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慧普覺禪師書(書狀)

대혜보각선사서 제 28권 [서장(書狀)④]

碧雲 2016. 10. 22. 18:30
大慧普覺禪師書 卷第二十八대혜보각선사서 (서장) 제 28권
  宋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송나라 경산 능인선원 주지법통 
         慧日禪師臣蘊聞 上進혜일선사 온문(普慈蘊聞)이 모아 올림 
  
答呂舍人(居仁)28. 여사인(呂舍人) 
거인(居仁)에의 답서 ①
千疑萬疑。只是一疑。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다만 이 한 가지 의심이니,  
話頭上疑破。화두 위에서 의심을 깨뜨려버리면 
則千疑萬疑一時破。곧 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한꺼번에 깨뜨려질 것이지만,  
話頭不破。화두를 깨뜨리지 못할 것 같으면  
則且就上面與之廝崖。다시 화두와 더불어  
벼랑끝까지 겨루어보십시요. 
若棄了話頭。만약 화두를 버리고 
卻去別文字上起疑。도리어 문자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上起疑。경전의 가르침을 의심하거나,
古人公案上起疑。고인의 공안을 의심하거나, 
日用塵勞中起疑。일상의 진로 중에 의심을 일으키면 
皆是邪魔眷屬。그것이 모두 삿된 마군의 권속입니다.  
第一不得向起處承當。제일가는 것은 (화두)들고 
(의심)일어난 곳을 향해 알려 하지 말고,
又不得思量卜度。또 사량하거나 점쳐보지도 말며,
但著意就不可思量處思量。다만 뜻을 붙여서 
사량할 수 없는 곳에 나아가 사량하면
心無所之。마음이 갈 곳 없을 것이라 
老鼠入牛角便見倒斷也。늙은 쥐가 소의 뿔 속에 들어가서 
문득 끊어진 곳을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又方寸若鬧。또 마음이 소란하거든 
但只狗子無佛性話。다만 '구자무불성' 화두만을 드십시오. 
佛語祖語諸方老宿語。부처님의 말씀과 조사의 말씀과 
제방 노숙(老宿)의 말씀과
千差萬別。천차만별한 것들이 
若透得箇無字。一時透過。만약 무자(無字) 화두를 뚫어버리면
일시에 모두 뚫어져서 
不著問人。사람들에게 묻지 않게 될 것이지만, 
若一向問人。만약 사람들에게 오로지 
佛語又如何。 '부처님 말씀은 어떻고, 
祖語又如何。조사의 말씀은 또 어떠하며,
諸方老宿語又如何。제방의 노숙들 말씀은 
또 어떻습니까?' 하고 묻기만 한다면
永劫無有悟時也。영겁토록 깨달을 때가 없을 것입니다.
答呂中(隆禮)29. 여랑중(呂郞中) 
융례(隆禮)에의 답서 
令兄居仁。兩得書。그대의 형 거인(居仁)에게서 
편지를 두 번 받아보니 
此事甚忙。이 일로 매우 바쁘다고 하였는데, 
然亦當著忙。그렇습니다. 마땅히 바빠야 합니다.
年已六十從官又做了。나이가 이미 60이고 
관직생활도 충분히 하였으니
更待如何。다시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若不早著忙。만약 바삐 서두르지 않는다면 
臘月三十日如何打疊得辦。죽는 날에는
어떻게 준비하여 대처하겠습니까? 
聞左右邇來亦忙。듣자하니 그대도 
요즘에는 바쁘다던데 
只這著忙底。다만 이 바쁨에 집착하는 바탕이 
便是臘月三十日消息也。곧 죽음이 닥치는 소식입니다.
如何是佛。乾屎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這裏不透。여기에서 뚫지 못하면 
與臘月三十日何異。죽는 날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措大家一生鑽故紙。천하의 서생들[措大家]이 
일생동안 옛 종이만 뚫으면서
是事要知。이 일을 알고자 
博覽群書高談闊論。여러가지 책을 두루 읽고 
유쾌히 담론을 펼치며 
孔子又如何。孟子又如何。공자는 또 어떻고, 맹자는 또 어떻고,
莊子又如何。周易又如何。장자는 또 어떻고, 주역은 또 어떻고,
古今治亂又如何。고금의 치세는 또 어떻고 하며 
被這些言語使得來。七八倒。그러한 사소한 말에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넘어지는 일을 당합니다.
諸子百家纔聞人著一字。제자백가(諸子百家)에 대해 
사람들이 한 글자만 거론해도 
便成卷念將去。금방 책을 쓸만큼 기억해 내고,   
以一事不知恥。한 가지 일이라도 알지 못하면 
수치로 여기면서도    
及乎問著他自家屋裏事。자기 집안 일에 대해 남이 물으면 
並無一人知者。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可謂終日數他寶自無半錢分。가히 온종일 남의 보화만 세고 
자신에게는 반푼도 없다 하겠습니다. 
空來世上打一遭。헛되이 세상에 와서 
한 바퀴 돌아치다가 
脫卻這殼漏子。이 육신껍데기를 벗어버리면
上天堂也不知。천당에 올라 갈 것인지 
入地獄也不知。지옥에 떨어질 것인지도 모르고,
隨其業力流入諸趣並不知。업력을 쫓아 여러 갈래로 
흘러 들어가는 줄도 모르면서도  
若是別人家裏事。만일 이것이 남의 집안 일이라면 
細大無有不知者。작거나 크거나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士大夫讀得書多底無明多。사대부가 읽은 책이 많으면 무명이 많고
讀得書少底無明少。읽은 책이 적으면 무명이 적으며,
做得官小底人我小。맡은 관직이 낮으면 인아상이 작고
做得官大底人我大。맡은 관직이 높으면 인아상이 큽니다. 
自道。我聰明靈利。스스로 말하되, 
 '나는 총명하고 영리하다'고 하다가
及乎臨秋毫利害。털끝만한 이해에라도 봉착하면 
聰明也不見。靈利也不見。총명은 보이지 않고 
영리함도 보이지 않아서  
平生所讀底書一字也使不著。평생에 읽은 책의 한 글자도 
붙여볼 수가 없습니다.
蓋從上大人丘乙己時。모두가 성인의 언덕 위로 
자기를 구어갈 때에서는 
便錯了也。크게 어긋나버리고 
只欲取富貴耳。단지 부귀만 얻으려 할 뿐입니다.
取得富貴底。부귀를 얻은 사람은 
又能有幾人。또 몇 사람이나 
肯回頭轉腦向自己跟下推窮。머리를 돌리고 생각을 굴려서 
자기의 근본을 향해 
我這取富貴底。 '나 이 부귀를 얻은 사람은 
從何處來。어느 곳에서 왔으며,
即今受富貴底。지금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異日卻向何處去。다른 날 다시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하고 
추궁하려 하겠습니까?
不知來處。기왕 온 곳을 알지 못하고 
又不知去處。또 갈 곳을 알지 못하면
便覺心頭迷悶。곧 마음이 답답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正迷悶時亦非他物。정히 답답할 때도 
또한 다른 것이 아니니
只就這裏看箇話頭。다만 그 속에 나아가서 
화두를 살피십시요.
僧問雲門。如何是佛。어떤 스님이 운문(雲門) 화상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門云。乾屎운문 화상은 
"마른 똥막대기니라.” 하였습니다.
此話。忽然伎倆盡時。다만 이 화두를 들어서 
홀연히 기량이 다할 때에 
便悟也。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切忌尋文字引證。절대로 문자를 찾아서 인증하거나 
胡亂量註解。어지럽게 헤아리거나 
주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縱然註解得分明說得有下落。비록 주해가 분명하고 
설명이 맞아 떨어자라도
盡是鬼家活計。모두가 귀신집 살림살이입니다. 
疑情不破。生死交加疑。의정(疑情)을 파해버리지 못하면 
생사가 번갈아 더해지지만
情若破。의정을 만약 부셔버린다면 
則生死心矣生死心곧 생사의 마음이 끊어지고 
생사의 마음이 끊어지면 
則佛見法見亡矣。부처라는 소견[佛見]이나 
법이라는 소견[法見]도 끊어질 것입니다.
佛見法見亡。부처견[佛見]과 법견(法見)도 
오히려 없어지는데 
況復更起眾生煩惱見耶。하물며 다시 중생견이나 번뇌견이 
일어나겠습니까?
但將迷悶底心。다만 답답한 마음을 가져다 
移來乾屎上。 '마른 똥막대기' 화두 위로 옮겨와서 
一抵抵住。한번 던져서 던진 대로 머물면 
怖生死底心。생사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迷悶底心。답답해하는 마음과 
思量分別底心。사량분별하는 마음과
作聰明底心。총명을 짓는 마음이 
自然不行也。자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覺得不行時。일어나지 않게 된 것을 깨달았을 때 
莫怕落空。공허함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忽然向抵住處消息。홀연히 던져 머문 곳을 향해 
소식(消息)이 끊어져서 
不勝慶快平生평생 경사스럽고 유쾌함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得消息了。소식 끊어짐을 얻으면
起佛見法見眾生見。부처견, 법견, 중생견를 일으키거나 
思量分別。作聰明說道理。사량분별하고 총명을 짓고 
도리를 설하는 데에 
都不相妨도무지 서로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日用四威儀中。일상의 행주좌와에서 
但常放蕩蕩地。항상 탕탕한 자리에 놓여지게 하고
靜處鬧處常以乾屎提撕。고요한 곳이나 소란한 곳에서나 
항상 간시궐(乾屎)로 제시(提撕)하여 
日往月來水牯牛自純熟矣。날이 가고 달이 오면 수고우(水牯牛)가 
자연히 순숙해질 것입니다. 
第一不得向外面別起疑也。제일가는 것은 화두 밖을 향해 
달리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乾屎上疑破간시궐 위에서 의심을 파해버리면 
則恒河沙數疑一時破矣。항하 모래와 같은 의심들이 
한꺼번에 부셔져버릴 것입니다. 
前此亦嘗如此寫與居仁。이 전에 또 그 전에도 이렇게 써서 
여거인(呂居仁)에게 주었지만 
比趙景明來得書。종종 조경명(趙景明)이 와서 주는
편지를 보면  
書中再來問云。편지에서 재차 물어 오기를,
不知離此別有下工夫處也無。"몰라서 드리는 말씀인데, 
화두를 떠나서 달리 공부할 것은 없습니까? 
又如手動足著衣喫飯。또 손발을 움직여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는  
當如何體究。마땅히 어떻게 참구해야 합니까? 
復只看話頭。다만 또 화두만 잡아야 합니까?
復別有體究。달리 또 참구할 것이 있습니까?
又平生一大疑事。또 평생일대의 의문사를 
至今未了。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으니,
只如死後斷滅不斷滅。다만 죽은 뒤에 없어지고 마는 것인지 
없어지지 않는지를
如何決定見得。어떻게 결정히 볼 수 있겠습니까? 
又不要引經論所說。또 경론의 말씀을 끌어들이지 말고, 
不要指古人公案。고인들의 공안도 가리킬 것 없이 
只據目前直截分明。다만 눈 앞에 들어서 딱 잘라 분명히 
指示剖判斷滅不斷滅實處。단멸하는지 단멸하지 않는지를 
판단하여 가르쳐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觀渠如此說話。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건대  
返不如三家村裏省事漢。도리어 서너 집 사는 촌구석의  
할 일 없는 놈만 못하고, 
卻無如許多糞壤。또 허다한 똥 덩어리만 한 것도 없어서  
死也死得瞥脫。죽어야 죽음에서 얼핏 벗어날 것입니다. 
分明向他道。분명히 그에게 말하기를, 
千疑萬疑只是一疑。“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다만 이 한 가지 의심이라  
話頭上疑破。화두 위에서 의심을 파해버리면 
則千疑萬疑一時破。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한꺼번에 부셔져버릴 것이니, 
話頭不破。화두를 파하지 못하였거든  
則且就話頭上與之廝崖。곧 또 화두 위에 나아가서 
벼랑으로 몰아가십시요. 
若棄了話頭。만약 화두를 버리고 
卻去別文字上起疑。돌아가서 달리 문자 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上起疑。경전의 가르침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古人公案上起疑。고인들의 공안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日用塵勞中起疑。일상의 진로 중에서 의심을 일으킨다면 
皆是邪魔眷屬。이 모두가 삿된 마구니의 권속입니다. 
又不得向起處承當。또 화두 들고 의심 일어나는 곳을 향해서 
알려고 하지 말고,
又不得思量卜度。또 사량하고 점치려하지도 말아서 
但只著意就不可思量處思量。다만 뜻을 붙이고 
사량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서 사량하면
心無所之。마음 갈 곳이 없어져 
老鼠入牛角便見倒斷也。늙은 쥐 소뿔 속에 들어가듯이 
곧 끊어진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寫得如此分曉了。이와 같이 분명하게 써서 주었는데 
又卻更來忉忉怛怛地問또다시 편지를 보내와서
어지럽게 물으니 
不知許多聰明知見向甚處去也。그 허다한 총명지견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不信道。믿지 못하겠습니까?
平生讀底書。평생 동안 독서한 것이 
到這裏一字也使不著。여기에 이르러서는
한 글자도 붙여보지 못합니다.
而今不得已。그러나 이제 부득이 
他放些惡氣息。다시 그를 위해 
약간의 더러운 냄새를 피우려 합니다.
若只恁休去。만약 이렇게만 하고 그만 둔다면 
卻是妙喜被渠問了。도리어 묘희가 그에게 질문을 받고서도
更答不得也。다시 답장을 못하게 될 것이라, 
此書纔到。이 편지가 도착하거든 
便送與渠一看。곧바로 보내 주어서 한번 보게 하십시오.
居仁自言。거인(居仁)이 스스로 
行年六十歲。나이가 60이라고 말하면서도 
此事未了。이 일을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하니 
問渠。 未了底。그에게 묻겠습니다.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復是手動足著衣喫飯底。손 들고 발 움직이며 
옷 입고 밥 먹는 것입니까? 
未了若是手動足著衣喫飯底。모르는 것이 만약 손 들고 발 움직이며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라면
又要如何了他。또 무엇을 더 알고자 합니까? 
殊不知。只這欲了知決定見得다만 그 사후에 단멸인지 부단멸인지를 
死後斷滅不斷滅底。결정코 알야야 하겠다는 것이 
便是閻家老子面前喫鐵棒底。바로 염라대왕 면전에서 무쇠방망이 
얻어맞을 일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此疑不破。이 의심을 파하지 못하면 
流浪生死。未有了期。생사에 유랑하기를 
마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向渠道。그에게 말하기를,  
千疑萬疑只是一疑。 '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다만 이 한 가지 의심이니 
話頭若破。화두를 만약 깨트리면
死後斷滅不斷滅之疑。사후에 단멸이다 아니다 하는 의심도 
當下冰銷瓦解矣。당장에 얼음 녹듯 
풀릴 것이다.'고 하였으나
直截分明。다시 딱 잘라서 분명하게 
指示剖判斷滅不斷滅。단멸인지 단멸하지 않는지를
둘로 갈라서 열어 보이라고 하니,
如此見識與外道何異。이와 같은 식견(識見)은 
외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平生做許多之乎者也。평생 허다하게 아는 척하였으나 
要作何用。꼭 해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許多遠地。그는 이미 허다하게 먼 곳으로 
放這般惡氣息來熏人。이 따위 더러운 냄새를 피워서 
사람들이 맡게 하였습니다. 
妙喜不可只恁休去。묘희도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으니  
亦放些惡氣息。또한 약간의 더러운 냄새를 피워서
卻去熏他則箇。그가 맡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不要引經及古人公案。그는 경전의 가르침이나 
고인의 공안을 인용하지 말고 
只據目前直截分明。다만 목전에서 딱 잘라 분명하게 
指示斷滅不斷滅實處。단멸과 부단멸의 진실한 곳을
가리켜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昔志道禪師問六祖。옛날에 지도(志道) 선사가 
육조 혜능스님께 여쭈었습니다.
學人自出家。 覽涅槃經。"학인이 출가해서부터 열반경을 읽기까지 
近十餘載。10여년을 하였는데도
未明大意願師垂誨。아직 대의를 밝히지 못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요.”
祖曰。汝何處未了。육조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어떤 곳을 알지 못하는가?”
對曰。諸行無常是生滅法。대답하기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바로 생멸법이니
生滅滅已寂滅樂。생멸을 멸해버리면 
적멸이 낙이 된다.’고 하였는데 
於此疑惑。여기에 의혹이 있습니다." 하자, 
祖曰。汝作生疑。육조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의심하는가?”
對曰。지도선사가 대답했습니다.
一切眾生皆有二身。"일체중생은 두 가지 몸이 있는데
謂色身法身也이를테면 색신과 법신입니다.
(此乃居仁同道)(이 대목은 여거인과 도가 같다.) 
色身無常。有生有滅。색신은 무상하여 생멸이 있거니와 
法身有常。無知無覺。법신은 항상하여 
앎도 없고 느낌도 없습니다.
經云。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生滅滅已寂滅樂者。 '생멸을 멸해버리면 
적멸이 낙이 된다'고 하였는데,
未審是何身寂滅。何身受樂。어떤 몸이 적멸하고  
어떤 몸이 낙을 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若色身者。만약 색신이라면 
色身滅時四大分散。색신이 소멸할 때에는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지니 
全是苦。苦不可言樂。온전히 괴로움이라. 
괴로움을 낙이라 말할 수 없고, 
若法身寂滅。만약 법신이 적멸하다면 
即同草木瓦石。초목와석과 같을 터인데 . 
誰當受樂。누가 낙을 누리게 됩니까?
又法性是生滅之體。또 법성(法性)은 생멸의 본체[體]요 
五蘊是生滅之用。오온은 생멸의 작용[用]이라  
一體五用。한 체(體)에 다섯 가지 용(用)의  
生滅是常。생과 멸이 항상하거니와 
生則從體起用。생(生)은 곧 체에서 용을 일으킨 것이요, 
滅則攝用歸體。멸은 용을 거두어 체로 돌아가는 것이니  
若聽更生。만약 다시 태어남이 허락된다면 
即有情之類。不斷不滅。유정 무리가 단멸하지 않을 것이지만
若不聽更生。만약 태어남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即永歸寂滅。곧 영원히 적멸에 돌아가서 
同於無情之物무정물과 같아질 것이니  
如是則一切諸法。그렇다면 일체의 모든 법이 
被涅槃之所禁伏。열반에 구금 당하게 되어
不得生。오히려 생겨나지 못할 터인데   
何樂之有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可與居仁一狀領過)(여거인과 한 가지로 허물을 다스려야 한다.)
祖師到這裏。혜능 조사께서는 여기에 이르러 
不能臨濟德山用事。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이 
쓰는 것(喝,棒)을 행하지 못하시고
遂放些氣息還他云。마침내 약간의 냄새를 풍기시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汝是釋子。"그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何習外道斷常邪見。어떻게 외도들의 단멸이다 항상하다 하는 
삿된 견해를 익혀서 
而議最上乘法。최상승법을 논의하는가? 
據汝所解。그대가 이해한 바를 거론하자면 
即色身外別有法身。색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어서 
離生滅求於寂滅。생멸을 떠나 적멸을 구하는 것이며, 
又推涅槃常樂。또 열반의 상락(常樂)을 추측하여 
言有身受者。몸으로 받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斯乃執吝生死耽著世樂。생사를 집착하고 아껴서  
세간의 낙에 탐착하는 것이니라. 
汝今當知。그대는 이제 마땅히 알라. 
一切迷人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미혹한 사람들이 
認五蘊和合自體相。오온(五蘊)의 결합을 
자기 본체의 모양인 줄로 여기고 
分別一切法外塵相。일체법은 바깥 경계의 모양이라 분별하여 
好生惡死念念遷流。살기 좋아하고 죽기는 싫어하며 
순간순간 흘러 다니면서
不知夢幻虛假。꿈이요 허깨비요 허망하고 
거짓인 것을 알지 못하고
枉受輪回。잘 못 윤회를 받거니와,   
以常樂涅槃。상락(常樂)의 열반을 
苦相。終日馳求。꺼꾸로 고통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종일토록 치달려 구하는지라  
佛愍此故。부처님은 이를 불쌍히 여기신 까닭에 
乃示涅槃樂。마침내 열반의 진실한 낙이 
那無有生相。한 순간에도 생(生)하는 모양이 없고,
那無有滅相。한 순간에도 멸(滅)하는 모양이 없어서
更無生滅可滅다시 생멸을 멸할 수 없음을 보이셨으니,  
(到此請著眼睛)(여기에 착안하시기 바랍니다.)
是則寂滅現前。이것이 곧 적멸이 현전한 것이요, 
當現前時。현전했을 때를 당하여  
亦無現前之量。현전했다는 헤아림이 없어야 
乃謂常樂。마침내 상락이라 할 것이니라. 
此樂無有受者。이 낙은 누리는 자도 없고 
亦無有不受者누리지 못할 자도 없거늘 
(猶較些子)(조금은 견줄 만 합니다.)
豈有一體五用之名。어찌 일체오용(一體五用)이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며, 
何況更言涅槃禁伏諸法하물며 어찌 또 열반이 모든 법을 구금하여
令永不生。영원히 생을 못하게 한다 하겠느냐?
此乃謗佛이것이야 말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훼손시키는 것이니라." 하시고, 
(居仁亦有一分子)(거인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다.)
聽吾偈曰나의 게송을 들어보라며 말씀하셨느니라. 
(分疏不下)(조목조목 나누어 적지 못합니다)
無上大涅槃。"더없이 높은 대열반은  
圓明常寂照。원만히 밝아 항상 고요히 비추나니, 
凡愚謂之死。어리석은 범부는 죽음이라 하고, 
外道執斷。외도들은 단멸이라 고집하며,
諸求二乘人。이승(二乘) 구하는 이들은 
目以無作。무작(無作)이라 지목하거니와
盡屬情所計。모두가 정으로 헤아린 것에 속하는지라 
六十二見本。62 가지 견해의 근본인 것이요,  
妄立虛假名。망령되이 세운 헛된 거짓 이름이거니 
為真實義어찌 진실한 뜻이 되리오? 
(居仁要見實處但看此一句子)
唯有過量人(未見其人)오직 역량이 넘치는 사람이라야
通達無取捨(居仁更疑三十年)취하고 버림이 없는 데에 통달하려니와 
以知五蘊法。及以蘊中我오온의 법과 온(蘊) 속의 나와 
(居仁在裏許求出無門)
外現眾色像(莫眼花)밖으로 나타난 모든 색상들과 
一一音聲相(殺人)낱낱 음성의 모양들이 
平等如夢幻(救得一半)평등하게 꿈 같고 
허깨비 같은 줄을 알아서 
不起凡聖見。범성의 견해를 일으키지도 말고 
不作涅槃解(亦未見其人)열반의 알음알이도 짓지 않으면 
二邊三際斷。양변과 세 경계가 끊어지리니, 
常應諸根用。항상 제근에 응하여 작용하되  
而不起用想。작용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分別一切法。일체법을 분별하되 
不起分別想。분별한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아서   
劫火燒海底。겁화(劫火)가 바다 밑바닥까지 태우고
風鼓山相擊。바람이 몰아쳐 산들이 서로 부딪쳐도
常寂滅樂。참되고 항상하는 적멸의 낙이라면  
涅槃相如是。열반의 모습이 그와 같을 것이니라.
吾今彊言說。令汝捨邪見내가 이제 굳이 말하여 
(只是居仁不肯捨)그대에게 삿된 견해를 버리게 하노니 
汝勿隨言解그대가 말을 따라 
(居仁記此)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면 
許汝知少分그대가 조금 알았다고 인허하리라."
(只這少分也不消得)
志道聞偈。지도 선사는 게송을 듣고 
忽然大悟홀연히 크게 깨달았습니다.
(葛藤不少)
只這一絡索。다만 이 한 줄거리 이야기는
便是直截分明指示居仁底指頭子也。곧 여거인에게 딱 잘라 
분명히 카리켜주는 손가락 끝이거늘  
居仁見此。여거인이 이것을 보고 
若道猶是經論所說。만약 오히려 경론의 말씀이라거나,
指古人公案。고인의 공안을 가리킨 것이라 하는 
作如此見。이와 같은 견해를 짓는다면
入地獄如箭射。쏘아진 화살처럼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答呂舍人(居仁)30. 여사인 거인(呂仁)에의 답서 ②
承。日用不輟做工夫。편지를 받아보니, 
일상에 그치지 않고 공부를 하신다는데 
工夫熟則撞發關子矣。공부가 무르익으면 
곧 문빗장을 쳐서 벗길 것입니다.
所謂工夫者。소위 공부라는 것은 
思量世間塵勞底心。세간의 진로(塵勞)를 헤아리는 마음을
回在乾屎上。간시궐 위로 돌려 놓고  
令情識不行。정식(情識)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如土木偶人相似。흙과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 같아야 합니다. 
覺得昏怛沒巴鼻可把捉時。의식이 혼미해지고 소용돌이에 빠져서도 
코를 잡을 수 있을 때가 
便是好消息也。곧 좋은 소식입니다. 
莫怕落空。공적에 떨어질까 두려워 말고  
亦莫思前算後幾時得悟。또 어느 때 깨닫게 될지 앞을 생각하거나 
뒷 일을 계산하지 마십시요. 
若存此心。便落邪道。만약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곧 삿된 길에 떨어질 것입니다. 
佛云。부처님께서   
是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이 법은 사량과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著即禍生。집착은 곧 화를 부르거니와 
知得思量分別不能解者是誰。사량 분별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只是箇呂居仁。다만 바로 여거인입니다. 
更不得回頭轉腦也。갑자기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리지 마십시오.
前此答隆禮書。앞서 융례에게 답한 편지에서 
說盡禪病矣。참선 병[禪病]을 다 설명하였는데, 
諸佛諸祖。並無一法與人。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가 
한 법도 사람들에게 준 것이 없고, 
只要當人自信다만 그 사람이 스스로 믿고, 
自肯自見自悟耳。스스로 긍정하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을 따름인 것이라  
若只取他人口頭說底。만약 다른 사람이 
입으로 한 말 만을 취한다면
恐誤人。사람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此事決定。이 일은 결정코 
離言說相。언설의 모양을 떠나고,
離心緣相。離文字相。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양을 떠나고, 
문자의 모양도 떠난 것이며, 
能知離諸相者。모든 모양을 떠난 것을 아는 것도 
亦只是呂居仁。또한 다만 이 여거인이요,  
疑他死後斷滅不斷滅。죽은 뒤에 단멸하는지 단멸하지 않는지 
亦只是呂居仁。의심하는 것도 또 다만 이 여거인이며, 
求直截指示者。곧바로 잘라서 지시하기를 구하는 것도 
亦只是呂居仁。또한 다만 이 여거인이며,
日用二六時中。하루 24시간 가운데 
或瞋或喜。혹은 화내고 혹은 기뻐하며, 
或思量或分別。혹은 사량하거나 분별하고  
或昏沈或掉혹은 혼침하거나 요란한 것도
皆只是呂居仁。모두가 다만 여거인입니다. 
只這呂居仁。다만 이 여거인이 
能作種種奇特變化。갖가지 기특한 변화를 지으면서  
能與諸佛諸祖。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와 더불어 같이 
同遊寂滅大解脫光明海中。적멸의 대해탈 광명 속에 노닐며  
成就世間出世間事。세간 출세간의 일을 성취하건만 
只是呂居仁信不及耳。단지 이 여거인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若信得及。만약 믿음이 가거든 
請依此註入是三昧。청컨대 이 각주(脚註)에 따라  
삼매에 들어가십시오.
忽然從三昧起。홀연히 삼매에서 일어나 
失卻孃生鼻孔。본래면목(本來面目)이 깨뜨려지면 
便是徹頭也。이것이 머리를 관철한 것입니다. 
又。30. 여사인 거인(呂仁)에의 답서 ②-1
令弟子育。그대의 동생 자육(子育)이 
經由出所賜。讀之喜慰可知。지나다 내어준 편지를 읽으니 
기쁨과 위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無常迅速。무상은 신속하여 
百歲光陰如電閃。백세광음이 번갯불과 같아서 
便是收因結果底時節到來也。벌써 인(因)을 거두어 과(果)를 맺을 
시절이 도래했습니다. 
乾屎如何覺得。간시궐은 어떻게 깨달아집니까?
沒巴鼻無滋味肚裏悶時。소용돌이에 빠진 진면목이 
재미 없어서 뱃속이 답답할 때가
便是好底消息也。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第一不得向起處承當。제일가는 것은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을 향해 알려 하지 말고,
又不得颺在無事甲裏。또 속절없는 상자 속에 버려져 있지 말며,
不可時便有。화두를 들 때에는 문득 있다가 
時便無也。화두를 들지 않으면 
곧 없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但將思量世間塵勞底心단지 세간의 진로를 사량하는 마음을 가져다 
回在乾屎上。간시궐 위에 돌려두어 
思量來思量去。사량해 오고 사량해 가서 
無處柰何。어찌할 수 없는 곳에서 
伎倆忽然盡。기량이 홀연히 다하게 되면 
便自悟也。문득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不得將心等悟。마음을 가져다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若將心等悟。만약 마음을 가져다 깨닫기를 기다리면 
永劫不能得悟也。영겁토록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前此答隆禮書。이전에 융례(隆禮)에게 답한 편지에
說盡措大家病痛矣。공부하는 사람의 병통을 
모두 설명해 주었는데, 
承只置在座右。편지를 받아보니 
그것을 좌우(座右)에 두고 있다 하였습니다. 
若依此做工夫。만약 이것에 의지해 공부한다면 
雖未悟徹。亦能分別邪正。비록 명철히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능히 분별하여  
邪魔所障。삿된 마구니에 장애 받지 않을 것이며,
亦種得般若種子深。또 반야의 종자 심어짐이 깊어질 것이라 
縱今生不了。설령 금생에 마치지 못하더라도 
來生出頭現成受用。내생에 태어나면 그대로 수용될 것입니다.
亦不費力。또 힘을 소비하지도 않고  
亦不被惡業奪將去。악업에 빠져들지도 않아서  
臨命終時亦能轉業。목숨을 마칠 때에 또한  
업을 바꿀 수도 있을 터인데    
況一念相應耶。하물며 한 순간에 상응하는 것이겠습니까? 
逐日千萬不要思量別事。날마다 부디 다른 일을 사량할 것 없이 
但只思量乾屎다만 간시궐만 사량하시고, 
莫問幾時悟。至禱至禱。어느 때에 깨달을 것인지 묻지 말기를 
빌고 또 빕니다. 
悟時亦無時節。깨달을 때는 시절도 없고 
亦不驚群動眾。군중을 놀라게 하지도 않습니다,
即時怗怗地。즉시에 고요하고 고요한 경지에서   
自然不疑佛不疑祖。자연히 부처도 의심하지 말고,  
조사도 의심하지 말고,
不疑生不疑死。남[生]도 의심하지 말고 
죽음도 의심하지 말아서
得到不疑之地。의심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면 
便是佛地也。곧 이것이 부처의 경지입니다.
佛地上本無疑。부처의 경지에는 본래 의심이 없고,  
無悟無迷。깨달음도 없고 미혹도 없으며, 
無生無死。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無有無無。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으며, 
無涅槃無般若。열반도 없고 반야도 없으며, 
無佛無眾生。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亦無恁說者。또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고,
此語亦不受。亦無不受者。이 말도 받아드리지 않고 
또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도 없고, 
亦無知不受者。또 받아드리지 않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亦無恁說不受者。또 이렇게 받아드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居仁如是信得及。여거인이 이와 같음에 믿음이 간다면  
佛亦只如是。부처도 다만 이와 같고, 
祖亦只如是。조사도 다만 이와 같고, 
悟亦只如是。깨달음도 다만 이와 같고,
迷亦只如是。미혹함도 다만 이와 같고, 
疑亦只如是。의심도 다만 이와 같고,
生亦只如是。태어남도 다만 이와 같고, 
死亦只如是。죽음도 다만 이와 같고, 
日用塵勞中亦只如是。일상의 진로 속에서도 다만 이와 같고, 
死後斷滅不斷滅亦只如是。죽은 뒤에 단멸 부단멸도 다만 이와 같고,
在朝廷作從官亦只如是。조정에서 벼슬에 종사하는 것도 
다만 이와 같고, 
宮觀在靜處亦只如是。별궁의 고요한 곳에 있는 것도 
다만 이와 같으며, 
住徑山一千七百眾圍遶亦只如是。경산에서 1천 7백 명의 대중에 
에워싸여 있음도 다만 이와 같으며,
編管在衡州亦只如是。편관(編管)당하여 형주에 있는 것도 
다만 이와 같습니다.
居仁還信得及여거인은 도리어 믿어집니까?
信得及亦只如是。믿어지는 것도 다만 이와 같고, 
信不及亦只如是。믿어지지 않는 것도 다만 이와 같습니다.
畢竟如何。필경에 무엇인가?
如是如是。如是亦只如是。이와 같고, 이와 같고, 이와 같음도  
역시 다만 이와 같습니다.
  答汪狀元(聖錫)30. 왕장원(汪狀元) 성석(聖錫)에의 답서 
左右妙年自立。그대가 젊은 나이에 자립해서 
便在一切人頂[寧*頁]上。문득 모든 사람들의 꼭대기에 올라 있으나 
富貴所籠羅。부귀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니 
非百劫千生願力所持。백겁 천생에 원력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면 
焉能致是。어찌 이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又能切切於此一大事。또 간절하고 간절하게 이 일대사에서 
念念不退轉。한 순간도 물러서지 아니하며,
有決定信具決定志。결정한 믿음도 있고 결정한 뜻도 갖추었으니
此豈淺丈夫所能。이것이 어찌 천박한 장부가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老瞿曇云。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唯此一事實。"오직 이 하나가 사실이요 
餘二則非다른 둘(二乘,三乘)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請著鞭不可忽。부디 채찍을 가해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世間事只這是。세간사가 다만 이러합니다. 
先聖豈不云乎。옛 성인이 어찌 말씀하시지 않았겠습니까? 
朝聞道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不知聞底是何道。잘 모르겠는데,   
듣는다는 것은 무슨 도리입니까? 
到這裏豈容眨眼。여기에 이르러서 
눈을 깜빡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不可更引吾道一以貫之去也。더 이상 '나의 도는 하나로 꿰었다.'는 말을 
끌어 들이지 마십시요.  
須自信自悟。모름지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說得底終是無憑據。말로 얻은 것에는 
결코 믿을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自見得。自悟得。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닫고, 
自信得及了。스스로 완전히 믿어져야 합니다.
說不得。形容不出。卻不妨。설명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는 것은 
도리어 방해되지 않지만  
只怕說得似形容得似卻不見卻不悟者。다만 설명해 보이고 형용해 보여도 
도리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염려될 뿐입니다.
老瞿曇指增上慢人。부처님께서 그것을 가리켜  
증상만인이라 하시고, 
亦謂之謗般若人。또한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요, 
亦謂之大妄語人。또 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며, 
亦謂之斷佛慧命人。또 부처님의 혜명을 끊는 사람이라   
千佛出世不通懺悔。천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더라도 
참회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若透得狗子無佛性話。그러나 만일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를 뚫어버리면 
這般說話。卻成妄語矣。이러한 이야기가 
도리어 거짓말이 되어버립니다. 
而今不可便作妄語會。그러나 지금은 곧 거짓말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됩니다.
呂居仁比連收兩書。여거인에게서 연이어 두 편지를 받았는데,
書中皆云。편지 가운데 모두 말하기를, 
夏中答隆禮書。여름에 융례에게 답한 편지를 
常置座右以得期。항상 좌우에 두고 그로써 얻게 될 날을 
기약하고 있다.” 하였고, 
又聞。嘗錄呈左右。또 듣건대 그것을 써서 
그대에게도 드렸다고 하니, 
近世貴公子似渠者。근세의 귀공자로서 그와 같은 사람은 
如優曇華時一現耳。마치 우담바라 꽃이 
어느 순간 한 번 필 뿐인 것과 같습니다. 
頃在山頭每與公說這般話。잠시 산꼭대기에 있을 때 
자주 공(公)과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서
見公眼目定動領覽得九分九공의 안목의 정(定)과 동(動)을 보고 
9푼 9리는 얻은 것을 대체로 알아 차렸으나 
只欠㘞地一下爾。다만 '와(㘞)!'하는 자리 
그 하나의 조건이 모자랄 뿐입니다. 
若得㘞地一下了。만일 '와!'하는 자리 
그 한 조건을 얻고 나면 
儒即釋釋即儒。유교가 곧 불교요 불교가 곧 유교이며, 
僧即俗俗即僧。승려가 곧 속인이요 속인이 곧 승려이며, 
凡即聖聖即凡。범부가 곧 성인이요 성인이 곧 범부이며, 
我即爾爾即我。내가 곧 그대요 그대가 곧 나이며, 
天即地地即天。하늘이 곧 땅이요 땅이 곧 하늘이며, 
波即水水即波。물결이 곧 물이요 물이 곧 물결입니다. 
酥酪醍醐攪成一味。소락과 제호를 고루 섞어서 
한 맛을 만들고 
缾盤釵釧鎔成一金。병과 접시와 비녀와 팔찌를 녹여서 
하나의 쇠로 만드는 것이 
在我不在人。모두 나에게 있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得到這箇田地。由我指揮。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나의 지휘를 따를 것이니,  
所謂我法王於法自在。이른바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자재하거늘 
得失是非焉有罣礙。득실과 시비에 어찌 장애가 있으리오. 
不是彊法如是故也。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그렇기 때문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此箇境界。除無垢老子。이런 경계는 무구노자(無垢老子)를 제외하고
他人如何信得及。다른 사람은 어떻게 믿어지겠습니까? 
縱信得及。비록 믿기더라도 
如何得入手。어떻게 손을 대겠습니까? 
左右已信得及。그대는 이미 믿음을 얻고, 
已覷得見。이미 엿보아 소견을 가졌으니  
已能分別。是邪是正。이미 그른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할 수 있으려니와  
但未得入手耳。단지 아직 손을 대지 않았을 뿐입니다. 
得入手時一分老少不在智愚。손을 댔을 때는 한 치의 늙고 젊음이 
지혜롭고 어리석음에 있지 않으니
如將梵位直授凡庸。마치 범천왕의 지위를 가져다  
곧바로 평민에게 주어버린 것과 같아서  
更無階級次第。더 이상 계급과 차례가 없습니다. 
永嘉所謂영가(永嘉) 대사가 말씀하신 
一超直入如來地是也。한 번 뛰어서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 이것이니, 
但相聽決不相誤。다만 새겨 들어서 
결코 그르치지 마십시요.
又。30. 성석(聖錫)에의 답서 ②
某萬緣休罷。그대가 '만 가지 인연을 쉬어버리고 
日用只如此。無煩軫念。일상에서 다만 이렇게 번민으로 
아파할 생각이 없다.'고 하였는데, 
左右分上欠少箇甚그대의 분수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在世界上。可謂千足萬足。세계 상에서 가히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만족하다 할 것입니다.
苟能於此箇門中翻身一擲。진실로 이 문중에서 
몸을 한 번 던져 뒤집어버리면
何止腰纏十萬貫어찌 허리에 돈 십만 관을 찬 채  
騎鶴上揚州而已哉。학을 타고 양주(揚州)로 올라가는 것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昔楊文公大年。三十歲見廣慧璉公。옛날에 양문공(楊文公) 대년(大年) 30세에 
광혜연공(廣慧璉公)을 친견하여 
除去礙膺之物。가슴에 맺힌 일을 제거하고 
自是已後在朝廷居田里。그 후로는 조정에 있거나 농촌에서 살거나 
始終一節。不功名所移。시종 한 절개로 공명(功名)에 이끌리지 않고 
富貴所奪。부귀에 빼앗기지 않았으니,
亦非有意輕功名富貴。공명과 부귀를 가벼이 여기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道之所在。法如是故也。도가 있는 곳에는 
법이 의례히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趙州云。조주(趙州) 스님은   
諸人被十二時使。“사람들은 하루 24시간 부림을 당하지만
老僧使得十二時。노승은 하루 24시간을 부린다.”고 하였는데,  
此老此說。非是彊이 노인의 이 말씀도 억지가 아니라 
亦法如是故也。이 또한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입니다. 
大率道一也。대체로 배움(學)과 도(道)는 하나이지만 
而今學者往往요즘 배우는 이들은 왕왕
以仁義禮智信學。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학을 삼고,
以格物忠恕사물의 이치를 밝히고[格物],
남을 진실하고 너그럽게 대하고[忠恕],
一以貫之之類道。시종일관 변치 않는 것[一以貫之]으로 
도를 삼으니, 
只管如謎子相似。오직 도박판 찍기놀음과 비슷하고, 
又如眾盲摸象各說異端。또 맹인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면서  
제각기 다르게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釋不云乎。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以思惟心。測度如來圓覺境界。“사유하는 마음으로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리는 것은
如取螢火燒須彌山。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다.”고.   
臨生死禍福之際都不得力。생사의 화나 복의 경계에 닥쳐서 
도무지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蓋由此也。대개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楊子云。양자(楊子)가 말하기를,
學者所以修性。性即道也。“학(學)이란 성품을 닦는 것이니 
성품이 곧 도이다.”고 하였고,
黃面老子云。性成無上道。부처님께서는 “성품이 
무상도(無上道)를 이룬다.”고 하셨으며,  
圭峰云。규봉(圭峯) 선사는  
作有義事。是惺悟心。“이치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깨달은 마음이요, 
作無義事。是狂亂心。이치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은 광란한 마음이다.
狂亂由情念。臨終被業牽광란은 정념(情念)에 말미암아   
임종해서 업에 이끌림을 당하지만
惺悟不由情。臨終能轉業。깨달음은 정념에 연유하지 않으니  
임종해서 업을 굴린다. 
所謂義者。是義理之義。이른바 이치(義)는 의리의 의(義)요 
非仁義之義。인의(仁義)의 의(義)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而今看來。지금 살펴보니 
這老子亦未免析虛空兩處。이 늙은이도 또한 허공을 쪼개 
두 쪽 내는 것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仁乃性之仁。인(仁)은 성품의 인이요, 
義乃性之義。의(義)도 성품의 의요, 
禮乃性之禮。예(禮)도 성품의 예요, 
智乃性之智。지(智)도 성품의 지요,
信乃性之信。신(信)도 성품의 신이요, 
義理之義亦性也。의리(義理)의 의(義)도 또한 성품이니,  
作無義事。即背此性。이치 없는 일을 짓는 것은 
곧 이 성품을 등지는 것이고,
作有義事。即順此性。이치가 있는 일을 짓는 것은 
곧 이 성품을 따르는 것입니다.
然順背在人。不在性也。그러나 따르고 등지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성품에 있지 아니하며,
仁義禮智信在性。不在人也。인의예지신은 성품에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며, 
人有賢愚。性即無也。사람은 지혜롭고 어리석음이 있지만 
성품에는 없습니다. 
若仁義禮智信만약 인의예지신이 
在賢而不在愚。현명한 사람에게만 있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없다면
則聖人之道。有揀擇取捨矣。성인의 도에 간택과 취사가 있다는 것이니 
如天降雨擇地而下矣。마치 하늘이 땅을 선택해서 
비를 내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所以云。그래서 말하기를 
仁義禮智信在性。而不在人也。인의예지신이 성품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賢愚順背在人。현명하고 어리석음과 
따르고 등짐이 사람에게 있고  
而不在性也성품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楊子所謂修性性亦不可修。양자(楊子)가 말한 성품 닦는 일은   
성품도 닦을 수 없고,   
亦順背賢愚而已。또 따르고 등짐과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끝나버릴 것이며,
圭峰所謂惺悟狂亂是也。규봉(圭峰) 선사가 말한 
깨달음과 광란이 이것이며,
趙州所謂使得十二時조주(趙州) 선사가 말한
하루 24시간을 부리고 
被十二時使是也。24시간에 부림 당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若識得仁義禮智信之性起處。만일 인의예지신의 
성품이 일어난 곳을 알면
則格物忠恕一以貫之在其中矣。격물충서와 일이관지가 
그 속에 있을 것입니다.
肇法師云。승조(僧肇) 법사는 말하기를,
能天能人者。하늘이 되고 사람이 되는 것이 
豈天人之所能哉。어찌 하늘과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리요?'라고 하였으니
所以云。道一也。그러므로 배움과 도는 하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大率聖人設대체로 성인이 가르침을 베풀되  
不求名不伐功。명성을 바라지 않고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如春行花木。마치 봄이 꽃나무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具此性者。이런 성품을 갖춘 이들은 
時節因緣到來。시절인연이 도래하면
各各不相知。각각 서로 알지 못하나 
隨其根性大小方圓長短。그 근본 성품을 따라서 
크고 작고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음이나
或黃。或紅或綠。혹 푸르고 누렇고 붉고 초록이고나 
或臭或香。同時發作。혹 냄새나고 향기 나는 것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非春能大能小。봄이 크게 하고 작게 하고 
能方能圓。모나게 하고 둥글게 하고
能長能短。길게 하고 짧게 하거나 
能黃。能紅能綠。푸르게 하고 누르게 하고 
붉게 하고 초록이게 하거나
能臭能香。냄새나게 하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此皆本有之性。이것은 모두 본래 지니고 있는 성품이 
遇緣而發耳。인연을 만나서 발생되는 것일 뿐입니다.
百丈云。백장(百丈) 선사께서는 
欲識佛性義。"불성(佛性)의 의미를 알려거든 
當觀時節因緣。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보라.
時節若至。其理自彰。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하시고, 
又讓師謂馬師曰。또 남악회양 선사는 
마조 대사에게 이르시되,
汝學心地法門。如下種子。네가 심지법문을 배우는 것은 
마치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고
我說法要。譬彼天澤。내가 법요(法要)를 설하는 것은 
하늘이 비를 뿌리는 것에 비유하겠거니와 
汝緣合故當見其道。너의 인연이 합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 도를 볼 것이다.”고 하였으니,
所以云。聖人設그러므로 성인이 가르침을 베풀되 
不求名不伐功。명성을 구하지도 않고 
공을 자랑하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이며, 
只令學者見性成道而已。다만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품을 보아 도를 이루게 할 뿐입니다. 
無垢老子云。무구노자가 말씀하신 
道在一芥則一芥重。"도가 겨자씨 하나에 있으면 
겨자씨 하나가 소중하고
道在天下則天下重是也。도가 천하에 있으면 
천하가 소중하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左右嘗升無垢之堂。그대가 일찍이 무구의 집에 올라갔으나 
而未入其室。아직 그 방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見其表而未見其裏。껍데기만 보고 그 속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百歲光陰。只在一那間。백세광음이 다만 한 찰나 사이입니다.
那間悟去。찰나 사이에 깨달아버리면  
如上所說者皆非實義。위에서 말한 것들이 
모두 진실한 이치가 아닙니다.
悟了。그러나 이미 깨닫고 나면 
實亦在我。진실을 삼은 것도 나에게 있고
非實亦在我。진실이 아닌 것도 나에게 있습니다.
如水上葫蘆。마치 물 위에 뜬 조롱박처럼  
無人動著。常蕩蕩地。움직이는 사람은 없지만 
항상 탕탕(蕩蕩)한 자리라서  
觸著便動。捺著便轉건드리기만 하면 곧 움직이고
살짝만 눌러도 곧 구르며, 
轆轆地。非是彊녹록(轆轆)한 자리라서 
억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니,
亦法如是故也。법이 으레 그렇기 때문입니다.
趙州狗子無佛性話。조주 선사의 '구자무불성' 화두에서
左右如人捕賊已知窩盤處그대는 마치 도적을 잡는데  
이미 그 소굴은 알았으나 
但未捉著耳。단지 아직 잡지만 못했을 뿐인 것과 같으니, 
請快著精彩。부디 정신을 바짝 차려서 
不得有少間斷。조금이라도 간단이 있게 하지 말고 
時時向行住坐臥處。때때로 행주좌와에서나 
看讀書史處。책을 읽는 곳에서나
修仁義禮智信處。인의예지신을 닦는 곳에서나 
侍奉尊長處。윗어른 시봉하는 곳에서나
提誨學者處。배우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에서나
喫粥喫飯處。죽 먹고 밥 먹는 곳에서나 
與之廝崖。화두와 더불어 벼랑 끝까지 겨루어 가서
忽然打失布袋。홀연히 식심의 포대를 찢어 잃게 되면   
夫復何言。다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答宗直閣31. 종직각(宗直閣)에의 답서 
示諭。편지를 보니, 
應緣日涉差別境界。인연에 따라서 날마다 차별한 경계를 겪되
未嘗不在佛法中。불법 안에 있지 않은 적이 없고,
又於日用動容之間。또 일상에 거동하는 몸가짐의 사이에 
以狗子無佛性話。破除情塵。구자무불성 화두로 
마음의 번뇌를 깨뜨려 없앤다고 하셨는데,
若作如是工夫。그렇게 공부한다면
恐卒未得悟入。기어이 깨달아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請於跟下照顧。청컨대 발꿈치 밑을 비추어 살펴보십시요. 
差別境界從甚處起。차별한 경계는 어느 곳에서 일어난 것입니까?
動容周旋之間。움직이며 일을 주선하고 다니는 사이에
如何以狗子無佛性話。어떻게 구자무불성 화두로 
破除情塵。마음의 번뇌를 제거합니까?
能知破除情塵者。又是阿誰。마음의 번뇌가 깨뜨려 없어지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佛不云乎。부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眾生倒迷己逐物。중생은 전도하여 
자기를 잃고 사물을 쫓는다고. 
物本無自性。사물이란 본래 자성이 없는데
迷己者自逐之耳。자기를 잊어버린 사람이 
스스로 쫓아갈 뿐이며,
境界本無差別。경계는 본래 차별이 없는데 
迷己者自差別耳。자기를 잊어버린 사람이 
스스로 차별할 뿐입니다.
日涉差別境界。기왕에 날마다 차별한 경계를 겪고, 
又在佛法中。또 불법 안에 있다고 하였으나  
在佛法中。이미 불법 안에 있다면 
則非差別境界。곧 차별 경계가 아니며, 
在差別境界中。차별한 경계 안에 있다면 
則非佛法矣。곧 불법이 아닌 것이라     
拈一放一。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는 것이니 
有甚了期。무슨 마칠 기약이 있겠습니까? 
廣額屠兒在涅槃會上。광액도아(廣額屠兒)는 열반회상에서
放下屠刀立地便成佛。소 잡던 칼을 내려놓고 
선 자리에서 문득 성불하였으니 
豈有許多忉忉怛怛來。어찌 많은 근심과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日用應緣處。일상에서 반연하는 곳을 따라서  
纔覺涉差別境界時。차별한 경계를 겪는 것을 
막 깨달았을 때
但只就差別處。다만 차별한 곳에 나아가서 
狗子無佛性話。구자무불성 화두를 들지언정
不用作破除想。깨뜨려 없앤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不用作情塵想。마음의 번뇌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不用作差別想。차별하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不用作佛法想。불법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아서 
但只看狗子無佛性話。다만 구자무불성 화두만을 살피십시요.
但只箇無字。다만 무자 화두를 들지언정 
亦不用存心等悟。또한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若存心等悟。만일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리면 
則境界也差別。경계도 차별이며, 
佛法也差別。불법도 차별이며, 
情塵也差別。마음의 번뇌도 차별이며, 
狗子無佛性話也差別。구자무불성 화두도 차별이며, 
間斷處也差別。간단하는 곳도 차별이며, 
無間斷處也差別。간단이 없는 곳도 차별이며, 
遭情塵惑亂身心마음의 번뇌가 몸과 마음을 
혹란시키는 일을 당하여 
不安樂處也差別。안락하지 못한 곳이 차별이요  
能知許多差別底亦差別。허다한 차별을 아는 것도 차별입니다. 
若要除此病。만일 이러한 병을 없애려 한다면 
但只看箇無字。다만 무자 화두를 살피고, 
但只看。廣額屠兒放下屠刀云。다만 광액도아가 소 잡는 칼을 
집어던지고 말한
我是千佛一數。 '나는 천 부처님의 하나다.'를 살피십시요.
是實是虛。若作虛實商量。 '이것이 사실인가 거짓인가?' 하며  
진실과 거짓을 헤아리면  
又打入差別境界上去也。이 또한 차별한 경계에 빠져드는 것이니   
不如一刀兩段。不得念後思前。일도양단하여 뒤도 생각하지 않고 
앞도 생각하지 않느니만 못하며, 
念後思前則又差別矣。뒤를 생각하고 앞을 생각하는 것이 
또 차별입니다.
玄沙云。현사(玄沙) 선사는 말하기를, 
此事限約不得。"이 일은 한정할 길이 없고   
心思路마음과 생각의 길이 끊어졌다. 
不因莊嚴本來靜。장엄에 말미암지 않고도 
본래 진실로 적정하여  
動用語笑隨處明了。움직이고 작용하고 말하고 웃음이  
곳에 따라 명료하기에  
更無欠少。더 이상 흠결이나 모자람이 없거늘 
今時人不悟箇中道理。요즘 사람들은 
그 속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妄自涉事涉塵。부질없이 스스로 사실도 포섭하고 
번뇌도 포섭하면서  
處處染著。곳곳마다 물들어 집착하므로써 
頭頭繫絆。낱낱이 얽히고 설키니  
縱悟則塵境紛紜。설령 깨달은 즉 
미진 경계처럼 어지럽고  
名相不實。이름과 실상이 진실하지 못하거니와 
便擬凝心歛念。곧 마음을 응결시키고 생각을 숨겨서
攝事歸空。사실을 거두어 공으로 되돌리고자  
閉目藏睛。눈을 감고 눈동자를 숨겨버리며,
隨有念起。마음의 일어남에 따라서  
旋旋破除。즉각즉각 부셔 없애고
細想纔生。미세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即便遏捺。곧바로 막아 눌러버리니, 
如此見解。即是落空亡底外道。이러한 견해가 바로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요,
魂不散底死人。혼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인 것이라  
溟溟漠漠無覺無知。어둡고 깜깜하여 느낌도 앎도 없이  
塞耳鈴徒自欺誑。귀를 막고 방울을 훔쳐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左右來書云云。그대에게서 온 서한에 쓰인 말들이
盡是玄沙所訶底病。모두 현사 선사가 꾸짖고 있는 병이며, 
默照邪師埋人底坑子。묵조선의 그릇된 스승들이 
사람을 매장하는 구덩이임을 
不可不知也。알지 못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話時都不用作許多伎倆。화두를 들 때 절대로 많은 기량을 
써서 하려하지 말고 
但行住坐臥處勿令間斷。다만 행주좌와하는 곳에 
간단(間斷)하게 하지 말며,
喜怒哀樂處莫生分別。희로애락하는 곳에 분별을 내지 마십시오.
去。看來看去。화두를 들고 오가며, 살피며 오고 가서
覺得沒理路沒滋味心頭熱悶時。이치의 길도 없고 재미도 없어져  
마음이 뜨겁고 답답할 때가 
便是當人放身命處也。곧 그 사람이 신명을 놓아야 할 곳이니, 
記取記取。기억하고 또 기억하시어  
莫見如此境界便退心。이러한 경계를 보고 물러서지 마십시요.
如此境界正是成佛作祖底消息也。이와 같은 경계가 바로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짓는 소식입니다. 
而今默照邪師輩。그러나 요즘 묵조선의 그릇된 스승들은 
只以無言無說極則。오로지 무언무설(無言無說)로  
궁극의 궤칙을 삼고서   
喚作威音那畔事。위음왕불 시대의 일이라고 외치고, 
亦喚作空劫已前事。또 공겁(空劫) 이전의 일이라고 떠들어대니 
不信有悟門。깨달음의 문이 있음을 믿지 못하고, 
以悟誑。깨달음을 미친 짓으로 만들고,
以悟第二頭。깨달음을 뒷전의 일로 여기며, 
以悟方便語。깨달음을 방편의 말로 여기고,
以悟接引之辭。깨달음을 유혹하는 말로 여기는 것이라 
如此之徒。이와 같은 무리들은 
謾人自謾。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며, 
誤人自誤。남도 그르치게 하고 자신도 그르친다는 것을  
亦不可不知。또한 알지 못하면 안됩니다.
日用四威儀中。일상의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涉差別境界。차별한 경계를 겪으면서 
覺得省力時。힘이 덜 듦을 느낄 때가 
便是得力處也。곧 힘을 얻은 곳입니다. 
得力處極省力。힘을 얻은 곳에서는 지극히 힘이 덜 들어서
若用一毫毛氣力支撐。털끝만큼이라도 기력을 써서 지탱한다면 
定是邪法。非佛法也。정히 이것은 그릇된 법이요 
불법이 아닙니다. 
但辦取長遠心。단지 길고 멀게 취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與狗子無佛性話。구자무불성 화두와 더불어 
廝崖崖來崖去。겨루어서 겨루어 오고 겨루어 가다가 
心無所之忽然如睡夢覺。마음이 갈 곳이 없어지면  
홀연히 잠을 자다 꿈에서 깨는 것 같고, 
如蓮華開。마치 연꽃이 피는 것 같고,
如披雲見日。또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보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到恁時自然成一片矣。이러한 때에 이르면 
자연히 한 조각을 이루게 될 것이니, 
但日用七八倒處。일상의 칠전팔도(七顚八倒)하는 곳에서 
只看箇無字。다만 무자 화두만 살펴볼지언정 
莫管悟不悟徹不徹。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꿰뚫고 꿰뚫지 못하고에 간여치 마십시오.
三世諸佛只是箇無事人。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만 그 일 없는 사람이고,
諸代祖師亦只是箇無事人。역대 조사들도 그 일 없는 사람입니다. 
古德云。고덕이 말하되, 
但於事上通無事。“단지 일 위에서 일이 없음에 통하면 
見色聞聲不用聾。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데 
농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又古德云。또 고덕이 말하되, 
愚人除境不忘心。“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없애고 
마음은 없애지 않지만
智者忘心不除境。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없애고 
경계는 없애지 않는다.”고 하였거니와 
於一切處無心。일체처에 무심하면 
則種種差別境界自無矣。갖가지 차별한 경계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而今士大夫。지금의 사대부들은 
多是急性便要會禪。대개 급한 마음으로 갑자기 선을 알고자 
於經上及祖師言句中。경전의 가르침이나 조사들의 언구 속을   
量要說得分曉。널리 파헤치고 뚜렷한 것을 얻어서 
설명하려 하지만 
殊不知。分曉處。卻是不分曉底事。뚜렷한 곳이 도리어 뚜렷하지 
못한 일인 줄을 별로 알지 못하거니와 
若透得箇無字。만약 무자(無字) 화두만 꿰뚫어지면 
分曉不分曉。不著問人矣。뚜렷함과 뚜렷치 못함을 
사람들에게 묻지 않게 될 것입니다. 
老漢士大夫放鈍。이 늙은이가 사대부들을  
우둔하도록 놓아 가르친 것이
便是這箇道理也。바로 이러한 도리입니다. 
作鈍牓狀元亦不惡。우둔한 사람을 뽑는데 
장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只怕拖白耳一笑。다만 백지를 내 놓을까 걱정될 뿐이니, 
웃을 일입니다.
  答李參政(泰發)32. 이참정 태발(李叅政 泰發)에의 답서
示諭。편지를 보니, 
華嚴重重法界。“화엄중중법계(華嚴重重法界)가 
斷非虛語。단연코 헛말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非虛語。必有分付處。기왕 헛말이 아니라면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고, 
必有自肯處。반드시 스스로 수긍이 가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讀至此嗟歎久之。읽다가 여기에 이르러 
감탄하기를 오래하였습니다.
士大夫平昔所學。사대부들이 평소에 공부한 것이 
臨死生禍福之際。생사화복의 지경을 당하면 
手足俱露者。十常八九。손발이 다 드러나기 십중 팔구이거니와  
考其行事。또 그들이 행하는 일을 고려해보면   
不如三家村裏省事漢。서너 집 사는 시골구석의 놈팽이가  
富貴貧賤不能其心。부귀빈천에 골몰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니, 
以是較之。이로써 비교해 보면  
智不如愚。지혜로운 이가 어리석은 이만 못하고,
貴不如賤者多矣。부귀한 이가 빈천한 이만 
못한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何以故。生死禍福現前。왜냐하면 생사화복이 앞에 나타나면 
那時不容故也。그때에는 거짓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大參相公平昔所學。대참(大參) 상공은 평소 공부한 바가 
已見於行事。이미 행하는 일에 보여지니 
臨禍福之際。화나 복을 받는 지경을 당해도 
如精金入火愈見明耀。마치 순금이 불속에 들어가면
밝은 빛을 보이는 것 같을 것입니다.  
又決定知華嚴重重法界斷非虛語。또 화엄중중법계가 단연코 
헛된 말이 아님을 결정히 알았으니 
則定不作他物想矣。정히 다른 물건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其餘七八倒。그 밖에 칠전팔도하면서  
或逆或順。或正或邪。거스르거나 수순하고, 
혹은 바르거나 뒤바뀐 것도
亦非他物。역시 다른 물건이 아니니,  
願公常作此觀。바라건대 공은 늘 이렇게 관찰하십시요. 
妙喜亦在其中。묘희도 또한 그 가운데 있습니다.
異日相從於寂寞之濱。다른 날 적막한 물가에서 서로 만나 
結當當來世香火因緣。세세생생에 불법의 인연을 맺어서
成就重重法界。以實其事。중중법계를 성취하여 그 일을 채운다면 
豈小補哉。어찌 작은 도움이겠습니까? 
更須下箇註다시 모름지기 밑에 주석을 달거니와
即今這一絡索。지금 이 한 줄거리 이야기를 
切忌作寓言指物會。절대로 풍자하는 말을 하여  
물건을 가리킨다고 알아듣지 마십시오.
一笑。한 바탕 웃습니다.
  答曾宗丞(天隱)33. 증종승 천은(曾宗丞 天隱)에의 답서
左右天資近道。그대는 천부의 자질이 도에 가깝고 
身心淨。無他緣作障。몸과 마음이 청정하여
장애될 다른 인연이 없는데  
只這一段。誰人能及。다만 이 한 단계에 
누가 미칠 수 있겠습니까? 
又能行住坐臥。또 행주좌와에 
以老僧所示省要處。노승이 보여준 힘 더는 데 요긴한 것으로
時時提撕。수시로 제시(提撕)한다 하더라도 
休說一念相應千了百當便是。모든 것이 타당한 자리에 일념으로 
상응해야 옳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此生打未徹。금생에 꿰뚫지 못하더라도 
只恁崖到臘月三十日。그렇게만 납월 삼십일까지 밀고 간다면
閻家老子也須倒退三千里始得。염라대왕도 모름지기 
3천리를 물러나야 될 것입니다. 
何以故。왜냐하면, 
念念在般若中無異念無間斷故。순간순간 반야 가운데서
다른 생각이 없고 간단도 없기 때문입니다.
只如道家流。다만 저 도가의 사람들이 
以妄心存想。망심(妄心)을 생각에 두어도
日久月深。能成功。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오히려 공을 이루어서
地水火風所使。지수화풍에 이끌리지 않게 될 터인데  
況全念住在般若中。하물며 온전한 생각이 
반야 안에 머물러 있다면
臘月三十日。豈不能轉業耶。납월 삼십일에 
어찌 업을 굴리지 못하겠습니까.
而今人多是將有所得心學道。요즘 사람들은 대개 
얻을 것이 있다는 마음으로 도를 배우지만  
此是無妄想中妄想也。이것이 망상 없는 가운데 참된 망상이니,
但放自在。단지 놓아버려서 자재하게 하십시요. 
然不得太緊。不得太緩。그러나 너무 긴박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서  
只恁做工夫。다만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면 
省無限心力。무한히 마음의 힘을 덜게 될 것입니다. 
左右生處已熟。그대가 생소한 곳은 이왕 익숙하게 하고 
熟處已生。익숙한 곳은 이미 생소하게 했다면 
十二時中自然不著枯心忘懷。하루 24시간 중에 자연히 
고목 같은 마음으로 생각을 잊거나  
將心管帶矣。마음을 가져다 억지로 붙들려는 데에 
집착하지 않아서  
雖未透脫諸魔外道。아직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모든 마구니 외도가 
已不能伺其便。이왕 틈을 엿보지 못할 것이며,
亦自能與諸魔外道。또 자신이 제마외도와 더불어  
共一手同一眼。다같이 한 손과 한 눈이 되어  
成就彼事。그 일을 성취하더라도 
而不墮其數矣。그들 무리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除公一人可以語此。오직 공 한 사람에게만 
이렇게 말할 수 있거니와 
餘人非但不能如公行履。다른 사람은 비단 
공의 행적과 같을 수도 없을 뿐더러  
亦未必信得及也。또한 반드시 믿음이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但於話頭上看。다만 화두 위에서 살펴보십시오.
看來看去。살펴 오고 살펴 가면 
覺得沒巴鼻沒滋味心頭悶時。붙들 코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마음이 답답할 때가 
正好著力。바로 힘 붙이기 좋은 때이니, 
切忌隨他去。절대로 다른 것을 쫓아가지 마십시요.
只這悶處。다만 이 미혹하고 답답함이 
便是成佛作祖。곧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어 
坐斷天下人舌頭處也。앉은 채로 천하 사람들의 
혀끝을 잘라버리는 곳이니, 
不可忽。不可忽。소홀히 하면 안되고 
또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