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峰和尚禪要

고봉화상 선요 _ 22. 示衆, 23. 結制示衆, 24. 示衆

碧雲 2016. 3. 9. 23:05
 示眾22. 대중에게 보임
若論剋期取證인댄 만약 정한 기일 내에 증득하는 것을 논하자면
如人이 擔雪井하야 마치 사람이 눈을 져다가 우물을 메우듯이 
不憚寒暑하며 不分晝夜하고 춥고 더움을 꺼리지 말고, 
밤낮을 분간하지 말며,
橫也擔豎也擔하며 가로로 메고 세로로 메며,
是也擔非也擔하야 옳아도 메고 글러도 메어서 
擔來擔去에 縱使經年越歲하야 메고 오거나 메고 감에  
해를 보내고 세월이 넘어가서 
以至萬劫千生이라도 만 겁 천 생에 이르더라도 
於其中間에 信得及 踏得穩하며 그 중간에 믿음이 확고하여 편안하고 
把得定 作得主하야 안정되고 주체가 되어서 
曾無一念厭離心하며 일찍이 한 생각도 싫어하여 떠나려는 마음이 없고,
曾無一念懈怠心하며 일찍이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으며,
曾無一念狐疑心하며 일찍이 한 생각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고,
曾無一念求滿心이니라 일찍이 한 생각도 만족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果能有恁時節하며 과연 이런 시절을 능히 지니고 
果能具恁氣槩인댄 과연 이런 기개를 능히 갖추면 
到者裏하야 管取人法雙忘하고 이 속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주관과 객관이 동시에 사라지고 
心識俱泯하야 形如槁木朽株하며 마음과 의식이 함께 없어져서 
모습이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 같고 
志若嬰兒赤子하야 뜻이 영아(嬰兒)나 적자(赤子) 같아서 
驀然擔子卒地斷地折하리라 문득 짊어진 것이 졸지에 끊어지고 
갑자기 꺾일 것이다.
永嘉道호대 영가(永嘉)스님이 말하기를, 
大千沙界海中漚오  '삼천대천세계의 모래알 같이 많은 세계가 
바다 가운데 거품이고, 
一切聖賢이 如電拂이라하니 일체 성현이 번갯불 치는 것과 같다.'고 하니
好與三十痛棒이로다 좋게 삼십 방의 방망이를 주겠다.
若謂此事인댄 參也參得하며 만약 이 일을 이른다면 
참구하고자 하면 참구하고,
悟也悟得하며 說也說得하며 깨닫고자 하면 깨달으며,
말하고자 하면 말하고, 
行也行得하며 來也來得하며 실천하고자 하면 실천하며, 
오고자 하면 오고, 
去也去得이니라 가고자 하면 가는 것이다.
然雖如是나 그러하기가 비록 이와 같으나 
更須三十年하야사 始得이니 다시 삼십 년을 참구해야 옳을 것이니 
何故오 兩角四蹄都過了나 무슨 까닭인가? 
두 뿔과 네 다리가 다 지나갔으나 
尾巴過不得이니라 아직 꼬리 끝은 지나가지 않았다.
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논하자면 
如萬丈深潭中에 投一塊石相似하야 만 길이나 되는 깊은 못에 
돌 한 덩어리를 던지는 것과 같아서 
透頂透底에 了無絲毫間隔이니라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다.
誠能如是用工하며 如是無間하고 진실로 능히 이와 같이 공부하고 
이와 같이 간단없이 하여 
一七日中에 若無倒斷인댄 칠일 내에 넘어져 끊어짐이 없다면 
(某甲)永墮阿鼻地獄하리라 (나는) 영원히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結制示眾23. 결제에 대중에게 보임 
封卻拄杖頭하고 結卻布袋口하며 주장자 머리를 봉하고 포대 입구를 묶고, 
禁在鐵圍山하야 枷上重增杻하며 철위산에 같혀 칼 쓴 위에 또 수갑을 채우고, 
有中拷出無하고 無中拷出有하야 유(有)에서 무(無)를 두드려 내고,
무(無)에서 유(有)를 두드려 내서 
痛楚百千般이라도 不離者窠臼니라 아프기가 백천 번이라도 
이 돌쩌귀를 벗어나지 않는다.
大眾은 且道하라 대중은 또 말해보라.
喚甚하야 作窠臼오 무엇을 돌쩌귀라 부르는가?
直饒明辨得出이라도 바로 넉넉히 밝게 분별하여 얻어내더라도
要見西峰의 那邊更那邊에 나(서봉)의 저 변(邊)과 또 저 변(邊)에 
人不人一著子인댄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지 않는 
일착자(一著子)를 보려 한다면 
且待三十年後니라 또 삼십 년 뒤를 기다려야 한다.
 示眾24. 대중에게 보임
(拈拄杖召大眾云)(주장자를 잡고 대중을 불러 이르기를)
還見 도리어 보는가? 
人人이 眼裏有睛하니 사람사람이 눈에 눈동자가 있어 
不是瞎漢이라 決定是見이니라 눈먼 놈이 아니니 결정코 볼 것이다.
(以拄杖卓一下云)(주장자를 한 번 내리고 이르기를)
還聞아 箇箇皮下有血하니 도리어 듣는가? 
개개인이 가죽 아래 피가 흐르고 있어 
不是死漢이라 決定是聞이니라 죽은 놈이 아니니 결정코 들을 것이다.
聞인댄 是箇甚 기왕에 보고 기왕에 듣는다면 
이것이 무엇인가? 
(以拄杖)ⴱ。(주장자로) ⴱ
見聞은 即且止어니와 보고 듣는 것은 곧 그만두거니와 
只如六根未具之前과 다만 육근이 갖추어지기 이전과 
聲色未彰之際에 성색(聲色)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未聞之聞과 未見之見은 듣지 않고 듣는 것과 보지 않고 보는 것은
正恁時하야 畢竟以何驗고 정히 이럴 때에 
필경 무엇으로 증험(證驗)할 것인가?
(以拄杖)ⵀ。(주장자로) ⵀ
吾今與汝로 保任斯事하노니 내가 지금 너희와 더불어 
이 일을 보임(保任)하노니 
終不虛也니라 끝내 헛되지 않다.
(以拄杖)[○@□]。(주장자로) [○@□]
三十年後에 切忌妄通消息이니라 삼십 년 뒤에 망령되게 소식 통하는 것을 
간절히 꺼린다.
(靠拄杖下座)(주장자를 메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논할 것 같으면 
只要當人이 的有切心이니 다만 당사자는 분명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纔有切心이면 疑便起리라 간절한 마음을 갖기만 해도 
참된 의심이 문득 일어날 것이다.
疑起時에 不屬漸次하며 참된 의심이 일어날 때는 
점차(漸次)에 속하지 않고, 
直下便能塵勞頓息하고 곧바로 진로(塵勞)가 몰록 쉬어지고 
昏散이 除하야 혼침과 산란이 함께 사라져서 
一念不生하고 前後際斷하리니 한 생각도 생기지 않고 앞뒤가 끊어질 것이다.
纔到者般時節이면 이러한 시절에 이르면 
管取推門落臼이니라 반드시 문을 밀어 돌쩌귀를 떨어뜨릴 것이다.
若是此念이 不切하야 疑不起인댄 만약 이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여 
참된 의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坐破蒲團百千萬箇라도 넉넉히 너희가 백천만 개의 포탄을 
앉은 채로 떨어뜨리더라도 
依舊日午打三更이니라 옛날처럼 정오에 삼경의 종을 치게 될 것이다.
迷中有悟하고 悟復還迷라 미혹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이 다시 미혹으로 돌아가니 
直須迷悟兩忘하고 人法俱遣하야사 모름지기 미혹과 깨달음을 다 잊고 
사람과 법을 다 떠나보내야 
衲僧門下에 始有語話分하리라 나의 문하에 비로소 말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大眾아 是迷悟兩忘하고 대중아! 이 미혹과 깨달음을 기왕 다 잊고
人法俱遣인댄 사람과 법을 다 떠나보냈다면 
共語話者 復是阿誰오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시 이 누구인가?
速道速道하라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若論此事인댄 如登萬仞高山하야 만약 이 일을 논할 것 같으면 
만 길 높은 산에 오름에 
一步一步에 將搆至頂호대 한 걸음 한 걸음 얽어가서 정상에 이르는데 
唯有數步壁攀躋라 오직 몇 발짝 두고 절벽이 있어 
매달려 오르는 것과 같다.
到者裏하야는 이 속에 이르러서는 
須是箇純鋼打就底라야 순전히 강철을 두드려 만든 사람이라야 
捨命身하고 목숨을 버리고 몸을 버리며 
左睚右睚하야 좌를 엿보고 우를 엿보며 
睚來睚去에 以上期하야 엿보아 오고 엿보아 가서 
그로써 정상이 기약될 것이다.
縱經千生萬劫과 萬難千魔라도 비록 천 생 만 겁과 
만 가지 고난 천 가지 마구니를 겪더라도 
此心此志는 愈堅愈이어다 이 마음과 이 뜻은 더욱 굳고 강하게 해야 한다.
若是根本不實한 泛泛之徒인댄 만약 근본이 충실치 못한 평법한 무리라면 
何止望崖 管取聞風而退矣리라 어찌 절벽을 바라보는 데까지 이르겠는가?
바람소리만 듣고도 물러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