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8권

碧雲 2020. 2. 25. 06:47
大般涅槃經卷第八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8권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북량(北涼) 천축삼장 담무참(曇無讖) 역
如來性品第四之五4-5. 여래성품(如來性品)
「善男子!方等經者, “선남자야, 방등경(方等經)*이란 
猶如甘露,亦如毒藥。」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으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가섭보살이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如來何緣說方等經, “여래는 무슨 인연으로 방등경이 
譬如甘露,亦如毒藥?」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다 하시나이까?”
佛言:「善男子,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汝今欲知如來祕藏真實義不?」네가 지금 여래 비장(祕藏)의 
진실한 의의(意義)를 알고자 하느냐?”
*方等經 ; 方廣大하고 平等한 이치를 설한 경전, 즉 대승경전의 총칭이다. 
迦葉言爾:가섭이 아뢰었다.
「我今實欲得知如來祕藏之義。」 “제가 지금 진실로 
여래 비장의 의의를 알고자 하나이다.”
爾時世尊而說偈言:이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或有服甘露, 傷命而早夭,「누구는 감로를 먹고 
목숨을 다쳐 일찍 요절하는가 하면, 
 或復服甘露, 壽命得長存,혹 누구는 감로를 먹고 
수명이 길어지기도 하며, 
 或有服毒生, 有緣服毒死,누구는 독약을 먹어도 살고 
어떤 인연으로는 독약 먹고 죽거니와 
 無礙智甘露, 所謂大乘典。거침 없는 지혜[無礙智]의 감로는  
소위 대승경전이니라. 
 如是大乘典, 亦名雜毒藥,이러한 대승경전도 
독 섞인 약이라 하여, 
 如酥醍醐等, 及以諸石蜜,소(酥)나 제호(醍醐), 
석밀(石蜜) 같은 것도
 服消則為藥, 不消則為毒。먹고 소화시키면 약이 되겠지만 
소화시키지 못하면 곧 독이 되듯이,  
 方等亦如是, 智者為甘露,방등경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감로로 삼지만 
 愚不知佛性, 服之則成毒。어리석은 이는 불성을 알지 못하니 
먹으면 곧 독이 되느니라. 
 聲聞及緣覺, 大乘為甘露,성문 연각과 
대승들은 감로 삼기를 
 猶如諸味中, 乳最為第一。마치 모든 맛 중에 
젖이 가장 제일가듯이 하여 
 如是勤精進, 依因於大乘,그렇게 힘써 정진하면 
대승을 의지한 인연으로 
 得至於涅槃, 成人中象王。대열반에 이르러서 
인간 중에 부처[象王]가 될 것이니라.
 眾生知佛性, 猶如迦葉等,중생이 불성을 안다면 
마치 가섭처럼  
 無上甘露味, 不生亦不死。더없는 감로를 맛보며 
나지도 죽지도 않으리라.
 迦葉汝今當, 善分別三歸,가섭아, 너는 이제 마땅히 
삼귀(三歸)를 잘 분별해야 하나니, 
 如是三歸性, 則是我之性。이와 같은 삼귀의 성품이 
곧 나[我]의 성품이니라. 
 若能諦觀察, 我性有佛性,만일 나의 성품에 
불성이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면
 當知如是人, 得入祕密藏,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비밀장(祕密藏)에 들어가서 
 知我及我所, 是人已出世。아(我)와 아소(我所)*를 알게 되리니, 
이 사람은 이미 세간을 뛰어 넘은 것이니라.
 佛法三寶性, 無上第一尊,불, 법, 승 삼보의 상품은 
더없이 높고 제일 존귀하거니와  
 如我所說偈, 其性義如是。」내가 게송으로 설명했듯이   
그 성품과 의미가 이와 같으니라. 」
*我所 ; 我所有 즉 '我 以外의 萬物(我의 對境, 對我)'을 말하니, '내것'이라 譯함은 부적절하다.
我와 我所는 世間의 基本分別이라 破除의 對象이 된다. 
爾時迦葉復說偈言:이에 가섭이 또 게송으로 아뢰었다.
「我今都不知, 歸依三寶處,「저는 지금 귀의할 삼보란 곳[三寶處]을 
도무지 모르는데 
 云何當歸趣, 無上無所畏?위없고 두려울 것 없는 데에는  
어떻게 귀의해 나아갈 것이며, 
 不知三寶處, 云何作無我?삼보처(三寶處)를 모르는데 
어떻게 무아(無我)를 만들겠나이까? 
 云何歸佛者, 而得於安慰?어떻게 부처님께 귀의해야 
안위(安慰)를 얻게 되며, 
 云何歸依法? 唯願為我說。법에는 어떻게 귀의해야 하나이까? 
원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云何得自在? 云何不自在?어찌해야 자재해지는 것이며, 
어째서 자재하지 못하는 것이옵니까?
 云何歸依僧, 轉得無上利?어떻게 승가에 귀의해야 
더없이 큰 이익을 얻게 되나이까? 
 云何真實說, 未來成佛道。어찌해야 진실한 말씀으로 
미래세에 불도를 이룰 것이며, 
 未來若不成, 云何歸三寶?미래에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삼보에 귀의하겠나이까? 
 我今無預知, 當行次第依。저는 지금 아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차례대로 행하오리다.
 云何未懷妊, 而作生子想?어떻게 회임(懷妊)하지도 않고
아들 낳을 생각을 하겠나이까? 
 若必在胎中, 則名為有子,반드시 탯 속에 있어야만 
아들이 있다 할 것이오라 
 子若在胎中, 定當生不久,아들이 탯 속에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머지않아 낳게 될 것이니   
 是名為子義, 眾生業亦然。이는 아들이라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중생의 업도 그러하여   
 如佛之所說, 愚者不能知,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어리석은 자는 알 수 없으니 
 以其不知故, 輪迴生死獄,그것을 알지 못하므로써 
생사의 지옥을 윤회하건만 
 假名優婆塞, 不知真實義。이름 뿐인 우바새들이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하나이다. 
 唯願廣分別, 除斷我疑網,바라옵건대 자세히 분별하시어
제 의심의 그물을 벗겨 주시고, 
 如來大智慧, 唯垂哀分別,여래의 크신 지혜로  
가엾이 여겨 분별을 내리시어 
 願說於如來, 祕密之寶藏。」여래의 비밀 보배법장을
설해 주시기 원하나이다. 」
「迦葉汝當知, 我今當為汝,「가섭아, 너는 마땅히 알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善開微密義, 令汝疑得斷。미밀(微密)한 뜻을 열어서 
너의 의망(疑網)을 끊어 주리니,  
 今當至心聽, 汝於諸菩薩,지극한 마음으로 듣거라. 
너는 보살들 속에서
 則與第七佛, 同其一名號。일곱째 부처님과 더불어 
명호가 같거니와 
 歸依於佛者, 真名優婆塞,부처님께 귀의하는 이라야 
진실로 우바새라 하리니, 
 終不更歸依, 其餘諸天神。결코 그 밖의 천신들에게 
다시 귀의해서는 안 될 것이며, 
 歸依於法者, 則離於殺害,법(法)에 귀의하면 
살해를 여의게 되고, 
 歸依聖僧者, 不求於外道,거룩한 승(僧)에 귀의하면 
외도(外道)를 찾지 않으리니, 
 如是歸三寶, 則得無所畏。」이렇게 삼보에 귀의하면 
무소외(無所畏)를 얻을 것이니라.」
「迦葉白佛言, 我亦歸三寶,「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옵니다.
저 또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是名為正路, 諸佛之境界。바른 길이라 할 것이요,   
제불의 경계이겠나이다.  
 三寶平等相, 常有大智性,삼보의 평등한 모양에는
항상 대지(大智)의 성품이 있어서  
 我性及佛性, 無二無差別。나의 성품과 부처님 성품이
둘도 없고 차별함도 없거니와 
 是道佛所讚, 正進安止處,이 길은 부처님이 찬탄하신 
정진(正進)해야 할 안지처(安止處)요, 
 亦名正遍見, 故為佛所稱。정변견(正遍見)이라 할 것이기에   
그래서 부처님이 칭찬셨을 것이라  
 我亦趣善逝, 所讚無上道,저 또한 부처님이 찬탄하신
위없는 길로 나아가리니, 
 是最為甘露, 諸有所無有。」이것이 가장 좋은 감로요, 
제유(諸有)에 다시없는 것이겠나이다.」
爾時佛告迦葉菩薩:그때 부처님이 가섭보살에게 고하셨다.
「善男子!汝今不應如諸聲聞、“선남자야, 너는 지금 성문이나 
凡夫之人,分別三寶;범부들처럼 삼보를 분별해서는 안 되나니,  
於此大乘無有三歸分別之相。이 대승에는 삼귀의 구분된 모양이 없느니라. 
所以者何?왜냐하면 
於佛性中,即有法、僧,불성 가운데 법과 승이 있다 한 것은  
為欲化度聲聞凡夫故,성문과 범부들을 화도(化度)하고자 하여    
分別說三歸異相。삼귀를 다른 모양새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善男子!若欲隨順世間法者,선남자야, 세간법에 따르자면 
則應分別有三歸依。삼귀의가 나뉘어 있다고 해야 하려니와,  
善男子!菩薩應作如是思惟:선남자야, 보살은 이렇게 사유해야 하느니라. 
『我今此身歸依於佛, ‘지금의 내 몸은 부처님께 귀의했으니 
若即此身得成佛道,만일 이 몸이 불도를 이루게 된다면  
既成佛已,기왕 성불하여서는  
不當恭敬、禮拜、供養於諸世尊。다른 세존들을 공경하여 예배하고  
공양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리라. 
何以故?諸佛平等,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은 평등하여 
等為眾生作歸依故。중생들에게 똑 같은 귀의처가 될 것이라  
若欲尊重法身舍利,법신 사리를 존중하려거든  
便應禮敬諸佛塔廟。제불의 탑묘에 예경해야 하기 때문이니,  
所以者何?為欲化度諸眾生故。어째서 인가? 중생들을 화도하고자 하고, 
亦令眾生,또 중생들로 하여금 
於我身中起塔廟想,禮拜供養,내 몸 가운데서 탑묘라는 생각을 일으켜  
예배하고 공양하게 하여  
如是眾生以我法身為歸依處。이와 같은 중생들이 나의 법신을  
귀의처로 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一切眾生皆依非真邪偽之法,일체중생이 진실 아닌 거짓된 법에 귀의하니, 
我當次第為說真法。내가 마땅히 차례로 진실한 법을 설하고, 
又有歸依非真僧者,또 누가 참된 스님이 아닌 자에게 귀의하거든 
我當為作依真僧處。내가 마땅히 참 스님에의 귀의처를 지어 주며,   
若有分別三歸依者,만일 누가 삼귀의를 구분하거든 
我當為作一歸依處,無三差別。내가 마땅히 그 셋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귀의처로 삼게 하리라. 
於生盲眾,為作眼目,소경들에게는 눈이 되어 주고, 
復當為諸聲聞、緣覺作真歸處。』또 마땅히 성문 연각들을 위해 
진정한 귀의처가 되어 주리라.' 
善男子!如是菩薩,선남자야, 이와 같이 보살은 
為無量惡諸眾生等한량없는 악한 중생이나 
及諸智者而作佛事。지혜로운 이들을 위해 불사(佛事)를 짓느니라.
「善男子!譬如有人,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臨陣戰時,即生心念:전쟁터에 나가서 생각하기를, 
『我於是中最為第一, ‘내가 이 가운데 제일 높으니 
一切兵眾,悉依恃我。』모든 병사들이 나를 의지하리라.' 하고, 
亦如王子如是思惟:또 어떤 왕자가   
『我當調伏其餘王子, ‘나는 마땅히 다른 왕자들을 굴복시키고   
紹繼大王覇王之業,而得自在。대왕의 패업을 물려받아 자재함을 얻어서      
令諸王子悉見歸依,모든 왕자들이 내게 의지하도록 해야 하리니, 
是故不應生下劣心。』열등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생각하듯이  
如王王子,大臣亦爾。왕과 왕자와 대신도 그러하느니라. 
善男子!菩薩摩訶薩亦復如是,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이  
作是思惟:『云何三事與我一體?』 ‘어떻게 세 가지 일[三事;三歸]이 
나와 한 몸이겠는가?’ 라고 사유하거니와,  
善男子!我示三事,即是涅槃。선남자야, 내가 보여준 3사(三事)는 곧 열반이니라. 
如來者名無上士,여래란 무상사(無上士)라 하나니,  
譬如人身頭最為上,비유컨대 사람의 몸은 머리가 가장 위이고,  
非餘支節、手足等也。다른 팔다리나 손발 등이 위가 아니듯이  
佛亦如是最為尊上,그렇게 불(佛)이 가장 높은 것이요,  
非法、僧也,법(法)이나 승(僧)이 아니건만    
為欲化度諸世間故,세간을 화도(化度)하려는 까닭에   
種種示現差別之相,如彼梯橙。갖가지로 차별한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是故汝今,不應受持如凡愚人所知,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三歸差別之相。삼귀를 다른 모양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며,
汝於大乘猛利決斷,應如剛刀。」너는 대승에 용맹하고 예리하게 결단하기를 
금강도(金剛刀)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我知故問,“세존이시여, 제가 알지만 고의로 여쭈었사옵고 
非為不知。모르는 것이 아니옵니다. 
我為菩薩大勇猛者,저는 보살이 크게 용맹해질 수 있도록   
問於無垢清淨行處,때 없이[無垢] 청정한 행처(行處)를 여쭈어 
欲令如來為諸菩薩,여래로 하여금 보살들에게   
廣宣分別奇特之事,기특(奇特)한 일을 널리 분별하시고, 
稱揚大乘方等經典,대승 방등경전을 칭양(稱揚)하시게 하였다니  
如來大悲今已善說,여래께서 대비(大悲)로 지금 잘 말씀해 주시니, 
我亦如是安住其中。저도 그와 같이 그 안에 안주하겠거니와,  
所說菩薩清淨行處,말씀하신 보살의 청정행처(淸淨行處)란 
即是宣說大涅槃經。곧 대열반경을 펼쳐 연설하는 것이겠나이다. 
世尊!세존이시여, 
我今亦當廣為眾生저도 마땅히 이제 중생들을 위해 
顯揚如是如來祕藏,그와 같은 여래의 비장(祕藏)을 널리 선양하고, 
亦當證知真三歸處。또 참된 삼귀처를 증지(證知)해야 하겠나이다. 
若有眾生能信如是大涅槃經,만일 어느 중생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믿는다면 
其人則能自然了達三歸依處。그 사람은 자연히 삼귀의처에 요달할 것이오니,  
何以故?如來祕藏有佛性故。그것은 여래의 비장에 불성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其有宣說是經典者,이 경전을 선양하여 말하는 이는 
皆言身中盡有佛性,모두 몸 안에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니,  
如是之人則不遠求三歸依處。이런 사람은 삼귀의처를 
먼 데서 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何以故?於未來世,왜냐하면 미래세에 
我身即當成就三寶,내 몸이 삼보를 이루게 될 것이라    
是故聲聞緣覺之人及餘眾生,따라서 성문 연각들과 다른 중생들이 
皆依於我,恭敬禮拜。」다 저를 의지해 공경 예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善男子!以是義故, "선남자야, 그런 의미에서 
應當正學大乘經典。」대승경전을 바르게 배워야 하느니라.”
迦葉復言:가섭보살이 다시 아뢰었다.
「佛性如是不可思議, “불성이 이렇듯 불가사의하고,   
三十二相、八十種好亦不可思議。」32상과 80종호도 불가사의하나이다."
爾時佛讚迦葉菩薩:이때 부처님이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善哉,善哉!善男子!“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汝已成就深利智慧,네가 깊고 예리한 지혜를 성취하였구나.  
我今當更善為汝說,내가 이제 더 좋아지도록 설명하기 위해  
入如來藏。여래장에 들어가리라. 
若我住者即是常法,不離於苦;내[我]가 머무는 것이면 이는 항상한 법[常法]이니 
고(苦)를 여의지 못할 것이요,  
若無我者,修行淨行,無所利益。무아(無我)라면 청정행을 닦아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若言諸法皆無有我,是即斷見;제법(諸法)이 무아라고 하면 이는 단견(斷見)이요,  
若言我住即是常見。내가 머물러 있다고 말하면 상견(常見)이며,    
若言一切行無常者,即是斷見;모든 행(行)이 무상하다고 말하면 단견이요, 
諸行常者復是常見。모든 행이 항상하다고 하면 상견이며,  
若言苦者即是斷見;만일 고(苦)라고 말하면 단견이요, 
若言樂者復是常見。낙(樂)이라고 말하면 상견이니,  
修一切法常者墮於斷見,일체법이 상이라고 닦으면 단견에 떨어지고, 
修一切法斷者墮於常見。일체법이 단이라고 닦으면 상견에 떨어질 것이라 
如步屈虫,要因前脚得移後足,마치 송충이가 앞발로 인해 뒷발이 옮겨지듯이 
修常斷者,亦復如是,상(常)과 단(斷)을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要因斷常。以是義故,요인은 단과 상이니,  이런 의미에서 
修餘法苦者,皆名不善;다른 법이 고(苦)라고 닦는 것은 불선이요,  
修餘法樂者,則名為善。다른 법이 낙(樂)이라고 닦는 것은 선이다.   
修餘法無我者是諸煩惱分;또 다른 법이 무아라고 닦으면 
이것이 모든 번뇌가 되는 것이요, 
修餘法常者是則名曰如來祕藏,다른 법이 항상하다고 닦으면 
여래 비장(祕藏)이라 할 것이니,  
所謂涅槃,無有窟宅。소위 열반은 굴택(窟宅)*이 없다는 것이며, 
*窟宅 ; 굴(窟)과 집[宅]이니, '굴택이 없다'는 것은 '틀에 같혀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修餘無常法者,即是財物;다른 무상한 법을 닦는 것은 곧 재물(財物)이요, 
修餘常法者,다른 항상한 법을 닦는 것은 
謂佛、法、僧及正解脫。불, 법, 승과 정해탈이니, 
當知如是佛法中道,불법의 중도(中道)는 
遠離二邊而說真法。두 변[二邊;兩邊]을 떠나서 진실한 법을 설하는 것이라   
凡夫愚人於中無疑,범부의 어리석은 사람도 여기에 의심 없는 것이 
如羸病人服食酥已,마치 병 든 사람이 연유를 먹고 
氣力輕便。기력이 거뜬해지는 것과 같지만  
有無之法,體性不定,유무(有無)의 법은 체성(體性)이 일정치 못하여   
譬如四大,其性不同,마치 4대(四大)가 체성이 달라서 
各相違反。서로 반(反)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良醫善知,隨其偏發而消息之。유능한 의사는 편발(偏發)을 잘 알아서 그쳐 주듯이     
善男子!如來亦爾,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於諸眾生猶如良醫,중생들에게 저 유능한 의사처럼  
知諸煩惱體相差別而為除斷,각기 다른 번뇌의 체상(體相)을 알고 제단(除斷)하도록  
開示如來祕密之藏,여래의 비밀한 법장과 
清淨佛性常住不變。청정불성은 상주불변함을 열어 보이느니라.  
若言有者,智不應染;있다고 말해도 지혜가 물들지 말아야 하겠지만  
若言無者,即是妄語。없다고 말하하는 것도 곧 허망한 말인 것이니,  
若言有者,不應默然,있다고 말하거든 잠자코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亦復不應戲論諍訟,또한 희론 삼아 다투지도 말고  
但求了知諸法真性,다만 제법의 참된 성품 요지하기를 구해야 하나니, 
凡夫之人戲論諍訟,범부들이 희론 삼아 다투는 것은 
不解如來微密藏故。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해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若說於苦,고(苦)를 말하자면, 
愚人便謂身是無常,어리석은 사람이 이 몸이 무상하다 하여 
說一切苦,일체가 고(苦)라고 말하거니와 
復不能知身有樂性。몸에 낙(樂)의 성품이 있음을 알지 못해서이다.    
若說無常者,무상(無常)을 말하자면, 
凡夫之人計一切身皆是無常,범부들은 모든 몸이 다 무상하기가 
譬如瓦坏;마치 굽지 않은 질그릇 같다고 여기지만,  
有智之人,應當分別,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마땅히 분별하여 
不應盡言一切無常。일체가 무상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何以故?我身即有佛性種子。왜냐하면 내 몸에 불성의 종자가 있기 때문이니라. 
若說無我,무아(無我)를 말하자면,  
凡夫當謂一切佛法悉無有我;범부들은 모든 불법이 다 무아라고 하지만, 
智者應當分別無我假名不實。지혜로운 이라면 무아는 이름 뿐이요 
진실하지 않다고 분별하여 
如是知已,不應生疑。그렇게 알고 의심해서는 안 되느니라.
若言如來祕藏空寂,여래의 비장이 공적(空寂)하고 말하면 
凡夫聞之,生斷滅見;범부들은 듣고 단멸(斷滅)의 견해를 내지만,  
有智之人應當分別,지혜로운 이라면 마땅히 분별하기를  
如來是常、無有變易。여래는 항상하여 변역(變易)이 없다고 해야 한다. 
若言解脫喻如幻化,해탈이 마치 환화(幻化)와 같다고 말하면 
凡夫當謂得解脫者即是摩滅;범부들은 해탈을 얻는다는 것이 
곧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有智之人應當分別,지혜로운 이라면 마땅히 분별하기를  
人中師子雖有去來,인중사자(人中師子)는 비록 가고 옴이 있더라도 
常住無變。상주무변(常住無變)하다고 해야 하느니라. 
若言無明因緣諸行,무명의 인연으로 모든 행[諸行]이 일어난다고 말하면 
凡夫之人聞已分別,범부들은 듣고 분별하여  
生二法想,明與無明;명(明)과 무명(無明)의 두 가지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성품은 둘이 없어서 
無二之性即是實性。둘 없는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을 알아야 한다. 
若言諸行因緣識者,제행(諸行)의 인연으로 식(識)이 일어난다고 말하면 
凡夫謂二,行之與識;범부들은 행과 식을 둘이라고 하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이라면 그 성품에 둘이 없어서 
無二之性即是實性。무이(無二)의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을 알아야 한다. 
若言十善十惡、10선(善)과 10악(惡), 
可作不可作、해도 될 일[可作]과 해서는 안 될 일[不可作], 
善道惡道、선도(善道)와 악도(惡道), 
白法黑法,백법(白法;善法)과 흑법(黑法;不善法)을 말하면 
凡夫謂二;범부는 둘이라고 하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이라면 그 성품은 무이(無二)요,  
無二之性即是實性。무이의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에 요달해야 한다. 
若言應修一切法苦,일체법이 고(苦)라고 닦아야 한다고 말하면 
凡夫謂二;범부는 둘이라고 하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이라면 그 성품은 무이(無二)요,  
無二之性即是實性。무이의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에 요달해야 한다. 
若言一切行無常者,모든 행이 무상하고 
如來祕藏亦是無常,여래의 비장도 무상하다고 말하면 
凡夫謂二;범부는 둘이라고 하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이라면 그 성품은 무이(無二)요,  
無二之性即是實性。무이의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에 요달해야 한다. 
若言一切法無我,일체법이 무아(無我)이고, 
如來祕藏亦無有我,여래의 비장도 무아라고 말하면 
凡夫謂二;범부는 둘이라고 하지만 
智者了達其性無二,지혜로운 이라면 그 성품은 무이(無二)요,  
無二之性即是實性,무이의 성품이 곧 실제의 성품임에 요달하여 
我與無我,性無有二。아(我)와 무아(無我)는 성품에 둘이 없느니라. 
如來祕藏其義如是,여래의 비장은 그 이치가 이와 같이 
不可稱計無量無邊諸佛所讚,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 
무량무변한 부처님들이 칭찬하신 바이거니와  
我今於是一切功德成就,내가 지금 그 일체공덕의 성취에 대해 
經中皆悉說已。경 가운데서 다 설명했느니라. 
「善男子!我與無我性相無二,선남자야, 아(我)와 무아(無我)는 
성품의 모양[性相]에 둘이 없나니, 
汝應如是受持頂戴。너는 마땅히 이렇게 머리에 새겨 간직해야 하며, 
善男子!선남자야, 
汝亦應當堅持憶念如是經典,너는 또 이러한 경전을 
如我先於摩訶般若波羅蜜經中내가 전에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說我、無我,無有二相。 ‘아(我)와 무아(無我)는 두 모양이 없다고 
말하였듯이 견지(堅持)하고 기억해야 하느니라. 
如因乳生酪,젖[乳]으로 인해 락(酪;타락,우유)가 생기고, 
因酪得生酥,락으로 인해 생소(生酥;연유)가 얻어지며, 
因生酥得熟酥,생소로 인해 숙소(熟酥)를 얻고, 
因熟酥得醍醐,숙소로 인해 제호(醍醐)를 얻는 것이라면, 
如是酪性為從乳生?그와 같은 락(酪)의 성품은 젖에서 생기는 것인가, 
為從自生?從他生耶?자기에게서 생기는가, 다른 데서 생기는가? 
乃至醍醐亦復如是,제호(醍醐)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을진대 
若從他生,即是他作,만일 다른 데서 생겼다면 곧 다른 것이 만든 것이라   
非是乳生;젖에서 생긴 것이 아닐 것이요, 
若非乳生,乳無所為;젖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면 젖은 한 일이 없을 것이며,  
若自生者,만일 스스로에서 생긴다면  
不應相似相續而生。비슷한 형태로 이어지는 것들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若相續生,則不俱生,이어지면서 생겼다면 한꺼번에 생기지 않았고,  
若不俱生,한꺼번에 생기지 않았다면 
五種之味則不一時。다섯 가지 맛이 한 시점에 생긴 것이 아니다. 
雖不一時,비록 한 시점이 아니더라도 
定復不從餘處來也,다른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니,  
當知乳中先有酪相,마땅히 알라. 젖 안에는 본래 락의 모양이 있으나 
甘味多故不能自變,단맛이 많아서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것이며 
乃至醍醐亦復如是。나아가 제호까지도 그와 같으니라. 
是牛食噉水草因緣,소가 물과 풀을 먹은 인연이  
血脈轉變而得成乳,혈맥을 따라 변하여 젖을 이루는 것이라  
若食甘草其乳則甜,단 풀을 먹으면 그 젖이 달고 
若食苦草乳則苦味。쓴 풀을 먹으면 젖도 쓴 맛이며, 
雪山有草名曰肥膩,설산에 있는 비니(肥膩)라는 풀은 
牛若食者純得醍醐,소가 먹으면 순수하게 제호가 얻어지는데, 
無有青黃赤白黑色穀草因緣,청황적백흑색 곡식이나 풀의 인연이 없기에  
其乳則有色味之異。그 젖은 유색의 것과 맛이 다르니라. 
是諸眾生以明、無明業因緣故,이 모든 중생이 명(明)과 무명(無明)의 업 때문에  
生於二相,두 가지 모양을 낳지만  
若無明轉,則變為明,무명이 구르면 곧 변하여 명이 되는 것이며, 
一切諸法善、不善等,모든 법의 선(善)과 불선(不善) 따위도 
亦復如是無有二相。」그와 같아서 두 모양이 없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如佛所說,“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乳中有酪,是義云何?젖 안에 락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世尊!若言乳中定有酪相,세존이시여, 젖 안에 정녕 락의 모양이 있다 해도 
以微細故不可見者,미세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라면 
云何說言從乳因緣而生於酪?어떻게 젖에서의 인연으로 락이 생긴다 하겠나이까? 
法若本無則名為生,법이 본래 없었던 것을 생겼다고 하는 것이라면 
如其已有云何言生?이미 있었던 것이면 어떻게 생겼다고 하겠나이까? 
若言乳中定有酪相,만일 젖 안에 정히 락의 모양이 있다고 한다면 
百草之中亦應有乳,백 가지 풀 안에도 젖이 있어야 하고 
如是乳中亦應有草;그렇게 젖 안에도 풀이 있어야 하려니와, 
若言乳中定無酪者,만일 젖 안에 정녕 락이 없다고 한다면 
云何因乳而得生酪?어떻게 젖을 인하여 락이 생기겠나이까? 
若法本無,而後生者,본래 없었더라도 뒤에 생기는 법이라면 
何故乳中不生於草?」왜 젖 안에서 풀이 생기지 않나이까?”
「善男子! “선남자야, 
不可定言乳中有酪、정히 젖 안에 락이 있다고 하거나 
乳中無酪,없다고 말할 수 없고, 
亦不可說從他而生。또 다른 데서 생긴다고도 말할 수 없다. 
若言乳中定有酪者,만일 젖 안에 정녕 락이 있었다면 
云何而得體味各異?어떻게 각기 다른 체성과 맛이 얻어지겠느냐?
是故不可說言乳中定有酪性。그러니 젖 안에 꼭 락이 있다 할 수 없는 것이며,  
若言乳中定無酪者,젖 안에 락이 정히 없었던 것이라면 
乳中何故不生兔角?젖 안에서 왜 토끼 뿔은 나지 않는 것이냐? 
置毒乳中,酪則殺人,젖 속에 독을 타면 락이 사람을 죽일 것이니, 
是故不可說言乳中定無酪性?그러므로 젖 안에 꼭 락의 성품이 없다 힐 수도 없다. 
若言是酪從他生者,이 락이 다른 데서 생긴 것이라면 
何故水中不生於酪?왜 물에서는 락이 생기지 않는 것이냐? 
是故不可說言酪從他生。따라서 락이 다른 데서 생긴다고 할 수 없느니라.
善男子!是牛食噉草因緣故,선남자야, 이 소가 풀을 먹은 인연으로 
血則變白,草血滅已,피가 하얗게 변하고 풀의 피가 없어진 다음   
眾生福力變而成乳。중생의 복력으로 변해 젖이 되나니,  
是乳雖從草血而出,이 젖이 비록 풀과 피로부터 나왔더라도  
不得言二,그 둘을 말하지 않고 
唯得名為從因緣生。오직 인연으로부터 난다고 하거니와  
酪至醍醐亦復如是,락으로부터 제호까지도 그와 같기에    
以是義故,得名牛味。이런 의미에서 우미(牛味)라 하는 것이니라. 
是乳滅已,因緣成酪。이 젖은 없어져서 인연 따라 락을 이루는데, 
何等因緣?若酢、若煖。어떤 인연인가? 효소[酢]나 적절한 온도이니, 
是故得名,從因緣有。그래서 인연으로부터 있다고 하는 것이요, 
乃至醍醐亦復如是,나아가 제호까지도 그러하므로  
是故不得定言乳中無有酪相。젖 안에 꼭 락의 모양이 없다 할 수 없는 것이며,  
從他生者,離乳而有,다른 데서 생긴다면 젖을 떠나 있는 것이라 
無有是處。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善男子!明與無明亦復如是,선남자야, 명과 무명도 그와 같아서 
若與煩惱諸結俱者,名為無明。만일 번뇌의 결박과 함께하면 무명이라 하고, 
若與一切善法俱者,名之為明。모든 선법(善法)과 함께하면 명이라 하는 것이라   
是故我言無有二相。내가 두 가지 모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以是因緣我先說言,이런 인연으로 내가 앞에 말하기를, 
雪山有草名曰肥膩, ‘설산에 있는 비니(肥膩)라는 풀은  
牛若食者即成醍醐,소가 먹으면 제호가 된다'고 하였거니와 
佛性亦爾。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선남자야, 
眾生薄福不見是草。중생은 박복하여 그 풀을 보지 못하거니와  
佛性亦爾,煩惱覆故,불성도 그와 같이 번뇌에 가려진 까닭에   
眾生不見。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譬如大海,雖同一醎,마치 바닷물이 비록 한결같이 짜지만 
其中亦有上妙之水,味同於乳。그 안에는 또 젖 맛과 같은 빼어난 물도 있고, 
喻如雪山,雖復成就種種功德,설산은 여러 가지 공덕을 성취하여  
多生諸藥,亦有毒草。많은 약초를 나게하지만 또 독초도 있듯이 
諸眾生身亦復如是,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아서  
雖有四大毒蛇之種,비록 4대라는 독사 같은 것이 있다지만 
其中亦有妙藥大王,그 안에는 묘약의 왕도 있으니, 
所謂佛性。소위 불성이니라. 
非是作法,이것이 만들어지는 법이 아니고  
但為煩惱客塵所覆,다만 번뇌객진에 가려진 것이라  
若剎利、婆羅門、毘舍、首陀,찰리거나 바라문이거나 비사, 수타거나  
能斷除者,끊어 없앨 수만 있다면  
即見佛性成無上道。곧 불성을 보아 무상의 도를 이루느니라.   
譬如虛空震雷起雲,마치 허공이 우레치며 구름을 일으키면 
一切象牙上皆生花,모든 코끼리 어금니[象牙]에 꽃이 생기고, 
若無雷震,花則不生,亦無名字。우레가 없으면 꽃이 생기지도 않고 이름도 없듯이, 
眾生佛性亦復如是,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常為一切煩惱所覆不可得見,항상 온갖 번뇌에 가려져 볼 수가 없으니,  
是故我說眾生無我;그래서 내가 중생은 무아(無我)라 하였거니와,  
若得聞是大般涅槃微妙經典,만일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듣게 되면  
則見佛性。곧 불성을 볼 것이라   
如象牙花,雖聞契經一切三昧,상아 꽃처럼 경전의 모든 삼매에 계합할 것이로되,    
不聞是經,이 경을 듣지 못하면 
不知如來微妙之相;여래의 미묘한 모습을 알지 못할 것이라  
如無雷時,象牙上花不可得見。우레 없을 때 상아 꽃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聞是經已,이 경을 듣고서     
即知一切如來所說祕藏佛性;일체 여래가 설하신 비장의 불성을    
喻如天雷,見象牙花。마치 우레가 칠 때 상아 꽃 보듯이 알고, 
聞是經已,이 경을 듣고서  
即知一切無量眾生皆有佛性,무량한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음을 알 것이라    
以是義故,說大涅槃,이러한 의미에서 대열반을  
名為如來祕密之藏,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하거니와  
增長法身,법신(法身) 증장시키기를   
猶如雷時象牙上花。우레칠 때에 상아 꽃을 피우듯이 하느니라.  
以能長養如是大義,이와 같은 큰 뜻을 길러내므로 
故得名為大般涅槃。대반열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니, 
若有善男子、善女人,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有能習學是大涅槃微妙經典,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배워 익힌다면  
當知是人能報佛恩,이 사람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真佛弟子。」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甚奇,世尊!“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所言佛性,甚深甚深,말씀하신 불성은 심오하고 심오하니  
難見難入,보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聲聞緣覺所不能服。」성문 연각은 입을 수 없겠나이다.”
佛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善男子!如是,如是。 “선남자야, 그렇다, 그렇다.  
如汝所歎,不違我說。」너의 찬탄한 바가 내 말에 어긋나지 않는다.”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佛性者, "세존이시여, 불성이라는 것은 
云何甚深難見難入?」어째서 심오하고 보기도 들어가기도 어렵나이까?”
佛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善男子!如百盲人, “선남자야, 수많은 맹인들이 
為治目故,造詣良醫。눈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는데,  
是時良醫,即以金錍,決其眼膜。의사가 수술 칼[金錍]로 안막(眼膜)을 걷어내고 
以一指示,한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問言:『見不?』 '보입니까?' 하고 물으면 
盲人答言:『我猶未見。』맹인은 '아직 안 보입니다.' 하고, 
復以二指、三指示之,다시 두 손가락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  
乃言:『少見。』그제서야 '조금 보입니다.'고 하듯이, 
善男子!是大涅槃微妙經典,선남자야,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如來未說,亦復如是。여래가 설하지 전에는 그와 같아서 
無量菩薩,한량없는 보살들이 
雖具足行諸波羅蜜,乃至十住,바라밀로부터 10주(住)까지를 구족히 행해도  
猶未能見所有佛性;지니고 있는 불성을 보지 못했는데 
如來既說,即便少見。여래가 기왕 설하니, 조금 보게 되었느니라.   
是菩薩摩訶薩既得見已,이 보살마하살들은 보고서 
咸作是言:『甚奇,世尊!다같이 말하기를,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我等流轉無量生死,저희는 한량없는 생사를 유전하는 동안  
常為無我之所惑亂。』늘 무아(無我)라고 잘못 알고 있었나이다.’ 하니라.
善男子!如是菩薩,선남자야, 이와 같이 보살이 
位階十地,위계(位階)가 10지(十地)일지라도 
尚不了了知見佛性,불성을 요지하여 보기를 마치지 못하거늘, 
何況聲聞、緣覺之人,能得見耶?하물며 어찌 성문 연각들이 볼 수 있겠느냐?
復次善男子!또 선남자야, 
譬如仰觀虛空鵝鴈,마치 허공의 기러기를 쳐다보면서 
為是虛空?為是鵝鴈?허공인가, 기러기인가? 하다가  
諦觀不已,髣髴見之。살피기를 다하고서야 유사하게나마 보듯이    
十住菩薩於如來性,십주(十住)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知見少分,亦復如是,조금이나마 지견하는 것도 그러할 터인데  
況復聲聞緣覺之人能得知見?하물며 성문 연각들이 어찌 지견하겠느냐? 
善男子!譬如醉人,선남자야, 술 취한 사람이 
欲涉遠路,矇矓見道。먼 길을 걸으려 하면 길이 몽롱하게 보이듯이, 
十住菩薩於如來性,십주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知見少分,亦復如是。조금이나마 지견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譬如渴人,行於壙野,선남자야, 목마른 사람이 광야를 가다  
是人渴逼,遍行求水,갈증에 시달려 물을 두루 찾아 다니는데 
見有叢樹,樹有白鶴,숲 속에서 나무에 흰 학이 있는 것을 보고 
是人迷悶,不能分別是樹是水,이 사람이 혼미하여 나무인지 물인지 분별하지 못하다가  
諦觀不已,乃見白鶴及以叢樹。살피기를 다하고서야 흰 학과 숲을 보듯이, 
善男子!十住菩薩於如來性,십주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知見少分,亦復如是。조금이나마 지견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譬如有人,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在大海中乃至無量百千由旬,큰 바다에서 한없는 백천 유순에 이르도록 
遠望大舶樓櫓堂閣,即作是念:멀리 큰 배의 망루[樓櫓]를 바라보면서 
『彼是樓櫓?為是虛空?』 '저것이 망루인가 허공인가?' 생각하다가 
久視乃生必定之心,한참을 보고서야 필정(必定)의 마음이 생겨 
知是樓櫓。그것이 망루라고 알듯이, 
十住菩薩於自身中십주보살이 제 몸 안에서 
見如來性,亦復如是。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譬如王子,선남자야, 마치 왕자가 
身極懦弱,通夜遊戲,몸은 극히 유약한데 밤 새도록 놀다가  
至明清旦,밝은 아침에 이르러서는 
目視一切悉不明了。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게 보이듯이, 
十住菩薩雖於己身見如來性,십주보살이 제 몸에서 여래 성품을 보는 것도 
亦復如是不大明了。그와 같이 크게 명료하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또 선남자야, 
譬如臣吏,王事所拘,마치 신하가 나랏 일에 메어 있다가  
逼夜還家,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데 
電明暫發,번개불이 번쩍하는 사이에 
因見牛聚,即作是念:소떼를 본 인연으로 
『為是牛耶?聚雲屋舍?』 '저것이 소떼인가? 구름이나 집인가?' 하다가  
是人久視,이 사람이 오랫동안 보고서야 
雖生牛想,猶不審定。소라고 생각하지만 미심쩍게 여기듯이, 
十住菩薩雖於己身見如來性,십주보살이 제 몸에서 여래 성품을 보지만   
未能審定,亦復如是。미심쩍어 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復次善男子!如持戒比丘,또 선남자야, 지계(持戒)하는 비구가 
觀無虫水而見虫相,벌레 없는 물을 보는데도 벌레 모양을 보아 
即作是念:『此中動者, '이 안에 구물거리는 것이 
為是虫耶?是塵土耶?』벌레인가 먼지인가?' 하며 생각하다가 
久視不已,雖知是塵,오래 보기를 다하고서야 먼지인 줄을 알지만 
亦不明了。이 또한 명료하지 않듯이, 
十住菩薩於己身中見如來性,십주보살이 제 몸에서 여래 성품을 보는 것도 
亦復如是不大明了。그와 같이 명료하지 못하며, 
復次善男子!譬如有人,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於陰闇中遠見小兒,即作是念:어두운 데서 멀리 어린 아이를 보고 
『彼為是牛、鷲、鳥、人耶?』 '저것이 소인가, 독수리나 새인가, 사람인가?' 하며 
久觀不已,오래 보기를 다하고서야 
雖見小兒猶不明了。어린 아이인 줄 알게 되더라도 명료치 않듯이, 
十住菩薩於己身分見如來性,십주보살이 제 몸에서 여래 성품을 보는 것도 
亦復如是不大明了。그와 같아서 크게 명료하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譬如有人,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於夜闇中見畫菩薩像,即作是念:밤에 어둠 속에서 보살의 화상(畵像)을 보고 
『是菩薩像、自在天像、 '보살상에 가사 입힌 것인가, 자재천상이나 
大梵天像、成染衣耶?』대범천상에 가사 입힌 것이가?' 하다가  
是人久觀,이 사람이 오래 살피고서야 
雖復意謂是菩薩像,亦不明了。보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명료치 않듯이, 
十住菩薩於己身分見如來性,십주보살이 제 몸에서 여래 성품을 보는 것도 
亦復如是不大明了。그와 같아서 크게 명료치 못하느니라. 
善男子!所有佛性如是甚深,선남자야, 소유한 불성이 이렇듯 심오하여 
難得知見,지견을 얻기 어려운지라   
唯佛能知,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요, 
非諸聲聞緣覺所及。성문 연각들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善男子!선남자야, 
智者應作如是分別知如來性。」지혜로운 이라면 여래 성품을 
이렇게 분별하여 알아야 하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佛性如是微細難知,불성이 이렇게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데  
云何肉眼而能得見?」어떻게 육안으로 볼 수 있겠나이까?”
佛言:「迦葉!善男子!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가섭아, 선남자야! 
如彼非想非非想天,저 비상비비상천도 
亦非二乘所能得知,2승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隨順契經,以信故知。경전을 따라 믿음으로써 알게 되듯이 
善男子!선남자야, 
聲聞緣覺信順如是大涅槃經,성문 연각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믿고 따르면 
自知己身有如來性,亦復如是。자기의 몸에 여래의 성품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선남자야, 
是故應當精勤修習大涅槃經。따라서 대열반경을 정근하여 수습(修習)해야 하거니와,  
善男子!선남자야, 
如是佛性,唯佛能知,이러한 불성은 부처님만이 알 수 있으니   
非諸聲聞緣覺所及。」성문 연각들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非聖凡夫有眾生性,성인이 아닌 범부들은 중생의 성품이 있어서 
皆說有我。」모두 내가 있다[有我]고 하나이다.”
佛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譬如二人共為親友,“비유컨대,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으니,  
一是王子、一是貧賤,하나는 왕자이고 하나는 빈천한 사람이었는데, 
如是二人互相往返。이 두 사람이 서로 왕래하였느니라.  
是時貧人見是王子有一好刀,그때 가난한 사람이 왕자가 가진 
淨妙第一,정묘하기 제일인 좋은 칼을 보고 
心中貪著。마음 속으로 탐내고 있었는데,  
王子後時捉持是刀逃至他國。왕자가 훗날 그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렸느니라. 
於是貧人,後於他家寄臥止宿,가난한 사람은 그 뒤에 남의 집에서 기숙하여 
即於眠中,讇語刀刀。잠자는 도중에 '칼, 칼' 하며 잠꼬대하는 것을 
傍人聞之,收至王所。곁에 있던 사람이 듣고 
그 사람을 붙잡아 왕에게로 가니, 
時王問言:왕이 물었느니라.
『汝言刀者,何處得耶?』 ‘네가 칼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났느냐?' 
是人具以上事答王:그 사람이 앞서의 일을 다 아뢰고 왕에게 답하기를,  
『王今設使屠割臣身, ‘대왕께서 지금 신의 몸을 도려내고 
分張手足,欲得刀者,손발을 잘라 칼을 얻으시려 할지라도 
實不可得。실로 칼을 얻을 수는 없나이다.  
臣與王子素為親厚,신이 왕자와 그냥 친하여  
先與一處,雖曾眼見,전에 함께 어느 곳에서 눈으로 본 적은 있으나 
乃至不敢以手撐觸,감히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하였사온데 
況當故取?』하물며 어찌 가졌겠나이까?’ 하니, 
王復問言:왕이 또 물었느니라.
『卿見刀時,相貌何類?』 ‘네가 칼을 보았을 때 모양이 무엇을 닮았더냐?’
答言:『大王! '대왕이시여, 
臣所見者,如羖羊角。』신이 본 것은 검은 양[羖羊]의 뿔 같았나이다.’
王聞是已,欣然而笑語言:왕이 듣고서 흔쾌히 웃으면서 
『汝今隨意所至,莫生憂怖, ‘너는 이제 걱정 말고 마음대로 가거라. 
我庫藏中都無是刀,내 곳간에 그런 칼이라고는 없는데, 
況汝乃於王子邊見?』하물며 어찌 왕자 곁에서 보았겠느냐?’
時王即問諸群臣言:왕은 곧 군신들에게 묻기를, 
『汝等曾見如是刀不?』 ‘그대들은 그런 칼을 본 적이 있는가?’ 하고  
言已崩背。말을 마치자 세상을 떠나니, 
尋立餘子紹繼王位,그러자 다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復問輔臣:또 보좌하는 신하들에게 물었느니라. 
『卿等曾於官藏之中見是刀不?』 ‘경들은 관(官)의 곳간에서 그 칼을 본 적이 있는가?’  
諸臣答言:『臣等曾見。』 ‘본 적이 있나이다.’  
覆復問言:『其狀何似?』 '그 모양이 무엇을 닮았던가?' 
答言:『大王!如羖羊角。』 ‘대왕이시여! 양의 뿔 같았나이다.’
王言:『我官藏中,왕은 '나의 곳간 안 
何處當有如是相刀?』어디에 그런 모양의 칼이 있는가?' 하였고,   
次第四王,皆悉撿挍,求索不得。그 다음 차례대로 네 왕들이 다 그렇게 
점검하고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했느니라.
却後數時,先逃王子,얼마 후에 도망갔던 왕자가 
從他國還,來至本土,復得為王。다른 나라로부터 본국에 돌아와서 다시 왕이 되었고, 
既登王位,復問諸臣:왕위에 올라서는 또 신하들에게 물었느니라.
『汝見刀不?』 ‘그대들은 칼을 보았는가?’
答言:『大王!臣等皆見。』 ‘대왕이시여, 신들이 다 보았나이다.’
覆復問言:『其狀何似?』다시 '모양이 무엇을 닮았던가?' 물으니, 
答言:『大王!其色清淨, ‘대왕이시여, 그 빛이 청정하기가 
如優鉢羅花。』우발라꽃 같았나이다.’ 하기도 하고, 
復有答言:『形如羊角。』또 ‘모양이 양의 뿔 같았나이다.’ 하거나, 
復有說言:『其色紅赤,猶如火聚。』또 ‘그 색깔이 붉은 것이 불덩어리 같았나이다.’
復有答言:『猶如黑蛇。』또 ‘검은 뱀과 같았나이다.’ 하자, 
時王大笑:이에 왕이 크게 웃으며 
『卿等皆悉不見我刀真實之相。』 ‘경들은 모두 내 칼의 진실한 모양을 
보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느니라.
「善男子!菩薩摩訶薩亦復如是,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라서   
出現於世說我真相,세간에 출현하여 나의 진실한 모양을 설하고, 
說已捨去,말을 마치고는 떠나가는 것은  
喻如王子持淨妙刀逃至他國。마치 왕자가 정묘(淨妙)한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리는 것과 같고,  
凡夫愚人說言一切有我、有我,어리석은 범부들이
매사에 '내가 있다, 내가 있다’ 하는 것은 
如彼貧人,止宿他舍,讇語刀刀。마치 저 가난한 사람이 다른 집에서 자다가
 ‘칼 칼’ 하고 잠꼬대하는 것과 같으며, 
聲聞緣覺問諸眾生:성문 연각이 중생들에게 
『我有何相?』 ‘내가 어떤 모양인가?’ 하고 물으면, 
答言:『我見我相,大如母指。』 ‘내가 보건대 나의 모양은 엄지손가락 같다’ 하고, 
或言:『如米、或如稗子。』혹은 ‘쌀 같기도 하고, 피씨[稗子] 같기도 하다' 하고, 
有言:『我相住在心中,어떤 이는 '나의 모양이 마음속에 있는데 
熾然如日。』해처럼 활활 타오른다.'고 하거니와,  
如是眾生不知我相,이와 같이 중생들이 나의 모양을 알지 못함은 
喻如諸臣不知刀相。마치 저 신하들이 칼 모양을 모르는 것과 같고, 
菩薩如是說於我法,보살이 그렇듯 나에 대한 이치[我法]를 설하면, 
凡夫不知種種分別,범부들이 알지 못하고 갖가지로 분별하여  
妄作我相;허망한 나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은    
如問刀相,答似羊角。마치 칼 모양을 물으니 
양의 뿔 같다고 답하는 것과 같으며,  
是諸凡夫次第相續而起邪見,범부들이 차례로 이어가며 사견(邪見)을 일으키니 
為斷如是諸邪見故,그러한 모든 사견들을 끊어 버리고자  
如來示現說於無我。여래가 나투어 보이시고도 무아(無我)라 하신 것은 
喻如王子語諸臣言,마치 왕자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我庫藏中無如是刀。 ‘내 곳간에는 그런 칼이 없다’ 한 것과 같으니라.
善男子!今日如來所說真我,선남자야, 오늘 여래가 말하는 참 나[眞我]는 
名曰佛性。이름하여 불성이라 하거니와, 
如是佛性,我佛法中喻如淨刀。이러한 불성은 나의 불법 가운데 청정한 칼과 같다. 
善男子!若有凡夫能善說者,선남자야, 만일 어떤 범부가 선한 말을 하면 
即是隨順無上佛法。그것이 곧 위없는 불법에 수순하는 것이며, 
若有善能分別隨順宣說是者,또 어떤 이가 잘 분별하고 수순하여 그것을 설하면 
當知即是菩薩相貌。마땅히 알라. 이것이 곧 보살의 모습이니라. 
善男子!所有種種異論、선남자야, 갖가지 다른 이론과 
呪術、言語、文字,주술, 언어, 문자가 있다는 것은  
皆是佛說,非外道說。」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며 외도의 말이 아니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云何如來說字根本?」무엇을 여래는 글자의 근본이라 하시나이까?”
佛言:「善男子!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說初半字,以為根本,당초 반자(半字)를 근본 삼아 설하고 
持諸記論,呪術文章,諸陰實法。논(論)과 주술, 문장, 5음(陰)의 실제 법 
모두를 기록하여 가졌으니, 
凡夫之人學是字本,범부들은 이 글자의 근본을 배운 연후에야  
然後能知是法、非法。」옳은 법인지 그른 법인지를 알 것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世尊!가섭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所言字者,其義云何?」글자라 하는 것은 그 이치가 무엇이옵니까?”
「善男子!有十四音名字義, “선남자야, 14음(音)을 자의(字義)라 하는데   
所言字者,名曰涅槃,常故不流,자[字]라 하는 것은 열반은 항상하므로 유전하지 않고  
若不流者,則為無盡,유전하지 않는다면 곧 다함이 없는 것[無盡]이요,  
夫無盡者,即是如來金剛之身,무진(無盡)은 곧 여래의 금강신임을 이르는 것이니,      
是十四音,名曰字本。이 14음을 글자의 근본[字本]이라 하느니라.
「噁者,不破壞故, '악(噁;a)'은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不破壞者,名曰三寶,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삼보라 하여  
喻如金剛。마치 금강과 같다.  
又復噁者,名不流故,또 '악(噁)'은 불류(不流)를 이르는 것이라    
不流者即是如來,흐르지 않는 것[不流]은 곧 여래이며, 
如來九孔無所流故,여래의 아홉 구멍은 흐르는 것이 없으니,  
是故不流。그 때문에 불류인 것이다.  
又無九孔是故不流,또 아홉 구멍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거니와   
不流即常,常即如來,불류는 곧 항상함이요, 항상함은 곧 여래이며,  
如來無作是故不流。여래는 지음이 없으므로 불류인 것이다.  
又復噁者名為功德,또 '악(噁)'은 공덕(功德)이라 하거니와 
功德者即是三寶,是故名噁。공덕이란 곧 삼보이니, 그래서 '악(噁)'이라 한다.
「阿者,名阿闍梨, '아(阿;a:)'는 아사리(阿闍梨)를 말하는데
阿闍梨者,義何謂耶?아사리란 의미가 무엇을 이르는 것인가 하면  
於世間中,得名聖者。세간에서 성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분이다.  
何謂為聖?어째서 성인이라 하는가? 
聖名無著。성인은 집착이 없다[無著]고 하거니와   
少欲知足亦名清淨,소욕지족(少欲知足)하니 청정(淸淨)이라고도 하며, 
能度眾生於三有流生死大海,능히 3유(三有)의 생사대해에서 중생을 제도하니, 
是名為聖。이를 일러 성인이라 한다. 
又復阿者名曰制度,또 '아(阿)'는 제도(制度)라고도 하며,   
修持淨戒隨順威儀。청정한 계행을 닦아 지니고 위의를 쫓는다. 
又復阿者名依聖人,또 '아(阿)'는 성인에 의지함을 말하니, 
應學威儀進止舉動,위의와 진지거동(進止舉動)을 배우고,     
供養恭敬禮拜三尊,삼존(三尊;三寶)을 공양하고 공경하여 예배하며, 
孝養父母及學大乘,부모에게 효도하고 대승을 배우면서   
善男女等具持禁戒,선남선녀가 금계를 구족히 지키는 것이요,   
及諸菩薩摩訶薩等,是名聖人。보살마하살 등이 성인이라 할 것이다. 
又復阿者名曰教誨,또 '아(阿)'는 교회(敎誨)라 하여,
如言汝來,如是應作,如是莫作,마치 ‘너는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하는 것과 같거니와  
若有能遮非威儀法,만일 누가 위의롭지 못한 일을 능히 막는다면 
是名聖人,是故名阿。이를 성인이라 하리니, 그래서 '아(阿)'라 한다.
「億者,即是佛法, '억(億;i)'는 곧 불법이니, 
梵行廣大,清淨無垢,喻如滿月。범행(梵行)이 광대하고 청정무구하기 보름달 같다. 
汝等如是,應作、不作,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되고, 
是義、非義,이것은 의롭고 의로운 것이 아니고, 
此是佛說、此是魔說,이것은 부처님 말씀이고 이것은 마의 말이다' 하니. 
是故名億。그러므로 '억[億]'라 한다.
「伊者,佛法微妙甚深難得, '이(伊;i:)'는 불법은 미묘하고 깊고 얻기 어려우니  
如自在天大梵天王,法名自在,마치 자재천 대범천왕 법을 자재(自在)라 함과 같아서     
若能持者,則名護法;불법을 능히 지켜야 곧 호법(護法)이라 하는 것이며,  
又自在者,名四護世,또 자재란 사호세(四護世;사천왕)라 하여  
是四自在,則能攝護大涅槃經,이 네 자재들이 대열반경을 능히 거두어 수호하고, 
亦能自在敷揚宣說。또 자재하게 널리 펼쳐 연설하는 것이다. 
又復伊者,能為眾生自在說法。또 '이(伊)'는 중생들에게 자재히 법을 설함이요,
復次伊者為自在故,또 '이(伊)'는 자재하려는 것이니, 
說何等是也?어떤 것들을 이것이라 하는가?  
所謂修習方等經典。소위 방등경전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復次伊者,為斷嫉妬,또 '이(伊)'는 질투를 끊으려는 것이니, 
如除稗穢,皆悉能令變成吉祥,마치 피를 뽑아내듯이 모두가 길상하게 변하기에   
是故名伊。그래서 '이(伊)'라 한다.
「郁者, '욱(郁;u)'이란 
於諸經中最上最勝,경전들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며 
增長上上謂大涅槃。높이 높이 늘어나니 대열반이라 한다. 
復次郁者如來之性,또 '욱(郁)'은 여래의 성품이라서  
聲聞緣覺所未曾聞。성문 연각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如一切處,北欝單越最為殊勝;모든 곳에서 북울단월이 가장 수승하듯이, 
菩薩若能聽受是經,보살이 이 경을 능히 청수(聽受)하면 
於一切眾最為殊勝。모든 중생에서 가장 수승하게 되므로 
以是義故,이런 의미에서 
是經得名最上最勝,이 경이 '최상최승'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니, 
是故名郁。그 때문에 '욱(郁)'이라 한다.
「優者, '우(優;u:)'란 
喻如牛乳,諸味中上,마치 우유가 모든 맛 중에 으뜸이듯이 
如來之性亦復如是,여래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於諸經中最尊最上,경전들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높거니와, 
若有誹謗,만일 누가 비방하면 
當知是人與牛無別。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소와 다를 것이 없다. 
復次優者,또 '우(優)'는 
是人名為無慧、正念。이 사람을 '지혜와 정념(正念)이 없다'고 한다. 
誹謗如來微密祕藏,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비방하면 
當知是人甚可憐愍,이는 몹씨 가련한 사람인 줄 알아야 하거니와    
遠離如來祕密之藏,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멀리 떠나서 
說無我法,是故名優。무아(無我)의 법을 말하니, 그 때문에 '우(優)'라 한다.
「㖶者, '연(㖶;e,ye)'은  
即是諸佛、法性、涅槃,곧 제불(諸佛)과 법성(法性)과 열반(涅槃)이니, 
是故名㖶。그 때문에 '연(㖶)'이라 한다. 
者,謂如來義。 '야(;ai,ya:)'는 여래의(如來義)를 말한다. 
復次嘢者,如來進止、屈伸、舉動,또 야(嘢)는 여래의 진지(進止)와 굴신(屈伸), 거동(舉動)이 
無不利益一切眾生,일체중생을 이익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是故名嘢。그 때문에 '야(嘢)'라 한다. 
「烏者,名煩惱義, '오(烏;o)'는 번뇌의(煩惱義)을 말한다. 
煩惱者名曰諸漏,번뇌란 모든 누(漏)를 이르거니와 
如來永斷一切煩惱,여래는 일체번뇌를 영단(永斷)하셨으니, 
是故名烏。그 때문에 '오(烏)'라 한다. 
「炮者,謂大乘義, '포(炮;o:)'란 대승의(大乘義)를 말하거니와   
於十四音是究竟義。14음(音)이 구경(究竟)의 이치이듯이 
大乘經典亦復如是,대승경전도 그와 같이 
於諸經論最為究竟,경론들 중 가장 구경이 되는 것이라,  
是故名炮。그 때문에 '포(炮)'라 한다. 
「菴者, '암(菴,唵;aum,om)'이란 
能遮一切諸不淨物,능히 일체의 부청한 물건을 차단하고, 
於佛法中能捨一切金銀寶物,불법 가운데서 모든 금은과 보물을 버리니, 
是故名菴。그 때문에 '암(菴)'이라 한다. 
「阿者,名勝乘義。 '아(阿,पौ;au)'는 수승한 승(乘)의 뜻[勝乘義]를 말한다. 
何以故?此大乘典大涅槃經,왜냐하면,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은 
於諸經中最為殊勝,모든 경 가운데 가장 수승한 것이라, 
是故名阿。그 때문에 '아(阿)'라 한다. 
*고대 인도의 소리글자인 산스크리스트어(梵語) 모음(母音) 12字(,,,,,,,,,ऒॐ,,पौ)를
발음에 따라 뜻글자인 한자로 표기해 놓으니 난해하고 부자연스러운데,
바로 이런 과정의 고충을 한 스님이 세종대왕을 통해 산스크리스트어 음운체계에 따라
우리에 맞게 해결해 낸 것이 한글이다.  
「迦者,於諸眾生起大慈悲, '가(迦;kka)'는 모든 중생에게 대자비를 일으켜서 
生於子想,如羅睺羅,라후라(羅睺羅)와 같은 아들이라 생각하는 
作妙上善義,是故名迦。묘하고 높은 선한 뜻을 지으므로 '가(迦)'라 한다.
「佉者,名非善友, '거(佉;kha)'는 선우(善友) 아닌 것을 말하며, 
非善友者,名為雜穢。선우가 아닌 것을 잡예(雜穢)라 한다. 
不信如來祕密之藏,是故名佉。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불신하므로 '거(佉)'라 한다. 
「伽者,名藏, '가(伽;gha)'란 장(藏)을 말하고, 
藏者即是如來祕藏,장(藏)은 곧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니,
一切眾生皆有佛性,是故名伽。일체중생은 다 불성이 있으므로 '가(伽)'라 한다. 
「[口*恒]者,如來常音。 '항(恒;nga)'이란 여래의 항상하신 음성이다. 
何等名為如來常音?어떤 것을 여래의 항상하신 음성이라 하는가? 
所謂如來常住不變,소위 여래의 상주불변(常住不變)하심이니, 
是故名[口*恒]。그 때문에 '항(恒)'이라 한다. 
「俄者,一切諸行破壞之相, '아(俄,哦;ga)'는 모든 행(行)의 무너지는 모습이니, 
是故名俄。그래서 '아(俄)'라 한다. 
「遮者,即是修義, '차(遮;zza)'는 곧 수행의 의의[修義]이며, 
調伏一切諸眾生故,名為修義,일체중생을 조복시키므로 수의(修義)라 하니, 
是故名遮。때문에 '차(遮)'라 한다. 
「車者,如來覆蔭一切眾生, '차(車;cha)'는 여래는 일체중생을 가려주시니, 
喻如大蓋,是故名車。마치 큰 일산과 같으므로 '차(車)'라 한다. 
「闍者,是正解脫, '사(闍;ja)'란 곧 바른 해탈[正解脫)이라,  
無有老相,是故名闍。늙은 모양이 없으므로 '사(闍)'라 한다. 
「膳者,煩惱繁茂, '선(膳,重音闍;jha)'은 번뇌가 무성한 것이 
喻如稠林,是故名膳。마치 빽빽한 숲과 같으므로 '선(膳,重音闍)'이라 한다.
「喏者,是智慧義, '야(,若;nya)'는 지혜의 의의(意義)이니, 
知真法性,是故名喏。참 법의 성품을 알므로 '야(喏)'라 한다. 
「吒者, '타(;dta)' 
於閻浮提示現半身而演說法,염부제에 반으로 몸을 나누어 나타내고 법을 설하니,  
喻如半月,是故名吒。마치 반달과 같으므로 타(吒)라 한다. 
「侘者,法身具足, '타(侘;dtha)'란 법신(法身)이 구족하기가 
喻如滿月,是故名侘。마치 보름달 같으므로 '타(侘)'라 한다. 
「荼者,是愚癡僧, '다(;dda)'는 어리석은 중이니, 
不知常與無常,상(常)과 무상(無常)을 모르는 것이 
喻如小兒,是故名荼。마치 어린애 같으므로 '다(荼)'라 한다. 
「祖者,不知師恩, '조(祖,重音;ddha)'는 스승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喻如羝羊,是故名祖。마치 수컷 양과 같으므로 조(祖)라 한다. 
「拏者,非是聖義, '나(拏;nna)'란 성인의 이치가 아닌 것이 
喻如外道,是故名拏。마치 외도와 같으므로 나(拏)라 한다. 
「多者,如來於彼告諸比丘, '다(多;ta)'란 여래가 비구들에게 고하시기를,  
宜離驚畏, ‘놀라거나 두려워 말라. 
當為汝等說微妙法,너희에게 미묘한 법을 말하리라’고 하시니, 
是故名多。그 때문에 '다(多)'라고 한다.
「他者,名愚癡義, '타(他;tha)는 어리석은 뜻을 말하니,  
眾生流轉生死,중생들이 생사를 흘러 구르면서 얽어매는 것이 
纏裹如蠶蜣蜋,是故名他。마치 누에고치와 같으므로 '타(他)'라 한다.
「陀者,名曰大施, '타(陀;da)'는 큰 베풂[大施]을 말하니, 
所謂大乘,是故名陀。이른바 대승이므로 '타(陀)'라 한다.
 
「彈者,稱讚功德, '탄(彈;dhá)'은 공덕을 칭찬하는 것이니, 
所謂三寶,如須彌山,高峻廣大,소위 삼보는 수미산처럼 고준(高峻)하고 광대하여 
無有傾倒,是故名彈。뒤집어질 일이 없으므로 '탄(彈)'이라 한다.
「那者,三寶安住,無有傾動, '나(那;rna)'는 삼보가 흔들림 없이 안주함이 
喻如門閫,是故名那。마치 문지방과 같으므로 '나(那)'라 한다.
「波者,名顛倒義, '파(波;ppa)'는 전도(顚倒)된 뜻을 이르는데,  
若言三寶悉皆滅盡,만일 삼보는 다 멸진(滅盡)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當知是人自疑惑,이 사람은 스스로 의혹에 빠진 줄 알아야 하리니, 
是故名波。그 때문에 '파(波)'라 한다. 
「頗者,是世間災, '파(頗;pha)'는 세간의 재앙인데    
若言世間災起之時三寶亦盡,만일 세간에 재앙이 일어날 때 삼보도 다한다고 말하면 
當知是人,愚癡無智違失聖旨,이 사람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성인의 뜻을 
是故名頗。잃은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파(頗)'라 한다. 
「婆者,名佛十力, '바(婆;bā)'는 부처님의 십력을 이르는 것이라 
是故名婆。그 때문에 '바(婆)'라 한다. 
「滼者,名為重擔, '범(;bha)'은 무거운 짐을 말하는데,
堪任荷負無上正法,위없는 정법의 짐을 감당해 짊어지면   
當知是人是大菩薩,이 사람이 대보살임을 알아야 하리니,  
是故名滼。그러므로 ‘범()’이라 한다.
「摩者,是諸菩薩嚴峻制度, '마(摩;ma)'는 보살들의 준엄한 제도(制度), 
所謂大乘大般涅槃,是故名摩。즉 대승의 대반열반이므로 ‘마(摩)’라 한다.
「蛇者,是諸菩薩, '사(蛇,邪;ya)'는 보살들이니, 
在在處處為諸眾生說大乘法,곳곳마다에서 중생들에게 대승법을 설하므로 
是故名蛇。그래서 '사(蛇)'라 한다. 
「囉者, '라(囉;rā)' 
能壞貪欲、瞋恚、愚癡,능히 탐욕, 진에, 우치를 깨뜨리고 
實法,是故名囉。진실한 법을 설하므로 ‘라(囉)’라 한다.
「羅者, '라(羅;la)' 
名聲聞乘,動轉不住,성문승이 굴러돌며 머물러 있지 않음을 이르거니와, 
大乘安固無有傾動,대승은 굳게 안정하여 흔들림이 없으니, 
捨聲聞乘,성문승을 버리고 
精勤修習無上大乘,위없는 대승을 정근하여 닦아야 할 것이라 
是故名羅。그 때문에 ‘라(羅)’라 한다.
「和者,如來世尊, '화(和;va)'는 여래 세존께서 
諸眾生雨大法雨,중생들에게 내리신 대법의 비[大法雨]이니, 
所謂世間呪術經書,是故名和。소위 세간의 주술과 경서(經書)이므로 ‘화(和)’라 한다.
「奢者遠離三箭,是故名奢。 '사(奢,;sha)' 
세 가지 화살[三毒]을 멀리하는 것이므로 ‘사(奢)’라 한다.
「沙者,名具足義, '사(沙;ssā)'는 구족한 뜻을 말하니, 
若能聽是大涅槃經,만일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則為已得聞持一切大乘經典,곧 모든 대승경전을 이미 들어 지닌 것이 되기에 
是故名沙。그레서 '시(沙)'라 한다. 
「娑者,為諸眾生演說正法, '사(娑;sā)'는 중생들에게 정법을 연설해 주어 
令心歡喜,是故名娑。마음을 환희케 하므로 '사(娑)'라 한다. 
「呵者,名心歡喜, '하(呵,訶;ha)'는 마음의 환희를 이르거니와 
奇哉世尊,離一切行, '기이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행을 여의시며, 
怪哉如來,入般涅槃,괴상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반열반에 드시다니.'라 하니, 
是故名呵。그 때문에 '하(呵)'라 한다. 
「[口*]者,名曰魔義, '다(口*,乞叉;ksa)'는 마(魔)의 뜻을 이르는데, 
無量諸魔不能壞如來祕藏,무량한 마들도 여래의 비장(祕藏)을 깨뜨릴 수 없기에 
是故名[口*]。그 때문에 '다(口*)'라 한다. 
復次[口*荼]者,乃至示現隨順世間,또 '다'는 세간법에 따라 
有父母妻子,是故名[口*荼]부모와 처자를 두어 보이므로 '다'라 한다.  
*Devanagari 자음 34자이다. 그 중 乞叉(ksa)는 복자음(復子音)이다. 
「魯、流、盧、樓, '로(魯;r), 류(流;rr), 로(盧;l), 루(樓;ll)'의 
如是四字,說有四義,이 네 자는 네 가지 뜻을 말하는 것이니,  
謂佛、法、僧及以對法。이른바 불(佛), 법(法), 승(僧)과 대법(對法)이다. 
言對法者隨順世間,대법이라 함은 세간에 수순하는 것이니, 
如調婆達示現壞僧,마치 제바달다가 파화합승(破和合僧)하고   
化作種種形貌色像;갖가지 형모와 색상을 화작(化作)한 것과 같아서  
為制戒故,이는 계율을 제정하고자 함이었음을 
智者了達,지혜로운 자는 분명히 깨달아서 
不應於此而生畏怖,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 
是名隨順世間之行,이를 일러 세간에 수순하는 행이라 하나니,  
以是故名魯、流、盧、樓。이 때문에 로(魯), 류(流), 로(廬), 루(樓)라 하느니라.
*이 (r), (rr), ((l), (ll) 네 자는 별모음(別母音)으로 분류한다.
이 모음 16(별모음4), 자음 34, 총 50자를 五十字門 또는 五十字母, 摩多體文이라 한다.  
「吸氣舌根、隨鼻之聲,흡기(吸氣)하는 혀나 코에서 나는 소리와   
長短超聲,隨音解義,긴 소리, 짧은 소리, 초월한 소리를 음에 따라 풀어보면  
皆因舌齒而有差別,모두 혀와 이[齒]로 인해 차별함이 있어서  
如是字義,이러한 자의(字義)가 
能令眾生口業清淨。중생으로 하여금 구업(口業)을 청정케 하거니와,  
眾生佛性則不如是중생의 불성은 그렇듯 
假於文字然後清淨。문자를 빌려서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何以故?性本淨故。왜냐하면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이어서  
雖復處在陰界入中,비록 음(陰), 계(界), 입(入)에 있더라도 
則不同於陰入界也,5음, 6입, 18계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是故眾生悉應歸依諸菩薩等,따라서 중생은 다 마땅히 불보살에 귀의해야 하고, 
以佛性故等視眾生無有差別,불성이 있기에 중생을 차별없이 평등히 보아야 하나니, 
是故半字於諸經書、이런 까닭에 반자(半字)가 모든 경서(經書)와 
記論文章,而為根本。기론(記論)과 문장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라. 
又半字義,또 반자(半字)의 의의는 
皆是煩惱言說之本,故名半字。모두가 번뇌를 말하는 근본이므로 반자라 한다.  
滿字者乃是一切善法言說之根本也,만자(滿字)는 모든 선법을 말하는 근본이니,  
譬如世間,為惡之者名為半人,마치 세간에서 악한자를 반쪽 사람이라 하고, 
修善之者名為滿人。선 닦는 자를 온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과 같다. 
如是一切經書記論,이와 같이 모든 경서와 기론은 
皆因半字而為根本。다 반자로 근본을 삼는다. 
若言如來及正解脫,入於半字,만일 여래와 정해탈이 반자에 속한다고 한다면 
是事不然。그 일은 그렇지 않다. 
何以故?離文字故,왜냐하면 문자를 떠났기 때문이니,  
是故如來於一切法,따라서 여래는 일체법에 
無礙無著真得解脫。장애도 집착도 없어서 참으로 해탈을 얻은 것이다.
何等名為解了字義?어떤 것을 자의를 안다고 하는가? 
有知如來出現於世,能滅半字,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어 
반자를 없애실 것을 알거든 
是故名解了字義。그 때문에 자의를 안다고 할 것이며,  
若有隨逐半字義者,만일 누가 반자의 뜻을 쫓아 따른다면 
是人不知如來之性。이 사람은 여래의 성품을 모르는 것이다. 
何等名無字義也?어떤 것을 자 없는 뜻[無字義]이라 하는가? 
親近修習不善法者,是名無字。불선법을 친근하여 닦는 것을 자(字)가 없다 하거니와, 
無字者雖能親近修習善法,자가 없다는 것은 비록 선법을 친근하여 닦을지라도 
不知如來常與無常、恒與非恒,여래의 상(常)과 무상, 불변함[恒]과 불변이 아님, 
及法僧二寶、그리고 법(法)과 승(僧)의 두 가지 보배, 
律與非律、經與非經、율(律)과 율 아닌 것, 경전과 경 아닌 것, 
魔說佛說,마의 말과 부처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若有不能如是分別,만일 누가 그러한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是名隨逐無字義也。이것을 자 없는 뜻을 쫓아 따른다고 한다. 
我今已說如是隨逐無字之義,내가 지금 이렇듯 무자의 쫓는 일을 설명했으니, 
善男子!是故汝今應離半字,선남자야, 너는 이제 반자를 떠나서 
善解滿字。」만자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我等應當善學字數,저희는 마땅히 글자 수를 잘 배우겠사옵거니와  
今我值遇無上之師,이제 저희가 위없는 스승을 만나서 
已受如來慇懃誨勅。」여래의 은근하신 가르침을 받았나이다.”
佛讚迦葉:부처님이 가섭을 칭찬하셨다.
「善哉,善哉! “참으로 장하도다. 
樂正法者,應如是學。」정법을 좋아한다면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爾時佛告迦葉菩薩:그때 부처님이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善男子!鳥有二種: “선남자야, 두 종류의 새 
一名迦隣提,二名鴛鴦,가린제(迦隣提)와 원앙(鴛鴦)은   
遊止共俱,不相捨離。다니고 멈추기를 함께 하며 서로 떠나지 않거니와,   
是苦、無常、無我等法,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같은 법도 
亦復如是,不得相離。」그와 같아서 서로 떠나지 않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云何是苦、無常、無我, “세존이시여, 어째서 고, 무상, 무아가 
如彼鴛鴦、迦隣提鳥?」저 원앙이나 가린제와 같다 하시옵니까?”
佛言:「善男子!
異法是苦,異法是樂;어떤 법은 고(苦)요, 또 어떤 법은 낙(樂)이며, 
異法是常,異法無常;어떤 법은 상(常)이요, 어떤 법은 무상(無常)이며, 
異法是我,異法無我;어떤 법은 유아(有我)요, 어떤 법은 무아(無我)이니, 
譬如稻米異於麻麥,마치 벼가 삼이나 보리와 다르고, 
麻麥復異豆粟甘蔗。삼과 보리는 또 콩, 조, 감자와 다른 것과 같아서  
如是諸種,이러한 것들의 씨가 
從其萌芽乃至葉花,皆是無常;거기서 싹이 나서 꽃이 피기까지가 다 무상하건만  
果實成熟,人受用時,열매가 익어 사람이 받아 쓸 때면  
乃名為常。곧 항상하다고 한다. 
何以故?性真實故。」왜냐하면 성품이 진실하기 때문이니라.” 
迦葉白佛言: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如是等物, “세존이시여, 그러한 것들이 
若是常者,同如來耶?」만약 항상하다면 여래와 같나이까?”
佛言:
「善男子!汝今不應作如是說。 “선남자야,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何以故?若言如來如須彌山,왜냐하면 만일 여래가 수미산과 같다고 말했을 때   
劫壞之時須彌崩倒,겁이 무너지면 수미산도 무너지려니와  
如來爾時豈同壞耶?여래가 그때 어찌 같이 무너지겠느냐? 
善男子!汝今不應受持是義。선남자야, 너는 그런 뜻을 지녀서는 안 된다. 
善男子!一切諸法唯除涅槃,선남자야, 일체의 모든 법이 열반을 제하고는 
更無一法而是常者,다시 한 법도 항상한 것이 없건만  
直以世諦言果實常。」세간의 이치로 곧게 열매가 항상하다 한 것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善哉,善哉!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옵니다. 
如佛所說。」부처님의 말씀과 같겠나이다.”
佛告迦葉: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如是,如是。善男子!“그렇다, 그렇다. 선남자야, 
雖修一切契經諸定,비록 모든 경전과 선정들을 닦았더라도 
乃至未聞大般涅槃,대반열반을 듣지 못하기에 이르렀다면 
皆言一切悉是無常。다 말하기를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려니와, 
聞是經已,이 경을 들은 뒤에는 
雖有煩惱如無煩惱,번뇌가 있어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即能利益一切人天。곧 모든 인천(人天)을 이익할 수 있다. 
何以故?曉了己身有佛性故,왜냐하면 자신에게 불성이 있음을 환히 아는 때문이니,  
是名為常。이를 일러 상(常)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譬如菴羅樹,또 선남자야, 마치 암라수(菴羅樹)는 
其花始敷名無常相,그 꽃이 처음 필 때는 무상한 모양이라 하지만 
若成果實,만약에 과실이 익어서 
多所利益乃名為常。이익이 많아지면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如是,善男子!그와 같이 선남자야, 
雖修一切契經諸定,비록 모든 경전과 선정을 닦았더라도 
未聞如是大涅槃時,이러한 대열반경을 듣지 못했을 때는 
咸言一切悉是無常;다 같이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고 하겠지만  
聞是經已,이 경을 듣고 나면 
雖有煩惱如無煩惱,비록 번뇌가 있어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即能利益一切人天。곧 모든 인천을 이익할 수 있다. 
何以故?曉了自身有佛性故,왜냐하면 자신에게 불성이 있음을 환히 아는 때문이니,  
是名為常。이를 일러 상(常)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譬如金鑛,또 선남자야, 마치 금광석은 
消融之時,是無常相,녹을 때는 무상한 모양이지만  
融已成金,多所利益,乃名為常。녹은 뒤에 금이 되어 이익이 많아지면 항상하다고 한다. 
如是,善男子!그와 같이 선남자야, 
雖修一切契經諸定,비록 모든 경전과 선정을 닦았더라도 
未聞如是大涅槃時,이러한 대열반경을 듣지 못했을 때는 
咸言一切悉是無常;다 같이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고 하겠지만  
聞是經已,이 경을 듣고 나면 
雖有煩惱如無煩惱,비록 번뇌가 있어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即能利益一切人天。곧 모든 인천을 이익할 수 있다. 
何以故?曉了自身有佛性故,왜냐하면 자신에게 불성이 있음을 환히 아는 때문이니,  
是名為常。이를 일러 상(常)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譬如胡麻,또 선남자야, 마치 호마(胡麻;깨)는  
未被壓時名曰無常,짜지 않았을 때는 무상하다 하지만 
壓成油多有利益,짠 뒤에 기름이 되어 이익이 많아지면 
乃名為常。마침내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善男子!雖修一切契經諸定,비록 모든 경전과 선정을 닦았더라도 
未聞如是大涅槃經,이러한 대열반경을 듣지 못했을 때는 
咸言一切悉是無常;다 같이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고 하겠지만  
聞是經已,이 경을 듣고 나면 
雖有煩惱如無煩惱,비록 번뇌가 있어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即能利益一切人天。곧 모든 인천을 이익할 수 있다. 
何以故?曉了己身有佛性故,왜냐하면 자신에게 불성이 있음을 환히 아는 때문이니,  
是名為常。이를 일러 상(常)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또 선남자야, 
譬如眾流,皆歸于海,모든 물줄기가 다 바다로 돌아가듯이 
一切契經諸定三昧,모든 경전과 선정과 삼매를 닦는 것도 
皆歸大乘大涅槃經。何以故?다 대승의 대열반경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究竟善說有佛性故。구경에는 불성이 있음을 잘 설명하기 때문이니, 
善男子!선남자야, 
是故我言異法是常、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어떤 법은 항상하고, 
異法無常,또 어떤 법은 무상하며, 
乃至無我亦復如是。」나아가 무아도 그와 같다 한 것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如來已離憂悲毒箭,여래는 이미 근심과 슬픔의 독화살을 떠나셨으니, 
夫憂悲者名天,如來非天。근심과 슬픔이 하늘이라 하되 여래는 하늘이 아니옵고, 
憂悲者名人,如來非人。근심과 슬픔이 사람이라 하되 여래는 사람이 아니며, 
憂悲者名二十五有,근심과 슬픔을 25유(有)라 하되 
如來非二十五有。여래는 25유가 아니시옵니다.  
是故如來無有憂悲,따라서 여래는 근심과 슬픔이 없으실 터인데, 
何故稱言如來憂悲?」어째서 여래가 근심과 슬픔이 있다 하시나이까?”
「善男子!無想天者,名為無想, “선남자야, 무상천(無想天)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若無想者則無壽命,만일 생각이 없다면 수명이 없을 것이며, 
若無壽命,云何而有陰界諸入?수명이 없다면 어찌 5음과 18계, 6입이 있겠느냐? 
以是義故,無想天壽,이런 의미에서 무상천의 수명이 
不可說言有所住處。머무는 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善男子!譬如樹神依樹而住,선남자야, 마치 나무 신[樹神]이 나무를 의지해 있지만 
不得定言依枝、依節、반드시 가지에 의지한다, 마디에 의지한다,  
依莖、依葉,줄기에 의지한다, 잎에 의지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雖無定所,不得言無;비록 일정한 곳이 없으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듯이  
無想天壽亦復如是。무상천의 수명도 그와 같으니라. 
善男子!佛性亦爾,甚深難解,선남자야, 불성도 그렇게 심히 깊어서 난해하거니와  
如來實無憂悲苦惱,여래는 실로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없으나  
而於眾生起大慈悲,중생에게 대자비를 일으켜 
現有憂悲,視諸眾生如羅睺羅。근심과 슬픔을 나타내 중생을 라후라처럼 보느니라. 
復次善男子!無想天中所有壽命,또 선남자야, 무상천 안에 있는 수명은 
唯佛能知,非餘所及,부처님만이 아시니, 다른 것이 미칠 바가 아니며, 
乃至非想非非想處亦復如是。비상비비상천까지도 그와 같으니라. 
迦葉!如來之性淨無染,가섭아, 여래의 성품은 청정하고 물들지 않는 것이 
猶如化身,마치 화신(化身)과 같은데, 
何處當有憂悲苦惱?어디에 우비고뇌가 있겠느냐? 
若言如來有憂悲者,만일 여래에게 우비(憂悲)가 있다고 한다면 
云何能利一切眾生,어떻게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고   
弘廣佛法?어떻게 불법을 널리 선포할 수 있겠으며,   
若言無者,만일 없다고 말한다면 
云何而言等視眾生如羅睺羅?어떻게 중생 평등히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고 하겠느냐? 
若不等視如羅睺羅,만일 라후라와 같이 평등히 보지 않는다 한다면 
如是之言則為虛妄。그러한 말은 곧 허망한 것이니라. 
以是義故,善男子!이러한 의미에서 선남자야, 
佛不可思議,法不可思議,불(佛)이 불가사의하고, 법이 불가사의하고, 
眾生佛性不可思議,중생의 불성도 불가사의하고, 
無想天壽不可思議。무상천의 수명도 불가사의하느니라.  
如來有憂及以無憂,是佛境界,여래가 근심이 있고 없고는 부처의 경계이라 
非諸聲聞緣覺所知。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善男子!譬如空中,선남자야, 비유컨대 공중에는 
舍宅微塵不可住立,집이나 티끌이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若言舍宅不因空住無有是處,만일 집이 허공에 인하지 않고 머문다 한다면 
옳은 곳이 없기에  
以是義故,이런 의미에서 
不可說舍住於虛空、不住虛空。집이 허공에 머물고 머물지 않고를 말할 수 없다. 
凡夫之人,雖復說言舍住虛空,범부들은 집이 허공에 머문다 하지만 
而是虛空實無所住。그 허공은 실로 머문 바가 없으니,  
何以故?性無住故。왜냐하면 머무는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善男子!心亦如是,선남자야, 마음도 그와 같아서 
不可說言住陰界入及以不住,음계입(陰界入)에 머물고 머물지 않고를 말할 수 없으며, 
無想天壽亦復如是,무상천의 수명도 그러하고, 
如來憂悲亦復如是,여래의 근심과 슬픔도 그러하거늘, 
若無憂悲,만일 근심과 슬픔이 없다 한다면 
云何說言等視眾生如羅睺羅?어떻게 중생 평등히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 하겠으며, 
若言有者,만일 근심과 슬픔이 있다 한다면 
復云何言性同虛空?또 어떻게 성품이 허공 같다고 말하겠느냐? 
善男子!譬如幻師,선남자야, 비유컨대 마술사가 
雖復化作種種宮殿,비록 갖가지 궁전을 화작(化作)하고, 
殺生長養繫縛放捨,죽였다 살렸다 묶었다 놓아 주었다 하고, 
及作金銀、琉璃寶物、叢林樹木,금, 은, 유리, 보물과 숲의 나무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都無實性。도무지 실다운 성품이 없듯이, 
如來亦爾,隨順世間,여래도 그러하여 세간에 수순하여 
示現憂悲,無有真實。근심 슬픔을 나타내 보이지만 진실함이 없다. 
善男子!如來已入於般涅槃,선남자야, 여래는 이미 반열반에 들었는데 
云何當有憂悲苦惱?어찌 우비고뇌가 있겠느냐? 
若謂如來入於涅槃是無常者,여래가 열반에 들었으니 이는 무상한 것이다 한다면 
當知是人則有憂悲。이 사람은 곧 근심 슬픔이 있는 것이요,  
若謂如來不入涅槃常住不變,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고 상주불변하다 한다면  
當知是人無有憂悲。이 사람은 근심과 슬픔이 없는 줄 알아야 하거니와,  
如來有愁及以無愁,無能知者。여래가 근심이 있고 없고를 알 수 있는 자는 없느니라. 
「復次善男子!譬如下人,또 선남자야, 마치 하품(下品)인 사람은 
能知下法,不知中上;낮은 법은 알되 중간과 높은 법은 모르고, 
中者知中,不知於上;중품(中品)인 자는 중간은 알되 높은 법은 모르지만 
上者知上,及知中下。상품(上品)인 자는 높은 법도 알고 
중간과 낮은 법도 알듯이 
聲聞緣覺亦復如是,성문 연각도 그와 같아서 
齊知自地。오로지 자기의 처지만 알거니와, 
如來不爾,여래는 그렇지 않아서 
悉知自地及以他地,제 처지와 남의 처지를 다 아시니, 
是故如來名無礙智。그 때문에 여래를 무애지(無礙智)라 하는 것이니라. 
示現幻化,隨順世間,환화(幻化)를 시현하며 세간에 수순하는 것을  
凡夫肉眼謂是真實;범부는 육안으로 진실이라 여기면서도 
而欲盡知如來無礙無上智者,여래의 무애무상지(無礙無上智)를 다 알려든다면 
無有是處。옳을 곳이 없다. 
有愁無愁,唯佛能知,근심이 있고 없고는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이니, 
以是因緣,異法有我,이러한 인연으로 어떤 법은 유아(有我)이고, 
異法無我;또 어떤 법은 무아(無我)인 것이니, 
是名鴛鴦、迦隣提鳥性。◎이를 일러 원앙과 가린제의 성품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또 선남자야, 
佛法猶如鴛鴦共行。불법은 마치 원앙이 같이 다니는 것과 같다. 
是迦隣提及鴛鴦鳥,이 가린제와 원앙은 
盛夏水,選擇高原,한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높고 평탄한 곳을 골라  
安處其子,為長養故,새끼를 안치하고 기르기 때문에 
然後隨本,安隱而遊。그런 뒤에는 본래대로 편안히 지내는데, 
如來出世亦復如是,여래의 출세도 그와 같아서 
化無量眾令住正法,무량한 중생을 교화하여 정법에 머물게 하니,   
如彼鴛鴦迦隣提鳥,마치 저 원앙과 가린제가 
選擇高原安置其子。높고 평탄한 데를 골라 새끼를 안치하는 것과 같고,  
如來亦爾,여래도 그와 같이 
令諸眾生所作已辦,중생들로 하여금 할 일을 마치게 하고 
即便入於大般涅槃。문득 대반열반에 들어가나니, 
善男子!是名異法是苦,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어떤 법은 고(苦)요, 
異法是樂,또 어떤 법은 낙(樂)이라 하거니와 
諸行是苦,涅槃是樂,모든 행[諸行]은 괴로움이요, 열반은 낙이니, 
第一微妙壞諸行故。」제일 미묘한 제행(諸行) 무너뜨림이기 때문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云何眾生得涅槃者名第一樂?」왜 중생이 열반 얻는 것을 제일의 낙이라 하나이까?”
佛言:부처님이 말씀하셨다.
「善男子!如我所說, “선남자야, 내가 말한 바와 같이 
諸行和合,名老死。제행의 화합을 노사(老死)라 하느니라.”
「謹慎無放逸, 是處名甘露;삼가하고 방일함이 없을지니 
여기를 감로라 하려니와 
 放逸不謹, 是名死句。방일하여 근신치 아니 하면
이를 죽은 마디라 하리라.
 若不放逸者, 則得不死處;만일 방일하지 않는다면 
곧 불사처(不死處)를 얻으려니와 
 如其放逸者, 常趣於死路。만일 그가 방일하다면 
죽음의 길로 나아가리라.
「若放逸者名有為法,방일한 것은 유위법이라 
是有為法為第一苦。이 유위법이 제일가는 괴로움이며,  
不放逸者則名涅槃,방일하지 않는 것은 곧 열반이라 할 것이라  
彼涅槃者名為甘露,第一最樂。열반을 일러 감로요 제일가는 낙이라 하느니라. 
若趣諸行,是名死處,受第一苦;모든 행을 쫓으면 죽을 곳이라 하여 
제일가는 괴로움을 받고, 
若至涅槃,則名不死,受最妙樂。열반에 이르면 죽지 않는다 하여 
가장 미묘한 낙을 받는다. 
若不放逸,雖集諸行,만일 방일하지 않으면 비록 모든 행을 모으더라도 
是亦名常樂、不死、不破壞身。이 또한 상락(常樂)이요, 불사(不死)요, 
파괴되지 않는 몸이라 하거니와,  
云何放逸?云何不放逸?무엇이 방일이며 방일하지 않음은 무엇인가? 
非聖凡夫是名放逸常死之法,성인이 아닌 범부는 방일하니 항상 죽는 법이지만, 
出世聖人是不放逸無有老死。세간을 초월한 성인은 방일하지 않아서 노사가 없다. 
何以故?入於第一常樂涅槃。왜냐하면 제일가는 상락의 열반에 들기 때문이니라. 
以是義故,異法是苦、異法是樂、이런 의미에서 어떤 법은 괴로움이요, 
또 어떤 법은 즐거움이며, 
異法是我,異法無我。어떤 법은 유아요, 또 어떤 법은 무아인 것이니라. 
如人在地,仰觀虛空,不見鳥跡。사람이 땅에서 허공을 우러러 
새가 날아간 자취를 볼 수 없듯이, 
善男子!眾生亦爾,無有天眼,선남자야, 중생도 그렇듯 천안(天眼)이 없어서  
在煩惱中而不自見有如來性,번뇌 속에서 스스로 여래의 성품이 있음을 보지 못하니, 
是故我說無我密教。그 때문에 내가 무아의 비밀한 가르침을 말했다. 
所以者何?無天眼者,不知真我어째서인가? 천안이 없으면 참 나를 알지 못하여 
橫計我故,나를 멋대로 헤아리기 때문이다.  
因諸煩惱所造有為,即是無常,번뇌로 인해 지어진 유위는 무상인 것이라, 
是故我說異法是常、異法無常。그러므로 내가 어떤 법은 상(常)이고 
또 어떤 법은 무상이라 말한 것이니라.
「精進勇健者, 若處於山頂,용맹히 정진하는 자가 산 정상에 오르면 
 平地及曠野, 常見諸凡夫。평지나 광야에서 늘 범부들을 볼 것이요, 
 昇大智慧殿, 無上微妙臺,대지혜의 궁전 더없이 미묘한 누대(樓臺)에 오르면
 既自除憂患, 亦見眾生憂。제 근심은 없애고 또 중생 근심은 보리라.
「如來悉斷無量煩惱,住智慧山,여래는 무량한 번뇌를 다 끊고 지혜의 산에 머물러  
見諸眾生常在無量億煩惱中。」중생들이 무량 억의 번뇌 속에 항상 있음을 보느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如偈所說, “세존이시여, 게송으로 말씀하신 
是義不然。그 이치가 그렇지 않겠나이다. 
何以故?入涅槃者無憂、無喜,왜냐하면 열반에 들어가면 근심도 기쁨도 없는데, 
云何得昇智慧臺殿?어찌 지혜 궁전의 누대에 올라가며, 
復當云何住在山頂而見眾生?」또 어떻게 산 정상에서 중생을 보겠나이까?”
佛言:「善男子!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智慧殿者,即名涅槃。지혜의 궁전이란 곧 열반을 이르는 것이다. 
無憂愁者謂如來也,근심이 없으면 여래라 하고, 
有憂愁者名凡夫人,근심이 있으면 범부라 하거니와 
以凡夫憂故,如來無憂。범부는 근심 때문이지만 여래는 근심이 없느니라. 
須彌山頂者謂正解脫,수미산 정상이란 정해탈을 말하고, 
勤精進者喻須彌山無有動轉。정진에 힘쓴다는 것은 
요지부동인 수미산에 비유한 것이며,  
地謂有為行也,평지는 유위의 행을 이르는 것이니, 
是諸凡夫安住是地,造作諸行。모든 범부들이 그 평지에 안주하여 모든 행을 짓는다. 
其智慧者則名正覺,지혜란 것은 정각(正覺)을 이르는 것이니, 
離有常住,故名如來。유(有)를 여의고 상주하므로 여래라고 한다. 
如來愍念無量眾生여래는 무량한 중생이 항상 
常為諸有毒箭所中,제유의 독화살에 맞아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니, 
是故名為如來有憂。」그 때문에 여래가 근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若使如來有憂者, “세존이시여, 가사 여래가 근심이 있다면 
則不得稱為等正覺。」등정각(等正覺)이라 할 수 없겠나이다.”
佛言:「迦葉!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가섭아, 
皆有因緣,모두가 인연이 있어서   
隨有眾生應受化處,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이 있는 곳을 따라 
如來於中示現受生,그 가운데 여래가 태어나 보이시는 것이지만  
雖現受生,而實無生,비록 출생을 보이시더라도 실로 생이 없으니, 
是故如來名常住法,그 때문에 여래를 상주법(常住法)이라 하고, 
如迦隣提、鴛鴦等鳥。가린제나 원앙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라.”
大般涅槃經卷第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