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慧普覺禪師書(書狀)

대혜보각선사서 제 26권 [서장(書狀)②]

碧雲 2016. 3. 29. 19:51
大慧普覺禪師書 卷第二十六대혜보각선사서 제 26권
宋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송나라 경산 능인선원 주지법통 
慧日禪師 臣蘊聞 上進 혜일선사 온문(普慈蘊聞)이 모아 올림 
答江給事(少明)3.(9) 강급사(江給事) 소명(少明)에의 답서
人生一世。百年光陰。인생 한 세상의 백 년이 
能有幾許。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公白屋起家。歷盡要。공은 가난한 집에서 가문을 일으켜 
촉망되는 벼슬과 요직을 다 거쳤으니
此是世間第一等受福底人。이것은 세간에서 제일가는 
복 받은 사람이련만
能知慚愧。回心向道。능히 부끄러움을 알아서 
마음을 돌이켜 도를 향하고
學出世間脫生死法。출세간의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배우니 
又是世間第一等討便宜底人。이 또한 세간에서 제일가는 
편의(便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須是急著手冷卻面皮。모름지기 급히 손발을 쓰고 
냉정히 정색을 하여
不得受人差排。다른 사람들의 부림을 받지 말고 
自家理會本命元辰。스스로 근본 생명자리를 깨달아서
去處分明。돌아갈 곳을 분명히 하면 
便是世間出世間一箇了事底大丈夫也。이것이 곧 세간 출세간에서 
일을 마친 대장부일 것입니다.
承連日去與參政道話。서신을 받아보니, 매일 이참정에게 가서 
도를 이야기한다 하니 
甚善甚善。매우 좋은 일입니다.
此公歇得馳求心。그 분은 치구하는 마음이 쉬어지고 
得言語道斷언어의 길도 끊어지고  
心行處滅差別異路。마음 갈 곳도 없어진 차별한 다른 길에서 
覷見古人手。고인들의 수단을 엿보았기에
不被古人方便文字所羅籠。옛사람들 방편의 문자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山僧見渠如此。나는 그가 이와 같음을 보았기 때문에 
所以更不曾與之說一字。더는 그 사람과 한 글자도 말하지 않는데 
恐鈍置他。그것이 오히려 둔하게 할까 두려워서입니다.
直候渠將來。상황에 따라 그가 장차 찾아와서 
自要與山僧說話。스스로 나와 더불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方始共渠眉毛廝結理會在。그때 비로소 그와 함께 눈썹을 맞대고 
이치를 논해 볼 것이나 
不只恁便休。그렇지 않다면 그냥 쉬겠습니다.
學道人。도를 배우는 사람이 
若馳求心不歇。치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면
縱與之眉毛廝結理會。비록 그와 눈썹을 서로 맞대고 이치를 논한들 
何益之有。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正是癡狂外邊走耳。무지와 광분을 밖으로 달리게 할 뿐입니다.
古人云。고인이 말하기를,
親近善者。如霧露中行。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마치 안개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雖不濕衣。時時有潤。비록 옷은 젖지 않으나 
때때로 축축해 지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但頻與參政說話。至禱至禱。다만 이참정과 자주 이야기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不可將古人垂示言胡亂穿鑿。옛 선승들이 수시(垂示)한 말씀을 가지고 
어지럽게 매달리지 마십시오.
如馬大師遇南嶽和예컨대 마조 대사가 회양화상을 만났을 때 
說法云。회양스님이 법을 설하시기를,
譬牛駕車。車若不行。"비유하자면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打車即是。打牛即是。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하셨는데,
馬師聞之。言下知歸。마조 대사가 이 말 끝에 귀결처를 알았다는
這幾句兒言語。이 몇 구절의 유치한 말을 가지고 
諸方多少說法。온통 말들이 많아서 
如雷如霆。如雲如雨底。마치 천둥 같고, 우뢰 같고, 
구름 같고 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理會不得。이치에 부합하지 못하고 
錯下名言。隨語生解。이름과 언구를 잘못 알아서 
말을 따라서 알음알이를 내고 있습니다.
見與舟峰書尾杜撰解註。그대가 주봉(舟峯)이란 사람에게 보낸 편지 끝에 
엉터리로 주해한 것을 보았는데,
山僧讀之。不覺倒。산승이 읽고 나도 모르게 포복절도 하였습니다.
可與說如來禪祖師禪底。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 한 사람들은 
一狀領過一道行遣也。한 장에 죄목을 기록해서 함께 귀양을 보내야 합니다.
來頌子細看過。보내온 게송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卻勝得前日兩頌。지난날 두 가지 게송보다는 좀 낫지만
自此可已之。이제 이것으로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頌來頌去。有甚了期。게송이 계속 오고간들 무슨 마칠 기약이 있겠습니까?
如參政相似。저 이참정처럼 하십시오. 
渠豈是不會做頌。그 사람이 어찌 게송을 지을 줄 모르겠습니까마는,
何故都無一字。무슨 까닭에 한 글자도 없겠습니까?
乃識法者懼耳。도리어 법을 아는 사람은 법을 두려워합니다.
間或露一毛頭。그러나 간혹 터럭만큼 조금만 드러내더도  
自然著山僧痒處。자연히 산승의 가려운 곳을 긁게 될 것입니다.
如出山相頌云。세존께서 산에서 나오신 데 대한 그대의 게송에서
到處逢人驀面欺之語。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 
얼굴을 대하자마자 속이네.'라는 말은
可與叢林作點眼藥。가히 총림에 눈 뜨게 하는 약을 주었다 할 것입니다.
公異日自見矣。공이 훗날 스스로 알게 될 것이므로, 
不必山僧註破也。내가 주석을 달아 설파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某近見公頓然改變此事甚力。내가 근래 공을 보니 확실하게 달라져서 
이 일을 위해 매우 힘쓰고 있기에 
故作此書。不覺縷縷。그래서 이 편지를 썼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길게 하였습니다.
答富樞密(季申)4.(9) 부추밀(富樞密) 계신(季申)에의 답서 ①
示諭。보낸 편지에 말씀하시기를, 
蚤歲知信向此道。젊었을 때부터 이 도를 알고 믿었으나,
知解所障。만년에 알음알이에 장애가 되어서 
未有一悟入處。아직 깨달아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하고
欲知日夕體道方便。밤낮으로 도를 체득하는 방편을 
알고자 한다. 하였는데,
荷至誠。不敢自外。기왕에 정성이 지극함을 보고서 
스스로 외면할 수 없어서 
據款結案。葛藤少許。조목조목 안을 만들어 갈등을 덜어보겠습니다.
只這求悟入底。다만 이 깨달아 들어갈 곳을 찾는 것이 
便是障道知解了也。곧 도를 장애하는 알음알이인 것이니
更別有甚知解公作障。달리 무슨 알음알이가 따로 있어서 
공을 장애하겠습니까?
畢竟喚甚作知解。필경에 무엇이 알음알이가 되며 
知解從何而至。알음알이는 어디에서 오며
被障者復是阿誰。장애를 입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只此一句。倒有三。다만 이 한 구절에 
전도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自言知解所障是一。스스로 말하기를 
알음알이가 장애가 된다 했으니 그것이 하나요,
自言未悟甘作迷人是一。스스로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말해서  
기꺼이 미혹한 사람을 만들고 있으니 그것이 하나요,
更在迷中將心待悟是一。또 미혹한 가운데 있으면서 
마음으로 깨닫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只這三倒。便是生死根本。다만 이 세가지 전도가 곧 생사의 근본입니다.
直須一念不生倒心곧바로 모름지기 한 생각도 내지 말아서 
전도의 마음이 끊어져야
方知無迷可破。無悟可待。비로소 깨트릴 미혹이 없고, 
기대할 깨달음도 없으며,
無知解可障。장애할 알음알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
如人水冷煖自知。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셔서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久久自然。오랫동안 하면 자연히 
不作這般見解也。이러한 견해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但就能知知解底心上看。다만 능히 알음알이를 아는 
그 마음 위에서 살펴 보십시오.
還障得也無。도리어 장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能知知解底心上。능히 알음알이임을 알아차리는 마음 위에
還有如許多般也無。또한 허다한 것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從上大智慧之士。과거 큰 지혜를 가진 보살들은 
莫不皆以知解儔侶。모두 다 알음알이로 도반을 삼거나
以知解方便。알음알이로 방편을 삼지 않는 이들이 없습니다.
於知解上行平等慈。알음알이 위에서 평등한 자비를 행하며
於知解上作諸佛事。알음알이 위에서 모든 불사를 짓되 
如龍得水。似虎靠山。마치 용이 물을 얻은 것과 같고 
호랑이가 산을 의지한 것과 같아서
終不以此惱。결코 이것을 가지고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他識得知解起處。다만 알음알이가 일어난 곳을 알기만을 위할 뿐이라
識得起處。기왕 일어난 곳을 알면 
即此知解。便是解脫之場。이 알음알이가 곧 해탈의 도량이요 
便是出生死處。생사를 벗어난 곳이며,
是解脫之場。出生死處。기왕 해탈의 도량이요 
생사를 벗어난 곳이라면
則知底解底當體寂滅。그 알음알이의 본질은 적멸한 것입니다.
知底解底寂滅。알음알이가 기왕 적멸하다면 
能知知解者不可不寂滅。알음알이임를 아는 사람도 
적멸하지 않을 수 없고,
菩提涅槃如佛性。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도 
不可不寂滅。적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更有何物可障。다시 무슨 물건이 있어서 장애를 하며
更向何處求悟入。다시 어느 곳을 향해 
깨달아 들어가기를 구하겠습니까?
釋迦老子曰。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諸業從心生。모든 업이 마음에서 생기기 때문에 
故說心如幻。마음이 허깨비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
若離此分別。則滅諸有趣。만약 이러한 분별을 떠난다면 
곧 모든 육취(六趣)가 없어진다. 하셨습니다.
僧問大珠和어떤 스님이 대주화상에게 물었습니다.
如何是大涅槃。무엇이 대열반입니까?
珠云。대주화상이 말했다. 
不造生死業。是大涅槃。생사의 업을 짓지 않는 것이 대열반이니라.
僧云。如何是生死業。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생사업입니까?"
珠云。대주화상이 말했다. 
求大涅槃。是生死業。대열반을 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니라.
又古德云。또 고덕이 말하기를,
學道人一念計生死。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이라도 생사를 헤아리면 
即落魔道。곧 마구니의 길에 떨어지고, 
一念起諸見。即落外道。한 생각이라도 여러가지 견해를 일으키면
곧 외도에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又淨名云。또 정명거사가 말하기를,
眾魔者樂生死。모든 마구니는 생사를 즐기지만,
菩薩於生死而不捨。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고,
外道者樂諸見。외도들은 여러 가지 견해를 즐기지만,
菩薩於諸見而不動。보살은 여러 가지 견해에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此乃是以知解儔侶。이것은 곧 알음알이로써 벗을 삼고 
以知解方便。알음알이로써 방편을 삼아서
於知解上行平等慈。알음알이 위에서 평등한 자비를 행하고
於知解上作諸佛事底樣子也。알음알이 위에서 여러가지 불사를 짓는 본보기입니다.
他了達三祇劫空다만 그들은 3아승지 겁이 텅 비어서 생사와 열반이
生死涅槃俱寂靜故。함께 적정함에 요달했기 때문입니다.
未到這箇田地。기왕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切不可被邪師輩胡說亂道부디 삿된 스승들이 함부로 말하고 어지럽게 설명하여
引入鬼窟裏。귀신의 굴속으로 이끌고 들어가서 
閉眉合眼作妄想。눈을 꼭 감고 망상을 짓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邇來祖道衰微。근래 조사의 도가 쇠미(衰微)하여 
此流如麻似粟。이런 부류가 삼대처럼 많고 좁쌀처럼 많습니다.
是一盲引眾盲。이것은 참으로 맹인 한 사람이 여러 맹인을 이끌고
相牽入火坑。불구덩이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일이어서 
深可憐愍。심히 불쌍하고 가련한 일인 것입니다.
願公硬著脊梁骨。원컨대 공은 척추를 굳게 세워서 
莫作這般去就。이러한 거취를 하지 마십시오.
作這般去就底。이러한 행동을 한다면 
雖暫拘得箇臭皮袋子住비록 감깐은 냄새나는 가죽 부대를 묶어 두고서 
便以究竟。곧 구경의 경지로 삼더라도  
而心識紛飛。猶如野馬。심식이 어지럽게 흩어짐이 마치 아지랑이와 같습니다.
縱然心識暫停。비록 그렇게 하여 심식이 감깐은 멈추더라도  
如石壓草。不覺又生。마치 돌로써 풀을 눌러놓는 것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欲直取無上菩提곧바로 최상을 깨달음을 취해서 
到究竟安樂處。구경의 안락한 곳에 이르고자 한다면
不亦難乎。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宗杲亦嘗此流所誤。나 역시 일찍이 이러한 부류에게 잘못 배운 적 있는데
後來若不遇善知識。훗날 참다운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幾致空過一生。아마도 일생을 헛되게 보냈을 것이니 
每每思量。直是叵耐。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以故不惜口業力救此弊。그래서 구업을 아끼지 않고 
이러한 폐단을 힘써서 구원했더니
今稍有知非者。요즘에야 조금씩 잘못된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若要徑截理會。만약 곧바로 이치에 부합하고자 한다면 
須得這一念子地一破。모름지기 이 한 생각을 확 터트려야
方了得生死。方名悟入。바야흐로 생사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요,
그것을 비로소 '깨달아 들어갔다.' 할 것입니다.
然切不可存心待破。그러나 절대로 마음을 두어 
터트려지기를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若存心在破處。만약 마음을 터트릴 곳에다 둔다면 
則永劫無有破時。영겁에도 터트릴 때가 없을 것입니다.
但將妄想倒底心。다만 망상으로 전도된 마음과 
思量分別底心。사량하고 분별하는 마음과
好生惡死底心。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과 
知見解會底心。지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欣靜厭鬧底心。一時按下。고요를 좋아하고 소란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일시에 눌러버리고 
只就按下處看箇話頭。다만 눌러버린 곳에 나아가서
화두를 살펴보십시오.
僧問趙州。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묻기를,
狗子還有佛性也無。"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자
州云無。此一字子。조주화상이 "무(無)" 하였습니다.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이 한 글자는 허다한 나쁜 지식과 
나쁜 깨달음을 꺽어 없애는 무기이니,
不得作有無會。 '있다' '없다'를 지어 이해하려 하지 말고,
不得作道理會。도리를 지어 이해하려 하지 말며,
不得向意根下思量卜度。의식으로 사량하고 헤아리려 하지도 말며,
不得向揚眉瞬目處根。눈썹 치켜들고 눈을 깜박이는 곳의 
근원을 헤아리려 하지도 말며,
不得向語路上作活計。언어의 길에서 활로를 만들려 하지도 말며,
不得颺在無事甲裏。일 없이 껍질 속에 숨어 있지도 말며,
不得向起處承當。화두를 드는 곳을 향해 알려 하지도 말고,
不得向文字中引證。문자를 이끌어 증명하려 하지도 마십시오.
但向十二時中四威儀內。단지 하루종일 행주좌와 속에서 
時時提撕。時時覺。순간순간 제시하고 순간순간 참구해 보십시오.
狗子還有佛性也無。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云無。없다 한 것을 
不離日用。일상생활을 떠나지 말고 
試如此做工夫看。시험삼아 이와 같이 공부하고 살펴  
月十日便自見得也。한 달 열흘을 하면 곧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니,
一郡千里之事。한 고을 천 리의 일이 
都不相妨。서로를 전혀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古人云。고인이 말하기를,
我這裏是活底祖師意。나 이대로가 바로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이거늘
有甚物能拘執他。어느 물건이 구속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若離日用別有趣向。만약 일상생활을 떠나서 
따로 나아갈 곳이 있다면 
則是離波求水。그것은 물결을 떠나서 물을 구하는 것이요
離器求金。금 그릇을 떠나서 금을 구하는 것이라
求之愈遠矣。구할수록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又。(10) 부추밀 계신에의 답서 ②
竊知。日來以此大事因緣念。요즘 이 일대사인연을 마음에 두고
勇猛精進純一無雜。용맹정진하며 잡념없이 순일하다는 것을 
나름대로 알고서
不勝喜躍。그 기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能二六時中熾然作之際。능히 하루 종일 번뇌 망념이 치연하게 활동하는 지경에도 
必得相應也未。반드시 화두와 하나가 됩니까?
寤寐二邊得一如也未。잠을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같습니까?
如未。切不可一向沈空趣寂。만약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공적한 곳에 빠지거나 나아가지 마십시오.
古人喚作黑山下鬼家活計。고인이 말하기를, 
 '캄캄한 산 밑 귀신의 살림살이를 지어
盡未來際無有透脫之期。미래세가 다하도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하였습니다.
昨接來誨。어제 보내온 편지를 접하고 
私慮左右必已耽著靜勝三昧。그대를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반드시 이미 
고요하고 수승한 삼매를 탐닉하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及詢直閣公。乃知果如所料。직각공이라는 사람에게 묻고서야 
과연 생각했던 것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大凡涉世有餘之士。대개의 세상에 묻혀 사는 다른 선비들은 
久膠於塵勞中。오랫동안 세상의 번뇌망상 속에 젖어 있다가
忽然得人指令向靜默處做工夫。문득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요한 곳을 향해 공부하도록 지도를 받고 
乍得胸中無事。잠깐 흉중에 무사(無事)함을 얻으면 
便認著以究竟安樂。문득 오인하여 그것으로 구경의 안락을 삼아서 
殊不知。似石壓草。돌로 풀을 눌러놓은 것과 같음을 별로 알지 못합니다.
雖暫覺消息비록 잠깐은 소식이 끊어진 것을 느끼더라도 
奈何根株猶在。그 뿌리는 오히려 남아 있음을 어찌할 것이며,
寧有證徹寂滅之期。어찌 적멸한 경지를 
명철히 증득할 기약이 있겠습니까?
要得正寂滅現前。진정한 적멸이 앞에 나타나려면 
必須於熾然生滅之中반드시 치연한 생멸 가운데에 
驀地一跳跳出。홀연히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 벗어나되 
不動一絲毫。실 터럭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便攪長河酥酪。긴 강을 휘저어서 소락(酥酪)을 만들고, 
變大地作黃金대지를 바꾸어 황금을 만들며, 
臨機縱奪殺活自由。기회가 오면 주고 빼앗고 
죽이고 살리기를 자유로이 하고,
利他自利無施不可。남도 이롭게 하고 스스로도 이익되도록  
베풀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先聖喚作無盡藏陀羅尼門。옛 성인들께서 '무진장 다라니문'이요,
無盡藏神通遊戲門。 '무진장 신통유희문'이며,
無盡藏如意解脫門。 '무진장 여의해탈문'이라 하시니, 
豈非大丈夫之能事也。어찌 참된 대장부의 해야 할 일이 아니리오? 
然亦非使然。그러나 그 또한 억지로 될 일이 아니요
皆吾心之常分耳。다 우리들 마음의 정해진 몫일 뿐이리니, 
願左右快著精彩。바라건대 그대는 빨리 정신을 차려서 
決期於此。廓徹大悟。결정코 이를 기약하고 확철히 크게 깨닫는다면 
胸中皎然。가슴속이 시원하게 밝아짐이 
如百千日月。마치 백천 개의 해와 달과 같아서
十方世界一念明了。시방세계를 한 순간에 분명히 알되
無一絲毫頭異想。한 실 터럭 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없으면  
始得與究竟相應。비로소 구경과 더불어 상응하게 될 것입니다.
果能如是。과연 이와 같을 수 있다면 
豈獨於生死路上得力。어찌 생사의 길 위에서 유독 힘만 얻겠는가?
異日再秉鈞軸。다른 날에 다시 도르레에 걸어서 
致君於堯舜之上。왕을 요순(堯舜)의 위에 올려놓기가 
如指諸掌耳。마치 손바닥 가리키기와 같을 뿐일 것입니다. 
又。(11) 부추밀 계신에의 답서 ③
示諭。보내 온 편지에
初機得少靜坐工夫。亦自佳。 '처음으로 잠시나마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 또한 좋더라' 하고
又云。不敢妄作靜見。또 '그렇다고 터무니 없이 
조용하다는 견해를 짓지는 않는다.' 하셨는데,
黃面老子所謂。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譬如有人自塞其耳高聲大叫비유에 의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求人不聞。다른 사람이 못 듣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서
是自作障難耳。참으로 이것은 
스스로 만든 장애와 어려움일 뿐입니다.
若生死心未破。만약 생사의 마음을 깨트리지 못하면
日用二六時中冥冥蒙蒙地。일상에서 하루종일 깜깜하고 아득한 것이
如魂不散底死人一般。마치 혼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일 터인데
更討甚閑工夫。다시 무슨 한가한 공부를 추구하여 
理會靜理會鬧耶。고요함에 부합하고 소란함에 부합하겠습니까? 
涅槃會上廣額屠兒。열반회상에서 이마가 넓은 도살꾼이 
放下屠刀便成佛。소 잡는 칼을 집어던지고 문득 성불하였는데 
豈是做靜中工夫來。그 사람이 어찌 고요한 가운데서 공부해 왔겠으며,
渠豈不是初機。그가 어찌 초심자가 아니겠습니까?
左右見此定以不然。그대는 이것을 보고 정히 그렇지 않다 하여
須差排渠作古佛示現。모름지기 배척하고 
 '그 사람은 옛 부처가 나타난 것이요, 
今人無此力量。요즘 사람은 이러한 역량이 없다.'고 할 것이나
若如是見。乃不信自殊勝。만약 이와 같이 보아서 
자신의 수승한 점을 믿지 않는다면 
下劣人也。기꺼이 스스로 하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我此門中。不論初機學。우리의 이 문중은 
초심자다 만학이다를 논하지 않고,
亦不問久參先達。또 오래 참구하고 먼저 요달하고를 묻지 않습니다.
若要箇靜。須是生死心破。만약 진실로 고요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생사심을 깨트려야 합니다.
不著做工夫。生死心破。공부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생사심을 깨트리면 
則自靜也。곧 스스로 고요해질 것이니
先聖所說寂靜方便。正此也。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적정의 방편이 
바로 이것인 것이요,
自是末世邪師輩。말세의 그릇된 스승들 스스로가 
不會先聖方便語耳。옛 성인들의 방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따름입니다.
左右若信得山僧及試向鬧處그대는 산승의 말이 믿어진다면 
시험삼아 소란한 곳에서
看狗子無佛性話。 '개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살펴 볼지언정 
未說悟不悟。깨닫고 깨닫지 못함을 말하지 마십시오.
正當方寸擾擾時。바로 마음이 어지러운 때를 당해서는 
謾提撕覺看。천천히 화두를 들어보십시오.
還覺靜也無。고요함이 느껴집니까?  
還覺得力也無。힘이 얻어지는 것이 느껴집니까?
若覺得力。便不須放捨。만약 힘이 얻어지는 것이 느껴지거든 
곧 모름지기 놓아버리지 말고
要靜坐時。但燒一炷香靜坐。고요히 앉으려 할 때는 
다만 향 하나 사루고 고요히 앉으십시오.
坐時不得令昏沈。앉아 있을 때에는 혼침하지도 말며, 
亦不得掉망상하지도 마십시오.
昏沈掉先聖所訶。혼침과 망상[掉]는 
옛 성인들이 꾸짖은 것들입니다.
靜坐時纔覺此兩種病現前。고요히 앉았을 때 
이 두가지 병이 나타나는 것이 느껴지면
但只狗子無佛性話。다만 '구자무불성'이라는 화두를 들게 되면 
兩種病不著用力排遣。이 두 가지 병은 애써 물리치려 하지 않아도 
當下怗怗地矣。당장에 편안해질 것입니다.
日久月深纔覺省力便是得力處也。일구월심하면 곧바로 힘이 덜어지는 것이 
곧 힘을 얻는 곳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亦不著做靜中工夫。또 고요한 가운데 굳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只這便是工夫也。다만 이것이 곧 공부인 것입니다.
李參政頃在泉南。初相見時。이참정은 잠시 천남(泉南)에서 처음 만났을 때
見山僧力排默照邪禪瞎人眼。산승이 묵조(照)의 그릇된 선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을 힘써 배척하는 것을 보고,
渠初不平。疑怒相半。그도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해 하며 
의구심과 분노가 반반이더니
驀聞山僧頌庭前柏樹子話。산승의 '뜰 앞의 잣나무'에 대한 게송을 듣고 
忽然打破漆桶。홀연히 칠통을 타파하여 
於一笑中千了百當。한번 웃는 가운데 백천 가지를 깨닫고서 
方信山僧開口見膽。비로소 산승이 입을 열면 마음을 드러내 보여 
無秋毫相欺。추호도 서로를 속이는 일이 없었으며, 
亦不是爭人我。또한 남이다 나다 다투지 않고 
便對山僧懺悔。곧 산승을 대하여 참회하였습니다.
此公現在彼。이 사람이 현재 그곳에 있으니 
請試問之。還是也無。한번 사실인지 아닌지 물어보십시요.
道謙上座已往福唐。도겸상좌가 이미 복당(福唐)으로 떠났지만
不識已到彼否。이미 그곳에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此子參禪喫辛苦更多。이 사람은 갖은 고생을 하며 오래 참선했고,
亦嘗十餘年入枯禪。또 과거 10여년 동안 고목선에 들어가서 
近年始得箇安樂處。근년에 비로소 안락처를 얻었습니다.
相見時試問渠。如何做工夫。만나거든 그에게 어떻게 공부할지 물어보십시오.
浪子偏憐客。그는 나그네 노릇을 한 적이 있어서 
나그네를 어여삐 여깁니다.
想必至誠吐露也。아마도 반드시 지극 정성으로 토로할 것입니다.
答李參政別紙(漢老)5.(12) 이참정(한로)에의 다른 서한
富樞密頃在三衢時。부추밀이 잠시 삼구(三衢)에 있을 때 
嘗有書來問道。편지로 물어온 적이 있어서  
因而打葛藤一上。갈등을 한 차례 때려 주었더니 
落草不少。떨어지는 풀잎이 적지 않았는데
爾滯在默照處。그래도 묵조선에 머물러 막혀있으니 
定是遭邪師정히 그릇된 스승을 만나 
引入鬼窟裏無疑。귀신 굴에 끌려 들어 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今又得書。이제 또 편지를 받아보니 
復執靜坐佳。其滯泥如此。다시 고요히 앉는 것이 좋다고 고집하는데
그가 이처럼 꽉 막혀 있으니 
如何參得徑山禪。어떻게 대혜선사의 간화선을 
참구할 수 있겠습니까? 
今次答渠書。이번에 재차 그에게 답장을 보내서 
又復縷縷葛藤。다시 누누히 시시비비하여 
不惜口業。痛與鏟除。구업을 아끼지 않고 
아프도록 깎아 없애주었는데 
又不知肯回頭轉腦。기꺼이 머리를 굴려가며 
於日用中看話頭否。일상에서 화두를 살피는지 모르겠습니다.
先聖云。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寧可破戒如須彌山。 차라리 수미산 같이 크게 파계를 할지언정
不可被邪師熏一邪念。그릇된 스승에게서 
단 하나의 그릇된 생각도 익히지 말라. 
如芥子許在情識中。겨자씨만큼이라도 정식(情識)에 머물면 
如油入麵永不可出。마치 기름이 밀가루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였으니
此公是也。이 사람이야말로 바로 그와 같습니다. 
如與之相見。만약 그 사람과 서로 만나거든
試取答渠底葛藤一觀。시험삼아 그에게 시시비비하여 답한 
편지를 얻어 한 번 보고서
因而作箇方便救取此人。그것으로써 방편을 삼아 
이 사람을 구제하십시오. 
四攝法中以同事攝最彊。사섭법 가운데 동사섭을 
가장 으뜸으로 여깁니다.
左右當大此法門。그대가 이러한 법문을 크게 열어서 
令其信入。그 사람을 믿어 들어가게 한다면
不唯省得山僧一半力。산승의 힘을 반쯤 덜어줄 뿐만 아니라 
亦使渠信得及。또 저 사람을 믿게 하여
肯離舊窟也。기꺼이 옛 굴속[묵조선]을 
떠나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答陳少卿(季任)6.(13) 진소경(陳少卿) 계임(季任)에의 답신 ①
承諭。편지를 받아보니 
欲留意此段大事因緣。이 일대사인연에 뜻을 두고자 하나  
根性極鈍。근성이 지극히 둔하다고 하셨는데
若果如此。當左右賀也。과연 그렇다면 
마땅히 그대를 위해 치하해야 합니다. 
今時士大夫。지금의 사대부들이  
多於此事不能百了千當대부분 이 일에서  
백 가지를 알고 천 가지를 감당하여  
直下透脫者。곧바로 투철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根性太利知見太多。단지 근성이 너무 영리하고 
지견이 너무 많아서
見宗師纔開口動舌。종사가 입을 열어 혀 움직이는 것만 봐도 
早一時會了也。벌써 한 번에 알아버리기 때문입니다.
以故返不如鈍根者。그 때문에 도리어 근기 둔한 사람이 
無許多惡知惡覺。나쁜 지각(知覺)을 허다히 함이 없이
驀地於一機一境上문득 하나의 기틀, 하나의 경계 위에서  
一言一句下撞發。한 마디 말, 한 구절에 
부딪혀서 깨닫는 것만 못한 것이라
便是達磨大師出頭來。문득 달마대사가 나타나서 
用盡百種神通。백 가지 신통을 다 부려봐도 
也奈何他不得。더 어찌해 볼 수 없을 것이니 
他無道理可障。다만 달리 막아 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利根者返被利根所障。영리한 사람은 도리어 
영리한 근성에 장애를 받아서
不能得地便折。地便破。빠아야 할 때 곧 쪼갤 수 없고  
터트려야 할 때 곧 부술 수 없으며, 
假饒於聰明知解上學得。설사 총명한 알음알이로 배워 얻더라도 
於自己本分事上。자기 본분의 일에는 
轉不得力。오히려 힘을 얻지 못합니다.
所以南泉和云。그런 까닭에 남전화상은 
近日禪師太多。"요즘에는 선사가 너무 많고, 
覓箇癡鈍人不可得。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구나." 하였고 
章敬和曰。장경화상은 
至理亡言。時人不悉。"지극한 이치는 말을 떠났으나 
요즘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彊習他事。以功能。굳이 다른 일을 익히며 
공부할만 한 것으로 여기고 
不知自性元非塵境。자성이란 원래 티끌의 경계가 아니라  
是箇微妙大解脫門。미묘한 대해탈문인 줄을 알지 못한다. 
所有鑑覺不染不礙。지니고 있는 감각(鑑覺)은 
물들지도 장애되지도 않아서 
如是光明未曾休廢。이와 같은 광명이 일찍이 그친 적이 없고  
曩劫至今固無變易。지난 겁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확고하여 변함 없는 것이 
猶如日輪遠近斯照。마치 해와 같아서
멀고 가까운 곳을 다 비추며  
雖及眾色。不與一切和合。비록 온갖 사물에 미치지만  
일체와 더불어 섞이지 않는다. 
靈燭妙明非假鍛鍊。신령스럽게 비추는 미묘한 밝음은 
단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건만 
不了故取於物象。그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사물의 형상을 취하는 것이라 
但如捏目妄起空華。다만 손가락으로 눈을 눌렀을 때  
헛꽃[空花]이 허망히 생기는 것과 같아서
徒自疲勞枉經劫數。한갓 스스로를 피로하게 하며 
오랜 세월을 잘못 보내게 될 것이다.
若能返照。無第二人。만약 또 다른 사람이 없는 줄을 
돌이켜 비춰볼 수 있다면 
措施不虧實相。일상의 행동거지가 
실상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左右自言根鈍。그대는 스스로 근기가 둔하다 말씀하시니   
試如此返照看。시험삼아 그와 같이 반조하여 살펴보십시오.
能知鈍者還鈍也無。둔한 줄 아는 것이 도리어 둔하지는 않습니까?
若不回光返照。만약 그대가 회광반조하지 않고 
只守鈍根更生煩惱。단지 근기가 둔하다는 것만 고수하여
다시 번뇌를 일으킨다면 
乃是向幻妄上重增幻妄。마침내 이것은 허깨비 위에 
거듭 허깨비를 더하는 것이며,
空華上更添空華也。헛꽃 위에 다시 헛꽃을 더하는 것입니다.
但相聽다만 들어보십시오.
能知根性鈍者。決定不鈍。근성이 둔한 줄 아는 것은 
결정코 둔하지 않은 것이니 
雖不得守著這箇鈍底。비록 이 둔하다는 것을 고수하지 않더라도  
然亦不得捨卻這箇鈍底參。그러나 또한 이 둔하다는 것을 
버리고 참구할 것도 아닙니다.
取捨利鈍在人不在心。취하고 버리고 영리하고 둔함은 
사람에게 있고 마음에 있지 않아서 
此心與三世諸佛一體無二。이 마음은 삼세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한 몸으로 둘이 없습니다.
若有二則法不平等矣。만약 둘이 있다면 법이 평등치 못한 것이요,
傳心但虛妄。가르침을 받거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일이 될 것이며,
覓實轉見參差。진실을 구하고 찾는 것이 
더욱 들쑥날쑥함을 보일 것입니다.
但知得一體無二之心。다만 한 몸으로 둘이 없는 마음은 
決定不在利鈍取捨之間。결정코 취하고 버리고 영리하고 둔한 데 
있지 않음을 안다면 
則便當見月亡指당장에 달을 보아 손가락을 잊을 것이며, 
直下一刀兩段。곧바로 한칼에 두 동강을 낼 것입니다.
若更遲疑思前算後。만약 다시 의심하고 주저하며 
앞 일을 생각하고 뒷 일을 헤아린다면
則乃是空拳指上生實解。빈주먹 안에 실물이 있다는 견해를 내는 것이며,
根境法中虛捏怪。육근과 육경의 법 가운데 
헛되이 눈을 눌러 헛꽃을 보는 것이며,
於陰界中妄自囚執오음과 십팔계 가운데 
부질없이 스스로 갇히는 것이라 
無有了時。마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近年以來有一種邪師。근래에 들어와서 
한 종류의 그릇된 스승들이
說默照禪。묵조선을 설하여 
人十二時中是事莫管。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하루 종일 아무런 일에도 간여치 말고 
休去歇云。不得做聲。쉬고 또 쉬되 그렇다는 소리도 하지 마라.
恐落今時。금시(今時)에 떨어질까 두렵다."고 합니다.
往往士大夫。가끔 사대부들이 
聰明利根所使者。총명하고 영리함에 이끌리는 것은 
多是厭惡鬧處。대개 소란한 곳을 싫어하는 것이지만  
乍被邪師輩指令靜坐。잠시 그릇된 스승들에게 
조용히 앉도록 지도를 받고서 
卻見省力。便以是。도리어 힘이 덜 드는 것을 경험하면 
곧 그것을 옳다고 여겨   
更不求妙悟。더 이상의 미묘한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 
只以默然極則。다만 묵묵히 있는 것으로 극칙을 삼으니
某不惜口業。力救此弊。나는 구업을 아끼지 않고  
이러한 폐단을 힘써 구제하려 하였더니
今稍有知非者。요즘에 와서 차츰 
그릇된 줄 아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願公只向疑情不破處參。바라건대 공께서는 다만 
의정을 파하지 못한 곳을 향해 참구하여
行住坐臥不得放捨。행주좌와에 놓아버리지 마십시요. 
僧問趙州。한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狗子還有佛性也無。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州云無。조주 화상은 "무(無)"라고 하였는데, 
這一字子。이 한 글자는  
便是箇破生死疑心底刀子也。바로 생사의 의심을 깨트리는 칼입니다. 
這刀子杷柄。이 칼의 칼자루는 
只在當人手中。다만 그 사람의 수중에 있어서
別人下手不得。다른 사람은 손대게 할 수 없고
須是自家下手始得。모름지기 자신의 손을 대야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若捨得性命。方肯自下手。만약 천성과 생명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비로소 스스로 손 댈 수 있겠으나 
若捨性命不得。만약 천성과 생명을 버리지 못한다면 
且只管在疑不破處崖將去。다만 의심을 깨트리지 못한 곳에서 
벼랑으로 몰아가십시요. 
驀然自肯捨命一下便了。줄곧 그리하면 저절로 생명을 버려 
단번에 마쳐질 것입니다.
那時方信靜時便是鬧時底。그제서야 비로소 
조용한 때가 곧 소란한 때이며 
鬧時便是靜時底。소란한 때가 곧 조용한 때이며, 
語時便是默時底。말할 때가 곧 묵묵할 때이며 
默時便是語時底。묵묵할 때가 곧 말할 때임을 믿게 될 것이라
不著問人。다른 사람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亦自然不受邪師胡說亂道也。자연히 그릇된 스승이 어지러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至禱至禱。지극히 빌고 지극히 빕니다. 
昔朱世英。옛날에 주세영이라는 사람이 
嘗以書問雲菴淨和云。일찌기 편지로 
운암진정(雲菴眞淨)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佛法至妙。日用如何用心。"불법이 지극히 미묘한데 
일상에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며
如何體究。望慈悲指示。어떻게 몸소 참구해야 합니까? 
바라건대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淨曰。진정 화상이 말했습니다. 
佛法至妙無二"불법은 지극히 미묘하여 둘이 없거니와 
但未至於妙。則互有長短。다만 아직 미묘한 데에 이르지 못했다면 
서로 장단이 있겠으나 
苟至於妙。則悟心之人。진실로 미묘한 데에 이르렀다면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如實知自心究竟本來成佛。자신의 마음이 구경이요 본래 성불이며
如實自在。여실한 자재함이요 
如實安樂如實解脫。여실한 안락이며, 여실한 해탈이며
如實淨。여실한 청정함인 줄을 여실히 알아서 
而日用唯用自心。일상생활 속에서 오직 자기 마음을 써서 
自心變化把得便用。자기 마음의 변화를 파악하여 문득 쓸지언정
莫問是之與非。옳고 그름을 묻지 말라.
擬心思量早不是也。의심하여 헤아리면 벌써 옳지 않거니와 
不擬心一一天의심하지 않으면 낱낱이 천진(天眞)이요 
一一明妙。낱낱이 묘명(明妙)이며 
一一如蓮華不著水。낱낱이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아서
淨超於彼。마음 청정하기가 그것을 능가할 것이다. 
所以迷自心故作眾生。그런 까닭에 자기 마음이 미혹하니 중생이 되고 
悟自心故成佛。자기 마음을 깨달았기에 부처가 되는 것이다.
而眾生即佛。佛即眾生。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중생이건만  
由迷悟故有彼此也。미혹하고 깨닫고에 따라서 피차가 있는 것이다. 
如今學道人。요즘에 도 배우는 사람들이 
多不信自心。不悟自心。대개 자기 마음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不得自心明妙受用。자기 마음의 밝고 미묘함을 받아 쓰지 못하고, 
不得自心安樂解脫。자기 마음의 안락한 해탈을 얻지 못하고,
心外妄有禪道。마음 밖에 망령되게 선도(禪道)가 있다 하고,
妄立奇特。妄生取捨。망령되이 기특한 것을 세우고, 
망령되이 취하고 버리니, 
縱修行落外道二乘禪寂斷見境界。비록 수행하더라도 외도나 이승의 
선적(禪寂)과 단견(斷見)의 경계에 떨어지리니 
所謂修行恐落斷常坑。소위 '수행이 단견과 상견[斷常]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其斷見者。그 단견이라는 것은 
斷滅自心本妙明性。자기 마음 본래의 묘명(妙明)한 성품을 
물리쳐 끊어 없애고
一向心外著空滯禪寂。한결같이 마음이 밖으로 텅 빈 데 두고 
선적에 머무는 것이요, 
常見者。상견이라는 것은 
不悟一切法空。일체 법이 공함을 깨닫지 못하고 
執著世間諸有法。세간의 온갖 유위법에 집착하여 
究竟也。그것을 구경법으로 여기는 것이다.
邪師輩。그릇된 스승의 무리가 
士大夫攝心靜坐。사대부들에게 가르치기를,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조용히 앉아서 
事事莫管。休去歇去。모든 일에 간여하지 말고 
쉬고 또 쉬라 하지만
豈不是將心休心이것이 어찌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그치는 것이나
將心歇心將心用心。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쉬는 것이나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겠느냐?
若如此修行。만약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如何不落外道二乘禪寂斷見境界。어찌 외도와 이승들의 
선적과 단견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如何顯得自心明妙受用어떻게 자기 마음의 묘명(明妙)을 수용하고 
究竟安樂如實淨解脫變化之妙。안락에 구경하여 여실하고 청정한 
해탈 변화의 묘용을 드러내겠느냐?
須是當人自見得自悟得。모름지기 본인 스스로 보아서 얻고 
스스로 깨달아서 얻어야만 
自然不被古人言句轉。자연히 고인들의 언구 놀림에 휩쓸리지 않고
而能轉得古人言句。고인들의 언구를 굴릴 수 있을 것이다. 
淨摩尼寶珠置泥潦之中。마치 청정한 마니보주는 진흙 속에 둔 채로
經百千歲亦不能染백천 년이 지나더라도 오염시킬 수 없는 것이 . 
以本體自淨故。본체가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이듯이 
此心亦然。이 마음도 또한 그와 같아서
正迷時塵勞所惑。미혹한 그 때에는 번뇌 망상에 미혹하게 되지만 
而此心體本不曾惑。이 마음의 체성은 본래 미혹된 적이 없으니 
所謂如蓮華不著水也。이른바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 
忽若悟得此心本來成佛。홀연히 자기 마음이 본래 부처인 줄을 깨달으면 
究竟自在如實安樂。구경에 자재하여 여실히 안락하고 
種種妙用亦不從外來。갖가지 묘용이 또한 밖에서 오지도 않을 것이니
本自具足故。본래 스스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였고,
黃面老子曰。부처님께서는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정해진 법이 없고 
亦無有定法如來可說。또 여래가 설할만한 
정해진 법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若確定本體實有恁事。본체에 실로 이러한 일이 있다고 확정한다면
又卻不是也。또 도리어 옳지 않습니다.
事不獲已。因迷悟取捨故。그 일이 부득이 미혹과 깨달음, 
취함과 버림에 기인하기 때문에
說道理有若干。그 도리를 약간 설명했지만 
未至於妙者。方便語耳。아직 묘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방편으로 말한 것일 뿐, 
其實本體亦無若干。그 진실한 본체는 약간도 없습니다. 
請公只恁用心。청컨대 공은 다만 이렇게 마음을 써서 
日用二六時中。일상의 열두 때 중에 
不得執生死佛道是有。생사와 불도에 집착하여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不得撥生死佛道歸無。생사와 불도를 도려내서 
없는 것으로 여기지도 마시고,
但只看狗子還有佛性也無。다만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에
趙州云無。조주 화상이 답한 무(無)를 잘 살피되,  
切不可向意根下卜度。절대로 뜻으로 헤아리려 하지 말고
不可向言語上作活計。말 위에서 살 궁리[活計]를 짓지도 말고
又不得向開口處承當。또 입 열린 곳을 받아들여 알려 하지도 말고 
又不得向擊石火閃電光處會。또 돌끼리 부딪쳐서 불꽃 튀고  
번개불이 번쩍이는 곳을 알려 하지도 마십시오.
狗子還有佛性也無。無。개가 불성이 있습니까?에 "무"라고 한 것을  
但只如此參。다만 이처럼 참구할지언정 
亦不得將心待悟待休歇。마음으로 깨달아지기를 기대하거나 
쉬어지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若將心待悟待休歇。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대하거나 
쉬어지기를 기대한다면 
則轉沒交涉矣。점점 더 멀어질 것입니다.
又。(14) 진소경에의 답신 ②
示諭。편지에서 말씀하시기를, 
自得山野向來書之後。 '산승의 편지를 받은 후부터
每遇鬧中避不得處常自點檢。날마다 피할 수 없는 소란함 속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 보니 
而未有著力工夫。아직 공부에 힘 붙이지 못하고 있다.' 하셨는데 
只這避不得處。다만 이 피할 수 없는 곳이 
便是工夫了也。곧 공부를 마칠 곳입니다.
若更著力點檢。則又卻遠矣。만약 다시 힘을 붙여 점검한다면 
또 도리어 멀어질 것입니다. 
昔魏府老華嚴云。옛날에 위부(魏府)의 
화엄(華嚴) 노화상이 말씀하기를,
佛法在日用處。"불법은 일상생활 하는 곳, 
行住坐臥處。喫茶喫飯處。행주좌와 하는 곳과
차 마시고 밥 먹는 곳, 
語言相問處。所作所處。말로 서로 묻는 곳과
작위(作爲) 하는 곳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心動念。又卻不是也。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이면 
또 도리어 옳지 않을 것이니
正當避不得處。바로 피할 수 없는 곳을 당하여 
切忌起心動念作點檢想。절대로 마음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서 
점검하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祖師云。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分別不生。虛明自照。"분별을 내지 않는다면 
허공같이 밝아서 저절로 비춘다." 하셨고,
又龐居士云。또 방거사께서는 
日用事無別。唯吾自偶諧。"일상의 일이 별다를 것이 없어서  
오직 나는 스스로를 짝 삼아 어울린다. 
頭頭非取捨。處處勿張乖。사람사람을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곳곳에서 어긋난 일을 벌리지 않거늘
朱紫誰號。丘山點埃。붉은 빛이다 자주 빛이다 누가 이름하는가? 
이 산에는 한 점 티끌도 없어서
神通妙用。運水及搬柴。신통과 묘용이 물 길러 나르고 
땔감 나르는 일이로다." 하셨으며,
又先聖云。또 예전의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但有心分別計較。"다만 마음에 분별과 계교(計較)가 있다면
自心見量者。悉皆是夢。자기 마음으로 나타내는 모든 것이 
실로 꿈이다." 하셨으니,
切記取。꼭 기억하십시요.
避不得時。不得更擬心。피할 수 없을 때는 
다시 마음으로 헤아리지 마십시오.
不擬心時一切現成。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을 때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亦不用理會利。재빨리 이치에 부합하려 하지도 말고
亦不用理會鈍。또 둔하게 하려 하지도 말아서 
總不干他利鈍之事。달리 재빠르거나 둔하거나에 간여하지 말고,
亦不干他靜亂之事。또한 조용하거나 소란하거나에도 
간여하지 마십시오.
正當避不得時。바로 피할 수 없는 일을 당하였을 때
忽然打失布袋。홀연히 마음을 송두리채 놓아버리면 
不覺拊掌大笑矣。저도 몰래 박장대소하게 될 것이니,
記取記取。기억하고 또 기억하십시오. 
此事若用一毫毛工夫取證。이 일을 털끝만큼이라도 공부하여 
증득하려 한다면
則如人以手撮摩虛空。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만지는 것과 같아서 
只益自勞耳。다만 스스로 피로만 더할 뿐입니다. 
應接時但應接。응접할 때는 다만 응접하고,
要得靜坐但靜坐。조용히 앉으려거든 다만 조용히 앉되
坐時不得執著坐底究竟。앉을 때는 앉는 일에 집착하여 
구경으로 삼지 마십시오.
今時邪師輩。요즘 그릇된 스승의 무리가 
多以默照靜坐究竟法。대부분 묵묵히 비추면서 
조용히 앉는 것으로써 구경법을 삼고 
疑誤後昆。후학들을 미혹되게 그르치고 있으니
山野不怕結怨。산승이 원수 맺기를 두려워 하지 않고  
力詆之。以報佛恩。힘써 꾸짖으므로써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救末法之弊也。말법의 병폐를 구제하려는 것입니다.
  
答趙待制(道夫)7.(15) 조대제(趙待制) 도부(道夫)에의 답서
示諭。一一備悉。보내온 편지를 낱낱이 잘 살펴보았습니다.
佛言。有心者皆得作佛。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있는 것은 
모두 부처가 된다." 하셨거니와 
此心非世間塵勞妄想心。이 마음은 세간의 번뇌 망상심이 아니요 
謂發無上大菩提心。소위 더없이 큰 보리를 일으키는 마음인지라  
若有是心。無不成佛者。만약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부처를 이루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士大夫學道。多自作障難。도를 배우는 사대부들이 
흔히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   
無決定信故也。결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佛又言。信道元功德母。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며,
長養一切諸善法。일체의 모든 선법을 길러내고 
斷除疑網出愛流。의혹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애욕의 물줄기에서 벗어나게 하여
開示涅槃無上道。열반이라는 더없는 도를 열어 보인다." 하시고, 
又云。信能增長智功德。또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능히 지혜와 공덕을 길러내고
信能必到如來地。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示諭。편지에서 말하기를,
鈍根未能悟徹。 '근기가 둔하여 깨달음이 명철하지 못하니
且種佛種子於心田。마음 밭에 부처종자나 심겠다.'고 하셨는데
此語雖淺近。然亦深遠。이 말이 비록 보잘것 없는 것 같지만 
또한 심원합니다.
但辦肯心。必不相다만 마음을 긍정적으로 다스리면  
반드시 서로를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今時學道之士。요즈음 도 배우는 선비들은 
往往緩處卻急。急處卻放緩。왕왕 늦춰야 할 것은 급하게 하고 
급하게 할 것은 도리어 늦추고 있습니다. 
龐公云。방거사가 말씀하시기를,
一朝蛇入布褌襠。"하루 아침에 뱀이 베잠방이 속으로 들어오면
試問宗師甚時節。시험삼아 종사에게
이것이 어떤 시절인지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昨日事今日有記不得者。어제의 일도 오늘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데  
況隔陰事。豈容無忘失耶。하물며 다른 생의 일을 
어찌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決欲今生打徹。결단코 금생에 명철히 하려거든 
不疑佛不疑祖。부처도 의심하지 말고 조사도 의심하지 말며
不疑生不疑死。생(生)도 의심하지 말고 사(死)도 의심하지 말아서
須有決定信具決定志。모름지기 결정한 믿음과 결정한 뜻을 갖추고 
念念如救頭然。순간순간 타는 머리에 불 끄듯이 하십시오.
如此做將去。이와 같이 가져가도 
打未徹時方始可說根鈍耳。명철해지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근기가 둔하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若當下便自謂。만약 당장에 스스로를 말하되 
我根鈍不能今生打得徹。"나는 근기가 둔해서 
금생에는 명철히 깨닫지 못할 것이니 
且種佛種結緣。부처의 종자나 심어서 인연을 맺겠다."고 한다면
乃是不行欲到。無有是處。이것은 가지도 않고 도착하려는 것이라 
옳지 못합니다. 
杲每信此道者說。나는 매번 이 도를 믿는 이들을 위해 
漸覺得日用二六時中省力處。"하루 열두 때 가운데 힘이 덜 드는 곳을 
점점 깨달아 가는 것이 
便是學佛得力處也。곧 불법을 배우는 데 힘을 얻는 곳이다."고 말합니다.
自家得力處。他人知不得。자신이 힘을 얻은 것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亦拈出與人看不得。집어내서 사람들에게 살피게 할 수도 없습니다.
盧行者謂道明上座曰。노(盧)행자가 도명(道明)상좌에게 말하기를,
汝若返照自己本來面目。"그대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돌이켜 비춰보면 
密意盡在汝邊是也。은밀한 뜻이 다 그대 주변에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密意者便是日用得力處也。은밀한 뜻이란 곧 일상에서 힘을 얻는 곳이며 
得力處。便是省力處也。힘을 얻는 곳은 곧 힘이 덜 드는 곳입니다.
世間塵勞事。세간의 번뇌 망상의 일이  
拈一放一。無窮無盡。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고 하여
무궁무진하건만 
四威儀內。未嘗相捨。행주좌와 안에서 일찍이 버리지 못하는 것은
無始時來與之結得緣深故也。무시이래로 더불어 맺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요,
般若智慧無始時來반야지혜는 무시이래로 
與之結得緣淺故也。더불어 맺은 인연이 얕기 때문입니다.
乍聞知識說著。선지식의 말씀을 잠깐 듣고서 
覺得一似難會。깨달음을 얻기가 하나같이 어렵다지만
若是無始時來塵勞緣淺。만약 무시이래로 번뇌 망상의 인연이 얕고
般若緣深者。有甚難會處。반야의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면 
어찌 알기 어려운 곳이 있겠습니까?
但深處放淺。淺處放深。다만 깊은 곳은 얕게 하고 얕은 곳은 깊게 하며
生處放熟。熟處放生。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하십시오.
纔覺思量塵勞事時。번뇌 망상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막 깨달았을 때에
不用著力排遣。힘을 써서 물리쳐 보내지 말고,
只就思量處。다만 생각하고 있는 곳에 나아가 
輕輕撥轉話頭。가뿐가뿐하게 화두를 굴리면
省無限力。亦得無限力。무한히 힘을 덜 것이며 
또한 무한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請公只如此崖將去。바라건대 공은 다만 이렇게 
벼랑으로 가져가십시오.
莫存心等悟。마음이 깨달음과 같아지는 데에 있지 않으면 
忽地自悟去。문득 저절로 깨달아 갈 것입니다. 
參政公想日日相會。이참정을 매일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除圍碁外。바둑을 두는 일 외에 
還曾與說著這般事否。이러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까? 
若只圍碁。만약 바둑만 두고 
不曾說著這般事。이러한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면 
只就黑白未分處。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곳에서 
掀了盤撒了子。바둑판을 번쩍들어 바둑알을 흩어버리고
卻問他索取那一著。어떤 한 수를 모색할 것인지 물어보십시요. 
若索不得。만약 모색하지 못하면 
箇鈍根漢。이는 참으로 근기가 둔한 사람일 것입니다.
姑置是事。이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答許司理(壽源)8.(16) 허사리(許司理) 수원(壽源)에의 답서 ①
黃面老子曰。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道元功德母。"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며
長養一切諸善法。일체 모든 선법을 길러낸다." 하시고,
又云。信能增長智功德。또 "믿음은 능히 지혜와 공덕을 증장시키고
信能必到如來地。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하셨습니다. 
欲行千里一步初。천 리를 가려거든 한 걸음이 처음이 되고 
十地菩薩斷障證法門。십지보살이 장애를 끊고 법문을 증득하는 것도 
初從十信而入。처음에는 열 가지 믿음을 좇아 들어가고  
然後登法雲地。而成正覺。그런 뒤에 법운지(法雲地)에 올라 정각을 이루며,
初歡喜地因信而生歡喜故也。처음의 환희지(歡喜地)도 
믿음에 기인하여 환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若決定豎起脊梁骨。만약 결정코 척추를 곧게 세워서 
要做世出世間沒量漢。세간 출세간에 다 마친 사람이 되려거든 
須是箇生鐵鑄就底方了得。모름지기 무쇠로 부어 만든 사람이라야 
마쳐질 수 있겠으나
若半明半暗半信半不信。만약 반은 밝고 반은 어둡거나,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면 
決定了不得。결정코 마쳐지지 못할 것입니다. 
此事無人情。不可傳授。이 일은 인정이 없어서 전해 줄 수 없고 
須是自家省發始有趣向分。모름지기 스스로 성찰해야만 
비로소 나아갈만 한 것이 있겠거니와 
若取他人口頭辦。만약 다른 사람의 말머리를 취해 판단한다면
永劫無有歇時。영겁토록 쉬어질 때가 없을 것입니다.
千萬十二時中。莫令空過。부디 열두 때 가운데 헛되이 보내지 마시고  
逐日起來應用處。날마다 일어나 오는 응용처(應用處)의 
圓陀陀地與釋迦達磨無少異원만하기 한량없는 지경이 석가모니불이나 
달마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으련만   
自是當人見不徹透不過。자기 자신이 투철히 보거나 뛰어넘지 못하고
全身跳在聲色裏。온 몸으로 소리나 형상 속에 뛰어 들어가서  
卻向裏許求出頭。도리어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를 구하니, 
轉沒交涉矣。점점 더 교섭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此事亦不在久參知識이 일도 역시 선지식을 오래 참례하고 
遍歷叢林而後了得。총림을 두루 다닌 후에야 
마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而今有多少在叢林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총림에서  
頭白齒黃了不得底。머리가 희어지고 이빨은 누레지도록 있어도
마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又有多少乍入叢林또 많은 사람들이 총림에 들어오자마자 
一撥便轉千了百當底。한 번 빚어 주면 곧바로 굴려서 
천 가지를 알고 백 가지를 감당하기도 하니 
發心有先後。悟時無先後。발심에는 선후가 있지만 
마음을 깨닫는 데는 선후가 없습니다. 
昔李文和都尉參石門慈照。옛날에 이문화(李文和) 도위가 
석문자조(石門慈照) 선사를 참례하여  
一句下承當。便千了百當。말 한마디에 알아차리고 
곧 천 가지를 알고 백 가지를 감당해내고서
嘗有偈呈慈照云。시험삼아 한 게송을 자조 선사에게 바쳤습니다.
學道須是鐵漢。「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무쇠 같은 사람이라야 하리니
著手心頭便判。마음 먹자마자 곧 결판을 내서 
直取無上菩提。곧바로 무상보리를 취하고  
一切是非莫管。일체의 시비에 간여치 말 것이로다.」
但從下崖將去死便休。다만 당장에 벼랑 끝으로 가져가서 
죽어야 쉬어질 것이니 
不要念後思前。뒷 일을 생각하거나 앞 일을 헤아리지 마시고
亦不要生煩惱。또 번뇌도 일으키지 마십시요. 
煩惱則障道也。번뇌는 도를 장애합니다.
祝祝。빌고 또 빕니다.
又。(17) 허사리 수원에의 답서 ②
左右具正信立正志。그대가 바른 믿음을 갖추고 
바른 뜻을 세웠으니 
此乃成佛作祖基本也。이것이 마침내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입니다.
山野因以湛然名公道號。산승이 '담연(湛然)'으로 
공의 도호(道號)로 명명하거니와
如水之湛然不動。마치 물의 담연함처럼 흔들리지 않으면 
則虛明自照。不勞心力。허공의 맑음이 저절로 비쳐서 
수고하여 마음의 힘을 쓰지 않더라도
世間出世間法。세간 출세간의 법이 
不離湛然。無纖毫透漏。담연함에서 벗어나지 않고
털끝만큼도 번뇌가 없을 것이니,
只以此印。於一切處印定。다만 이 도장으로 
일체처에 도장을 찍기만 하면
無是無不是。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고,
一一解脫一一明妙一一實頭。낱낱이 해탈이요, 낱낱이 밝고 미묘하며, 
낱낱이 진실의 시작일 것이라
用時亦湛然。작용할 때도 또한 담연하고
不用時亦湛然。작용하지 않을 때도 담연할 것입니다.
祖師云。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但有心分別計較。"단지 마음으로 분별하고 계교하기만 하면
自心見量者。悉皆是夢。자기 마음으로 나타낸 것이 모두 꿈이며
若心識寂滅無一動念處。만약 심식이 적멸하여 
움직이는 염처(念處)가 하나도 없으면
是名正覺。이것을 정각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正。깨달음이 기왕 바르다면 
則於日用二六時中。일상의 열두 때 가운데 
見色聞聲。嗅香了味。형상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향기를 맡고 맛을 보며,
覺觸知法。감촉을 느끼고 법을 알며,
行住坐臥。語默動靜。행주좌와 어묵동정에 
無不湛然。담연치 못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亦自不作倒想。또한 스스로 전도된 생각을 짓지 않아서 
有想無想悉皆淨。생각이 있거나 생각이 없거나 간에
모두가 다 청정할 것이며,
淨。기왕에 청정해지면 
動時顯湛然之用。움직일 때는 담연한 작용을 드러내고
不動時歸湛然之體。움직이지 않을 때는 
담연한 본체로 돌아갈 것입니다. 
體用雖殊。而湛然則一也。본체와 작용이 비록 다르지만 
담연하기는 한 가지라서 
如析栴檀片片皆栴檀。마치 전단나무는 쪼개도 조각조각이 
다 전단나무인 것과 같습니다.
今時有一種杜撰漢。요즘에 한 종류의 엉터리 같은 사람들은
自己跟下不實。자기 발 밑의 문제도 부실하면서 
只管人攝心靜坐。다른 사람들에게 간여하여 가르치기를,
"마음을 거두고 고요히 앉아서 
氣息。기식(氣息)을 끊어지게 하라."고 하니,
此輩名為真可憐愍。이러한 무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라 할 것입니다.
請公只恁做工夫。청컨대 공은 그렇게만 공부하십시오.
山野雖然如此指示公。산승이 비록 이와 같이 공에게 지시하지만
不得已耳。참으로 부득이해서 일 뿐입니다.
若實有恁做工夫底事。만약 진실로 그렇게 공부할 일이 있다면
即是染公矣。곧 공을 오염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此心無有實體。이 마음은 실체가 없거늘 
如何硬收攝得住。어떻게 억지로 거두어서 머물게 할 수 있으며,
擬收攝向甚處安著。거두어 들여서 어느 곳에 편히 두겠습니까?
無安著處。則無時無節。기왕 둘 곳이 없다면 때도 절기도 없고 
無古無今。無凡無聖。예도 지금도 없으며, 범부도 성인도 없고, 
無得無失。無靜無亂。얻음도 잃음도 없으며
고요함도 소란함도 없고 
無生無死。생도 사도 없을 것입니다. 
亦無湛然之名。또한 담연이라는 이름도 없고 
亦無湛然之體。담연이라는 본체도 없으며
亦無湛然之用。또한 담연의 작용도 없고
亦無恁說湛然者。이렇게 담연을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亦無恁受湛然說者。이렇게 담연이라는 말하는 것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若如是見得徹去。만약 이렇게 보는 데에 명철해지면 
徑山亦不虛作此號。경산(徑山)이라는 이 도호도 
헛되게 지은 것이 아니고
左右亦不虛受此號。그대도 또한 이 도호를 
헛되게 받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如何如何。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