舉看。 |
(망상을)쉬고 또 쉬어 가면 소철(蘇鐵;鐵樹)도 꽃을 피우려니와, 있는 건가, 있는 건가? 하면서 약삭빠르게 굴다가 뜻이 꺾이면 설령 제아무리 날뛰어본들 그 콧구멍 뚫리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有麼有麼; 내가 얻은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
*黠兒落節; 약삭빠르게 굴다가 제 꾀에 넘어가다.
힐아(黠兒)는 총명하고 교활한 사람, 낙절(落節)은 실패, 좌절의 뜻.
*穿他鼻孔; 콧구멍이 뚫린다 함은 소 콧구멍을 뚫고 멍에를 끼워 끌듯이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 끌려가게 된다는 뜻.
【四○】舉。 | 【제40칙】 육긍(陸亘)의 천지동근(天地同根) |
陸亘大夫。與南泉語話次。 陸云。 肇法師道。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也甚奇怪 (鬼窟裏作活計。 畫餅不可充飢。 也是草裏商量) 南泉指庭前花 (道恁麼。咄。 經有經師論有論師。 不干山僧事。咄。 大丈夫當時下得一轉語。 不唯截斷南泉。 亦乃與天下衲僧出氣) 召大夫云。時人見此一株花。 如夢相似 (鴛鴦繡了從君看。 莫把金針度與人。 莫寐語。 引得黃鶯下柳條)。 |
육긍대부(陸亘大夫)와 남전(南泉)이 얘기하던 차에 육긍이 말하기를, "조법사(肇法師*)가 '천지와 내가 근본이 같고 만물과 내가 한몸이다' 했는데, 매우 기괴합니다." 하자, (귀굴<鬼窟> 속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는구나. 그림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법이니, 이야 말로 풀섶 속에서 흥정하는 것이다.) 남전(南泉)이 뜰 앞의 꽃을 가리키며 (그런 것을 말하다니. 쯧쯧! 경<經>은 경 가르치는 선생이 있고, 논<論>은 논 가르치는 선생이 있으니,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니거늘. 쯧쯧! 대장부가 당시에 일전어<一轉語*>를 내렸더라면 남전<南泉>을 절단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납승들에게도 기가 솟게 했을 것이다.) 대부를 부르더니, "그때의 사람은 이 한 그루 꽃을 꿈과 같이 본 것이다." 하였다. (원앙을 수 놓아서 그대 마음 껏 보되, 금바늘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지 말아야 하니, 잠꼬대 하지 마라. 황앵<黃鶯>이 버들가지에 앉을라.) |
*肇法師; 요진(姚秦)국 사문(沙門) 승조(僧肇).
青原下七世로 누구의 법을 이었는지는 불명하다.
《般若無知論》, 《不真空論》, 《物不遷論》, 《涅盤無名論》의 四論을 저작했는데,
사후에 이 네 편이 한 권의 논문으로 묶여 《조론(肇論)》이 되었다.
이 조론(肇論)은 불교를 중국의 老子, 莊子사상과 결합시켜
불교 중국화를 이루게 한 대표적 저서로 꼽힌다.
그가 왕란(王難)을 만나 형장에서 죽음을 당할 때 게송으로
「사대(四大)가 원래 주인이 없고 (四大元無主)
오음(五陰)은 본래 공하거늘 (五陰本來空)
머리에 번쩍이는 칼날에 들이대본들 (將頭臨白刃)
오히려 춘풍(春風) 베는 것과 같다네. (猶似斬春風)」 하였다.
(玄沙는 "크고 작은 조법사가 죽는다는 것이 잠꼬대로구나." 하였다.)
*一轉語; 學人을 迷惑에서 開悟로 轉換시키는 한 마디 語句. 세 句면 三轉語.
*引得黃鶯下柳條; 원앙을 수놓아 정원에 내놓으면 황앵이 진짜인 줄 알고
내려 앉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니, 사람들이 그 말에 속게 될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陸亘大夫久參南泉。 尋常留心於理性中。 游泳肇論。 一日坐次。遂拈此兩句。 以為奇特。問云。 肇法師道。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也甚奇怪。 肇法師。乃晉時高僧。 與生融叡。 同在羅什門下。謂之四哲。 幼年好讀莊老。 後因寫古維摩經。 有悟處。 方知莊老猶未盡善。 故綜諸經。乃造四論。 莊老意謂。天地形之大也。 我形亦爾也。同生於虛無之中。 莊生大意。只論齊物。 肇公大意論性皆歸自己。 |
육긍대부(陸亘大夫)는 남전(南泉)을 오래 참학했다. 평상시에 이치와 성품 가운데 마음을 두고 조론(肇論)을 파헤쳤는데, 하루는 좌선하다가 이 두 구절이 떠올랐는지라 기이하게 여기고 여쭙기를, "조법사(肇法師)가 천지와 내가 뿌리가 같고, 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 했는데, 심히 기괴합니다." 하였다. 조법사는 진(晉)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생융예(生融叡*)와 더불어 함께 구마라습 문하에 있었으니 이를 4철(四哲)이라 한다. 어려서는 장노(莊老;장자와 노자) 읽기를 즐겼고, 후에 유마경(維摩經)을 서사(書寫)하고 념고(拈古)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바야흐로 장노가 미진(未盡)한 선(善)임을 알았기에 여러 경전을 종합하여 4론(四論)을 썼다. 장노(莊老)의 뜻은 천지(天地)는 넓고 나 또한 그러하여 허무한 가운데 동생(同生)한다 하니 장자는 생(生)의 대의(大意)를 다만 사물과 같이 논했으나, 조공(肇公)의 대의는 성품을 다 자기로 돌려 논했다. |
*生肇融叡; 生은 도생(道生), 肇는 승조(僧肇), 融은 도융(道融), 叡는 승예(僧叡).
구마라습 문하의 生,肇,融,叡 네 사람을 「관중4성(關中四聖)」이라 부르며,
여기에 曇影, 慧嚴, 慧觀, 僧[(丰*力)/石], 道常, 道標의 六師를 합하여
「습문10철(什門十哲)」이라 한다.
不見他論中道。 夫至人空洞無象。 而萬物無非我造。 會萬物為自己者。 其唯聖人乎。 雖有神有人有賢有聖。 各別而皆同一性一體。 |
보지 못했는가? 그 논(論;涅槃無名論)에 이르되, '대저 지극한 사람은 텅 비어 형상이 없고, 만물은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만물을 자기 것으로 안다면 그가 오직 성인이기만 하겠는가?' 하였거니와, 비록 신(神)과 인(人), 현(賢), 성(聖)이 있어 각각 달라도 다 같이 하나의 성품과 하나의 몸인 것이다. |
古人道。盡乾坤大地。 只是一箇自己。 寒則普天普地寒。 熱則普天普地熱。 有則普天普地有。 無則普天普地無。 是則普天普地是。 非則普天普地非。 法眼云。渠渠渠。我我我。 南北東西皆可可。 不可可。 但唯我無不可。 所以道。天上天下唯我獨尊。 石頭因看肇論。 至此會萬物為自己處。 豁然大悟。 後作一本參同契。 亦不出此意。 |
고인이 말하기를, "온 세계[乾坤大地]가 다만 하나의 자기인지라 (내가)추우면 곧 온 천지가 춥고, 더우면 온 천지도 덥고, 있으면 온 천지가 있고, 없으면 온 천지도 없고, 옳으면 온 천지가 옳고, 그르면 온 천지도 그르다." 하였고, 법안(法眼)은 "너, 너, 너와 나, 나, 나, 그리고 남북동서가 다 가능하고 가능할 수 있고 가능하고 가능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오직 나만은 가능하지 못할 것이 없는지라 그래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하신 것이다"고 하였으며, 석두(石頭)가 조론(肇論)를 보고 이 '만물로 자기를 삼는 곳'을 알기에 이르러 활연히 대오(大悟)하고서 후에 한 권의 〈참동계(參同契)〉를 지은 것도 이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
看他恁麼問。且道。 同什麼根。同那箇體。 到這裏。也不妨奇特。 豈同他常人。 不知天之高地之厚。 豈有恁麼事。 陸亘大夫恁麼問。奇則甚奇。 只是不出教意。 若道教意是極則。 世尊何故更拈花。 祖師更西來作麼。 |
그의 이러한 질문을 살피건대, 말해보라. 무슨 뿌리가 같고 어떤 몸이 같다는 것인가? 이 속에 이르러서는 기특하여 마지 않으니, 어찌 그가 보통사람이겠으며, 하늘 높고 땅 두터운 줄 모르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육긍대부가 이렇게 물은 것은 기이한 즉 심히 기이하나, 다만 이것은 교의(教意)를 표출(表出)한 것은 아니다. 만약 교의를 말로 하는 것이 극칙(極則)이라면 세존께서는 어째서 염화(拈花)를 하신 것이며, 달마조사는 또 서래(西來)하시어 무엇을 꾀하신 것인가? |
南泉答處。 用衲僧巴鼻。 與他拈出痛處。 破他窠窟。 遂指庭前花。召大夫云。 時人見此一株花。 如夢相似。 如引人向萬丈懸崖上打一推。 令他命斷。 爾若平地上推倒 彌勒佛下生。也只不解命斷。 亦如人在夢。 欲覺不覺被人喚醒相似。 南泉若是眼目不正。 必定被他搽糊將去。 看他恁麼說話。也不妨難會。 若是眼目定動。活底聞得。 如醍醐上味。 若是死底聞得翻成毒藥。 |
남전(南泉)의 답처(答處)는 납승(衲僧)을 파비(巴鼻*)하는 데에 쓰여 그에게 아픈 곳을 꼭 찝어내 주고 그의 과굴(窠窟*)을 깨뜨려 주었다. 뜰 앞의 꽃을 쫓아 가리키며 대부(大夫)를 불러 말하기를, "그 때의 사람은 이 한 그루 꽃 보기를 꿈과 같이 본 것이다"고 하였으니, 마치 사람을 만 길 낭떨어지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서 그로 하여금 목숨이 끊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 너희가 만약 평지(平地) 위에서 밀어도 넘어진다면 미륵불이 하생(下生)하도록 다만 죽은 줄도 모를 것이요, 또한 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깨려 해도 깨지 못하고 사람이 불러 깨어남과 같으리라. 남전의 안목이 바르지 못했다면 반드시 그에게 망신[搽糊;풀칠]을 당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얘기를 보건대 난해(難解)하여 마지 않거니와, 안목의 정동(定動*)이 살아 있는 바탕에서 들어 얻은 것이다면 제호(醍醐)의 으뜸가는 좋은 맛이겠지만 죽어 있는 바탕에서 들어 얻었다면 독약으로 바뀔 것이다. |
*巴鼻; 소 콧구멍을 뚤어 멍에를 끼우는 것이니,
꼼짝 못하고 끌려 올 수 밖에 없게 한다는 뜻. 把鼻, 巴臂, 把臂라고도 쓴다.
*窠窟; (파묻혀 지내던)소굴, 즉 고정관념에 비유하는 말.
*定動; 일정함과 움직임.
古人道。 若於事上見。墮在常情。 若向意根下卜度。卒摸索不著。 巖頭道。此是向上人活計。 只露目前些子。如同電拂。 南泉大意如此。 有擒虎兕定龍蛇底手腳。 到這裏也須是自會始得。 不見道。 向上一路千聖不傳。 學者勞形如猿捉影。 看他雪竇頌出。 |
고인이 말하기를, "사실 위에서 보면 상정(常情)에 떨어지고, 뜻으로 추측하면 끝내 모색하지 못한다" 하였고, 암두(巖頭)는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살아갈 길을 눈앞에 조금만 번개 스치듯이 드러냈다." 하였는데, 남전은 큰 의미에서 이처럼 범과 코뿔소를 잡고 용과 뱀을 정하는 수완이 있다지만 이 속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보지 못했는가? "위로 향하는 그 길은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거늘, 배우는 자들 애쓰는 꼴이 원숭이 (물 위의 달)그림자 잡으려는 듯하다" 하였다. 그것에 대해 설두가 송출(頌出)한 것을 살펴보라. |
聞見覺知非一一 (森羅萬象無有一法。 七花八裂。 眼耳鼻舌身意。 一時是箇無孔鐵鎚) 山河不在鏡中觀 (我這裏無這箇消息。 長者自長短者自短。 青是青黃是黃。 爾向什麼處觀) 霜天月落夜將半 (引爾入草了也。 遍界不曾藏。 切忌向鬼窟裏坐) 誰共澄潭照影寒 (有麼有麼。 若不同床睡。焉知被底穿。 愁人莫向愁人說。 說向愁人愁殺人) |
문(聞) 견(見) 각(覺) 지(知)가 따로 따로가 아니고 (삼라만상이 한 법도 없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버렸으니,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일시에 꽉 막혀버린 것<無孔鐵鎚*>이다.) 산하(山河)는 거울 속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이 속에 어떤 소식도 없다. 긴 것은 스스로 길고, 짧은 것은 스스로 짧으며, 푸른 것은 푸르고 누런 것은 누렇거늘, 너는 어디를 향해 보느냐?) 서리 낀 하늘 달은 지고 밤은 깊어가는데 (그대들을 풀섶으로 들어가도록[入草*] 이끌었으나 온 세계에 감춰진 적이 없으니, 절대 귀굴<鬼窟> 속에 앉지 말기 바란다.) 뉘라서 함께 맑은 못에 영한(影寒*)을 비춰줄꼬. (있는가, 있는가<有麼有麼*>? 같은 침상에서 자지 않고서야 어찌 뚫리리오? 근심 많은 사람이 근심 많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 많은 사람에게 말해봐야 근심만 심해질 뿐이다.) |
*無孔鐵鎚; 둥글기만 하고 구멍이 없어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철추.
'어찌 해볼 수 없는 것', '뚫리지 않은 답답한 놈'에 비유하는 말.
*入草; 풀섶으로 들어가다. 풀섶은 시끄러운 현실세계에 비유하는 말.
*影寒; 그림자의 차가움. 고결하여 범접하기 어려움에의 비유.
*有麼有麼; '나는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南泉小睡語。雪竇大睡語。 雖然作夢卻作得箇好夢。 前頭說一體。 這裏說不同。 聞見覺知非一一。 山河不在鏡中觀。 若道在鏡中觀。 然後方曉了。 則不離鏡處。 山河大地。草木叢林。 莫將鏡鑑。若將鏡鑑。 便為兩段。 但只可山是山水是水。 法法住法位。 世間相常住。 |
남전은 작은 잠꼬대, 설두는 큰 잠꼬대를 했는데, 비록 꿈을 꾸었지만 어떤 좋은 꿈이다. 앞 에서는 한 몸[一體]을 말하고 여기서는 같지 않음[不同]을 말했다. '문견각지(聞見覺知)가 각각이 아니고 산하(山河)는 거울 속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했는데, 만약 도(道)가 거울 속에서 보고 그런 뒤에 바야흐로 깨치는 것이라면 곧 거울이라는 곳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초목총림(草木叢林)을 거울을 가져다 비춰보지 말라. 거울로 비춰보면 곧 양단(兩段;이것과 저것)이 되어버리거니와, 다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수 있어야만 모든 법이 법의 위치에 안주하고 세간의 모습이 상주(常住)할 것이다. |
山河不在鏡中觀。 且道向什麼處觀。還會麼。 到這裏。 向霜天月落夜將半。 這邊與爾打併了也。 那邊爾自相度。 還知雪竇以本分事為人麼。 誰共澄潭照影寒。 為復自照。為復共人照。 須是絕機絕解。 方到這境界。 即今也不要澄潭。 也不待霜天月落。 即今作麼生。 |
'산하(山河)가 거울 속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했는데, 말해보라. 어디를 향해 보아야 할지. 알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날은 춥고 달은 지고 밤은 깊어만 가리니, 이 쪽은 너와 더불어 타개(打開;打併)해 간다 하더라도 저 쪽은 너 스스로 헤쳐가야[相度] 한다. 설두가 본분사(本分事)로 사람을 위한 것을 알겠는가? '뉘라서 함께 맑은 못에 영한(影寒)을 비추리오?' 하였는데, 스스로 비춰 보고 사람들과 함께 비춰 보기를 힘써서 모름지기 심기(心機*)를 끊고 지해(知解*)를 끊는다면 바야흐로 이런 경계에 도달하려니와, 당장이야 맑은 못은 요하지 않더라도 서리 낀 하늘 달이 지기를 기다리지는 말아야 한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
*打併; 收拾, 整理. *相度; 考慮, 分析.
*心機; 마음의 발동(發動). *知解; 정식(情識)에 의한 이해. 속칭 알음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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