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峰和尚禪要

고봉화상 선요 _ 25. 除夜小參, 26. 示衆

碧雲 2016. 3. 9. 23:07
 除夜小參25. 섣달 그믐날 밤의 좌담
一年三百六十日이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看看逗到今宵畢이건만 어느덧 오늘 밤에 다 지나가건만 
十箇有五雙은 열에 다섯 쌍은 
參禪호대 禪又不知하며 참선을 하되 선을 알지 못하고 
學道호대 道亦不識이로다 도를 배우되 도 또한 알지 못한다.
只者不知不識四字 다만 그 부지불식(不知不識) 네 글자가 
正是三世諸佛의 骨髓며 정히 삼세제불의 골수이며 
一大藏의 根源이니 일대장교(一大藏敎)의 근원이다.
靈利漢이 纔聞著하면 영리한 놈은 거착(擧着)하는 것을 들으면 
如龍得水하고 似虎靠山하야 용이 물을 만나고 호랑이가 산에 기댄 것 같아서 
天上人間에 縱橫無礙하리라 천상과 인간을 거침없이 종횡할 것이다.
然雖如是나 點檢將來인댄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점검해 보면 
猶是者邊底消息이니 오히려 이 쪽 끝의 소식이다.
若謂那邊更那邊一著子인댄 만약 저쪽 끝에서 
다시 저쪽 끝의 일착자(一著子)를 말하자면 
直饒西天四七과 唐土二三으로 넉넉히 인도의 스물여덟 조사와
중국의 여섯 조사로부터 
以至天下老古錐히 천하의 선지식에 이르기까지 
敢保未徹在라호리라 감히 철저하지 못함을 알겠다.
山僧이 與告報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함에 
忽有箇漢子 心憤憤口悱悱하야 갑자기 어떤 놈이 
마음이 답답하고 말이 급해서 
出來道호대 高峰高峰아 나와 말하기를, '고봉아, 고봉아! 
有甚長處관대 너는 무슨 잘난 데가 있어서 
開得者般大口오하면 그렇게 큰 입을 여느냐?'고 하면 
只向他道호리라 다만 그를 향해 말하겠다.
來年更有新條在하야 "내년에 다시 새 가지가 나서 
惱亂春風卒未休라 봄바람에 흔들리기를 마침내 쉬지 않네."
 示眾26. 대중에게 보임
終日著衣호대 종일 옷을 입되 
未嘗掛一縷絲하며 일찍이 한 올의 실도 걸치지 않았으며 
終日喫飯호대 종일 밥을 먹되 
未嘗咬著一粒米하나니 일찍이 한 톨의 쌀도 씹지 않았다. 
然如是인댄 且道하라 이미 그러하기가 이와 같다면, 또 말하라. 
即今身上著底와 每日口裏喫底는 지금 몸에 입고 있는 것과 
매일 입 속에 먹는 것은 
是箇甚 이것이 무엇인가? 
到者裏하야는 여기에 이르러서는 
不論明與不明과 徹與不徹하고 밝음과 밝지 않음, 
철저함과 철저하지 않음을 거론할 것 없이 
寸絲滴水라도 한 올의 실과 한 방울의 물이라도 
也當牽犁拽杷償他니라 何故오 또한 마땅히 쟁기를 끌고 고삐를 잡아서 
그에게 갚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一片白雲이 橫谷口하니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에 가로 걸쳤으니
幾多歸鳥가 自迷巢아 얼마나 많은 돌아가는 새가 
스스로 보금자리를 잊었던가?
若論此事인댄 正如傍墻逼狗하야 만약 이 일을 논한다면 
정히 담장 옆에서 개를 모는데 
逼來逼去에 逼至尖角落頭하야는 몰아오고 몰아가서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가면 
未免翻身遭他一口리니 몸을 돌려 개가 무는 것을 
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即今에 莫有遭他底 지금 바로 개한테 
물린 사람이 있지 않은가? 
(卓拄杖一下云)(주장자를 한 번 내리고 이르기를)
阿耶阿耶하시다  ‘아야! 아야!’ 하였다. 
學道如初不變心하야 도를 배우는데 처음과 같이 
마음이 변하지 아니하여
千魔萬難愈惺惺이니 천 가지 마구니, 만 가지 고난에도 
더욱 깨어 있네[惺惺)
直須敲出虛空髓하며 바로 허공의 골수(骨髓)를 두드려 꺼내며
拔卻金剛腦後釘이니라 금강(金剛)의 머리에 박힌 못을 뽑아 버리리.
若論此事의 用工之際인댄 만약 이 일에 공부하는 것을 논한다면 
正如打鐵船入海하야 정히 쇠 배[鐵船]를 만들어 바다로 들어가서 
取如意寶珠相似하니 여의보주(如意寶珠)를 얻는 것과 같다. 
莫問打得打不得하고 만듦과 만들지 못함을 묻지 않고 
但孟八이 打將去하야 다만 맹팔랑(孟八郞)이 가져가서 
驀然一旦에 打得成 入得海하며 문득 하루아침에 배를 만들고 바다에 들어가 
獲得珠하야 將來呈似老僧이라도 구슬을 얻고 나에게 가져와 바치더라도 
不免與伊로 一槌擊碎리라 너와 함께 한 방망이로 부수어 버림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何故오 豈不見道아 무슨 까닭인가? 
이런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有之以利하고 無之以用이니라 유(有)가 이익(利益)이 되는 것은 
무(無)로써 용(用)을 삼기 때문이다.
若論實參實悟인댄 만약 참된 참구와 깨달음을 논한다면 
正如八十公公이 向逆風逆水裏하야 정히 팔십 노인이 
역풍(逆風)과 역수(逆水) 속을 향해 
牽一隻無底鐵船相似리니 한 척의 밑바닥 없는 쇠배를 끄는 것과 같다. 
不問上與不上과 徹與不徹하고 올라감과 올라가지 못함이나 
철저함과 철저하지 못함을 묻지 않고 
直須心心無間하며 念念無虧하야 다만 마음마음이 끊어짐이 없으며 
생각생각이 이지러짐이 없어서[無虧] 
一步一步에 盡平生伎倆睚將去하야 한 걸음 한 걸음에 
평생의 기량(技倆)을 다해 엿보고 끌어가서 
睚到著不得處와 발붙일 수 없는 곳과 
筋斷骨折時하면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때에 엿보아 도달하면 
驀然水轉風回하리니 문득 물과 바람이 되돌아 설 것이다. 
即是到家消息이니라 곧 이것이 집에 이른 소식이다. 
即今에 莫有到家底 지금 집에 도착한 자가 있지 않는가? 
(卓拄杖一下云)(주장자를 한 번 내리고 이르기를) 
十萬八千이로다 십만 팔천이로다!
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논하자면 
不假長劫熏修하야 積功累德하며 오랜 세월[長劫] 동안 닦아 
공덕 쌓음을 빌리지 않는다. 
亦不問賢愚利鈍과 久習初機하고 또한 똑똑함과 어리석음, 영리함과 우둔함, 
오래 익힘과 처음 공부함을 묻지 않고 
只貴孟八漢이 不顧危亡得喪하고 다만 맹팔랑(孟八郞)이 
위망(危亡)과 득실(得失)을 돌아보지 않고 
發大憤志이며 起大疑情호대 큰 분심(憤心)을 내며 
큰 의정(疑情)을 일으키되 
如善財童子 參勝熱婆羅하야 선재동자가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을 참례하여 
大火聚中에 投身而入이니 큰 불덩어리 속에 몸을 던져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 귀(貴)하다. 
正恁時하야 바로 이러한 때에 
人法俱忘하고 心機泯하면 사람과 법이 다 사라지고 
심기(心機)가 끊어지면 
左之右之에 蹴著磕著하리니 좌지우지함에 발에 채이고 
맷돌을 맞게 될 것이다. 
不是洞山麻三斤이면 동산(洞山)의 ‘삼 서 근’이 아니면 
定是雲門乾屎이니라 반드시 운문(雲門)의 ‘마른 똥 막대기’일 것이다. 
若還猥猥獕獕하며 魍魍魎魎인댄 만약에 도리어 산란하고 혼침(昏沈)하거든 
莫道親見高峰하라 나[西峰]를 직접 만났다고 말하지 말라. 
直饒向老胡肚皮裏하야 바로 넉넉히 달마의 뱃가죽 속에 들어가서 
打一遭라도 依前乾沒一星事리라 한 바퀴 돌아 나오더라도 
전과 같이 말라서 작은 일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