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用語及要言

깨달은 스님들의 행적이 왜 저마다 다릅니까?

碧雲 2015. 3. 24. 14:19

或問호대 古人得旨之後에 객승이 물었다.
혹문 고인득지지후 "옛 사람들은 종지를 얻은 뒤에 
或孤峯獨宿커나 或手入廛하고 고봉(孤峯)에 머물거나 
혹고봉독숙    혹수수입전 혹은 시장바닥에 들어가 포교하기도 하고
或兼擅化權커나 或單提正令하며 제멋대로 교화의 방편을 펼치기도 하고
혹겸천화권    혹단제정령 불조(佛祖)의 정령(正令)만을 제시하기도 하고
或子籌盈室커나 或不遇一人하며 문전 가득히 제자들을 제접하기도 하고
혹자주영실    혹불우일인 아무도 만나지 않기도 하고
或泯絶無聞커나 或聲喧宇宙하며 자취를 끊고 은거하기도 하고
혹민절무문    혹성훤우주 명성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하고
或親嬰世難커나 或身染沉하니 직접 세상의 환란에 뛰어들기도 하고
혹친영세난    혹신염침아 고질병에 걸리기도 했는데,
雖同趨少室之門이로되 모두가 달마스님의 제자들인데도 
수동추소실지문
而各蹈世間之路者는 何也닛고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은 
이각도세간지로자   하야 무엇 때문입니까?"
幻曰 言乎同者는 이렇게 대답했다.
환왈 언호동자  "'같다'고 말하는 것은 
同悟達磨直指之眞實自心也요 "달마스님이 직지(直指)하신 참된 자심(自心)을 
동오달마직지지진실자심야 다같이 깨달았다는 것이고,
言乎異者는  '다르다'고 말한 것은 
언호이자
異於各稟三世之虛幻緣業也니라 각각 받은 삼세의 허환(虛幻)으로 맺어진 업이
이어각품삼세지허환연업야 다르다는 것이니라.
以報緣觀之면 업보의 연에 따라 살펴보면 
이보연관지
非樂寂而孤峯獨宿也요 그저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서 
비락적이고봉독숙야 고봉에 홀로 머무른 것도 아니고 
非愛而人廛垂手也며 그저 시끄러운 것이 좋아서 
비애료이인전수수야 시장통에 들어가 교화한 것도 아니며, 
擅化權而非涉異也요 제멋대로 교화의 방편을 베풀었다 해서
천화권이비섭이야 이단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提正令而非專門也며 불조의 정령만을 제시했다 해서 
제정령이비전문야 전문(專門)인 것도 아니며, 
雖弟子滿門非苟合也요 비록 제자가 문전에 가득하다 해서 
수제자만문비구합야 구차히 세속에 영합한 것도 아니고
雖形影相弔非絶物也며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해서 
수형영상조비절물야 외물(外物)을 끊은 것도 아니며, 
其畢世無聞非尙隱也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른다 해서 
기필세무문비상은야 고상히 은거한 것도 아니고
其聲喧宇宙非搆顯也니 명성이 우주를 떠들썩하게 했다 해서
기성훤우주비구현야 자랑할 것도 아니니   
至若榮枯禍福 一本乎報緣이니라 영고화복(榮枯禍福)을 살펴보면
지약영고화복 일본호보연 하나같이 과보로 연한 것이니라. 
以金剛正眼으로 視之컨댄 금강정안(金剛正眼)으로 보면
이금강정안    시지
特不翅飛埃之過目耳이어늘  세상 일이란 작은 티끌이 날아서  
특불시비애지과목이 눈귀를 스치는 것과 별다르지 않는데 
安能動其愛憎取捨之念哉아 어찌 그런 애증취사(愛憎取捨)의  
안능동기애증취사지념재 쓸데없는 생각을 내겠느냐?
所以로 龍門이 謂報緣虛幻이어늘 그래서 용문사(龍門寺) 청원(淸遠)스님은 
소이   용문   위보연허환  '업보의 연은 헛개비에 불과한데  
豈可强爲리오하고 어찌 무엇을 억지로 하겠는가.' 하셨고,  
기가강위
演祖가 謂萬般存此道언만  동산 연조(演祖)스님은  
연조위만반존차도  '모든 것에 이 도가 들어있는데
一味信前緣이로다하니  하나같이 과거의 인연만을 믿는다,' 하셨다.
일미신전연
苟不有至理鑑之면   실로 어떤 지극한 이치로 살피지 않는다면 
구불유지리감지
則不能無惑於世相之浮沉也니라 세상사의 부침(浮沈)에  
즉불능무혹어세상지부침야 미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라."
 천목 중봉(天目中峰; 1263~1323)스님의 광록(廣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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