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慧普覺禪師書(書狀)

대혜보각선사서 제 27권 [서장(書狀) ③]

碧雲 2016. 5. 19. 13:35
大慧普覺禪師書 卷第二十七대혜보각선사서 (서장) 제 27권
宋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송나라 경산 능인선원 주지법통 
慧日禪師臣蘊聞 上進혜일선사 온문(普慈蘊聞)이 모아 올림 
答劉寶學(脩)18. 유보학(劉寶學) 언수(脩)에의 답서
即日烝溽。요즘에 찌는 듯이 무더운데 
不審燕處悠然。편안한 중에 유유하고 
放曠自如。거리낌 없이 태연하여  
無諸魔撓否。모든 마(魔)에 시달리지는 않으십니까?
日用四威儀內。일상의 행주좌와 속에서
與狗子無佛性話一如否。 '개는 불성이 없다.'라는 화두와 
하나가 됩니까?
於動靜二邊能不分別否。동(動)과 정(靜) 양변을 
분별하지는 않습니까?
夢與覺合否。꿈을 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같습니까?
理與事會否。이치와 현실이 하나가 됩니까?
心與境皆如否。마음과 경계가 모두 한결같습니까? 
老龐云。방 거사가 말하기를,
心如境亦如。 '마음이 여여하면 경계도 여여해서 
無實亦無虛。실다움도 없고 또한 허망함도 없으며
有亦不管。無亦不拘。있음에도 간여하지 않고 
없음에도 구속되지 않으면
不是聖賢。了事凡夫。이 사람은 성현이 아니라 
일을 마친 범부다.'고 했습니다.
箇作得箇了事凡夫。만약 진실로 
할 일을 다 마친 범부가 되었다면
釋迦達磨是甚석가와 달마는 무엇이겠습니까? 
泥團土塊。진흙이나 흙덩어리일 것입니다.
三乘十二分是甚삼승십이분교는 무엇이겠습니까?
熱碗鳴聲。뜨거운 사발에 물 부을 때 
나는 소리와 같을 것입니다. 
於此箇門中。공이 기왕 이 문중에서 
自信不疑。不是小事。스스로 믿어서 의심이 없으니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要須生處放熟。요컨대 생소한 것은 익숙하게 하고 
熟處放生。익숙한 것은 생소하게 해야
始與此事少分相應耳。이 일에 조금이나마 상응할 것입니다.
往往士大夫。가끔 사대부들이 
多於不意中。대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서는 
得箇瞥地處。공부에 잠시 소득이 있다가 
卻於如意中打失了。도리어 뜻대로 되는 가운데서는
오히려 공부를 잃어버리고 있으니 
不可不使公知。공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在如意中。뜻대로 되는 가운데 있더라도 
須時時以不如意中時節在念。때때로 뜻대로 되지 않던 시절을
꼭 염두에 두어서 
切不可暫忘也。절대 잠시도 잊지 마십시오.
但得本莫愁末。다만 근본을 얻고자 할지언정 
지말을 걱정하지 말 것이며,
但知作佛。다만 부처가 되기를 알고자 할지언정 
莫愁佛不解語。부처가 말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這一著子。得易守難。이 한 물건은 얻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어려우니
切不可忽。절대로 소홀히 하지 마시고 
頭正尾正。모름지기 시작과 끝을 바르게 해서 
擴而充之。넓히고 충만히 한 
然後推己之餘以及物。연후에 자기 공부에 여유가 생기면   
그로써 타에 미치게 하십시오. 
左右所得。不滯在一隅。그대가 얻은 바는 
이미 한쪽 모퉁이에 붙들려 있지 않습니다.
想於日用中。생각으로 일상 속에서 
不著起心管帶。마음을 일으켜 붙잡으려 하거나 
枯心忘懷也。고목 같은 마음으로 마음을 잊으려 하는 데에
집착하지 마십시요.
近年已來禪道佛法衰弊之甚。근년이래로 선도(禪道) 불법의  
병폐가 심해져서, 
有般杜撰長老。어떤 얼빠진 장로는 
根本自無所悟。근본이 스스로 깨달은 바도 없고
業識茫茫無本可據。업식은 망망하여 
거론할 만한 바탕도 없으며,
無實頭伎倆。실로 내밀 기량도 없으면서 
收攝學者。배우는 이들을 끌어들여서 
一切人如渠相似。모든 사람들을 가르쳐서 저들처럼 
黑漆漆地緊閉卻眼。깜깜한 자리에서 눈을 꼭 감은 채로  
喚作默而常照。묵묵히 항상 비추라고 합니다.
沖被此輩壞了。언충(彦沖)이 이러한 무리에 빠졌다니,
苦哉苦哉。괴롭고 괴롭습니다.
這箇話。이런 말도 
若不是左右悟得狗子無佛性。그대가 '구자 무불성' 화두를 
깨닫지 못했다면  
徑山亦無說處千萬下面皮。나 또한 말할 수 없었을 터이니 
부디 천만 번 안면을 무시하고 
痛與手段救取這箇人。모진 수단을 써서 그 사람을 구하십시오.
至禱至禱。지극히 빌고 또 빕니다. 
然有一事。亦不可不知。그러나 한 가지 일은 모르시면 안됩니다.
此公淨自居。이 사람은 청정하게 살아왔으니
世味澹薄。積有年矣。세상 맛을 잊은 지 여러 해 되었는지라
定執此奇特。필시 이것을 집착하여 
기특함으로 삼을 것입니다.
若欲救之。만약 그 사람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當與之同事마땅히 그와 함께 일을 하며
令其歡喜心不生疑。그를 기쁘게 하고 
마음에 의심을 갖지 않게 해야만
庶幾信得及。믿음을 얻는 계기가 되어 
肯轉頭來。수긍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淨名所謂先以欲鉤牽。  정명 거사가 말씀하신 바,
 '먼저 바라는 것으로 끌어내고, 
後令入佛智。是也。그 후에 부처님 지혜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黃面老子云。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觀法先後以智分別。 '법의 선후를 관찰하여 지혜로 분별하고, 
是非審定不違法印。옳고 그름을 살펴서 법인을 거스르지 말며, 
次第建立無邊行門。차례대로 그지없는 수행문을 세워서 
令諸眾生斷一切疑。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의혹을 끊게 하라.' 하셨으니, 
此乃物作則。萬世楷模也。이것이 마침내 중생을 위해 지으신 궤칙이라 
만세의 본보기일 터인데  
況此公根性與左右迥不同。하물며 그 사람은 근성이 그대와 현저히 달라서
生天定在靈運前。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혼백이 떠나기 전에 있고  
成佛定在靈運後者也。성불하는 것은 혼백이 떠난 뒤에 있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此公決定不可以智慧攝。이 사람은 결정코 지혜로 포섭할 수 없고 
當隨所好攝。좋아하는 것으로 포섭해야 할 것입니다.
以日月磨之。날마다 달마다 노력하면 
恐自知非。스스로 잘못을 알고 두려워서 
忽然肯捨。亦不可定。홀연히 버리게 될지 단정할 수 없으나
若肯轉頭來。만약 방향을 돌려 온다면 
卻是箇有力量底漢。도리어 역량있는 사람일 것이니, 
左右亦須退步그대도 모름지기 물러서서 
讓渠出一頭始得。그에게 한 자락 양보해야 할 것입니다.
比暐禪歸。상좌 위선(暐禪)이 돌아오는 길에
錄得渠答紫巖老子一書。그가 자암노인에게 답한 
한 편지를 적어 왔기에 
山僧隨喜讀一遍。산승이 기쁘게 한 번 읽고서 
讚歎歡喜累日。여러 날 동안 찬탄하며 기뻐했는데   
直是好一段文章。일단의 좋은 문장이었습니다. 
又似一篇大義。거기에 또 한 편의 대의(大義)를 이어서  
末後與之下箇謹對。그 글 끝에 적어서 보내드리지만 
不識左右以謂如何。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昔達磨謂二祖曰。옛날에 달마대사께서 
2조 혜가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汝但外息諸緣。內心無喘。 '그대는 다만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임이 없어서 
心如牆壁。可以入道。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니
二祖種種說心。혜가스님은 여러가지로 마음을 설명하고 
說性俱不契。성품을 설명해보았으나
모두 다 계합하지 못하였습니다. 
一日忽然省得達磨所示要門。그러다 어느날 홀연히 달마 대사가 보이신 
법문의 요체를 깨닫고서  
遽白達磨曰。황급히 달마 대사에게
弟子此回始息諸緣也。 '제자가 이번에야 비로소 
모든 인연을 쉬었습니다.'하고 말씀드리니,
達磨知其已悟。更不窮詰。달마 대사는 그가 이미 깨달은 것을 아시고 
더 따져 묻지 않고
只曰。莫成斷滅去否。다만 말씀하셨습니다. 
 '단멸을 이룬 것은 아닌가?' 
曰無。 '없습니다.'
達磨曰。子作生。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한가?' 
曰了了常知故。言之不可及。 '분명하고 분명하게 항상 아는 것이라 
말로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자 
達磨曰。달마 대사께서는 
此乃從上諸佛諸祖所傳心體。 '이것이 위로부터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전해온 마음의 본체이거늘 
汝今得。更勿疑也。그대는 이제 이미 얻었으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沖云。언충이 말하기를, 
夜夢晝思十年之間。 '밤에 꿈꾸고 낮에 생각한 것이 
십년이 되었는데도
未能全克。아직 온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或端坐靜默一空其心。혹 단정히 앉아 고요히 침묵하며 
그 마음을 하나로 텅 비워서
使慮無所緣。事無所託。생각에 반연이 없게 하고 
현실에 의탁하는 바가 없을 때에는
頗覺輕安。매우 가볍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讀至此不覺失笑。편지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何故。무엇 때문인가 하면
慮無所緣。이미 생각에 반연이 없다고 하니
豈非達磨所謂內心無喘乎。어찌 달마 대사가 말한 '안으로 마음이 
헐떡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겠으며,
事無所託。 '현실에 의탁하는 바가 없다' 한 것은 
豈非達磨所謂外息諸緣乎。어찌 달마대사가 말한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쉰 것'이 아니겠습니까?
二祖初不識達磨所示方便。2조께서도 처음에는 
달마대사가 보이신 방편을 알지 못하고 
將謂外息諸緣內心無喘。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마음에 헐떡임이 없다.' 한 것을 
可以說心說性說道說理。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명하고 
도를 설명하고 이치를 설명했다'는 말로
引文字證據。欲求印可。문자를 가져다 증거하며  
인가를 구하려 하였기에  
所以達磨一一列下。그 때문에 달마 대사가 낱낱이 순서대로 
無處用心。마음 쓸 곳이 없게 하고
方始退步思量。비로소 물러서 생각하여
心如牆壁之語。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한다'는 말은
非達磨實法。달마 대사의 진실한 법이 아니다 여기고, 
忽然於牆壁上。홀연히 장벽 위에서 
頓息諸緣。모든 인연을 몰록 쉬어버리자
即時見月亡指。즉시 달을 보고 손가락을 잊어서 
便道。了了常知故。문득 말하기를,
 '분명하고 분명하게 항상 알기 때문에 
言之不可及。말로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나
此語亦是臨時被達磨拶出底消息。이 말도 달마대사의  
대답하라는 핍박을 당하여 한 말이라
亦非二祖實法也。그 또한 혜가대사의 진실한 법이 아닌 것입니다.
杜撰長老輩。엉터리 장로들은 
自無所證。기왕에 증득한 것도 없으면서
便逐旋捏合。이리저리 꿰맞춘 것을 쫓아  
他人歇。다른 사람들에게 쉬라고 하지만  
渠自心火熠熠。그들 스스로 마음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서 
晝夜不停。주야로 멈추지 않는 것이
如缺二稅百姓相似。마치 봄 가을 두 차례의 세금을 
내지 못한 백성과 흡사합니다.
沖卻無許多勞攘。언충에게는 애써 물리칠 것이 많지는 않지만
只是中得毒深。다만 독이 깊이 파고들어서 
只管外邊亂走。밖으로 어지러이 치달리며  
說動說靜。說語說默。동정어묵(動靜語默)을 말하고 
說得說失。득과 실을 얘기하면서  
更引周易內典。다시 주역과 불교경전을 끌어다가 
硬差排和會。다른 억지 논리로 일치점을 찾으려 하니
他閑事長無明。참으로 남에게 무명(無明)만 키우게 하는 
무책임한 일인 것입니다. 
殊不思量一段生死公案。달리 일단의 생사공안을 헤아리지 못하여  
未曾結맺고 끊은 적이 없으니  
臘月三十日。作生折合去。죽는 날에는 어떻게 결단하겠습니까?
不可眼光欲落未落時。안광이 떨어지려 할 때 
且向閻家老子道。또 염라대왕에게,   
待我澄神定慮少時。내가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이 안정될 때까지 잠깐만 기다려  
卻去相見得물러갔다가 그 때 보자' 하면 되겠습니까? 
當此之時。이러한 때를 당해서는  
縱橫無礙之說。亦使不著。종횡무진하게 말하더라도 
쓸 데 없는 것이요 
心如木石亦使不著。마음이 목석 같더라도  
역시 쓸 데가 없을 것이니  
須是當人生死心破始得。모름지기 당사자의 생사심을 깨트려야 합니다.
若得生死心破。만약 생사의 마음이 깨지면 
更說甚澄神定慮。다시 무엇 때문에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안정 시키는 것'을 말하고,
更說甚縱橫放蕩。또 무엇 때문에 '종횡무진 
떠들어대는 것을 말할 것이며,
更說甚內典外典。또 무엇 때문에 우리 경전과 
남의 경전을 말하겠습니까?
一了一切了。一悟一切悟。하나를 알아서 일체를 알고,
하나를 깨달아서 일체를 깨달으며, 
一證一切證。하나를 증득해서 일체를 증득하니,
如斬一結絲。一斬一時斷。마치 한 묶음의 실을 자를 때 
한 번 자르면 일시에 끊기는 것과 같습니다. 
證無邊法門亦然。그지없는 법문을 증득하는 것도 그러하여
更無次第。다른 절차가 없는데 
左右悟狗子無佛性話。그대는 기왕에 구자무불성 화두를 깨달았으니 
還得如此也未。이러한 것을 얻지 않았습니까?
若未得如此。만약 그렇지 않다면 
直須到恁田地始得。곧바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若已到恁田地。이미 이러한 경지에 도달했다면 
當以此法門興起大悲心。마땅히 이 법문으로 대비심을 일으켜서 
於逆順境中和泥合水。역순(逆順)의 경계 속에서
진흙과도 화합하고 물과도 화합하며  
不惜身命不怕口業。신명을 아끼지 않고 
구업을 두려워 하지 말아서
拯拔一切以報佛恩。일체중생을 구원함으로써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方是大丈夫所장차 대장부가 할 일인 것이니,
若不如是。無有是處。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옳지 않습니다. 
沖引孔子稱易之道也屢遷。언충은 '주역(周易)은 누천(屢遷)으로 
도를 삼는다' 한 공자의 말을 끌어다가 
和會佛書中금강경 가운데 
應無所住而生其心一貫。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와
일관된 것이라 하고, 
又引寂然不動。與土木無殊。또 '적연부동(寂然不動)'을  
 '흙이나 나무와 다르지 않다'고 하니
此尤可笑也。이는 더욱 가소롭습니다.
向渠道。그에게 말하거니와, 
欲得不招無間業。무간지옥에 떨어질 업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莫謗如來正法輪。여래의 정법륜을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故經云。그러므로 경에서 
不應住色生心 '응당 색(色)에 머물러 마음 내지 말고,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소리, 향기, 맛, 감촉,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라' 한 것은
謂此廣大寂滅妙心。이 광대하고 적멸한 묘심은
不可以色見聲求。색으로 볼 수 없고 
소리로 찾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요,
應無所住。 '응당 머무는 바가 없다'는 것은 
謂此心無實體也。이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것이며,
而生其心。 '그 마음을 낸다'는 것은 
謂此心非離而立處。이 마음이 참된 자리를 떠나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立處即也。있는 그 자리가 곧 
참된 마음자리임을 말한 것입니다.
孔子稱易之道也屢遷。공자가 '주역은 누천[屢遷]으로 
도를 삼는다.'고 한 것은 
非謂此也。그런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屢者荐也。遷者革也。누(屢)는 거듭한다는 것이요, 
천(遷)은 바뀐다는 뜻이니 
吉凶悔吝生乎動。길흉이나 뉘우침, 인색함 등이 
움직임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屢遷之旨。返常合道也。누천의 의미는 
항상함을 돌이켜 도에 합하는 것인데 
如何與應無所住而生其心。어떻게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과 
合得成一塊。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겠습니까?
沖非但不識佛意。언충은 단지 부처님 뜻을 모를 뿐만 아니라
亦不識孔子意。공자의 뜻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左右於孔子之出沒如遊園觀。그대는 공자의 가르침에 드나들기를 
마치 정원에 노닐 듯하고
又於吾深入閫域。또 우리 불교에도 
그 영역 안에 깊이 들어와 있으니
山野如此杜撰。還是也無。나의 이러한  엉터리 같은 말이 
도리어 옳지 않습니까? 
故圭峰云。그러므로 규봉 선사가 말씀하되,
元亨利貞乾之德也。始於一氣。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의 덕이니 
한 기운에서 시작하였고,
常樂我淨佛之德也。本乎一心。상락아정(常樂我淨)은 부처님의 덕이니 
한마음을 근본으로 하였다.
專一氣而致柔。한 기운에 오롯이 하여 유연하게 하고
修一心而成道。한 마음을 닦아서 도를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此老如此和會。이 늙은이는 그렇게 알았기에
始於儒釋二비로소 유교와 불교 두 가르침에  
無偏枯無遺恨。치우침도 없고 남은 한도 없었습니다.
沖以應無所住而生其心。언충이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는 것이 
與易之屢遷。주역의 누천과 더불어 
大旨同貫未敢相許。큰 뜻은 같다고 함은 
감히 허락하지 못하겠습니다.
若依沖差排。만약 언충의 차별한 논리에 의하면 
則孔夫子與釋迦老子。공자와 석가모니에게
殺著買草鞋始得。짚신을 사서 신겨야 할 것이니,
何故。一人屢遷。왜냐하면, 
한 사람(공자)은 항상 옮겨 다니고
一人無所住。또 한 사람(석가모니)은 
머무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想讀至此。必倒也。아마도 이 대목을 읽으면 
반드시 포복절도할 것입니다. 
答劉通判(沖)19. 유통판(劉通判) 언수(沖)에의 답서①
令兄寶學公。그대의 형인 보학공이 
初未嘗知管帶忘懷之事。처음에는 관대와 망회의 문제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으나
信手摸著鼻孔。손 가는 대로 콧구멍을 만져 보고서 
雖未盡識得諸方邪正。비록 다 알지는 못했더라도  
모든 방면의 그르고 바른 것을 얻어서
而基本堅實。그 기본이 견고하니 
邪毒不能侵。요사한 독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忘懷管帶在其中矣。망회와 관대도 그 중에 있는데 
若一向忘懷管帶。만약 한결같이 망회하거나 관대하여
生死心不破。생사의 마음을 깨트리지 못한다면 
陰魔得其便。오음(五陰)의 마구니가 그 기회를 틈타서
未免把虛空隔截作兩處。허공을 붙잡아 양 쪽으로 갈라놓는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處靜時受無量樂。고요함에 처해 있을 때에는 
한량없는 낙을 누리고, 
處鬧時受無量苦。소란함에 처해서는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라 
要得苦樂均平。고통과 낙을 고르게 하려면
但莫起心管帶。다만 마음으로 관대를 일으키지 말고
將心忘懷。마음으로 망회하지도 말아서
十二時中放蕩蕩地。열두 때에 탕탕하게 놓아버리십시요.
忽爾舊習瞥起。홀연히 옛 습관이 일어나더라도
亦不著用心按捺。굳이 마음 써서 눌러 내리려고도 말고
只就瞥起處。다만 갑자기 생각이 일어나는 곳에 나아가 
看箇話頭。화두를 잘 살펴보십시오. 
狗子還有佛性也無。無。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正恁時。바로 이러할 때에는 
如紅鑪上一點雪。相似。시뻘건 화롯불 위의 
한 조각 눈과 같아서 
眼辦手親者。一逴逴得。눈으로 판별하고 손에 익은 것을 
한번 뛰어 넘어야
方知懶融道。비로소 나융 선사가 말한 
恰恰用心時。恰恰無心用。 '꼭 마음을 써야 할 때 
반드시 무심(無心)을 쓰되  
曲談名相勞。直說無繁重。바르지 못한 말은 겉으로만 수고하는 것이요
곧은 말이라야 번잡함이 없을 것이며, 
無心恰恰用。常用恰恰無。무심을 반드시 쓰되 
항상 쓰는 일만 반드시 없다면 
今說無心處。不與有心殊。지금 말하는 무심이 
유심(有新)과 다르지 않다.' 한 것이
不是誑人語。미친 사람의 말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昔婆修盤頭。옛날에 바수반두(婆修盤頭)가 
常一食不臥。항상 하루 한 끼만 먹고 눕지도 않은 채
六時禮佛。여섯 때에 예불을 드리며 
淨無欲。眾所歸。청정하고 욕심이 없어서
대중들의 귀의처가 되었는데,
二十祖闍夜多。20대 조(祖) 사야다(闍夜多)존자가 
將欲度之。問其徒曰。제도하고자 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此遍行頭陀。能修梵行。 '이렇게 두루 행하는 두타로   
범행을 닦을 수 있다면 
可得佛道乎。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其徒曰。그 제자들이 
我師精進如此。何故不可。 '우리 스승의 정진이 이와 같은데 
왜 안되겠습니까?' 하자
闍夜多曰。사야다 존자가 말했습니다. 
汝師與道遠矣。 '너희 스승은 도와는 거리가 멀어서
設苦行歷於塵劫。설사 겁이 다하도록 고행하더라도 
皆虛妄之本也。모두 허망의 근본일 뿐이니라.'
其徒不勝憤。그의 제자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皆作色厲聲。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러
謂闍夜多曰。사야다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尊者蘊何德行。 '존자는 무슨 덕행을 쌓았기에 
而譏我師。우리의 스승을 비웃습니까?' 
闍夜多曰。사야다 존자가 말했습니다.  
我不求道。亦不倒。 '나는 도를 구하지도 않지만 
전도되지도 않고,
我不禮佛。亦不輕慢。나는 예불하지 않지만 
교만히 업신여기지도 않고, 
我不長坐。亦不懈怠。나는 오래 좌선하지 않지만 
게으르지도 않고.
我不一食。亦不雜食。나는 일식(一食)을 하지 않지만 
잡식(雜食)도 하지 않고,
我不知足。亦不貪欲。나는 만족한 줄 알지 못하지만 
탐욕스럽지도 않다.
心無所希。名之曰道。마음에 희구하는 바가 없어야  
도라고 할 것이다.' 
婆修聞已發無漏智。바수반두가 그 말을 듣고서 
무루의 지혜를 일으켰으니
所謂先以定動。소위 '먼저 선정으로 움직이고  
後以智拔也。그 뒤에 지혜로 구제한다'는 것입니다.
杜撰長老輩。엉터리 장로들이 
左右靜坐等作佛。그대에게 고요히 앉아
부처와 같이 하라 가르치는데 
豈非虛妄之本乎。어찌 허망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又言。또 말하기를, 
靜處無失。鬧處有失。고요한 곳에서는 실(失)이 없고 
소란한 곳에서는 실이 있다.' 하지만
豈非壞世間相而求實相乎。어찌 세간상(世間相)을 깨뜨려서    
실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若如此修行。만일 이렇게 수행한다면 
如何契得懶融나융 선사가 말한
所謂今說無心處不與有心殊。 '지금 말하는 무심이 유심과 다르지 않다'에
어떻게 계합하겠습니까?
請公於此諦當思量看。공에게 부탁하노니, 
여기서 마땅히 깊이 생각하고 살펴보십시요.
婆修初亦將謂。바수반두도 처음에는 
長坐不臥可以成佛。 '장좌불와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다가 
纔被闍夜多點破。사야다 존자의 깨우침을 입고 
便於言下知歸。發無漏智。문득 말끝에 귀의처를 알고 
무루의 지혜를 일으켰으니,
是良馬見鞭影而行也。참으로 이것이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린다'는 것입니다.
眾生狂亂是病。중생은 광란(狂亂)이 병이라  
佛以寂靜波羅蜜藥治之。부처님께서 적정(寂靜)바라밀의 
약으로 치료하시어 
病去藥存。其病愈甚。병이 나았는데도 약에 의존한다면 
그 병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拈一放一。何時是了。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아버리니 
어느 때에 마치겠습니까? 
生死到來。생사가 도래하면 
靜鬧兩邊都用一點不得。고요함과 소란함의 양변은 
도무지 소용없는 것이니,  
莫道鬧處失者多。소란한 곳에 실이 많고
靜處失者少。고요한 곳에 실이 적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不如少與多得與失。적음과 많음, 득과 실, 
靜與鬧。고요함과 소란함을
縛作一束。送放他方世界。한 묵음으로 묶어서 
타방 세계로 보내버리고,
卻好就日用非多非少。일상에서 많음도 적음도 아니고, 
非靜非鬧。非得非失處。고요함도 소란함도 아니며, 
득도 실도 아닌 곳에 기꺼이 나아가 
略提撕看。是箇甚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일깨워 살피십시요.
無常迅速。百歲光陰。무상하고 신속하여 백년광음이 
一彈指頃便過也。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문득 지나가는데 
更有甚閑工夫。다시 무슨 한가한 공부가 있어서 
理會得理會失。득과 실의 이치에 부합하고,
理會靜理會鬧。理會多理會少。고요함과 소란함, 많고 적음, 
理會忘懷理會管帶。망회(忘懷)와 관대(管帶)의 
이치에 부합하겠습니까?
石頭和云。석두(石頭) 화상은 
謹白參玄人。光陰莫虛度。 '삼가 참구하는 사람에게 말하노니 
這一句子。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하였으니, 
開眼也著。合眼也著。이 한 구절을 눈을 떠도 붙잡고 
눈을 감아도 붙잡고,
忘懷也著。管帶也著。생각을 잊어도 붙잡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붙잡고,
狂亂也著。寂靜也著。광란해도 붙잡고, 
고요해도 붙잡으십시오.
此是徑山如此差排。이것은 내가 그렇게 안배한 것이지만,
想杜撰長老輩。아마도 멍청한 장로들은 
別有差排處也。별도의 다른 안배처가 있을 것입니다.
咄且置是事。쯧! 이 일은 이쯤 해두겠습니다.
又。20. 유통판 언충에의 답서 ②
左右做靜勝工夫。그대가 적정하고 수승한[靜勝] 공부를 한지  
積有年矣。여러 해가 되었는데 
不識於開眼應物處。눈 뜨고 사물을 대하는 데에  
得心地安閑否。심지가 안한(安閑)한지 모르겠습니다. 
若未得安閑。만약 편안하고 한가하지 못하다면 
是靜勝工夫未得力也。이것은 정승(靜勝)한 공부가 
아직 힘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若許久猶未得力。만약 오래토록 힘을 얻지 못한다면 
當求箇徑截得力處。마땅히 지름길에서 힘 얻을 곳을 찾아야만 
方始不辜負平昔許多工夫也。비로소 평소의 허다한 공부를 
저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平昔做靜勝工夫。평소의 정승한 공부는 
要支遣箇鬧底。다만 소란함을 떨치려는 것이며, 
正鬧時卻被鬧底聒擾自家方寸。바로 소란할 때에 그 소란함이 
자기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힌다면 
卻似平昔不曾做靜勝工夫一般耳。도리어 평소에 정승한 공부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을 따름입니다. 
這箇道理。只太近。이 도리는 다만 너무 가까이 있고 
遠不出自家眼睛裏。멀다 해도 자기 눈동자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開眼便刺著。눈을 뜨면 곧바로 찔러오고 
合眼處亦不缺少。눈을 감아도 조금도 빠뜨리지 않으며, 
開口便道著。입을 열면 곧바로 말을 하고 
合口處亦自現成。입을 닫아도 자연히 드러나거니와 
擬欲起心動念承當。헤아려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알려고 한다면 
渠早已蹉過十萬八千了也。그것은 벌써 십만 팔천 리나 
어긋나 버리고 말 것이니, 
直是無爾用心處。곧 그대의 용심처(用心處)가 없는 것이  
這箇最是省力。가장 힘을 더는 것입니다. 
而今學此道者。지금의 이 도를 배우는 이들은 
多是要用力求。대개가 힘을 써 구하려 하지만 
求之轉失。向之愈背。구할수록 점점 잃고 
향할수록 더욱 등져 가는데   
那堪墮在得失解路上。어찌 감히 득실을 
따지는 길 위에 떨어져서 
謂鬧處失者多。靜處失者少。소란한 곳은 손실이 많고 
고요한 곳이 손실이 적다고 하겠습니까?
左右在靜勝處。그대는 고요한 곳에  
住了二十餘年。20여년을 머물러 있었으니, 
試將些子得力底來看則箇。약간이나마 얻은 힘으로 
시험삼아 살펴보면 좋을 듯 합니다. 
若將樁樁地底。만약 말뚝처럼 우두커니 박혀  
做靜中得力處。고요함 속이 힘 얻은 곳이라 한다면
何故卻向鬧處失卻。무슨 까닭에 도리어 소란한 곳에서는 
잃어버리겠습니까?
而今要得省力靜鬧一如。이제 힘이 덜어지고 고요함과 소란함이 
일여(一如)해지기 바란다면
但只透取趙州無字。다만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꿰뚫어 취하십시요.
忽然透得。홀연히 뚫어지면 
方知靜鬧兩不相妨。고요함과 소란함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亦不著用力支撐。또 힘을 써서 지탱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亦不作無支撐解矣。또 지탱할 것이 없다는 이해도 
짓지 않을 것입니다. 
  答泰國太夫人21. 진국(泰國) 태부인(太夫人)에의 답서
謙禪歸。領所賜도겸(道謙) 상좌가 돌아와서 
전해 준 가르침을 듣고   
親書數頌。친히 쓰신 게송들도 읽었습니다.
初亦甚疑之。及詢謙子細。처음에는 몹씨 의심하였는데 
도겸에게 자세하게 물어보고서
方知不自欺。曠劫未明之事。비로소 스스로 속이지 못하고 
오랫 동안 밝히지 못했던 일이
豁爾現前不從人得。활연히 앞에 나타남이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始知法喜禪悅之樂。법희선열(法喜禪悅)의 즐거움은 
非世間之樂可比。세간의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음을 
비로소 알았기에
山野國太歡喜。산승은 국태부인을 위해 기뻐하며 
累日寢食俱忘。여러 날 동안 침식을 다 잊었습니다. 
兒子作宰相。아들은 제상이 되고 
身作國夫人。자신은 국부인이 되셨으나  
未足貴。귀함이 아직 만족치 못합니다.
糞掃堆頭收得無價之寶。똥 무더기 거름 무더기에서 
무가보(無價寶)를 얻어서
百劫千生受用不盡백겁 천생에 써도 다하지 않아야  
方始為真貴耳。비로소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然切不得執著此貴。그 귀함에 절대 집착하지 마십시요.
若執著則墮在尊貴中。만약 집착하면 곧 존귀함 속에 타재하여 
不復興悲起智憐愍有情耳。더 이상 자비를 일으키고 지혜를 일으켜 
중생들을 연민하지 않게 될 뿐입니다.
記取記取。부디 기억하고 기억하십시오. 
  答張丞相(德遠)22. 장승상(張丞相) 덕원(德遠)에의 답서
恭惟。燕居阿練若。생각해보니 
아련야(阿練若)에 한가로이 머물고 
與彼上人同會一處。높은 이[上人]들과 한 곳에 모여 
娛戲毘盧藏海。비로장해(毗盧藏海)에 노닐면서 
隨宜作佛事。마땅한 대로 불사를 지으시거니와
少病少惱。鈞候動止萬福。병이나 괴로움은 적고 
옥체[鈞候]의 건강은 만복하십니까?
從上諸聖莫不皆然。위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다 그렇지 않은 분이 없으시니 
所以於念念中。그래서 순간순간에 
入一切法滅盡三昧。일체법 멸진(滅盡)삼매에 들고,
不退菩薩道。不捨菩薩事。보살도에서 물러서지 않고, 
보살의 일을 버리지 않고,
不捨大慈悲心。대 자비심을 버리지 않고, 
修習波羅蜜。未嘗休息。바라밀 수습하기를 쉬어본 적 없고, 
觀察一切佛國土。無有厭倦。일체 불국토 관찰하기를  
싫증이나 권태없이 하고,
不捨度眾生願。중생 제도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不斷轉法輪事。법륜 굴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不廢化眾生業。중생 교화의 업을 그만두지 아니하며, 
乃至所有勝願。皆得圓滿。나아가 수승한 서원을 다 원만히 하고,  
了知一切國土差別。일체국토의 차별을 요지하여 
入佛種性到於彼岸。부처의 종성에 들어가고  
피안에 도달하신 것이요,
此大丈夫四威儀中受用家事耳。이것이 대장부가 행주좌와에 
수용해야 할 집안 일인 것입니다. 
大居士於此力行無倦。대 거사께서는 이런 힘 행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니 
而妙喜於此亦作普州人。저 묘희(妙喜)도 여기에서 
보주(普州)의 사람이 되고자 하나 
又不識。還許外人手否。외인(外人)이 손을 담가도 
될른지 모르겠습니다. 
聞到長沙即杜口듣자하니 장사 땅에 이르러서 
곧 입을 닫고 
毘耶深入不二。비야리성에서 불이(不二)의 경계에 
깊이 들어갔다는데 
此亦非分外。法如是故。이 또한 분수 밖의 일이 아니니
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願居士如是受用。거사께서 이와 같이 수용하거든 
則諸魔外道。모든 마군과 외도가 
定來作護法善神也。정히 오더라도 법을 수호하는 
선신이 되어버리기 원합니다. 
其餘種種差別異旨。그 밖의 여러가지 다른 것들도 
皆自心現量境界。亦非他物也。다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경계요
다른 것이 아닐 터인데
不識居士以何如。거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答張提刑(暘叔)23. 장제형(張提刑) 양숙(暘叔)에의 답서
老居士所作所。冥與道合。노 거사께서 위하시는 바가 
은근히 도에 계합하거니와  
但未能得㘞地一下耳。다만 '와'하는 한 소리 터지는 경지를 
아직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若日用應緣。不失故步。만약 일상에서 인연에 합당하게   
옛 걸음을 잃지 않기만 하면
雖未得㘞地一下。 '와'하는 한 소리 터지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臘月三十日。납월 삼십일에는 
閻家老子亦須拱手歸降。염라대왕도 반드시 
두 손을 들고 항복할 터인데
況一念相應耶。하물며 한 순간에 상응함이겠습니까?
妙喜老漢。이 묘희(妙喜) 늙은이가 
雖未目擊觀其行事。아직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 행하는 일들을 살펴보니 
小大折中無過不及。크고 작은 일을 결단함에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니 
只此便是道所合處。이것이 곧 합당한 도처(道處)인 것이라 
到這裏不用作塵勞想。여기에 이르러서는 진로(塵勞)라는 생각도  
亦不用作佛法想。불법(佛法)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佛法塵勞都是外事。불법과 진로가 모두 바깥의 일이지만  
然亦不得作外事想。바깥 일이라 생각하지도 말아서   
但回光返照。다만 회광반조(廻光返照)하기를,
作如是想者從甚處得來。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所作所時。有何形段。작위(作爲)를 할 때는
어떤 형태의 단계가 있으며,
所作辦。작위가 기왕 끝나서도   
隨我心意無不周旋。나의 마음을 따라 돌지 않는 곳이 없고
無有少剩。모자라거나 넘치지도 않으니  
正恁時。承誰恩力。바로 이러한 때에 당해서는 
누구 은덕을 입은 것인가?' 하고 
如此做工夫。日久月深。이렇게 공부하여
날이 오래되고 달이 깊어지면
如人學射自然中的矣。마치 어떤 사람이 활쏘기를 배움에 
자연히 적중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眾生倒。迷己逐物。중생은 전도하여 
자신를 잊은 채 사물만 쫓고
耽少欲味。甘心受無量苦。적은 욕심의 맛을 탐하여 
마음으로 한량없는 고통을 받거니와 
逐日未開眼時。未下床時。날마다 아직 눈 뜨지 않았을 때와  
아직 침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때와 
半惺半覺時心識已紛飛。잠에서 막 깨려 할 때  
이미 심식(心識)은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隨妄想流蕩矣。망상따라 제멋대로 흘러서 
作善作惡。雖未發露。선을 짓고 악을 지은 것이 
비록 아직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未下床時。침상에서 미처 내려오지 않았을 때 
天堂地獄在方寸中。천당과 지옥은 마음 가운데 
已一時成就矣。이미 한꺼번에 성취되어 있고, 
及待發時。已落在第八。그것이 드러나기를 기다리다 보면  
이미 제 8식에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佛不云乎。부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一切諸根自心現器。 '일체의 모든 근(根)은 
자기의 마음이 그 그릇을 나타내는 것이라
身等藏自妄想相施設顯示。몸 같은 저장소가 자기 망상의 모양을 
일으키고 드러내 보이지만 
如河流如種子。마치 강물이 흐르듯 하고, 종자(種子)와 같고, 
如燈如風如雲。등불과 같고, 바람과 같고, 구름과 같아서 
那展轉壞。한 순간에 무너져 가거니와
躁動如猿猴。조급하게 움직이기는 원숭이 같고, 
樂不淨處如飛蠅。더러운 곳을 좋아하기는 파리와 같고, 
無厭足如風火。만족할 줄 모르기는 바람과 불 같고, 
無始虛習氣因。무시로부터 거짓된 습기의 인(因)은 
如汲水輪等事。물 긷는 두레박과 같다.' 하셨으니, 
於此識得破。여기서 알아차려 타파해버리면
便喚作無人無我知。곧 무인(無人), 무아(無我)의 지혜라 할 것입니다.
天堂地獄不在別處。천당과 지옥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只在當人半惺半覺다만 그사람이 잠에서 깨려 할 때와 
未下床時方寸中。침상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았을 때의 
마음 가운데 있으며, 
並不從外來。또 밖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發未發覺未覺時。일으키나 아직 일어나지 않고
알려 하나 아직 알지 못할 때 
切須照顧照顧時간절히 비추어 보시되, 비추어 볼 때   
亦不得與之用力爭。또한 애써 다투지 마십시오. 
爭著則費力矣。다투려 하면 곧 힘을 낭비할 것입니다. 
祖不云乎。조사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止動歸止。止更彌動。 '움직임을 멈춰 멈춤으로 돌아가면 
멈춤은 다시 더욱 움직인다.고 하셨습니다.
纔覺日用塵勞中漸漸省力時。일상의 진로(塵勞) 속에서  
점점 힘이 덜어지는 것을 깨달을 때가
便是當人得力之處。곧 그사람이 힘을 얻는 곳이요, 
便是當人成佛作祖之處。곧 그사람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곳이며, 
便是當人變地獄作天堂之處。곧 그사람이 지옥을 변화시켜 
천당을 만드는 곳이며,
便是當人穩坐之處。곧 그사람이 안은히 앉는 곳이며,
便是當人出生死之處。곧 그사람이 생사에서 벗어나는 곳이며, 
便是當人致君於堯舜之上之處。곧 그사람이 임금을 요순(堯舜)의 위에 
올려놓는 곳이며,
便是當人起疲氓於凋之際之處。곧 그사람이 고달픔에 지친 백성들을 
일으켜 세우는 곳이며,
便是當人覆蔭子孫之處。곧 그사람이 자손들에게 
음덕을 물려주는 곳입니다. 
到這裏說佛說祖。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  
부처를 말하고 조사를 말하며, 
說心說性。說玄說妙。마음을 말하고 성품을 말하며, 
심오함을 말하고 미묘함을 말하며, 
說理說事。說好說惡。이치를 말하고 사실을 말하며, 
좋은 것을 말하고 싫은 것을 말하더라도
亦是外邊事。이 또한 바깥의 일입니다. 
如是等事。屬外矣。이러한 일들도 오히려 바깥에 속할 터인데 
況更作塵勞中先聖所訶之事耶。하물며 진로 속에서 앞서의 성인들이 
꾸짖으실 일들을 어찌 하겠으며,
作好事不肯。좋은 일도 오히려 수긍하지 않을 터인데   
豈肯作不好事耶。어찌 좋지 못한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若信得此說及永嘉所謂만약 이 말을 믿는다면 
영가(永嘉)가 말씀하신 바  
行亦禪坐亦禪。 '걸어 다니는 것도 참선이요 
앉아 있는 것도 참선이며
語默動靜體安然。어묵동정(語動靜)에 
몸이 편안하도다.' 하신 것이 
不是虛語。헛된 말이 아닐 것이니, . 
請依此行履。始終不變易。청컨대 이러한 행리(行履)에 의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則雖未徹證自己本地風光。비록 자기의 본지풍광을 
명철히 증득치 못하고, 
雖未明見自己本來面目。비록 자기의 본래면목을 
밝게 보지 못하더라도
生處已熟。熟處已生矣。생소한 것은 이미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은 이미 생소할 것입니다. 
切切記取。간절히 기억하십시오. 
纔覺省力處。便是得力處也。힘이 덜어짐을 막 깨닫는 곳이 
곧 힘을 얻는 곳이다 하고   
妙喜老漢。每與箇中人說此話。묘희 늙은이가 사람들에게  
매번 이런 이야기를 말했더니   
往往見說得頻了多忽之。왕왕 자주 말하는 것을 보고  
대개가 소홀히 여겨 
不肯將事。일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만  
居士試如此做工夫看。거사께서는 시험 삼아 
이와 같이 공부해보십시오. 
只十餘日便自見得。다만 10여 일이면 
省力不省力。得力不得力矣。곧 힘을 덜고 덜지 못하고와 
힘을 얻고 얻지 못하고를 아는 것이   
如人水冷煖自知。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으련만  
說與人不得。呈似人不得。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도 없습니다. 
先德云。선덕이 말하기를, 
語證則不可示人。증득을 말로 해서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고,
說理則非證不了。이치를 설명하는 것은 
증득이 아니면 않된다고 하였습니다.
自證自得自信自悟處。스스로 증득하고 스스로 얻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깨닫는 곳에서
除曾證曾得已信已悟者。일찍이 증득하고 일찍이 얻으며, 
이미 믿고 이미 깨달은 사람이라야 
方默默相契。바야흐로 묵묵히 서로 계합할 것이요, 
未證未得未信未悟者。아직 증득하지 못하고 아직 얻지 못하며, 
아직 믿지 못하고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은 
不唯自不信。스스로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亦不信他人有如此境界。또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경계가 있다는 것도 믿지 못합니다.
老居士天資近道。노 거사께서는 
천부의 자질이 도에 가까워서
現定所作所。不著更易。작위하시는 바가 당장에 정(定)하시니 
다시 바꾸려 하지 마십시요.
以他人較之。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萬分中已省得九千九百九十九分。만분(萬分)에서 이미 
구천구백구십구 분(分)이 덜어지셨고,
只欠噴地一發便了。다만 내뿜는 경지에서 
단번에 문득 마쳐버림이 모자랄 뿐입니다. 
士大夫學道。사대부들이 도를 배우지만 
多不著實理會。대개 착실히 이치에 부합하지 못하니 
除卻口議心思。입으로 논의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거해버리면
便茫然無所措手足。금방 망연하여 손발을 둘 곳이 없는데
不信無措手足處正是好處。손발을 둘 곳이 없는 그 자리가 
정히 좋은 곳임을 믿지 못하고 
只管心裏要思量得到。다만 마음속에서 사량으로 도달하려 하고  
口裏要說得分曉。입으로 설명하여 밝히려 든다는 것을  
殊不知。錯了也。별로 알지 못하니, 잘못된 것입니다. 
佛言。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如來以一切譬。說種種事。여래가 일체의 비유로써 
갖가지 일을 설명하거니와 
無有譬能說此法。이 법은 비유로 설명할 수 없나니, 
何以故。心智路不思議故。왜냐하면 마음 지혜의 길이 끊겨서 
부사의하기 때문이니라.' 하셨으니,
信知思量分別障道必矣。사량 분별이 도를 장애함이 
틀림없다는 것을 믿어 알 것입니다.
若得前後際斷。만약 앞뒤의 경계가 끊어지면
心智路自矣。마음 지혜의 길이 자연히 끊기고,
若得心智路마음 지혜의 길이 끊어지면 
說種種事。皆此法也。갖가지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 
다 이 법이요,  
此法明。이 법이 기왕에 밝으면 
即此明處便是不思議大解脫境界。이 밝은 곳이 곧 부사의한 
대해탈의 경계이지만 , 
只此境界亦不可思議。다만 이 경계도 불가사의하고, 
境界不可思議。경계가 기왕 불가사의하면 
一切譬亦不可思議。일체의 비유도 역시 불가사의하며, 
種種事亦不可思議。갖가지 일도 불가사의하며, 
只這不可思議底。亦不可思議。그 불가사의한 것 마저도 불가사의하며, 
此語亦無著處。이 말도 역시 붙을 곳이 없고, 
只這無著處底。亦不可思議。이 붙을 곳이 없는 그것 마저도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如是展轉窮詰。이렇게 전전(展轉)하여 추궁해 나가면 
若事若法。若譬若境界。일이나 법이나 비유나 경계가 
如環之無端。無起處無盡處。마치 고리가 끝이 없듯이  
일어난 곳도 다한 곳도 없어서 
皆不可思議之法也。모두 불가사의한 법인 것입니다. 
所以云。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菩薩住是不思議。 '보살은 이 부사의에 머물러 
於中思議不可盡。그 안에서 다할 수 없이 사의(思議)하고,  
入此不可思議處。그 불가사의한 곳에 들어가면 
思與非思皆寂滅。생각과 생각 아닌 것이 
모두 적멸하다.'고 하였습니다.
然亦不得住在寂滅處。그러나 적멸한 곳에 
머물러 있지도 말아야 합니다. 
若住在寂滅處。만약 적멸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則被法界量之所管攝。법계의 한량에 간섭받게 되는데
中謂之法塵煩惱。교학에서는 그것을 
법진번뇌(法塵煩惱)라 합니다.
滅卻法界量。법계의 한량을 멸해버리고 
種種殊勝一時蕩盡了。갖가지 수승한 것도 일시에 없애버려야 
方始好看庭前柏樹子。비로소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나
麻三斤。乾屎 '마 세 근[麻三斤]'이나 
 '마른 똥 막대기[乾屎]'나 
狗子無佛性。 '개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나 
一口吸盡西江水。 '한 입에 양자강 물을 다 마신다
[一口吸盡西江水]'나 
東山水上行之類。 '동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上行]'와 같은 
공안들을 잘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忽然一句下透得。홀연히 한 구절에서 투철히 얻으면 
方始謂之法界無量回向。비로소 '법계의 한량없는 회향'이라 할 것입니다.
如實而見。如實而行。여실히 보고, 여실히 행하고, 
如實而用。여실히 활용하면 
便能於一毛端現寶王문득 하나의 털 끝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고, 
坐微塵裏轉大法輪。미진 속에 앉아서 
대 법륜을 굴릴 수 있을 것이며, 
成就種種法。破壞種種法。갖가지 법을 성취하고  
갖가지 법을 부수는 것이   
一切由我。다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
如壯士展臂。不借他力。마치 장사가 팔을 펴는 데에 
남의 힘을 빌리지 않는 것과 같고, 
師子遊行。不求伴侶。사자가 돌아다니는 데에 
반려가 필요치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니,
種種勝妙境界現前。갖가지 승묘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도 
心不驚異。경이롭게 여기지 말고, 
種種惡業境界現前。갖가지 악업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도 
心不怕怖。두려워하지 말며,
日用四威儀中。隨緣放曠。일상의 행주좌와에 
인연따라 거리낌이 없어서  
任性逍遙到得這箇田地。성품에 맡겨 소요(逍遙)하는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方可說無天堂無地獄等事。바야흐로 '천당도 지옥도 없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永嘉云。영가(永嘉) 선사는 
亦無人亦無佛。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으며, 
大千沙界海中漚。대천 사바세계가 바다의 물거품이요, 
一切聖賢如電拂。모든 성현이 번갯불과 같다' 하셨거니와 
此老若不到這箇田地。이 늙은이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如何說得出來。어찌 그렇게 말해 올 수 있었겠습니까?
此語錯會者甚多。이 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苟未徹根源。진실로 아직 근원에 투철하지 못하고  
不免依語生解。말에만 의지해 
알음알이를 내는 것을 면치 못하고 
便道一切皆無撥無因果。곧 '일체가 다 없고 인과도 없다' 하면서 
將諸佛諸祖所說言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께서 
말씀하신 가르침들도 
盡以虛。다 거짓이라고 말을 하니  
謂之誑惑人。그들를 어리석은 미치광이다 하는 것입니다. 
此病不除。이런 병을 고치지 못하면 
乃莽莽蕩蕩招殃禍者也。이내 깜깜하고 아득하여 
재앙과 화를 초래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佛言。虛妄浮心多諸巧見。부처님께서는 '허망하고 들뜬 마음이 
대다수의 교활한 견해를 만든다' 하셨건만 
若不著有便著無。유(有)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무(無)에 집착하거나,
若不著此二種。이 두 가지에 집착하지 않으면 
種於有無之間量卜度。곧 유와 무 사이에서 헤아려 사량하고, 
縱識得此病。설사 이런 병을 안다 하더라도 
定在非有非無處著到。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곳에 집착하니, 
故先聖苦口叮嚀。그러므로 앞의 성인들이 
입이 쓰도록 신신당부하시어 
令離四句百非。사구(四句)를 떠나고 백비(百非)를 끊으며
直下一刀兩段。곧바로 한 칼에 두 조각을 내서 
更不念後思前。다시는 뒷일을 생각하거나 
앞일을 생각하지 말고
坐斷千聖頂[寧*頁]。앉은 자리에서 일천 성인들의 머리를 
끊어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四句者。사구(四句)란 것은 
乃有無。非有非無。유(有)요 무(無)이되 
유도 아니고[非有] 무도 아니며[非無]
亦有亦無是也。또한 유[亦有]요 
또한 무[亦無]인 그것입니다.
若透得此四句了。만약 이 사구를 꿰뚫어 알면 
見說一切諸法實有。일체법이 실로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我亦隨順與之說有。나도 따라서 있다고 말하더라도  
且不被此實有所礙。그 실로 있다는 것에 구애되지 않고, 
見說一切諸法實無。일체법이 실로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我亦隨順與之說無。나도 따라서 없다고 말하더라도 
且非世間虛豁之無。세간의 공허한 없음이 아닌 것이며,
見說一切諸法亦有亦無。일체법이 또한 있고 또한 없다 
말하는 것을 보고
我亦隨順與之說亦有亦無。나도 따라서 또한 있고 
또한 없음을 말하더라도
且非戲論。희론이 아닌 것이며, 
見說一切諸法非有非無。일체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我亦隨順與之說非有非無。나도 따라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말하더라도
且非相違。서로 위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淨名云。外道六師所墮。유마 거사께서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떨어진 곳에
汝亦隨墮。是也。그대도 따라서 떨어져라'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士大夫學道。사대부가 도를 배우면서 
多不肯虛卻心聽善知識指示。흔히 마음을 비워버리려 하지 않고
선지식의 지시를 듣거니와  
善知識纔開口。선지식이 막 입을 열면 
渠已在言前一時領會了也。자기는 이미 선지식의 말보다 앞서 
한꺼번에 알아버리고
及至渠吐露盡。급기야 그에게 다 토로해보라 하면 
一時錯會。다들 잘못 알고 있으니,
正好在言前領略底。정히 말에 앞서 잘도 알고 있던 사람이 
又卻滯在言語上。도리어 말에 막혀버린 것이요, 
又有一種。一向作聰明說道理。또 어떤 한 종류는 
한결같이 총명한 척 도리를 말하되 
世間種種事藝。 '세간의 갖가지 일이나 기예들은 
我無不會者。내가 모르는 것이 없는데
只有禪一般我未會。다만 참선이라는 한 가지만 
내가 아직 모른다'고 하면서
在當官處。呼幾枚杜撰長老來。관청에서 몇 사람의 
엉터리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與一頓飯喫卻了。밥 한 끼를 주어서 먹게 한 다음에 
渠恣意亂說。그들에게 멋대로 떠들어대게 하고서 
便將心意識。심의식을 기울여 
記取這杜撰說底。엉터리 장로들의 말을 기억했다가 
卻去勘人。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점검하는데, 
一句來一句去。謂之廝禪。한 구절이 오고 한 구절이 가는 것을
시선(廝禪)이라 합니다. 
末後我多一句。爾無語時。마지막에 내가 한 구절을 더 했으나 
상대가 대꾸가 없을 때는 
便是我得便宜了也。곧 내가 이겼다고 하는데   
及至撞著箇實明眼漢。진실로 눈 밝은 사람을 만나기에 이르면 
又卻不識。또 도리어 알지 못하고  
縱然識得。又無決定信。설령 안다 해도 결정한 확신이 없으며  
不肯四楞塌地放下。사지를 온통 땅에 내려놓고서
就師家理會。스승에게 나아가 알아보려 하지 않고 
依舊要求印可。여전히 인가만 구하려 합니다.
及至師家於逆順境中그러다가 스승이 역순의 경계에서 
示以本分鉗鎚。본분의 칼이나 쇠망치를 보여주면
又卻怕懼不敢親近。도리어 두려워서 친근하려 하지 않으니,  
此等名可憐愍者。이러한 이들을 
가히 불쌍한 사람들이라 할 것입니다.
老居士妙年登高第起家。노 거사께서는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 집안을 일으키시고 
所在之處隨時作利益事。살고 있는 곳에서 
때에 따라 유익한 일을 하며, 
文章事業皆過人문장사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 보다 나으시지만
而未嘗自矜。스스로 자랑한 적이 없이   
一心一意。한 마음 한 뜻으로 
只要退步著實理會此段大事因緣。다만 물러서서 착실히  
이 일대사인연을 깨달으려 하시니
見其至誠。그 지극한 정성을 보고
不覺忉怛如許。나도 모르게 이처럼 
수다스럽게 늘어놓은 것은  
非獨要居士識得這般病痛。유독 거사에게만 이러한 병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亦作勸發初心菩薩。초발심한 보살들에게
入道之資糧也。도에 들어가는 양식을 
권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答汪內翰(章)24. 왕내한(汪內翰) 언장(彦章)에의 답서①
承。편지를 받아보니 
杜門壁觀。문을 닫고 벽을 관한다 하셨는데
此息心良藥也。이것은 마음을 쉬는 좋은 약입니다. 
若更鑽故紙。만약 다시 옛 종이만 뚫고 있다면 
定引起藏識中정녕 아뢰아식 안에 있는
無始時來生死根苗。무시이래의 생사의 뿌리를 이끌어 내서 
作善根難。선근을 모으려는 어려움[善根難]을 짓고 
作障道難無疑。도를 장애하는 어려움[障道難]을 
지을 것이 분명합니다. 
得息心且息心已。마음을 쉬고 또 이왕 마음을 쉬고서는 
過去底事。或善或惡。或逆或順。과거의 선이거나 악이거나 
혹은 역경계이거나 순경계인 일들을  
都莫思量。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現在事得省便省。현재의 일은 덜어낼 것은 덜어지도록 
一刀兩段不要遲疑。한 칼에 두 동강 내되 
주저하거나 의심하지 않으면 
未來事自然不相續矣。미래의 일은 자연히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釋迦老子云。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心不妄取過去法。 '마음으로 허망하게 
과거법을 취하지 말고,
亦不貪著未來事。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말고, 
不於現在有所住。현재에도 머물지 않으면 
了達三世悉空寂。삼세가 모두 공적함에  
요달하리라.' 하셨으니,
但看。僧問趙州。다만 어떤 스님이 조주 화상에게 
狗子還有佛性也無。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州云無。조주 화상이 '없다[無]' 하신 것을 살피되
請只把閑思量底心。부디 부질없이 사량하는 마음을 붙잡아 
回在無字上。무(無)자 위에 올려놓고
試思量看。시험 삼아 사량해 보십시오. 
忽然向思量不及處。홀연히 사량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得這一念破。이 한 생각이 깨어지면
便是了達三世處也。문득 삼세에 요달하는 곳이며,
了達時安排不得。요달했을 때는 안배할 수 없고 
計較不得。引證不得。계교할 수도 없으며 인증할 수도 없으니, 
何以故。了達處不容安排。왜냐하면 요달한 곳이 
안배를 용납하지 않고 
不容計較。不容引證。계교를 용납하지 않으며 
인증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縱然引證得。計較得。安排得。설령 인증하고 계교하고 안배했다 해도
與了達底。了沒交涉。요달과는 교섭할 수 없습니다. 
但放蕩蕩地。다만 턱 놓아 탕탕하게 하고   
善惡都莫思量。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말며 
亦莫著意。亦莫忘懷。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생각을 잊지도 마십시오.
著意則流蕩。생각에 집착하면 탕탕함이 떠나버리고 
忘懷則昏沈。생각을 잊으면 혼침에 빠질 것이며, 
不著意不忘懷。생각에 집착하지도 말고 
생각을 잊지도 않으면  
善不是善。惡不是惡。선이 선이 아니요 악이 악이 아닙니다.
若如此了達。만약 이렇게 요달한다면 
生死魔何處摸索。생사의 마구니를 
어느 곳에서 찾아보겠습니까?
一箇汪章。聲名滿天下。왕언장이라는 한 사람의 
명성이 천하에 가득하니
平生安排得。평생에 안배하고 
計較得。引證得底。계교하고 인증한 것들이
是文章。是名譽。是官職。바로 문장이요 명예요 관직일 것입니다. 
年收因結果處。만년에 씨를 거두고 열매 맺는 데에 
那箇是實。무슨 진실한 것이겠으며, 
做了無限之乎者也。한없이 부질없는 것들일 뿐인데  
那一句得力。어느 한 구절에서 힘을 얻겠습니까?
名譽彰。명예가 기왕 드러났는데 
與匿德藏光者。相去幾何。덕을 숨기고 빛을 감춘 사람과는
그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官職已做到大兩制。관직이 이미 대양제(大兩制)에 이르렀으니 
與作秀才時。相去多少。서생으로 있을 때와는 
그 차이가 얼마나 됩니까? 
而今已近七十歲。이제는 이미 70세에 가까워서 
儘公伎倆。待要如何。공의 기량이 다하였는데  
무엇을 더 기다릴 것이며, 
臘月三十日。作生折合去。납월 30일에는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無常殺鬼念念不停。무상이라는 살귀(殺鬼)는 
순간순간 머물지 않습니다.
雪峰覺云光陰倏忽暫須臾。설봉진각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세월은 순식간에 흐르거늘 
浮世那能得久居。뜬세상에 어찌 오래 살 수 있으리요?.
出嶺年登三十二。고개넘어 행각에 오른 해가 32살이니  
入閩早是四旬餘。민(閩)땅으로 들어 온지 벌써 40년이로다.
他非不用頻頻남을 쓸데없이 빈번히 들출 것이 아니라
己過還須旋旋除。자기의 허물을 돌이키고 돌이켜서 제거하라.
報滿城朱紫道。성(城) 안에 가득한 
고관대작들[朱紫]에게 알리노니 
閻王不怕佩金魚。염라대왕은 금어(金魚) 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古人苦口叮嚀事。고인이 입 쓰도록 당부하신 말씀이 
무슨 일 때문이겠습니까?
世間愚庸之人。飢寒所迫。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핍박당하여   
日用無他念。일상에 다른 생각이 없고 
只得身上稍煖肚裏不飢。便了。단지 육신이 조금 따뜻하고 
뱃속이 허기지지 않으면 그만이라
只是這兩事。오직 이 두 가지 일 뿐이니 
生死魔卻不能惱。생사의 마구니가 
도리어 괴롭힐 수 없습니다. 
以受富貴者較之。부귀한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輕重大不等。가볍고 중요함의 크기가 같지 않아서
受富貴底。부귀를 누리는 사람들은 
身上常煖。肚裏又常飽。육신이 이미 항상 따뜻하고
뱃속도 항상 가득하거니와
不被這兩事所迫。기왕 이 두 가지 일에 핍박받지 않지만
又卻多一件不可說底無狀。또 도리어 대개는 한 가지의 
말할 수 없고 현상이 없는 것이 있어서 
以故常在生死魔網中。그 때문에 늘 생사 마구니의 그물 속에서 
無由出離。벗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除宿有靈骨方見得徹識得破。오직 숙세에 영골(靈骨)이 있어야
마침내 보고 투철히 알고 깨뜨릴 것입니다. 
先聖云。옛 성인께서  
瞥起是病。不續是藥。 '잠깐 일으키는 것은 병이지만 
계속하지 않으면 약인 것이니 
不怕念起。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고
唯恐覺遲。오직 늦게 깨닫는 것을 
무서워하라.' 하였습니다.
佛者覺也。부처란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其常覺故。謂之大覺。항상 깨어 있기 때문에 
대각(大覺)이라 하고 
亦謂之覺王。또 각왕(覺王)이라 하지만
然皆從凡夫中做得出來。다 범부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丈夫。我寧不爾。그가 기왕에 장부라면  
나는 어찌 그렇게 되지 못하겠습니까? 
百年光景能得幾時。백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念念如救頭然。순간순간마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십시오. 
做好事恐做不辦。좋은 일도 오히려 
하지 못할까 두렵거니와
況念念在塵勞中而不覺也。하물며 순간순간마다 진로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可畏可畏。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近收呂居仁四月初書。근래에 여거인(呂居仁)이 
4월 초에 보낸 편지에서
報曾叔夏劉禮死。증숙하(曾叔夏)와 유언례(劉彦禮)가 
사망하였다 하면서, 
居仁云。交遊中。여거인은 교류하는 사람들 중에 
時復抽了一兩人。또 다시 두 사람이 빠졌으니 
直是可畏。가히 두려운 일이다 하였습니다. 
渠邇來此事甚切。그는 근래에 이 공부가 몹씨 간절해지고   
亦以瞥地回頭稍遲恨。또 순간에 머리 돌리기가  
늦어짐이 한스럽다 합니다. 
比已作書答之云。자주 답장을 써서 말해주기를, 
只以末後知非底一念正。 '다만 마지막에나마 잘못을 안 
그 한 생각으로 바른 길을 삼고 
不問遲速也。더디고 빠름은 묻지 마십시오. 
知非底一念。잘못을 아는 그 한 생각이 
便是成佛作祖底基本。곧 부처 되고 조사 되는 기본이요, 
破魔網底利器。마구니 그물을 찟는 예리한 무기이며, 
出生死底路頭也。생사를 벗어나는 길머리입니다.' 하였습니다.
願公亦只如此做工夫。원컨대 공께서도 
다만 이와 같이 공부하여 
做得工夫漸熟。공부가 점점 익숙해지면 
則日用二六時中便覺省力矣。일상의 열 두 때 가운데
문득 힘이 덜어짐을 깨달을 것입니다. 
覺得省力時。不要放緩。힘이 덜어짐을 깨닫거든  
놓아서 느슨하게 하지 말고 
只就省力處崖將去。다만 힘이 덜어지는 곳을 향해 몰아가십시오. 
崖來崖去和這省力處。몰아오고 몰아가면 
힘이 덜어지는 곳에 화합하고 
亦不知有時不爭多也。언제 덜어진 줄도 알지 못할 것이니, 
但只看箇無宇。다만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고 
莫管得不得。얻고 못얻는 데에 간여치 마십시오. 
至禱至禱。빌고 또 빕니다. 
又。25. 왕내한 언장(彦章)에의 답서②
伏承。杜門息交。편지를 받아보니 
문을 닫아 교류를 끊고서 
世事一切闊略。세상사를 모두 등한시하고
唯朝夕以某向所話頭提撕。오직 조석으로 내가 들게 한 화두로 
힘을 내 떨쳐 일어나신다 하니 
甚善甚善。심히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辦此心。當以悟則。기왕 이러한 마음을 결정하셨으니 
마땅히 깨달음을 원칙으로 삼으십시요. 
若自生退屈。만약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서서 
謂根性陋劣。更求入頭處。근성이 열등하니 들어갈 곳을 
다시 찾아보겠다 한다면
正是含元殿裏問長安。정녕 함원전(含元殿) 속에서 
在甚處爾。장안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격입니다. 
正提撕時是阿誰。바로 화두로 제시(提撕)할 때는 누구며, 
能知根性陋劣底又是阿誰。근성이 열등함을 아는 것은 또 누구며,
求入頭處底又是阿誰。다시 들어갈 곳을 찾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妙喜不避口業。묘희가 구업을 피하지 않고 
分明居士說破。분명히 거사를 위해 설파하거니와 
只是箇汪章。更無兩箇。다만 하나의 왕언장이요  
다시 두 사람이 없습니다.
只有一箇汪章。다만 하나의 왕언장만 있을 뿐인데 
更那裏得箇提撕底다시 어느 속에서 
화두로 제시하는 사람과 
知根性陋劣底求入頭處底來。근성이 열등함을 아는 사람과
다시 들어갈 곳을 찾는 사람을 얻겠습니까? 
當知皆是汪章影子。마땅히 아실 것은  
이 모두가 왕언장의 그림자이니
並不干他汪章事。다른 왕언장의 일에 간여하지 마십시요.
若是箇汪章。만약 이것이 진실한 왕언장이라면 
根性必不陋劣。근성이 반드시 열등하지 않고,
必不求入頭處。반드시 다시 들어갈 곳을 찾지 않을 것이며, 
但只信得自家主人公及。단지 자기의 주인공을 믿기만 하면 
並不消得許多勞攘。허다한 노고를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昔有僧問仰山。옛날에 어떤 스님이 
앙산(仰山)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禪宗頓悟畢竟入門的意如何。 "선종이 돈오(頓悟)라면  
필경에 입문의 참 뜻은 어떠합니까?"
山曰。此意極難。앙산 화상이 말했습니다. 
 "이 뜻은 지극히 어렵다. 
若是祖宗門下上根上智。만약 조종(祖宗)문하의 
상근상지(上根上智)라면
一聞千悟。得大總持。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달아서 
큰 총지를 얻겠지만  
此根人難得。이런 근기의 사람은 찾기 어려워서
其有根微智劣。그 어떤 근기도 미약하고 
지혜도 열등하다. 
所以古德道。그러므로 고덕이 말씀하시기를,
若不安禪靜慮。 '만약 선의 정려(靜慮)에서 
안은하지 못하면 
到這裏總須茫然。여기 이르러서는 총체적으로 
망연한 것이다.'고 하였느니라."
僧曰。除此格外。그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격외(格外)의 도리를 제하고 
還別有方便令學人得入也無。달리 어떤 방편이 있어서 
학인들이 얻어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山曰。別有別無。앙산 화상이 말했습니다. 
 "달리 있다거나 없다고 하면 
令汝心不安。그대의 마음이 불안할 것이니 
我今問汝。汝是甚處人。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노라.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曰幽州人。 "유주 사람입니다." 
山曰。汝還思彼處否。 "그대는 그곳을 생각하는가?" 
曰常思。 "항상 생각합니다." 
山曰。彼處樓臺林苑人馬駢 "그곳은 누대와 동산에 사람과 말들이 많으니 
汝返思思底。그대는 생각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還有許多般也無。그래도 허다한가?" 
曰某甲到這裏一切不見有。 "저는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山曰。汝解猶在境。앙산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알음알이가 오히려 경계에 매여있다. 
信位即是。人位即不是。신위(信位)는 옳지만 
인위(人位)가 옳지 못한 것이니라." 
妙喜已是老婆心切。묘희가 노파심이 간절하여 
須著更下箇注다시 거기에 주해를 붙이거니와   
人位即是汪章。인위는 왕언장이요, 
信位即是知根性陋劣。신위는 곧 근성이 열등함을 아는 것과 
求入頭處底。다시 들어갈 곳을 찾는 것입니다. 
若於正提撕話頭時。만약 바로 화두를 제기할 때 
返思能提撕底。능히 제기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還是汪章否。그래도 왕언장입니까? 
到這裏間不容髮。여기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한 틈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若佇思停機。만약 생각을 멈추고 기틀을 멈춘다면 
則被影子惑矣。그 그림자에 미혹당하게 될 것이니
請快著精彩。부디 정신을 바짝 차려서 
不可忽不可忽。소홀히 하지 말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記得前書中嘗寫去。기억해보니 
예전의 편지에도 쓴 적이 있는데 
得息心。且息心已。마음을 쉬고 또 마음을 쉬고서는
過去底事。或善或惡。과거의 일에는 선이거나 악이거나 
或逆或順。都莫理會。혹은 역(逆)이거나 순(順)이거나를 
모두 헤아리지 말고,
現在事得省便省。현재의 일에서 덜어내고 또 덜어내며
一刀兩段不要遲疑。한 칼에 두 동강 내기를 
지체하지 않는다면 
未來事自然不相續矣。미래의 일에는 자연히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不識曾如此覷捕否。이미 이와 같이 
살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這箇便是第一省力做工夫處也。이것이 곧 제일의 
힘을 더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至禱至禱。빌고 또 빕니다. 
又。26. 왕내한 언장(彦章)에의 답서③
伏承。편지를 받아보니, 
第五令嗣。以疾不起。다섯째 아들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하셨는데
父子之情。千生百劫부자의 정은 천생과 백 겁 동안 
恩愛習氣之所流注。은애와 습기가 흘러 들어간 것이라서
想當此境界。無有是處。그런 지경에 당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합니다.
五濁世中種種虛幻。오탁악세에 갖가지가 허망한 허깨비요
無一實。진실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니
請行住坐臥常作是觀。부디 행주좌와에 늘 이렇게 살펴서 
則日久月深。漸漸消磨矣。일구월심하면 점점 녹아질 것입니다.
然正煩惱時。그러나 정히 괴로울 때는
子細揣摩窮詰。從甚處起。어디서 일어났는지를 자세히 헤아리고 
더듬어서 찾아보십시요.
若窮起處不得。만약 일어난 곳을 찾지 못했거든
現今煩惱底。卻從甚處得來。지금의 괴로움은 
어느 곳에서 왔겠습니까?
正煩惱時。정히 괴로울 때 
是有是無。是虛是實。그것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허망한 것입니까, 진실한 것입니까?
窮來窮去。心無所之。찾고 찾아가면 
마음이 갈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要思量但思量。要哭但哭。생각하시려거든 단지 생각하시고 
울고 싶거든 단지 우십시오.
哭來哭去。思量來思量去。울고 울어가며, 생각하고 생각해가다 
得藏識中떨치고 일어나서 아뢰아식[藏識] 안의 
許多恩愛習氣盡時。허다한 은애와 습기가 다해버릴 때 
自然如水歸水。자연히 얼음이 녹아 물로 되돌아가듯이 
還我箇本來無煩惱나를 본래대로 돌이켜서 괴로움도 없고 
無思量無憂無喜底去耳。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는
바탕으로 돌아갈 따름일 것입니다.
入得世間。出世無餘。세간에 들어가서 
세간을 남김없이 벗어나면
世間法則佛法。세간법이 곧 불법이며 
佛法則世間法也。불법이 곧 세간법입니다.
父子天性一而已。아버지와 아들의 천성이 하나인데
若子喪而父不煩惱不思量。만약 아들이 죽었을 때  
아버지가 괴롭지도 그립지도 않거나
如父喪而子不煩惱不思量。아버지가 죽었을 때 
아들이 괴롭지도 그립지도 않는 일이
還得也無。있을 수 있겠습니까?
若硬止遏哭時又不敢哭。만약 억지로 참아서  
울고 싶을 때 또 감히 울지 못하고
思量時又不敢思量。생각날 때 또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면
是特欲逆天理滅天性이것은 특히 천리를 거스르고 
천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며,
揚聲止響潑油救火耳。소리를 지르고 메아리 울리지 못하게 하고, 
기름을 뿌려놓고 불을 끄려는 것입니다. 
正當煩惱時。總不是外事。바로 괴로움에 처했을 때는 
모두가 외부의 일이 아니지만 
且不得作外邊想。또 외부의 일이라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永嘉云。영가 선사께서는 
無明實性即佛性。 '무명의 진실한 성품이 곧 불성이요,
幻化空身即法身。허깨비 텅 빈 몸이 곧 법신이다' 하셨으니
語實語不誑不妄等語。이것은 진실한 말이요  
속이지도 허망하지도 않은 말입니다.
見得了。이렇게 보아버리면 
要思量要煩惱。亦不可得。생각하고자 하고 슬퍼하고자 해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作是觀者名正觀。이렇게 살피는 것을 정관(正觀)이라 하고
若他觀者名邪觀。다르게 살피면 사관(邪觀)이라 합니다.
邪正未分。正好著力。삿되고 바른 것이 아직 구분되지 않는다면 
정히 노력하십시요.
此是妙喜決定義이것은 묘희의 결정한 뜻이지만
無智人前莫說。지혜가 없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마십시요.
  答夏運使27. 하운사(夏運使)에의 답서
示諭。道契則霄壤共處。편지에서 '도와 계합하면 
하늘과 땅이 같은 곳이요,
趣異則覿面楚越。나아가는 길이 다르면 얼굴 마주해도
초나라와 월나라다.' 하였는데 
誠哉是言。참으로 진실하군요 이 말씀이.
即此乃不傳之妙。이것이 곧 전하지 못하는 
오묘함일 것입니다.
左右發意。欲作妙喜書。그대가 묘희에게 
편지를 쓰리라 마음 먹고서
未操觚拂紙。아직 붓을 잡고 종이를 펴기도 전에 
已兩手分付了也。이미 편지를 양 손으로 보내버린 것이니
又何待堅忍究竟。또 왜 억지로 참고 
편지가 다 써지기를 기다리고 
以俟他日耶。띁어 볼 날을 기다리겠습니까?
此箇道理。唯證者方默默相契。이 도리는 오직 증득한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묵묵히 계합할 것이요
難與俗子言。속된 사람들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延平乃閩嶺佳處。연평(延平)은 민령(閩嶺) 땅의 
화려한 곳인데
左右能自調伏그대가 능히 스스로 조복하여
逆順關子所轉。역순의 문빗장에 걸려있지 않으시니
便是大解脫人。곧 크게 해탈한 사람입니다.
此人能轉一切關子。이런 사람은 능히 모든 문빗장을 다루며
日用活鱍鱍地。일상에서 펄펄 살아 있으니
拘牽惹絆他不得。달리 잡아 맬 수가 없습니다.
苟若直下便恁承當。만약 곧바로 이렇게 받아들여 감당한다면
自然無一毫毛於我作障。자연히 털끝 하나도 
나를 장애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古德有言。고덕이 말씀하시기를,
佛說一切法。度一切心。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체의 법은 
일체의 마음을 제도하기 위함이지만
我無一切心。何用一切法。나에게는 일체의 마음이 없으니 
일체의 법은 어디에 쓰리요.' 하였습니다.
又懶融云。恰恰用心時。또 나융 화상께서는
넉넉히 마음을 쓸 때는 
恰恰無心用。넉넉히 무심하게 쓰라. 
曲談名相勞。直說無繁重。정직하지 못한 말은 겉만 번지레하고 
곧은 말은 번거로움이 없느니라.
無心恰恰用。常用恰恰無。무심을 반드시 쓰되 
항상 쓰는 일이 반드시 없다면
今說無心處。不與有心殊。지금 말하는 무심처가  
유심(有心)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
非特懶融如是。특별히 나융 화상만 그렇지 않고
妙喜與左右亦在其中。묘희나 그대도 역시 그 안에 있으나
其中事難拈出似人前。그 안의 일은 잡아내서 
사람들 앞에 보이기 어렵거니와
所謂默默相契是也。이른바 묵묵히 서로 계합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