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25권

碧雲 2022. 1. 10. 12:59
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25권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북량(北涼)국 천축삼장 담무참(曇無讖) 역(譯)

 

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第十之五 10.5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제7의 功德은 親近善友, 專心聽法, 繫念思惟, 如法修行의 四法이 體를 이루는데,
이 四法은 곧 嬰兒行이며, 이 四法을 통해 三慧 즉 聞慧, 思慧, 修慧가 얻어지고
涅槃에 近接하게 되는 것이지 苦行을 한다고 해서 열반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다. 

 

「復次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
修大涅槃微妙經典,
具足成就第七功德?
善男子!菩薩摩訶薩
修大涅槃微妙經典,作是思惟:
『何法能為大般涅槃而作近因?』
菩薩即知有四種法,
為大涅槃而作近因。
若言勤修一切苦行,
是大涅槃近因緣者,是義不然。
所以者何?若離四法得涅槃者,
無有是處。何等為四?
一者親近善友,
二者專心聽法,
三者繫念思惟,
四者如法修行。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열반 미묘경전을 닦아
제7의 공덕을 구족히 성취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대열반 미묘경전을 닦으며 사유하기를,
『어떤 법이 대반열반의 근인(近因*)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보살은 곧 네 가지 법이 있어
대열반의 근인(近因)이 된다는 것을 알거니와,
만일 일체의 고행(苦行)을 힘써 닦는 것이
대열반에 가까운 인연이라고 말한다면 그렇지 않느니라.
어째서인가? 네 가지 법을 떠나서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인데,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親近善友],
둘째는 오롯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專心聽法],
셋째는 온 마음을 기울여 사유하는 것[繫念思惟],
넷째는 법에 맞게 수행하는 것[如法修行]이니라. 

★大涅槃의 四種近因(四法得涅槃); 親近善友, 專心聽法, 繫念思惟, 如法修行。
*近因; 結果와 直接的 關係가 있는 原因. 

 

善男子!譬如有人身遇眾病,
若熱若冷、虛勞下瘧、
眾邪鬼毒,到良醫所,
良醫即為隨病說藥。
是人至心善受醫教,
隨教合藥,如法服之,
服已病愈,身得安樂。
有病之人,喻諸菩薩,
大良醫者喻善知識,
良醫所說喻方等經,
善受醫教喻善思惟方等經義,

隨教合藥
喻如法修行三十七助道之法,
病除愈者喻滅煩惱,
得安樂者
喻得涅槃、常、樂、我、淨。
[親近善友의 四譬]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병,
즉 열병이나 냉병, 허로(虛勞)나 학질,
요사한 귀신의 독에 걸려 용한 의원을 찾아갔을 때
의원이 병에 따라 약을 일러 주거든
이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의원의 가르침을 받아
시키는 대로 약을 지어 여법하게 복용하고,
복용하고 나면 병이 나아서 몸이 안락하게 되었다면,
병든 사람은 보살에 비유할 수 있고,
용한 의원은 선지식에,
의원의 가르침은 방등경에,
의원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방등경전의 뜻을 잘 사유하는 것에,
지시한 대로 약을 짓는 것은
37조도법(助道法)을 여법히 수행하는 것에,
병이 치유되는 것은 번뇌를 멸하는 것에,
안락을 얻는 것은 
열반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느니라. 
善男子!譬如有王,
欲如法治,令民安樂,
諮諸智臣,其法云何?
諸臣即以先王舊法而為說之。
王既聞已,至心信行,
如法治國,無諸怨敵,
是故令民安樂無患。
善男子!王者喻諸菩薩,
諸智臣者喻善知識,
智臣為王所說治法喻十二部經,
王既聞已至心信行,
喻諸菩薩繫心思惟
十二部經所有深義,
如法治國喻諸菩薩如法修行,
所謂六波羅蜜,
以能修習六波羅蜜故無諸怨敵,
喻諸菩薩已離諸結煩惱惡賊,
得安樂者
喻諸菩薩得大涅槃常樂我淨。
선남자야! 또 어떤 왕이
여법하게 다스려 백성들을 안락하게 하고자
지혜로운 신하들에게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신하들이 선왕의 옛 법을 얘기해 주거든,
왕이 기왕 듣고서 지성으로 믿고 행하여
여법히 나라를 다스리면 원수와 적이 없어질 것이라
그 때문에 백성들이 안락하고 우환이 없게 되었다면,
선남자야! 왕은 보살에 비유할 수 있고,
지혜로운 신하는 선지식에,
신하가 왕에게 얘기해 준 다스리는 법은 12부경에,
왕이 듣고서 지성으로 신행(信行)한 것은
보살이 12부경이 지닌 심오한 뜻을
온 마음 기울여 사유하는 것에,
여법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보살이 여법히 수행하는 일,
소위 육바라밀에 비유할 수 있으며,
육바라밀을 수습함으로써 원적이 없어진 것은
보살이 결사와 번뇌의 악한 적을 여의는 것에,
안락하게 된 것은
보살이 대열반의 상락아정을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느니라. 
「善男子!譬如有人遇惡癩病,
有善知識而語之言:
『汝若能到須彌山邊,
病可得差。所以者何?
彼有良藥,味如甘露,
若能服者,病無不愈。』
其人至心信是事已,
即往彼山採服甘露,
其病除愈,身得安樂。
惡癩病者喻諸凡夫,
善知識者喻諸菩薩摩訶薩等,
至心信受喻四無量心,
須彌山者喻八聖道,
甘露味者喻於佛性,
癩病除愈喻離煩惱,
得安樂者喻得涅槃常樂我淨。
선남자야! 예컨대 어떤 나병 걸린 사람에게
어느 선지식이 말해 주기를,
『네가 수미산 끝에 가면
병이 나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좋은 약이 있어 맛은 감로와도 같은데,
먹을 수만 있다면 고치지 못할 병이 없다.』고 하거는
그 사람이 지심(至心)으로 그 사실을 믿고서
그 산으로 가서 감로를 캐 먹고
병이 치유되어 몸이 안락해졌다면,
나병 걸린 자는 범부에 비유할 수 있고,
선지식은 보살마하살 등에,
지심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4무량심(四無量心)에,
수미산은 8성도(八聖道)에,
감로의 맛은 불성(佛性)에,
나이 치유된 것은 번뇌를 여읜 것에,
안락을 얻는 것은 열반의 상락아정에 비유할 수 있느니라. 
善男子!譬如有人
畜諸弟子聰明大智,
是人晝夜常教不倦。
諸菩薩等亦復如是,
一切眾生有信不信,
而常教化無有疲厭。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총명하고 크게 지혜로운 제자들을 모았거든
이 사람이 밤낮으로 늘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듯이,
모든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이 믿거나 믿지 않거나
늘 교화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느니라. 

 

「善男子!善知識者,
所謂菩薩、佛、辟支佛、聲聞、
人中信方等者。
何故名為善知識耶?
善知識者能教眾生遠離十惡,
修行十善,
以是義故,名善知識。
復次善知識者,
如法而說、如說而行。
云何名為如法而說、如說而行?
自不殺生,教人不殺,
乃至自行正見,教人正見,
若能如是則得名為真善知識。
自修菩提,亦能教人修行菩提,
以是義故,名善知識。
自能修行信、戒、
布施、多聞、智慧,
亦能教人信、戒、
布施、多聞、智慧,
復以是義名善知識。
「선남자야! 선지식(善知識)이란
소위 보살과 부처, 벽지불, 성문,
방등경을 믿는 사람을 말하는데,
어째서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선지식이란 중생들로 하여금 십악(十惡)을 여의고
십선(十善)을 닦게 하니,
이런 의미에서 선지식이라고 하느니라.
또 선지식은 여법하게 설하고 여설(如說)히 행하거니와,
어떤 것을 여법히 설하고 여설히 행한다고 하는가?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남에게도 살생하지 않게 하며,
나아가 정견(正見)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행하고,
남에게도 정견을 가르치거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곧 참된 선지식이라 할 것이요,
스스로 보리(菩提)를 닦고, 남에게도 보리를 닦게 하니,
이런 뜻에서 선지식이라 하며,
스스로 믿어 계(戒)와
보시, 다문(多聞), 지혜를 수행하고,
남에게도 믿어서 계와
보시, 다문 지혜를 수행하게 하니,
또 이런 뜻에서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니라. 
善知識者,有善法故。
何等善法?
所作之事不求自樂,
常為眾生而求於樂,
見他有過不訟其短,
口常宣說純善之事,
以是義故,名善知識。
선지식이라는 것은 선법(善法)을 지녔기 때문이거니와,
어떤 것들이 선법인가?
사업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낙을 추구하지 않고,
늘 중생을 위한 낙을 구하며,
남의 허물을 보아도 그 단점을 제기하지 않고,
입으로 늘 순수하고 선한 일들만 말하니,
이런 의미에서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如空中月,
從初一日至十五日漸漸增長。
善知識者亦復如是,
令諸學人漸遠惡法,
增長善法。
선남자야! 공중의 달이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점점 커지듯이
선지식도 그와 같아서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악법(惡法)은 차츰 멀리하고
선법(善法)은 키워가게 하느니라. 
善男子!若有親近善知識者,
本未有戒、定、慧、
解脫、解脫知見,即便有之,
未具足者,則得增廣。
何以故?以其親近善知識故,
因是親近,
復得了達十二部經甚深之義。
若能聽是十二部經甚深義者,
名為聽法,
聽法者則是大乘方等經典,
聽方等經名真聽法,
真聽法者即是聽受大涅槃經,
大涅槃中聞有佛性、
如來畢竟不般涅槃,
是故名為專心聽法,
專心聽法名八聖道,
以八聖道能斷貪欲、瞋恚愚癡,
故名聽法。
선남자야! 만일 선지식을 친근히 하면
본래 없었던 계(戒), 정(定), 혜(慧)와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이 곧 있게 되고,
구족하지 못하다면 곧 늘어나게 되나니,
어째서인가? 그가 선지식을 친근했기 때문이니,
그 친근함으로 인해
12부경의 심오한 뜻에 요달하게 되려니와,
이 12부경의 심오한 뜻을 들었다면
법을 들었다[聽法]고 할 것이요,
들었다는 법은 곧 대승의 방등경전이리니,
방등경을 들었을 때 참된 청법(聽法)일 것이며,
참된 청법은 곧 대열반경을 청수(聽受)하는 것이라
대열반 가운데서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과
여래는 필경 반열반(般涅槃)하지 않음을 들은 것인지라
그래서 오롯한 마음으로 법을 들었다[專心聽法]는 것이며,
전심청법(專心聽法)은 팔성도(八聖道)요,
팔성도로써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청법(聽法)이라 하는 것이니라. 

*五分法身; 無學聖者가 具備하고 있는 五種功德, 즉 戒, 定, 慧, 解脫, 解脫知見을 말한다.
佛身은 이 五種功德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五分法身이라 하며,
小乘에서는 이를 三身 중의 法身이라 한다.
①戒~ 여래는 三業이 일체의 그릇됨과 허물을 여의었으니 戒法身이요,
②定~ 寂靜하고 一切의 妄念을 여읜 如來의 참 마음을 定法身이라 하며,
③慧~ 如來의 참 지혜는 圓明하여 그 用이 法性을 觀하기에 達했으니 慧法身이라 하며,
④解脫~ 如來의 心身은 一切繫縛을 解脫하였으니 解脫法身, 즉 涅槃의 德이라 하고,
⑤解脫知見~ 實로 解脫한 것을 이왕 알고 있으니 解脫知見法身, 즉 後得智라 한다.
이 다섯은 차례대로 戒로 인해 定이 생기고, 定으로 인해 慧가 나고, 慧로 인해 解脫을 얻고,
解脫로 인해 解脫知見이 있으며, 계·정·혜는 因에서 얻어진 이름이고,
해탈·해탈지견은 果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夫聽法者,名十一空,
以此諸空,於一切法不作相貌。
夫聽法者名初發心,
乃至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以因初心得大涅槃,
不以聞故得大涅槃,
以修習故得大涅槃。
[專心聽法]대저 청법(聽法)이란 11공(空*)에 속하는 것이니,
공(空)으로 알아서 일체법에 모양[相貌]을 짓지 말아야 하고,
또 청법이란 초발심(初發心)에서
구경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까지를 이르거니와,
초발심으로 인해 대열반을 얻는 것이요,
들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닦아 익힘[修習]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니라. 

*十一空; 제16권 梵行品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바 邪見을 破하는 11가지의 공(空),
즉 內空, 外空, 內外空, 有為空, 無為空, 無始空, 性空, 無所有空, 第一義空, 空空, 大空을 말한다.
空이란 究竟에 實體가 없다는 것이다. 

 

「善男子!譬如病人,
雖聞醫教及藥名字不能愈病,
以服食故能得差病。
雖聽十二深因緣法,
不能得斷一切煩惱,
要以繫念,善思惟故,能得除斷,
是名第三繫念思惟。
復以何義,名繫念思惟?
所謂三三昧:空三昧、
無相三昧、無作三昧。
空者於二十五有不見一實,
無作者於二十五有不作願求,
無相者無有十相,
所謂色相、聲相、香相、
味相、觸相、生相、住相、
滅相、男相、女相,
修習如是三三昧者,
是名菩薩繫念思惟。
[繫念思惟]「선남자야! 마치 병든 사람이
의원의 지시를 듣고 약 이름을 들었다 해서 병이 나을 수 없고,
약을 복용함으로써 병이 차도를 보일 수 있듯이,
12가지 심오한 인연법을 들어서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 잘 사유해야 끊어 없앨 수 있나니,
이것을 세 번째 계념사유(繫念思惟)라 하느니라.
또 어떤 의미에서 계념사유라 하는가?
소위 3삼매(三三昧), 즉 공삼매(空三昧),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작삼매(無作三昧)이니,
공(空)삼매는 25유(有)에서 일실(一實*)도 보지 않는 것이요,
무작(無作)은 25유(有)에서 지음도 원도 구함도 없는 것이며,
무상(無相)은 10상(十相),
소위 색상(色相), 성상(聲相), 향상(香相),
미상(味相), 촉상(觸相)과 생상(生相), 주상(住相),
멸상(滅相)과 남상(男相), 여상(女相)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3삼매(三三昧)를 수습하는
이것을 보살의 계념사유(繫念思惟)라 하느니라. 

*一實; 真如. 絶對真實. 平等한 實相. 

 

云何名為如法修行?
如法修行即是修行檀波羅蜜
乃至般若波羅蜜,
知陰入界真實之相,
亦如聲聞、緣覺、諸佛,
同於一道而般涅槃。
法者即是常樂我淨、不生不老、
不病不死、不飢不渴、
不苦不惱、不退不沒。
善男子!解大涅槃甚深義者,
則知諸佛終不畢竟入於涅槃。
[如法修行]어떤 것을 여법수행(如法修行)이라 하는가?
여법수행은 곧 단바라밀(檀波羅蜜)에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수행하여
음입계(陰入界)의 진실한 상(相)을 알고,
또한 성문, 연각, 제불(諸佛)이
다 같은 하나의 도(道)에서 반열반(般涅槃)하는 것이니라.
법(法)이란 곧 상락아정(常樂我淨)하여 나거나 늙지 않고,
병들지도 죽지도 않고,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하며,
고뇌(苦惱)스럽지도 않고, 퇴몰(退沒)하지도 않거니와,
선남자야! 대열반의 심오한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제불(諸佛)은 필경 열반에 드시지 않음을 안다는 것이니라. 

 

                                                                              [真實한 善知識]

「善男子!第一真實善知識者,
所謂菩薩、諸佛世尊。
何以故?常以三種善調御故。
何等為三?
一者畢竟軟語,
二者畢竟呵責,
三者軟語呵責。以是義故,
菩薩諸佛即是真實善知識也。
「선남자야! 제일 진실한 선지식이란
소위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니라.
왜냐하면, 항상 세 가지로 잘 조어(調御)하기 때문인데,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필경의 부드러운 말[畢竟軟語],
둘째는 필경의 꾸짖음[畢竟呵責],
셋째는 부드러운 말과 꾸짖음[軟語呵責]이니,
이런 뜻에서 보살과 제불이 곧 진실한 선지식인 것이니라. 
復次善男子!佛及菩薩為大醫故,
名善知識。何以故?
知病、知藥、應病授藥故。
譬如良醫,善八種術,
先觀病相。
相有三種。何等為三?
謂風、熱、水。
有風病者,授之蘇油。
熱病之人,授之石蜜。
水病之人,授之薑湯。
以知病根,授藥得差,
故名良醫。
佛及菩薩亦復如是,
知諸凡夫病有三種:
一者貪欲,二者瞋恚,三者愚癡。
貪欲病者教觀骨相,
瞋恚病者觀慈悲相,
愚癡病者觀十二緣相。
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또 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은 큰 의원이기 때문에
선지식이라 한다. 왜냐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는 약을 주기 때문이니라.
예컨대 양의(良醫)는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기에
먼저 병의 증세를 살피는데,
증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그 셋인가?
바람[風]과 열(熱)과 물[水]이니라.
풍병이 있는 자에게는 소유(酥油)을 주고,
열병 걸린 사람에게는 석밀(石蜜)을 주고,
물병 걸린 사람에게는 생강탕[薑湯]을 주거니와,
병의 근원을 알고 약을 주어서 낫게 하기에,
그래서 양의라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범부에게 세 가지 병이 있음을 아시거니와,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진에(瞋恚), 셋째는 우치(愚癡)니라.
탐욕의 병에 걸린 자는 골상(骨相)을 관찰하게 하고,
진에 병에 걸린 자는 자비상(慈悲相)을 관찰하게 하며,
우치 병에 걸린 자는 12연상(十二緣相)을 관찰하게 하니,
이런 뜻에서 제불 보살을 선지식이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如大船師,
善渡人故,名大船師。
諸佛菩薩亦復如是,
度諸眾生生死大海。
以是義故,名善知識。
復次善男子!因佛菩薩,
令諸眾生具足修得善法根本故。

선남자야! 마치 대선사(大船師)는
사람을 잘 건네주기 때문에 대선사라 하듯이,
제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생사대해(生死大海)에서 건네주기에
이런 뜻에서 선지식이라 하거니와,
또 선남자야! 불보살이라는 인(因)이
중생들로 하여금 선법의 근본을
구족히 닦아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善男子!譬如雪山,
乃是種種微妙上藥根本之處。
佛及菩薩亦復如是,
悉是一切善根本處。
以是義故,名善知識。
善男子!雪山之中有上香藥,
名曰娑呵,有人見之,
得壽無量,無有病苦,
雖有四毒不能中傷,
若有觸者增長壽命滿百二十,
若有念者得宿命智。
何以故?藥勢力故。
諸佛菩薩亦復如是,
若有見者,即得斷除一切煩惱,
雖有四魔不能干亂,
若有觸者命不可夭、
不生不死、不退不沒。
所謂觸者,
若在佛邊聽受妙法。
若有念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선남자야! 마치 설산은
결국 온갖 미묘하고 좋은 약의 근본 처소이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善)의 근본 처소이기에
이런 뜻에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설산 속에 훌륭한 향약(香藥)이 있어
이름이 사하(娑呵)인데, 사람이 보기만 해도
수명이 무량해지고 병고가 없어지며,
4독(四毒)이 있을지라도 중독시키지 못하고,
접촉하기만 해도 수명이 늘어서 120을 채우며,
생각만 해도 숙명지(宿命智)를 얻거니와,
어째서인가 하면 약의 효능 때문이듯이,
제불 보살도 그와 같아서
보기만 해도 모든 번뇌가 끊어지고,
4마(四魔)가 있을지라도 괴롭히지 못하며,
접촉만 해도 수명이 요절하지 않고,
나지도 죽지도 않고, 퇴몰(退沒)하지도 않거니와,
소위 접촉한다는 것은
부처님 곁에서 묘법을 청수(聽受)하는 것이요,
생각한다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이니,
이런 뜻에서 제불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如香山中,
有阿那婆踏多池水,
由是池故,有四大河,
所謂恒河、辛頭、私陀、博叉。
世間眾生常作是言:
『若有罪者,浴此四河,
眾罪得滅。』
當知此言虛妄不實,
除此已往何等為實?
諸佛菩薩是乃為實。所以者何?
若人親近,則得滅除一切眾罪。
以是義故,名善知識。
선남자야! 향산(香山;파미르고원) 속에는
아나바답다(阿那婆踏多*)라는 못이 있어서
이 못으로 말미암아 네 개의 큰 강이 있으니,
소위 항하(恒河*), 신두(辛頭*), 사타(私陀*), 박차(博叉*)이니라.
세간 중생들은 말하기를,
『죄 있는 자가 이 네 강물에 몸을 씻으면
죄들이 다 소멸된다.』고 하지만,
이 말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함을 알아야 하거니와,
이것을 이왕 제하고서는 어떤 것이 진실하겠는가?
제불 보살이 결국 진실하나니, 어째서인가?
누구나 친근(親近)하면 곧 일체의 죄들이 멸제되기 때문이니,
이런 의미에서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니라. 

*阿那婆踏多(Anavatapta); 阿那波達多, 阿耨達, 新稱은 阿那婆答多. 無熱惱라 譯.
西域記에 「贍部洲 안의 땅이란 阿那婆答多池다
(唐言으로 無熱惱. 예전의 阿耨達池는 오류다.).」고 하였다.
*恒河; Ganges江. *辛頭; Indus江.
*私陀; Jaxartes江, 지금의 Syr Darya.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을 흐르는 강
*博叉; Oxus강, 지금의 Amu Darya.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경지대 북서쪽을 흘러
아랄 해로 들어가는 연장 1,450km (원래는 2,400 km)에 달하는 강이다. 

「復次善男子!譬如大地,
所有藥木、一切叢林、百穀甘蔗、
花果之屬,值天炎旱將欲枯死,
難陀龍王及婆難陀,憐愍眾生,
從大海出,降澍甘雨,
一切叢林、百穀草木滋潤還生。
一切眾生亦復如是,
所有善根將欲消滅,
諸佛菩薩生大慈悲,
從智慧海降甘露雨,
令諸眾生具足還得十善之法。
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대지에 있는
약초나 모든 숲, 온갖 곡물과 수수,
꽃과 과일들이 가뭄을 만나 말라죽으려 하거든
난타(難陀)와 파난타(婆難陀)용왕이 중생을 측은히 여겨
바다에서 나와 단비를 내리고
모든 숲과 온갖 곡물, 초목을 적셔서 다시 살려 내듯이,
일체중생도 그와 같아서
지니고 있는 선근이 소멸하려 하거든
제불 보살이 대자비를 일으키고
지혜 바다로부터 감로 비를 내려서
중생으로 하여금 십선(十善)의 법을 다시 얻게 하니,
이런 뜻에서 제불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良醫善八種術,
見諸病人不觀種姓、端正好醜、
錢財寶貨,悉為治之,
是故世稱為大良醫。
諸佛菩薩亦復如是,
見諸眾生有煩惱病,
不觀種姓、端正好醜、錢財寶貨,
生慈愍心,悉為說法,
眾生聞已煩惱病除。
以是義故,諸佛菩薩名善知識。
以是親近善友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마치 여덟 가지 의술에 밝은 양의는
병든 사람을 보되, 종성(種姓)이나 단정한지 추한지,
재물이나 돈을 보지 않고 다 치료해주니,
그래서 세칭 훌륭한 양의라고 하듯이,
제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지닌 번뇌병을 보되,
종성(種姓)이나 단정한지 추한지, 재물이나 돈을 보지 않고
자비와 애민의 마음을 내서 모두에게 법을 설하시거든
중생들이 듣고서 번뇌병이 제거되니,
이런 뜻에서 제불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는 것이며,
이 선지식을 친근한 인연으로써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니라.

 

「云何菩薩聽法因緣
而得近於大般涅槃?
一切眾生以聽法故,則具信根,
得信根故,樂行布施、持戒、
忍辱、精進、禪定、智慧,
得須陀洹果乃至佛果,
是故當知得諸善法,
皆是聽法因緣勢力。
「어째서 보살이 법을 들은 인연[聽法因緣]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가?
일체중생이 법을 들은 즉 신근(信根)을 갖추고,
신근을 갖춘 까닭에 보시와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기꺼이 행하여
수다원과 내지 불과(佛果)를 얻는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선법(善法)이
다 청법인연의 힘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善男子!譬如長者惟有一子,
遣至他國市易所須,
示其道路通塞之處,而復誡之:
『若遇婬女,慎莫親愛,
若親愛者,喪身殞命及以財寶。
弊惡之人,亦莫交遊。』
其子敬順父之教勅,
身心安樂,多獲寶貨。
菩薩摩訶薩為諸眾生
敷演法要亦復如是,
示諸眾生及四部眾諸道通塞,
是諸眾生以聞法故,
遠離諸惡,具足善法。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예컨대 어느 장자가 외아들을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자 타국에 보내면서
그 도로의 통하고 막힌 곳을 일러주고, 다시 훈계하여
『만일 음녀를 만나거든 삼가 가까이 하지 말거라.
가까이 했다가는 신명(身命)과 재보를 잃을 것이다.
폐악(弊惡)한 사람도 교류하지 말거라.』 하거든,
그 아들이 공손히 부친의 지시에 따라
심신이 안락하게 많은 보화(寶貨)을 얻게 되듯이,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해
법요(法要)를 부연(敷演)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과 사부대중에게 도로의 통하고 막힘을 일러주거든
이 모든 중생들이 법을 들음으로써
모든 악(惡)을 멀리하고 선법을 구족할 것이라,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곧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明鏡照人面像,
無不明了。
聽法明鏡亦復如是,
有人照之,則見善惡明了無翳。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善男子!譬如估客,欲至寶渚,
不知道路,有人示之,
其人隨語,即至寶渚,
多獲諸珍不可稱計。
一切眾生亦復如是,
欲至善處採取道寶,
不知其路通塞之處,
菩薩示之,眾生隨已得至善處,
獲得無上大涅槃寶。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예컨대 맑은 거울에 사람 얼굴이 비쳐지면
명료하지 못한 곳이 없듯이,
청법(聽法)이라는 맑은 거울도 그와 같아서
사람이 비쳐지면 선악을 티끌없이 명료하게 보여주니,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상인(商人;估客)이 보저(寶渚*)에 가고싶지만
가는 길을 모를 때 어떤 사람이 가르쳐 주거든
그 사람 말해준 대로 보주로 가서
셀 수 없이 많은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되듯이,
일체중생도 그와 같아서
좋은 곳으로 가서 길 위의 보배를 줍고싶지만
그 길의 통하고 막힌 곳을 모를 때,
보살이 가르쳐 주거든 중생들이 따라 좋은 곳으로 가서
위없는 대열반의 보배를 획득하게 되니,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醉象,
狂騃暴惡,多欲殺害。
有調象師,以大鐵鈎,鈎斲其頂,
即時調順,惡心都盡。
一切眾生亦復如是,
貪欲、瞋恚、愚癡、醉故,
欲多造惡,
諸菩薩等,以聞法鈎,斲之令住,
更不得起造諸惡心。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비유컨대 술 취한 코끼리가
포악하여 미친듯이 죽이려고 덤벼들 때,
조련사가 큰 쇠 갈고리[鐵鈎]로 그 머리를 긁어주면
즉시 조순(調順)해지고 악한 마음이 다 수그러지듯이,
일체중생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진에, 우치에 취하여
많은 악을 지으려할 때,
보살들이 문법(聞法)이라는 갈고리로 긁어 멈추게 하면,
다시는 악을 지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니,
이런 뜻에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니라. 
是故我於處處經中說:
『我弟子專心聽受十二部經,
則離五蓋、修七覺分,
以是修習七覺分故,
則得近於大般涅槃。』
以聽法故須陀洹人離諸恐怖。
所以者何?
須達長者身遇重病,心大愁怖,
聞舍利弗說須陀洹有四功德、
十種慰喻,
聞是事已,恐怖即除。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何以故?開法眼故。
그 때문에 내가 여러 경전에 말하기를,
『나의 제자가 전심(專心)으로 12부경을 청수(聽受)하고
곧 오개(五蓋*)를 여의어서 칠각분(七覺分)을 닦는다면
이 칠각분을 수습함으로써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게 된다.』고 하였거니와,
법을 들음으로써 수다원(須陀洹)이 모든 공포를 여의나니,
어째서인가?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중병에 걸려 몹시 두려워할 때,
사리불(舍利弗)이 수다원(須陀洹)은 4공덕(四功德*)이 있다며
10가지로 위유[十種慰喻*]하자,
그 사실을 듣고서 공포가 곧 사라졌으니,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게 되거니와,
그 이유는 법안(法眼)이 열리기 때문이니라. 

*五蓋; 善法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다섯 가지 번뇌,
즉 貪欲, 瞋恚, 睡眠(의식이 혼미하여 뚜렷치 못한 것),
掉悔(마음이 고요치 못하고 불안정하여 근심걱정하는 것), 疑를 말한다.
《雜阿含經》27卷 (713)에 五蓋의 10가지를 內貪欲, 外貪欲, 瞋恚, 瞋恚相, 睡, 眠, 掉, 悔,
疑善法, 疑不善法이라 하셨다.
*四功德; 四不壞信~ 佛, 法, 僧, 戒에 대한 확고한 믿음.

*十種慰喻; 《中阿含舍梨子相應品教化病經》第八에
부처님께서 수달장자가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사리불을 보내 문병하게 하시니, 사리불이 찾아가 위유(慰喻)하기를,
"장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어리석은 범부는 믿지 못하니
죽어서 결국 악도(惡道)에 떨어지고 지옥에 나겠지만,
장자는 지금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으니
그 믿음 때문에 고통도 없으려니와 극락에 태어나거나
사다함이나 아나함과를 얻게 되는데,
장자는 이미 수다원과를 얻었습니다(長者本已得須陀洹)." 하였으니,
 '長者本已得須陀洹'이 첫번째 위유요,
그 다음의 말에서 차례대로 계율을 잘 지키고(具足善戒),
다문(多聞), 혜시(惠施), 선혜(善慧), 정견(正見),
정지(正志), 정해(正解), 정탈(正脫), 정지(正智)를 지녔다는 열 가지로 위유하자,
장자의 병이 곧 치유되었다고 하였다. 

世有三人:一者無目,
二者一目,三者二目。
言無目者常不聞法,
一目之人雖暫聞法其心不住,
二目之人專心聽受如聞而行。
以聽法故,得知世間如是三人。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세상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어 첫째는 눈이 없고,
둘째는 눈이 하나요, 셋째는 눈이 둘인 사람인데,
눈이 없는 자는 항상 법을 듣지 못하고,
눈이 하나인 사람은 법은 잠깐 듣지만 마음이 안주치 못하며,
눈이 둘인 사람은 전심으로 법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하니,
청법으로써 세간의 이런 세 가지 사람을 알게 되거니와,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善男子!如我昔於拘尸那城,
時舍利弗身遇病苦,
我時顧命阿難比丘廣為說法。
時舍利弗聞是事已,告四弟子:
『汝舁我床往至佛所,
我欲聽法。』
時四弟子即共舁往。
既得聞法,聞法力故,
所苦除差,身得安隱。
以是義故,聽法因緣
則得近於大般涅槃。
선남자야! 내가 옛적 구시나(拘尸那)성에 있을 때
사리불이 몸에 병고를 만났는데,
내가 아난비구에게 명하여 널리 법을 설한다 하였더니,
사리불이 그 사실을 듣고 네 제자에게 고하되,
『너희는 내 침상을 맞들고 부처님 처소로 가자.
내가 법을 들어야겠다.』 하여
네 제자가 즉시 함께 침상을 맞들고 와서
기왕 법을 들었고, 법을 들은 힘 때문에
아프던 것이 없어지고 몸이 안은해졌으니,
이런 뜻에서 청법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云何菩薩思惟因緣
而得近於大般涅槃?
因是思惟,心得解脫。何以故?
一切眾生常為五欲之所繫縛,
以思惟故悉得解脫。以是義故,
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어떤 것을 보살이 사유인연(思惟因緣)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는가?
사유(思惟)하는 인(因)으로 마음이 해틸을 얻는데, 왜냐하면,
일체중생은 항상 오욕(五欲)에 얽매여 있거니와,
사유함으로써 해탈을 얻는지라 이런 의미에서
사유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一切眾生常為常、
樂、我、淨四法之所顛倒,
以思惟故,得見諸法無常、
無樂、無我、無淨,
如是見已四倒即斷。以是義故,
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또 선남자야! 일체중생은 항상 상(常)과
낙(樂), 아(我), 정(淨)의 네 가지 법에 전도되어 있거니와,
사유함으로써 제법(諸法)이 무상(無常)하고,
무락(無樂), 무아(無我), 무정(無淨)함을 보게 되고,
그렇게 보고서야 4전도가 끊어지는지라 이런 의미에서
사유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一切諸法有四種相。
何等為四?
一者生相,二者老相,
三者病相,四者滅相。
以是四相,能令一切凡夫眾生
至須陀洹生大苦惱;
若能繫念善思惟者,雖遇此四,
不生於苦。以是義故,
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또 선남자야! 일체제법은 네 가지 모양[四種相]이 있거니와,
어떤 것들이 그 넷인가?
첫째는 생상(生相), 둘째는 노상(老相),
셋째는 병상(病相), 넷째는 멸상(滅相)인데,
이 4상(四相)이 일체범부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과에 이르기까지 큰 고뇌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니,
만일 마음을 모아 잘 사유한다면 이 4상을 만나더라도
고뇌가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이런 의미에서
사유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一切善法
無不因於思惟而得。
何以故?有人
雖於無量無邊阿僧祇劫專心聽法,
若不思惟,
終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義故,
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또 선남자야! 어떠한 선법(善法)도
사유로 인해 얻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데,
어째서인가? 어떤 사람이
무량무변한 아승지 겁 동안 전심으로 청법하더라도
사유하지 않는다면
결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런 의미에서
사유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
若有眾生信佛、法、僧,
無有變易,而生恭敬,
當知皆是繫念思惟因緣力故,
因得斷除一切煩惱。
以是義故,
思惟因緣則得近於大般涅槃。
또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믿고
변함 없이 공경한다면
이 마음 모아 사유한 인연력 때문에
모든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니와,
이런 의미에서
사유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니라. 

 

「云何菩薩如法修行?
善男子!斷諸惡法,修習善法,
是名菩薩如法修行。
復次云何如法修行?
見一切法空無所有,
無常、無樂、無我、無淨,
以是見故,寧捨身命,
不犯禁戒,
是名菩薩如法修行。
「어떤 것을 보살의 여법한 수행(如法修行)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악법(惡法)을 끊고 선법을 수습(修習)하는
이것을 여법수행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이 여법수행인가 하면,
일체법이 공(空)하여 있지 않고,
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 무정(無淨)함을 보고,
그렇게 봄으로써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는
이것을 보살의 여법수행이라 하느니라. 
復次云何如法修行?
修有二種:
一者真實,二者不實。
不實者,不知涅槃、佛性、
如來、法、僧、
實相、虛空等相,是名不實。
云何真實?
能知涅槃、佛性、如來、法、僧、
實相、虛空等相,是名真實。
또 어떤 것을 여법수행이라 하는가?
수행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진실이요, 둘째는 진실치 못함[不實]인데,
부실(不實)하다는 것은 열반과 불성(佛性),
여래[佛], 법(法), 승(僧)과
실상(實相)과 허상(虛相)을 모르는 것을 부실하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진실하다고 하는가?
열반과 불성, 여래, 법, 승,
실상, 허상을 아는 이것을 진실하다고 하느니라. 
云何名為知涅槃相?
涅槃之相凡有八事。
何等為八?
一者盡、二善性、三實、四真、
五常、六樂、七我、八淨,
是名涅槃。
復有八事。何等為八?
一者解脫、二者善性、三者不實、
四者不真、五者無常、六者無樂、
七者無我、八者無淨。
復有六相:一者解脫、
二者善性、三者不實、四者不真、
五者安樂、六者清淨。
若有眾生依世俗道,斷煩惱者,
如是涅槃,則有八事解脫不實。
何以故?以不常故。
以無常故則無有實,
無有實故則無有真,
雖斷煩惱,以還起故,
無常、無我、無樂、無淨,
是名涅槃解脫八事。
어떤 것을 열반상(涅槃相)을 안다고 하는가?
열반의 모양(相)에 무릇 8사(八事)가 있는데,
무엇이 그 여덟인가 하면,
하나는 진(盡), 둘은 선성(善性), 셋은 실(實), 넷은  진(真),
다섯은 상(常), 육은 낙(樂), 칠은 아(我), 여덟은 정(淨)이며,
이를 열반이라 한다.
다시 8사(八事)가 있는데, 무엇이 여덟인가 하면,
첫째는 해탈(解脫), 둘째는 선성(善性), 셋째는 부실(不實),
넷째는 부진(不真), 다섯째는 무상(無常), 여섯째는 무락(無樂),
일곱째는 무아(無我), 여덟째는 무정(無淨)이니라.
다시 6상(六相)이 있는데, 첫째는 해탈(解脫),
둘째는 선성(善性), 셋째는 부실(不實), 넷째는 부진(不真),
다섯째는 안락(安樂), 여섯째는 청정(清淨)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세속의 도(道)에 의지하여 번뇌를 끊었다면
이러한 열반은 8사의 해탈과 부실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치 못하기 때문이며,
무상(無常)하므로 실(實)이 없고,
실이 없으므로 진(真)이 없으며,
비록 번뇌를 끊었더라도 다시 일어나므로
무상(無常), 무아(無我), 무락(無樂), 무정(無淨)인 것이니,
이를 일러 열반 해탈의 8사(八事)라고 하느니라.
云何六相?
聲聞緣覺斷煩惱故,名為解脫,
而未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名為不實。
以不實故,名為不真。
未來之世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名無常。
以得無漏八聖道故,
名為淨樂。
善男子!若如是知,是知涅槃,
不名佛性、如來、法、僧、
實相、虛空。
어떤 것들이 6상(六相)인가?
성문 연각은 번뇌를 끊었으니, 해탈(解脫)했다 하려니와,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했으니,
부실(不實)인 것이요,
부실하기 때문에 부진(不真)이며,
미래의 세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
그래서 무상(無常)인 것이며,
무루(無漏)의 팔성도(八聖道)를 얻었기 때문에
(淨)이요 낙(樂)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이렇게 안다면 열반은 아는 것이지만,
불성(佛性)이나 여래(如來), 법(法), 승(僧),
실상(實相), 허공(虛空)을 안다고 하지는 않느니라. 

 

「云何菩薩知於佛性?
佛性有六。何等為六?
一常、二淨、三實、四善、
五當見、六真。
復有七事:
一者可證,餘六如上,
是名菩薩知於佛性。
「어떤 것을 보살이 불성(佛性)을 안다고 하는가?
불성은 여섯 모양이 있는데, 무엇이 여섯인가 하면,
하나는 상(常)이요, 둘은 정(淨), 셋은 실(實), 넷은 선(善),
다섯은 당견(當見*), 여섯은 진(真)이니라.
다시 7사(七事)가 있어서
첫째는 가증(可證*)이요, 다른 여섯은 위와 같나니,
이것을 보살이 불성을 안다고 하느니라.

*當見; 佛果와 그 性을 봄.  *可證; 증명이 가능함. 

 

「云何菩薩知如來相?
如來即是覺相善相,
常樂我淨、解脫、真實、
示道可見,
是名菩薩知如來相。
「어떤 것을 보살이 여래상(如來相)을 안다고 하는가?
여래는 곧 각상(覺相)이요 선상(善相)이며,
상락아정(常樂我淨), 해탈(解脫), 진실(真實)이요,
바른 길을 제시[示道]하고 볼 수 있게[可見] 하신다고 아는
이것을 보살이 여래상을 안다고 하느니라. 

 

「云何菩薩知於法相?
法者若善、不善,
若常、不常,若樂、不樂,
若我、無我,若淨、不淨,
若知、不知,若解、不解,
若真、不真,若修、不修,
若師、非師,若實、不實,
是名菩薩知於法相。
「어떤 것을 보살이 법상(法相)을 안다고 하는가?
법(法)이란 선(善)이기도 하고 불선(不善)이기도 하며,
상(常)이나 불상(不常), 낙(樂)이나 불락(不樂),
유아(有我)나 무아(無我), 정(淨)이나 부정(不淨),
지(知)나 부지(不知), 해(解)나 불해(不解),
진(真)이나 부진(不真), 수(修)나 불수(不修),
사(師)나 비사(非師), 실(實)이나 부실(不實)이기도 함을 아는
이것을 보살이 법상을 안다고 하느니라. 

 

「云何菩薩知於僧相?
僧者若常樂我淨,是弟子相;
可見之相,善、真、不實。
何以故?一切聲聞得佛道故。
何故名真?悟法性故。
是名菩薩知於僧相。
「어떤 것을 보살이 승상(僧相)을 안다고 하는가?
승(僧)이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면 제자상(弟子相)이거니와,
불성을 볼 수 있는 상(相)이요, 선(善) 진(真) 부실(不實)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성문(聲聞)은 불도(佛道)에 들어섰기 때문이요,
어째서 참인가 하면 법성(法性)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이 승상(僧相)을 안다고 하느니라. 

 

「云何菩薩知於實相?
實相者,若常、無常,
若樂、無樂,若我、無我,
若淨、無淨,若善、不善,
若有、若無,若涅槃、非涅槃,
若解脫、非解脫,若知、不知,
若斷、不斷,若證、不證,
若修、不修,若見、不見,
是名實相,
非是涅槃、佛性、
如來、法、僧、虛空,
是名菩薩因修如是大涅槃故,
知於涅槃、佛性、如來、法、僧、
實相、虛空等法,差別之相。
「어떤 것을 보살이 실상(實相)을 안다고 하는가?
실상(實相)이란 항상[常]하기도 하고 무상(無常)하기도 하며,
낙(樂)이나 무락(無樂), 유아(有我)아 무아(無我),
정(淨)이나 부정(不淨), 선(善)이나 불선(不善),
유(有)나 무(無), 열반(涅槃)이나 비열반(非涅槃),
해탈(解脫)이나 비해탈(非解脫), 지(知)나 부지(不知),
단(斷)이나 부단(不斷), 증(證)이나 부증(不證),
수(修)나 불수(不修), 견(見)이기도 하고 불견(不見)이기도 한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지만,
열반(涅槃)이나 불성(佛性)도
여래(如來) 법(法) 승(僧)도 허공(虛空)도 아님을 아는
이것을 보살이 이 대열반을 닦은 인(因)으로
열반과 불성, 여래, 법, 승과
실상과 허공 같은 법의 차별한 모양을 안다고 하느니라. 

 

「善男子!菩薩摩訶薩
修大涅槃微妙經典,不見虛空。
何以故?
佛及菩薩雖有五眼所不見故。
惟有慧眼乃能見之,
慧眼所見無法可見,故名為見。
若是無物名虛空者,
如是虛空乃名為實,
以是實故則名常無,
以常無故,無樂、我、淨。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대열반이라는 미묘 경전을 닦아 허공(虛空)으로 보지 않나니,
어째서인가 하면,
불보살은 오안(五眼)이 있으되 오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며,
오로지 혜안(慧眼)이 있어야만 볼 수 있지만,
혜안으로는 어떤 법도 보지 않는 것이 혜안의 견(見)이니라.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허공(虛空)이라 하거니와,
이와 같은 허공은 결국 사실[實]이요,
그것이 사실인 즉 항상함[常]이 없는 것이며,
상(常)이 없으므로 낙(樂)도 아(我)도 정(淨)도 없는 것이니라. 
善男子!空名無法,無法名空,
譬如世間無物名空。
虛空之性亦復如是,
無所有故名為虛空。
善男子!
眾生之性與虛空性俱無實性。
何以故?如人說言,
除滅有物然後作空,
而是虛空實不可作。
何以故?無所有故。
以無有故,當知無空。
是虛空性,若可作者則名無常,
若無常者不名虛空。
선남자야! 공(空)은 무법(無法)이요 무법이 공이니,
마치 세간에서 무물(無物)을 공(空)이라 하는 것과 같거니와,
허공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허공인 것이니라.
선남자야!
중생의 성품과 허공의 성품이 모두 실성(實性)이 없는데,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있는 것을 제멸한 그 뒤에는 공(空)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이 허공은 실로 만들 수 없나니,
그 이유는 무소유이기 때문이요,
무소유인 때문에 공도 없음[無空]을 알 것이니라.
이 허공의 성품이 만들 수 있다면 무상(無常)할 것이요,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이라 할 수 없느니라. 
善男子!如世間人說言
虛空無色、無礙、
常不變易,
是故世稱虛空之法,為第五大。
善男子!而是虛空實無有性,
以光明故,故名虛空,實無虛空。
猶如世諦,實無其性,
為眾生故,說有世諦。
선남자야!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허공은 무색(無色), 무애(無礙)하고
항상하여 변치 않는다'고 하니,
그 때문에 세칭 허공의 법은 제5대(第五大*)가 된다.
선남자야! 이 허공은 실로 성품이 없고
빛 때문에 허공이라 하는 것이라 실로 허공이란 없거니와,
마치 세상의 진리[世諦]란 실로 그 성품이 없건만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세제(世諦)를 설하는 것과 같으니라. 

*第五大; 地水火風 四大 외의 다섯번째 근본물질. 

善男子!涅槃之體亦復如是,
無有住處,
直是諸佛斷煩惱處,故名涅槃,
涅槃即是常、樂、我、淨,
涅槃雖樂,非是受樂,
乃是上妙寂滅之樂。
諸佛如來有二種樂:
一寂滅樂,二覺知樂。
實相之體有三種樂:
一者受樂,二寂滅樂,
三覺知樂。
佛性一樂,以當見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
名菩提樂。」
선남자야! 열반(涅槃)의 체(體)도 그와 같아서
특정한 주처(住處)가 없고,
제불께서 번뇌를 끊으신 곳 그 자체를 열반이라 하니,
열반은 곧 상(常), 낙(樂), 아(我), 정(淨)이거니와,
열반이 비록 낙(樂)이라지만 누리는 낙[受樂]이 아니라
결국 이것은 지극히 오묘한 적멸(寂滅)의 낙(樂)이니라.
제불여래(諸佛如來)에게는 두 가지 낙이 있어,
하나는 적멸락(寂滅樂), 둘은 각지락(覺知樂)이요,
실상(實相)의 체(體)에는 세 가지 낙이 있으니,
첫째는 수락(受樂), 둘은 적멸락(寂滅樂),
셋은 각지락(覺知樂)이거니와,
불성(佛性)의 유일한 낙은 당견(當見)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었을 때
이를 보리락(菩提樂)이라고 하느니라.」

 

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
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
若煩惱斷處是涅槃者,
是事不然。何以故?
如來往昔初成佛道
至尼連禪河邊,
爾時魔王與其眷屬
到於佛所,而作是言:『世尊!
涅槃時到何故不入?』
佛告魔王:
『我今未有多聞弟子,
善持禁戒,聰明利智,
能化眾生,
是故不入。』
이때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은 곳이 열반이다고 하신다면
그 일은 그렇지 않겠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지난 옛적 불도(佛道) 이루시려
니련선(尼連禪) 강변에 가셨는데,
그때 마왕이 그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열반하실 때가 되었는데 왜 드시지 않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고하시기를,
『내게는 아직 많이 듣고[多聞],
금계(禁戒)를 잘 지키고, 총명하고 지혜가 예리하여
중생을 교화할만 한 제자가 없어서
그 때문에 들지 못한다.』고 하셨거니와, 
若言煩惱斷滅之處是涅槃者,
諸菩薩等於無量劫已斷煩惱,
何故不得稱為涅槃?
俱是斷處,何緣獨稱諸佛有之,
菩薩無耶?
若斷煩惱非涅槃者,
何故如來昔告生名婆羅門言:
『我今此身即是涅槃。』
만약 번뇌를 단멸한 곳이 열반이라고 하신다면
여러 보살들은 무량 겁 동안 이왕 번뇌를 끊었는데,
어째서 열반에 든다고 칭하지 않는 것이오며,
다같이 끊어진 곳인데 무슨 인연으로 유독 제불에게만 있고,
보살에게는 없는 것이옵니까?
만일 번뇌를 끊은 것이 열반이 아니라면
어째서 여래께서는 예전에 생명(生名)바라문에게 고하시기를,
『내 지금의 이 몸이 곧 열반이다』고 하셨나이까? 
如來昔時在毘舍離國,
魔復啟請:
『如來昔以未有弟子多聞、
持戒、聰明、利智、
能化眾生,
不入涅槃。
今已具足,何故不入?』
如來爾時即告魔言:
『汝今莫生悒遲之想,
却後三月吾當涅槃。』
여래께서 과거 비사리(毘舍離)국에 계실 때,
마왕이 다시 계청(啟請)하기를,
『여래께서는 지난 번에는 다문(多聞)과
지계(持戒), 총명(聰明), 이지(利智)하여
중생 교화할만 한 제자가 아직 없어서
열반에 들지 못하신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이미 구족하신데 어째서 드시지 않습니까?』 하자,
여래께서 그때 마왕에게
『너는 늦어질까 걱정하지 말라.
석 달 뒤에 내가 열반할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世尊!若使滅度非涅槃者,
何故如來自期三月當般涅槃?
世尊!若斷煩惱是涅槃者,
如來往昔,
初在道場菩提樹下斷煩惱時,
便是涅槃,
何故復言却後三月當般涅槃?
世尊!若使爾時是涅槃者,
云何方為拘尸那城諸力士等,
說言後夜當般涅槃?
如來誠實,
云何出是虛妄之言?」
세존이시여! 가사 멸도(滅度)가 열반이 아니라면
왜 여래는 스스로 석 달을 기약하여 반열반하시는 것이오며,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은 것이 열반이라면
여래께서 지난날
도량의 보리수 아래서 처음으로 번뇌를 끊으셨을 때가
곧 열반일 터이온데,
어째서 다시 석 달 뒤에 반열반하신다는 것이옵니까?
세존이시여! 가사 그때가 곧 열반이라면
어째서 구시나(拘尸那) 성의 역사들에게
늦은 밤에 반열반하시겠다고 말씀하셨나이까?
여래께서는 성실(誠實)하시련만
어째서 허망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
菩薩摩訶薩言:「善男子!
若言如來得廣長舌,
當知如來於無量劫已離妄語。

一切諸佛及諸菩薩,
凡所發言,誠諦無虛。
善男子!如汝所言,
波旬往昔啟請於我入涅槃者,
善男子!而是魔王
真實不知涅槃定相。
何以故?波旬意謂,不化眾生,
默然而住,便是涅槃。
그러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에게 고하셨다.「선남자야!
여래가 광장설(廣長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여래가 무량 겁 전에 이미
망어(妄語)를 여의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하거니와,
일체제불과 보살이
무릇 발언하는 바는 성실한 진리라서 허망치 않느니라.
선남자야! 네가 말하기를
파순(波旬)이 옛날 내게 열반에 들라고 청했다고 하였지만
선남자야! 이 마왕은
진실로 열반의 정한 모습[定相]을 알지 못한 것이니라.
왜냐하면, 파순의 말 뜻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열반이다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善男子!譬如世人,
見人不言,無所造作,
便謂是人,如死無異。
魔王波旬亦復如是,
意謂如來不化眾生,
默無所說,
便謂如來入般涅槃。
善男子!
如來不說佛、法、眾僧無差別相,
惟說常住清淨二法無差別耳。

善男子!佛亦不說佛及佛性、
涅槃無差別相,
惟說常恒不變無差別耳。
善男子!佛亦不說涅槃、
實相無差別相,
惟說常有實不變易無差別耳。

선남자야! 비유컨대 세상 사람들이
말도 하지 않고 조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하듯이,
마왕 파순도 그와 같아서
여래는 중생을 교화하지 말고
잠자코 말 없이 있으라는 뜻으로
여래에게 열반에 들라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불(佛), 법(法), 승(僧)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상주(常住)하고 청정하다는 두 가지 이치에서
서로 다른 모양이 없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며,
선남자야! 부처님은 또 부처와 불성(佛性)과
열반이 차별한 모습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하여 불변함이 다르지 않다고 말할 따름이며,
선남자야! 부처님은 또한 열반과
실상(實相)이 차별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 진실하여 변치 않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할 뿐이니라. 
善男子!爾時我諸聲聞弟子,
生於諍訟,如拘睒彌諸惡比丘,
違反我教多犯禁戒,
受不淨物,貪求利養。
向諸白衣而自讚歎我得無漏,
謂須陀洹果乃至我得阿羅漢果,
毀辱於他,
於佛、法、僧、戒律、和上,
不生恭敬。
公於我前言如是物佛所聽畜,

如是等物佛不聽畜。
我亦語言如是等物我實不聽,
復反我言如是等物實是佛聽。
如是惡人不信我言,
為是等故,我告波旬,
汝莫悒遲,
却後三月當般涅槃。
선남자야! 그때는 나의 성문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켜, 구섬미(拘睒彌)국의 몹쓸 비구들처럼
나의 교지에 위반하여 자주 금계(禁戒)를 범하고,
부정한 물건을 받고 이양(利養)을 탐구(貪求)하며,
백의(白衣)들에게 '내가 무루(無漏)를 얻었노라' 자찬하고,
수다원과에서 아라한과까지도 얻었다 하면서
남을 훼욕(毀辱)하고
불법승(佛法僧)과 계율과 화상(和上;和尙)을
공경하지도 않았거니와,
버젓이 내 앞에서 그런 물건 모으는 일을
부처님이 허락하셨다고 말했는데,
그러한 물건을 부처님들은 모으지 말라 하셨고,
나 또한 그런 물건 모으는 일을 실로 허락치 않는다고 했건만
내 말과 반대로 그런 물건을 부처님이 허락했다고 하면서
이런 악인들이 내 말을 믿지 않았던 때라서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파순에게 고하기를,
 '너는 늦어질까 걱정 말라,
석 달 뒤에 열반할 것이다.'고 한 것이니라. 

*拘睒彌(Kauśāmbī); 憍賞彌國. 中印度의 옛 王國으로 16 大國 중 하나였다.
都城 안에 열 곳의 큰 精舍가 있고, 그 안에는 優填王(鄔陀衍那王)이 만든 佛像이 있다.
釋尊께서 住世하실 때 이 나라는 摩揭陀나 舍衛國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쳤다 한다.
都城 안에 또 具史羅長者의 舊園과 世親보살이 쓴 唯識論의 故塼室과
無著보살이 지은 顯揚聖教論의 故蹟들이 있고, 성 밖 동북방으로 700여리 가면
일찍이 여기서 外道를 降伏시키셨다는 迦奢富羅城이 있다. [佛光大辭典]

善男子!因如是等惡比丘故,
令諸聲聞、受學弟子,
不見我身,不聞我法,
便言如來入於涅槃。
惟諸菩薩能見我身,常聞我法,
是故不言我入涅槃。
聲聞弟子雖復發言如來涅槃,
而我實不入於涅槃。
善男子!若我所有聲聞弟子
說言如來入涅槃者,
當知是人非我弟子,是魔伴黨,
邪見惡人,非正見也。
若言如來不入涅槃,
當知是人真我弟子,非魔伴黨,
正見之人,非惡邪也。
선남자야! 이렇듯 나쁜 비구들이
모든 성문들과 수학(受學)하는 제자들로 하여금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법을 듣지도 못하게 하고,
편하게 '여래는 열반에 드신다'고 하지만,
보살들만은 나의 몸을 보고 나의 법을 항상 들을 수 있는지라
그 때문에 내가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않거니와,
성문제자들이 비록 '여래는 열반하신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성문제자가
 '여래는 열반에 드신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라 마군의 반당(伴黨)이요,
정견(正見)이 아닌 사견(邪見)의 악인임을 알아야 하거니와,
만약 '여래는 열반에 드시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참된 나의 제자요, 마군의 반당이 아니며,
정견(正見)이요, 나쁜 사견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善男子,我初不見弟子之中,
有言如來不化眾生,默然而住,
名般涅槃也。
善男子!譬如長者,
多有子息,捨至他方,未得還頃,
諸子並謂父已死矣。
而是長者實亦不死,
諸子顛倒,皆生死想。
聲聞弟子亦復如是,不見我故,
便謂如來已於拘尸那城
娑羅雙樹間而般涅槃,
而我實不般涅槃也,
聲聞弟子生涅槃想。
「선남자야! 나는 애초에 제자들 중에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가만이 있는 것은
반열반하신 것이다’고 말하는 자를 보지 못했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장자가
자식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거든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가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기지만
이 장자는 실로 죽지 않았는데
자식들이 전도(顛倒)하여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나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여래가 이미 구시나성(拘尸那城)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반열반하셨다'고 하지만
나는 실로 반열반하지 않았는데
성문 제자들이 열반했다고 생각한 것이니라.
善男子!譬如明燈,有人覆之,
餘不知者,謂燈已滅,
而是明焰,實亦不滅,
以不知故生於滅想。
聲聞弟子亦復如是,
雖有慧目,以煩惱覆,
令心顛倒,不見真身,
而便生於滅度之想,
而我實不取滅度也。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등불을 가려버리면
그런 줄 모르는 사람들은 등불이 꺼졌다고 여기지만
밝은 불꽃은 실로 꺼진 것이 아닌데
모르기 때문에 꺼졌다고 생각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지혜로운 안목이 있더라도 번뇌에 가려지면
마음을 전도케 하여 진신(眞身)을 보지 못하고
쉽게 멸도했다고 생각하거니와
그러나 나는 실로 멸도를 취하지 않느니라. 

 

「善男子!如生盲人不見日月,
以不見故,不知晝夜明闇之相,
以不知故,便說無有日月之實。
實有日月,盲者不見,
以不見故,生於倒想,言無日月。
聲聞弟子亦復如是,
如彼生盲,不見如來,
便謂如來入於涅槃,
如來實不入於涅槃,
以倒想故,生如是心。
「선남자야! 생맹인(生盲人)은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니,
보지 못하기에 낮과 밤의 밝고 어두운 모습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문득 해와 달의 실체가 없다고 말하지만
실로 해와 달은 있는데 맹인이 보지 못하는 것이요,
보지 못하므로 전도된 생각으로 해와 달이 없다고 말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저 맹인처럼 여래를 보지 못하니
쉽사리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여기지만
여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않는데
전도된 생각으로 이러한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雲霧覆蔽日月,
癡人便言無有日月,
日月實有,直以覆故,眾生不見。
聲聞弟子亦復如是,
以諸煩惱覆智慧眼,不見如來,
便言如來入於滅度。
善男子!直是如來現嬰兒行,
非滅度也。
선남자야! 마치 운무(雲霧)에 일월(日月)이 가려지면
어리석은 사람은 문득 일월이 없다고 말하지만,
일월은 실로 있는데 가려져서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이듯이,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로 지혜의 눈이 가려져 여래를 보지 못하니,
문득 여래가 멸도에 들었다고 말하지만,
선남자야! 이는 여래가 영아행(嬰兒行)을 보이는 것이지
멸도(滅度)가 아니니라. 
善男子!如閻浮提,日入之時,
眾生不見,以黑山障故,
而是日性,實無沒入,
眾生不見,生沒入想。
聲聞弟子亦復如是,
為諸煩惱山所障故,不見我身,
以不見故,便於如來生滅度想,
而我實不趣滅度也。
선남자야! 염부제에 해가 졌을 때
중생들이 보지 못함은 흑산(黑山)에 가렸기 때문이요,
그 해의 근본은 실로 몰입(沒入)하는 일이 없건만
중생들이 보지 못하고 몰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듯이,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산으로 가려서 내 몸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가 멸도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실로 멸도로 나아가지 않느니라. 

 

「是故我於毘舍離國告波旬言,
却後三月我當涅槃。
善男子!如來玄見迦葉菩薩
却後三月善根當熟,
亦見香山須跋陀羅竟安居已
當至我所,是故我告魔王波旬,
却後三月當般涅槃。
善男子!有諸力士,其數五百,
終竟三月,
亦當得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我為是故,告波旬言,
却後三月當般涅槃。
「그 때문에 내가 비사리(毘舍離)국에서 파순에게 고하여
 '석 달 뒤에 열반하겠다'고 한 것이요,
선남자야! 여래가 가섭보살의 선근(善根)이
석 달 뒤에야 무르익을 것을 알고 있었고,
또 향산(香山)의 수발타라(須跋陀羅)가 안거(安居)를 마치고
나를 찾아 올 것을 알았기에 그래서 내가 파순에게
 '석 달 뒤에 반열반하겠다'고 한 것이며,
선남자야! 500인의 역사(力士)들도
결국 석 달이 지나야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될 것이라
그 때문에 내가 파순에게 고하기를,
 '석 달 뒤에 반열반하겠다'고 한 것이니라. 
善男子!純陀等輩及五百梨車、
菴羅果女,却後三月,
無上道心善根成熟,
為是等故,我告波旬,
却後三月當般涅槃。
善男子!須那剎多
親近外道尼乾子等,
我為說法滿十二年,
彼人邪見,不信不受,
我知是人邪見根栽,
却後三月定可斫伐,
我為是故告波旬言,
却後三月當般涅槃。
선남자야! 순타(純陀)와 같은 무리와 오백 리차(梨車*)나
암라과녀(菴羅果女*)가 이후 석 달이면
위없는 도심(道心)에의 선근(善根)이 성숙(成熟)할 것이라
이러한 이유에서 내가 파순에게 고하기를,
 '석 달 뒤에 반열반하겠다'고 한 것이며,
선남자야! 수나찰다(須那剎多*)가
외도 니건자(尼乾子) 등을 가까이 하고 있을 때
내가 12년 동안 설법해 주어도
그가 그릇된 소견으로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사견의 뿌리가
석 달 후에는 정히 뽑혀질 것을 알았기에
그 때문에 내가 파순에게 고하기를,
 '석 달 뒤에 반열반하겠다'고 한 것이니라. 

*梨車(Licchavī); 粟聶毘, 離車, 離奢, 離車毘. 譯하여 薄皮. 毘舍離국 剎帝利 종족의 하나로서
그 들의 선조가 한 포육(胞肉;薄皮)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
*菴羅果女; [佛學大辭典]에 의하면 雞跖集(宋代 송기<宋祁;998~1061>가 쓴 기록서)에
「옛날 西域국의 한 菴羅(Āmra;능금柰)나무 열매에서 한 여인이 나오자 왕이 妃를 삼았는데,
이 여인이 후에 부처님께 伽藍 지을 苑地를 드렸기에 이 사원을 내원(柰苑)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 암라과에서 나온 여인을 말한다.
*須那剎多(Sunakṣatra); 釋尊께서 고행하실 때 가까이에서 보필한 內眷屬 5人 중의 한 사람.
 內眷屬 5人은 彌喜, 羅陀, 須那剎多, 阿難, 密跡力士를 말한다. 

 

「善男子!何因緣故我
於往昔尼連河邊告魔波旬,
我今未有多智弟子,
是故不得入涅槃者?
我時欲為五比丘等,
於波羅㮈轉法輪故。
復次欲為五比丘等,
所謂耶奢、富那、毘摩羅闍、
憍梵波提、須婆睺。
次復欲為郁伽長者等五十人。
次復欲為摩伽陀國
頻婆娑羅王等無量人天。
次復欲為優樓頻螺迦葉
門徒五百比丘。
次復欲為那提迦葉、
伽耶迦葉兄弟二人及五百弟子。
次復欲為舍利弗、目犍連等
二百五十比丘轉妙法輪。
是故我告魔王波旬不般涅槃。
「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옛적에 내가
니련(尼連) 강변에서 파순에게 고하기를,
 ‘나는 아직 큰 지혜의 제자가 없어서
그 때문에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겠는가?
그때 나는 다섯 비구를 위해
바라나(波羅㮈*)에서 법륜을 굴리고자 하였고,
또 다섯 비구를 위해서였으니,
소위 야사(耶奢*), 부나(富那*), 비마라사(毘摩羅闍*),
교범파제(憍梵波提*), 수바후(須婆睺*)이니라.
그 다음으로는 욱가(郁伽*)장자 등의 50인을 위하고,
또 다시 마가타(摩伽陀)국의
빈바사라(頻婆娑羅)왕 등의 무량한 인천(人天)을 위하고,
그 다음으로는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의
문도(門徒) 오백 비구를 위하고,
다음으로 또 나제가섭(那提迦葉)과
가야가섭(伽耶迦葉)의 두 형제와 그들의 오백 제자를 위하고,
또 다시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 등
이백오십 비구를 위해 묘법륜(妙法輪)를 굴리고자 하였기에
그래서 내가 파순에게 반열반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니라. 

*耶奢(Yaśas); 意譯 「名聞」.
*富那(Puṇyayaśas); 富那奢, 富那夜奢, 富蘭那迦. 意譯 「滿足」. 脅尊者의 弟子, 馬鳴의 스승.
*毘摩羅闍(Vimarāja); 意譯 「無垢王」.
*憍梵波提(Gavājpati); 憍梵跋提, 伽婆跋帝. 意譯 「牛主, 牛王, 牛相」.
*修婆睺; 意譯 「善臂」.
*郁伽(Ugga); 意譯 「最首」. 비사리족으로 「建立善本 第一」이라 칭찬받은 제자. 

 

「善男子!有名涅槃非大涅槃。
云何涅槃非大涅槃?
不見佛性而斷煩惱,
是名涅槃非大涅槃。
以不見佛性故,
無常、無我,惟有樂、淨。
以是義故,雖斷煩惱,
不得名為大般涅槃也。
若見佛性能斷煩惱,
是則名為大涅槃也。
以見佛性故,得名為常樂我淨,
以是義故,斷除煩惱,
亦得稱為大般涅槃。
「선남자야! 열반이기는 하지만 대열반이 아닌 것이 있나니,
어떤 것을 열반이되 대열반은 아니다 하는가?
불성(佛性)을 보지는 못했지만 번뇌는 끊은
이것을 열반이되 대열반은 아니다고 하거니와,
불성을 보지 못한 까닭에
상(常)과 아(我)는 없고 오직 낙(樂)과 정(淨)만 있으니,
이런 뜻에서 비록 번뇌를 끊었더라도
대반열반(大般涅槃)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만약 불성을 보고 능히 번뇌를 끊었다면
이를 곧 대열반이라고 하려니와,
불성을 본 까닭에 상락아정(常樂我淨)하다 하리니,
이런 뜻에서 번뇌를 단제(斷除)하는 것
또한 얻어져야 대반열반이라고 칭하느니라. 

 

「善男子!涅者言不,
槃者言織,
不織之義名為涅槃。
槃又言覆,
不覆之義乃名涅槃。
槃言去來,
不去不來乃名涅槃。
槃者言取,
不取之義乃名涅槃。
槃言不定,
定無不定乃名涅槃。
槃言新故,
無新故義乃名涅槃。
槃言障礙,
無障礙義乃名涅槃。
「선남자야! 열(涅)은 '아니 부(不)'라는 말이고,
반(槃)은 '짤 직(織)'이라는 말이니,
 '짜지 못하는[不織]' 의미의 열반이 되거니와,
반(槃)은 또 '덮을 부(覆)'라는 말이니,
 '덮이지 않은[不覆]' 것이라야 열반이라 할 것이며,
반(槃)은 '가고 옴[去來]'을 말하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는 의미의 열반이라는 것이요,
반(槃)은 '가질 취(取)'라는 말이니,
가지지 않는다[不取]는 뜻이라야 열반인 것이며,
반(槃)은 정함이 없음[不定]을 말하니,
결정하여 부정(不定)함이 없어야 열반이라 할 것이며,
반(槃)은 '새롭고 낡음[新故]'을 말하니,
새로울 것도 옛 것도 없는 것이라야 열반인 것이며,
반(槃)은 '장애(障礙)'를 말하니,
장애가 없어야 열반이라는 것이니라. 
善男子!有憂羅迦
迦毘羅弟子等言,
槃者名相,
無相之義乃名涅槃。
善男子,槃者言有,
無有之義乃名涅槃。
槃名和合,
無和合義乃名涅槃。
槃者言苦,
無苦之義乃名涅槃。
선남자야! 우라가(憂羅迦*)나
가비라(迦毘羅*) 같은 제자는
"'반(槃)'이란 명상(名相*)이니,
실상(實相)이 없는 이치가 결국 열반이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반(槃)은 있음[有]을 말하니,
있지 아니한 이치라야 열반이라 할 것이요,
반(槃)은 화합(和合)을 뜻하니,
화합하지 못하는 이치가 열반인 것이며,
반(槃)은 고(苦)를 말하니,
고통이 없는 것이라야 마침내 열반이라 할 것이니라. 

*憂羅迦(Ulūka); 優樓迦. 仙人의 이름.
부처님 出世하시기 800년 전에 6구의(六句義)의 승론(勝論)을 설한 사람이다.
*迦毘羅(Kapila); 外道의 이름. 數論派의 祖로서 25諦의 이치를 수립하였다.
*名相; 일체의 유위법은 명(名)과 상(相)이 있는데, 귀로 듣는 것을 명이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상이라 한다. 이 명과 상은 거짓이어서 실다운 성품이 없다. 

善男子!斷煩惱者不名涅槃,
不生煩惱乃名涅槃。
善男子!諸佛如來
煩惱不起是名涅槃,
所有智慧於法無礙是為如來。
如來非是凡夫、
聲聞、緣覺、菩薩,
是名佛性。
如來身心智慧,
遍滿無量無邊阿僧祇土,
無所障礙,是名虛空。
如來常住無有變易,名曰實相。
以是義故,如來實不畢竟涅槃。
是名菩薩修大涅槃微妙經典,
具足成就第七功德
선남자야! 번뇌 끊은 것이 열반이 아니라
번뇌가 생기지 않아야 열반이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제불여래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시니 열반이라 하거니와
소유하신 지혜가 법에 장애됨이 없기에 여래인 것이며,
여래는 범부도 아니고,
성문 연각도 보살도 아닌지라
이를 불성(佛性)이라 하는 것이니라.
여래의 심신(心身)과 지혜는
무량 부변한 아승지의 불토에 두루 가득하되
장애하는 바가 없으니 이를 허공이라 하고,
여래는 상주(常住)하여 불변하기에 실상(實相)이라 하는지라
이런 뜻에서 여래는 실로 필경 열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이 대열반의 미묘 경전을 닦아서
제7의 공덕을 구족히 성취한다'고 하느니라. 

 

「復次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
修大涅槃微妙經典,
具足成就第八功德?
善男子!菩薩摩訶薩修大涅槃,
除斷五事,遠離五事,
成就六事,修習五事,
守護一事,親近四事,
信順一實,
心善解脫,
慧善解脫。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
제8의 공덕을 구족히 성취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대열반을 닦아서
다섯 가지를 끊고[除斷五事], 다섯을 멀리하며[遠離五事],
여섯을 성취하고[成就六事], 다섯을 수습하며[修習五事],
한 가지를 수호하고[守護一事], 넷을 친근하며[親近四事],
하나의 진실[一實;眞如]을 믿고 따르므로서[信順一實]
마음이 잘 해탈하고[心善解脫],
지혜가 잘 해탈하나니[慧善解脫], 

 

「善男子!云何菩薩除斷五事?
所謂五陰,色受想行識。
所言陰者其義何謂?
能令眾生生死相續、
不離重檐,
分散聚合三世所攝,
求其義理了不可得,
以是諸義,故名為陰。
菩薩摩訶薩雖見色陰,
不見其相。
何以故?於十色中
推求其性悉不可得,
為世界故說言為陰。
受有百八,雖見受陰,
初無受相。
何以故?受雖百八,
理無定實,
是故菩薩不見受陰,
想行識等亦復如是。
菩薩摩訶薩深見五陰,
是生煩惱之根本也,
以是義故,方便令斷。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의 제단5사(除斷五事)라 하는가?
소위 오음(五陰)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니라.
음(陰)이라는 것은 그 뜻이 어떤 것을 이르겠는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生死)가 계속되게 하고,
무거운 짐[重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며,
흩어지고 모이면서 삼세(三世)를 꾸려가게 하지만
그 이치를 찾아봐도 얻을 수 없으니,
이런 뜻에서 음(陰)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음(色陰)을 본다지만
그 상(相)은 보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모든 색(色)에서
그 성품을 추구해보아도 얻을 수 없으되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음(陰)이라고 한다.
수(受)는 108 가지여서 비록 수음(受陰)은 보더라도
애초에 수의 상[受相]은 없나니,
어째서인가? 수(受)가 108 가지라지만
이치상으로 정해진 실체가 없는지라
그래서 보살이 수음(受陰)을 보지 못하거니와,
상(想) 행(行) 식(識) 등도 그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오음이 바로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고 깊이 보기에
이런 의미에서 방편으로 끊어버리는 것이니라. 

 

「云何菩薩成就六事?
謂六念處。何等為六?
一者念佛,二者念法,
三者念僧,四者念天,
五者念施,六者念戒,
是名菩薩成就六事。
「어떤 것이 보살의 성취육사(成就六事)인가?
소위 육념처(六念處)인데, 어떤 것들이 그 여섯인가 하면,
첫째는 념불(念佛)이요, 둘째는 념법(念法),
셋째믄 념승(念僧), 넷째는 념천(念天),
다섯째는 념시(念施), 여섯째는 념계(念戒)이니,
이를 보살의 성취육사(成就六事)라 하느니라. 

 

「云何菩薩修習五事?
所謂五定:一者知定,
二者寂定,三者身心受快樂定,
四者無樂定,五者首楞嚴定。
修習如是五種定心,
則得近於大般涅槃,
是故菩薩勤心修習。
「어떤 것이 보살의 수습오사(修習五事)인가?
소위 오정(五定)인데, 하나는 알아가는 정(知定)이요,
둘은 고요한 정[寂定], 셋은 심신이 쾌락한 정[身心受快樂定],
넷은 낙 없는 정[無樂定], 다섯은 수능엄정(首楞嚴定)이거니와,
이러한 다섯 가지 정한 마음[定心]을 수습하는 것이
곧 대반열반에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그래서 보살이 마음 다해 수습하는 것이니라. 

 

「云何菩薩守護一事?
謂菩提心。
菩薩摩訶薩常勤守護是菩提心,
猶如世人守護一子,
亦如瞎者護餘一目,
如行壙野守護導者。
菩薩守護菩提之心,亦復如是,
因護如是菩提心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因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常、樂、我、淨具足而有,
即是無上大般涅槃,
是故菩薩守護一法。
「어떤 것이 보살의 수호일사(守護一事)인가?
보리심(菩提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늘 힘써 이 보리심을 수호하나니,
마치 세상사람들이 외아들을 수호하듯,
또 애꾸눈이 남은 한 눈 수호하듯,
광야를 가는 이가 인도자를 수호하듯,
보살이 보리심을 수호하는 것도 그와 같거니와,
이렇듯 보리심을 수호함으로 인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으로 인해
상(常), 낙(樂), 아(我), 정(淨)이 구족하게 있는
이것이 곧 무상의 대반열반인 것이라
그 때문에 보살은 하나의 법을 수호하는 것이니라. 

 

「云何菩薩親近四事?
謂四無量心。何等為四?
一者大慈,二者大悲,
三者大喜,四者大捨。
因是四心,
能令無量無邊眾生發菩提心,
是故菩薩繫心親近。
「어떤 것이 보살의 친근사사(親近四事)인가?
이른바 4무량심(四無量心)이다. 어떤 것들이 그 넷인가?
첫째는 대자(大慈), 둘째는 대비(大悲),
셋째는 대희(大喜), 넷째는 대사(大捨)니라.
이 네 가지 마음으로 인해
무량무변한 중생들이 보리심을 발할 수 있기에
그래서 보살이 마음 기울여 친근하는 것이니라. 

 

「云何菩薩信順一實?
菩薩了知一切眾生皆歸一道,
一道者謂大乘也。
諸佛菩薩為眾生故,分之為三,
是故菩薩信順不逆。
「어떤 것이 보살의 신순일실(信順一實)인가?
보살은 일체중생이 다 하나의 도(道)에 귀의하고,
그 하나의 도란 대승(大乘)임을 요지하고 있지만,
제불보살이 중생을 위해 셋으로 구분한 것이기에
그래서 보살이 믿고 따르고 거역하지 않는 것이니라. 

 

「云何菩薩心善解脫?
貪、恚、癡心永斷滅故,
是名菩薩心善解脫。
「어떤 것이 보살의 심선해탈(心善解脫)인가?
탐(貪), 에(恚), 치(癡)의 마음이 영원히 단멸(斷滅)하였으니,
이를 보살의 마음이 잘 해탈하였다고 하는 것이니라. 

 

「云何菩薩慧善解脫?
菩薩摩訶薩於一切法知無障礙,
是名菩薩慧善解脫。
因慧解脫昔所不聞而今得聞,
昔所不見而今得見,
昔所不到而今得到。」
「어떤 것이 보살의 혜선해탈(慧善解脫)인가?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을 장애없이 아는
이것을 보살의 지혜가 잘 해탈하였다고 하거니와,
지혜의 해탈로 인해 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듣고,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보며,
전에 이르지 못하던 곳을 지금에 이르게 되느니라.」

 

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
菩薩摩訶薩言:「世尊!
如佛所說心解脫者,是義不然。
何以故?心本無繫。
所以者何?是心本性,
不為貪欲、瞋恚、愚癡諸結所繫。
若本無繫,
云何而言心善解脫?
世尊!若心本性
不為貪結之所繫者,
何等因緣而能得繫?
如人搆角,本無乳相,
雖加功力,乳無由出。
搆乳之者,不得如是,
加功雖少,乳則多出。
心亦如是,本無貪者,
今云何有?
若本無貪,後方有者,
諸佛菩薩本無貪相,
今悉應有。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하신 마음의 해탈은 옳지 않겠나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매이는 일이 없사온데,
어째서인가 하면 마음의 본성(本性)은
탐욕이나 진에, 우치 같은 번뇌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옵고,
만약 매이는 일이 없다면
어떻게 마음이 잘 해탈했다고 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음의 본성이
탐욕 등의 번뇌에 매이지 않는 것이라면
무슨 인연이 매이게 할 수 있겠나이까?
마치 뿔을 쥐어 짜면 본래 젓이랄 것이 없으니
아무리 공력을 더해도 젖이 나올 수 없거니와,
젖을 쥐어 짜는 것은 그와 같지 않아서
적은 공을 들여도 많은 젖이 나오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이랄 것이 없사온데
어찌 지금에 있겠나이까?
만일 본래 탐욕이 없다가 후에 있게 된 것이라면
제불보살도 본래 탐욕의 모습이 없었다가
지금에는 모두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世尊!譬如石女,本無子相,
雖加功力無量因緣,子不可得。
心亦如是,本無貪相,
雖造眾緣,貪無由生。
世尊!如攢濕木,火不可得。
心亦如是,雖復攢求,
貪不可得。
云何貪結能繫於心?
세존이시여! 마치 석녀(石女)는 본래 자식 없는 상인지라
비록 무량한 인연의 공력을 가해도 자식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의 상이 없는지라
어떠한 인연을 지어도 탐욕이 생길 이유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젖은 나무를 모으면 불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긁어 모아도
탐욕을 찾아볼 수 없사온데,
어떻게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얽맬 수 있겠나이까?
世尊!譬如押沙,油不可得。
心亦如是,雖復押之,貪不可得。
當知貪、心,二理各異,
設復有之,何能污心?
세존이시여! 마치 모래를 짜서 기름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러하여 아무리 짜봐도 탐욕은 얻을 수 없으니,
탐욕과 마음이라는 두 이치가 각각 다름을 알겠사옵고,
설령 있다 한들 어떻게 마음을 물들일 수 있겠나이까? 
世尊!譬如有人,安橛於空,
終不得住。
安貪於心,亦復如是,
種種因緣,不能令貪繫縛於心。
世尊!若心無貪名解脫者,
諸佛菩薩何故不拔虛空中刺?
世尊!過去世心,不名解脫。
未來世心,亦無解脫。
現在世心,不與道共。
何等世心名得解脫?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에 말뚝을 박아서는
결코 세워지지 않듯이,
탐욕을 마음에 두는 것도 그와 같아서
어떠한 인연도 탐욕을 마음에 얽어맬 수는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해탈이라 할 터이온데,
제불보살은 어째서 허공 중의 가시는 뽑아내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과거 세상의 마음도 해탈이 아니고,
미래 세상의 마음도 해탈이 없으며,
현재 세상의 마음도 도(道)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어느 세상의 마음을 해탈이라 하겠나이까? 
世尊!如過去燈不能滅闇,
未來世燈亦不滅闇,
現在世燈復不滅闇。
何以故?明之與闇,二不並故。
心亦如是,云何而言心得解脫?
世尊!貪亦是有,若貪無者,
見女相時,不應生貪;
若因女相,而得生者,
當知是貪,真實而有,
以有貪故,墮三惡道。
세존이시여! 과거의 등(燈)이 어둠을 멸할 수 없고,
미래세의 등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며,
현재세의 등도 다시 어둠을 멸하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명과 암의 둘이 병립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니와,
마음도 그러하온데, 어찌 마음이 해탈한다고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탐욕 또한 있나이다. 만약 탐욕이 없는 것이라면
여인상을 보아도 탐욕이 생기지 않아야 하거니와,
여인상으로 인해 탐욕이 생긴다면
마땅히 이 탐욕은 진실로 있는 것이옵고,
탐욕이 있음으로써 삼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겠나이다. 
世尊!譬如有人,
見畫女像,亦復生貪,
以生貪故,得種種罪;
若本無貪,
云何見畫而生於貪?
若心無貪,
云何如來說言菩薩心得解脫?
若心有貪,
云何見相然後方生,
不見相者則不生也?
我今現見有惡果報,
當知有貪,瞋恚、愚癡亦復如是。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여인의 형상을 그리면 또한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김으로써 갖가지 죄를 얻거니와,
만일 탐욕이 본래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림을 보고 탐욕이 생기겠나이까?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어째서 여래는 보살의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고 하시나이까?
만약 마음에 탐욕이 있는 것이라면
어째서 상을 본 연후에야 비로소 생기고,
상을 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이옵니까?
제가 지금 햔재 나쁜 과보가 있음을 보건대
탐욕과 진에, 우치도 마땅히 그와 같이 있음을 알겠나이다. 
世尊!譬如眾生,有身無我,
而諸凡夫,橫計我想,
雖有我想,不墮三惡。
云何貪者,於無女相而起女想,
墮三惡道?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중생은 몸은 있어도 나[我]는 없건만
범부들은 멋대로 나라는 생각을 짓사옵거니와,
비록 나라는 생각이 있더라도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사온데,
어째서 탐욕이라는 것은 여인상이 없어도 여자 생각을 일으켜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나이까? 
世尊!譬如攢木而生於火,
然是火性眾緣中無,
以何因緣而得生耶?
世尊!貪亦如是,色中無貪,
香味觸法亦復無貪,
云何於色、香、味、觸、法,
生於貪耶?
若眾緣中悉無貪者,
云何眾生獨生於貪?
諸佛菩薩而不生耶?
세존이시여! 나무를 긁어모아 불을 일으키지만
그러나 이 불의 성품은 어느 연(緣) 속에도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옵니까?
세존이시여! 탐욕도 그러하여 색(色) 중에 탐(貪)이 없고,
향미촉법(香味觸法)에도 탐이 없는데,
어찌하여 색(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에서
탐이 생기나이까?
만약 어느 연(緣) 가운데도 탐이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중생에게서만 유독 탐이 생기고,
제불보살은 생기지 않는 것이옵니까? 
世尊!心亦不定,
若心定者,
無有貪欲、瞋恚、愚癡。
若不定者,云何而言心得解脫?
貪亦不定,若不定者,
云何因之生三惡趣?
貪者、境界,二俱不定。
何以故?俱緣一色,
或生於貪、或生於瞋、或生愚癡,
是故貪者及與境界二俱不定,
若俱不定,何故如來
說言菩薩修大涅槃心得解脫?」
세존이시여! 마음 또한 일정치 않거니와,
만일 마음이 일정하다면
탐욕이나 진에, 우치가 없을 것이옵고,
일정치 않다면 어떻게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고 하겠나이까?
탐(貪)도 일정치 않겠사온데, 만일 일정치 않다면
어떤 인(因)이 삼악취(三惡趣)에 태어나게 하겠나이까?
탐(貪)과 경계(境界) 둘이 다 일정치 않겠나이다.
왜냐하면, 다같이 하나의 색(色)을 반연하여
탐(貪)을 내거나 진(瞋), 혹은 우치를 내기도 하기에
그래서 탐과 경계 둘 모두가 일정치 않사옵거니와,
만약 모두 일정치 않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보살이 대열반을 닦아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고 하시나이까?」 

 

◎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
菩薩摩訶薩言:
「善哉,善哉!善男子!
心亦不為貪結所繫、亦非不繫,
非是解脫、非不解脫,
非有、非無,
非現在、非過去、非未來。
何以故?善男子!
一切諸法無有自性故。
◎이때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에게 고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선남자야!
마음은 탐결(貪結)에 매이거나 매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해탈하거나 해탈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고,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일체제법은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니라. 
善男子!有諸外道作如是言:
『因緣和合則有果生,
若眾緣中本無生性
而能生者,
虛空不生亦應生果。
虛空不生非是因故,
以眾緣中本有果性,
是故合集而得生果。
선남자야! 어떤 외도들은 말하기를,
『인(因)과 연(緣)이 화합한 즉 과생(果生)이 있는데,
모든 연(緣) 속에 본래 생성(生性)이 없는데도
생길 수 있다면
허공은 생기지 않고서도 과(果)를 내야 하거니와,
허공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인(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연(緣) 속에 본래 과성(果性)이 있다는 것이라
그래서 서로 화합하여 과(果)를 내게 되는 것이다. 
所以者何?如提婆達欲造牆壁,
則取泥土,不取彩色。
欲造畫像,則集彩色,不取草木。
作衣取縷,不取泥木。
作舍取泥,不取縷線。
어째서인가? 마치 제바달(提婆達)이 담을 쌓으려 한 즉
진흙을 취하지 물감을 취하지 않고,
형상을 그리려거든 물감을 모으지 초목을 취하지 않으며,
옷을 지으려면 실을 취하지 흙이나 나무를 취하지 않고,
집을 지으려면 흙을 취하지 실을 취하지 않는 것과 같다. 
以人取故,當知是中各能生果,
以能生果故,
當知因中必先有性,
若無性者一物之中
應當出生一切諸物。
若是可取、可作、可出,
當知是中必先有果。
若無果者,
人則不取、不作、不出。
惟有虛空無取、無作,
故能出生一切萬物。
以有因故,
如尼拘陀子作尼拘陀樹,
乳有醍醐,縷中有布,
泥中有瓶。』
사람이 취함으로써 그 가운데 과(果)를 내고,
과를 내기 때문에
인(因) 중에 이미 과의 성품이 있음을 알아야 하거니와,
만일 성품이 없다면 한 물건에서
응당 모든 물건이 나와야 할 것이다.
만일 취할 수 있고, 지을 수 있고, 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과가 있었음을 알 것이며,
만일 과가 없었다면
사람이 취하지도 짓지도 내지도 못할 것이다.
오직 허공만은 취할 수도 지을 수도 없으니,
그래서 일체 만물을 출생시키는 것이요,
인(因)이 있었기 때문이라,
마치 니구타(尼拘陀) 씨에서 니구타 나무가 생겨나고,
젖에 제호(醍醐)가 있고, 실 속에 천이 있고,
흙 속에 병(瓶)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느니라. 
善男子,一切凡夫無明所盲
作是定說,色有著義,
心有貪性。復言:
『凡夫心有貪性、亦解脫性,
遇貪因緣心則生貪,
若遇解脫心則解脫。』
雖作此說,是義不然。
有諸凡夫復作是言:
『一切因中,悉無有果。
因有二種:
一者微細,二者麁大。
細即是常,麁則無常。
從微細因轉成麁因,
從此麁因轉復成果。
麁無常故,果亦無常。』
선남자야! 일체 범부들은 무명으로 눈이 멀어서
결정적으로 색에는 집착의 의미가 있고,
마음에는 탐하는 성품이 있다고 말하고, 또
『범부의 마음에는 탐성(貪性)도 있고 해탈성(解脫性)도 있어서
탐의 인연을 만나면 탐을 내고,
해탈의 마음을 만나면 곧 해탈한다.』고
이렇게들 말하지만 이치는 그렇지 않다.
범부들은 또 말하기를,
『일체의 인(因) 중에는 어떠한 과(果)도 없다.
인(因)에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미세(微細)한 것, 둘은 거칠고 큰[麁大] 것인데,
미세가 곧 상(常)이요, 추대(麁大)는 곧 무상(無常)이다.
미세한 인(因)으로부터 추대의 인이 만들어지고,
이 추대한 인[麁因]이 굴러서 다시 과(果)를 이루거니와,
추(麁)가 무상(無常)하므로 과 또한 무상하다.』고 한다. 
善男子!有諸凡夫復作是言:
『心亦無因,貪亦無因,
以時節故則生貪心。』
如是等輩,以不能知心因緣故,
輪迴六趣,具受生死。
선남자야! 범부들은 또 말하기를,
『마음에도 인(因)이 없고, 탐(貪)에도 인이 없는데,
시절(時節) 때문에 탐심이 생긴다.』고 하거니와,
이러한 무리는 마음의 인연을 알지 못함으로써
육취(六趣)를 윤회하며 생사를 겪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枷犬,繫之於柱,
終日繞柱,不能得離。
一切凡夫亦復如是,
被無明枷繫生死柱,
繞二十五有,不能得離。
「선남자야! 마치 개를 묶어 기둥에 매어 두면
종일 기둥을 돌며 벗어날 수 없듯이
일체 범부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얽혀 생사의 기둥에 매여
25유(有)를 돌며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善男子!譬如有人墮於圊廁,
既得出已,而復還入。
如人病差,還為病因。
如人涉路,值空曠處,
既得過已,而復還來。
又如淨洗,還塗泥土。
一切凡夫亦復如是,
已得解脫,無所有處。
唯未得脫非非想處,
而復還來至三惡趣。
何以故?一切凡夫惟觀於果,
不觀因緣,
如犬逐塊,不逐於人。
凡夫之人亦復如是,
惟觀於果,不觀因緣,
以不觀故,從非想退還三惡趣。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뒷간에 빠졌다가도
기왕 나와서는 다시 들어가고,
병든 사람이 나았다가도 다시 병들고,
길 가는 사람이 광야를 만났다가도
기왕 지나가고 나서는 다시 돌아오며,
또 깨끗이 씻었다가도 다시 진흙을 바르듯이,
일체 범부도 그와 같아서
이왕 무소유처(無所有處)는 해탈하더라도
미처 비비상처(非非想處)를 해탈하지 못하고
다시 삼악취(三惡趣)로 돌아가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범부는 오로지 과(果)만 보고
인(因)과 연(緣)은 보지 않기 때문이니,
마치 개가 똥덩이를 쫓고 사람을 쫓지 않듯이,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오로지 과만 보고 인연을 보지 않거니와,
보지 않음으로써 비비상처에서 삼악취로 되돌아가느니라. 

 

「善男子!諸佛菩薩終不定說,
因中有果、因中無果、
及有無果、非有非無果。

若言因中先定有果、及定無果、
定有無果、定非有非無果,
當知是等皆魔伴黨,
繫屬於魔,即是愛人;
如是愛人,不能永斷生死繫縛,
不知心相及以貪相。
「선남자야! 제불보살은 결코
인(因) 중에 과(果)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과가 있고 없다거나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느니라.
만일 인 중에 정히 과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정히 과가 있고 없다거나 있지도 없지도 않다고 말한다면
이들은 다 마(魔)의 반당(伴黨)임을 알아야 하고,
마에 구속되면 곧 탐애하는 사람이거니와,
이렇듯 탐애하는 사람은 생사의 속박을 영단(永斷)할 수 없고,
심상(心相)도 탐상(貪相)도 알지 못하느니라. 
善男子!諸佛菩薩顯示中道。
何以故?雖說諸法非有非無,
而不決定。所以者何?
因眼、因色、因明、因心、
因念,識則得生,
是識決定不在眼中、
色中、明中、心中、念中,
亦非中間、非有、非無,
從緣生故,名之為有,
無自性故名之為無,
是故如來說言諸法非有、非無。
선남자야! 제불보살은 중도(中道)를 현시(顯示)하시는데,
왜냐하면 제법(諸法)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고 하시되
결정히 말씀하시지는 않나니, 어째서인가?
안(眼)을 인(因)하고, 색(色), 명(明), 심(心),
념(念)을 인하여 식(識)이 생기지만
이 식은 결정코 안(眼) 중이나
색(色), 명(明), 심(心), 념(念) 중에도 있지 않고,
또한 중간도 아니고, 유(有)도 무(無)도 아니며,
연(緣)을 쫓아 생긴 것이므로 이름하여 유(有)라 하거니와,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무(無)이기도 한지라
여래가 제법은 유(有)도 무(無)도 아니다고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諸佛菩薩
終不定說心有淨性及不淨性,

淨不淨性,心無住處故。
從緣生貪,故說非無,
本無貪性,故說非有。
善男子!從因緣故心則生貪,
從因緣故心則解脫。
善男子!因緣有二:
一者隨於生死,二者隨大涅槃。
선남자야! 제불보살은
결코 마음에 청정한 성품과 부정한 성품이 있다고
단정하여 말하지 않나니,
청정하고 부정한 성품이 마음에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며,
연(緣)을 쫓아 탐(貪)이 생기므로 없지 않다고 하고,
본래 탐의 성품이 없으므로 있지 않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인연(因緣)을 쫓아서 마음이 곧 탐을 내고,
인연을 쫓아서 마음이 곧 해탈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인연은 두 가지가 있으니,
생사를 따르는 것과 대열반을 따르는 것이니라. 

 

「善男子!有因緣故,
心共貪生共貪俱滅,
有共貪生不共貪滅,
有不共貪生共貪俱滅,
有不共貪生不共貪滅。
「선남자야! 인연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며,
탐과 함께 나지 않고서 탐과 함께 멸하기도 하고,
탐과 함께 나지 않고 탐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느니라.

 

「云何心共貪生共貪俱滅?
善男子!若有凡夫未斷貪心、
修習貪心,如是之人,
心共貪生心共貪滅。
一切眾生不斷貪心,
心共貪生心共貪滅。
如欲界眾生,一切皆有初地味禪,
若修、不修,常得成就,
遇因緣故,即便得之,
言因緣者謂火災也。
一切凡夫亦復如是,若修、不修,
心共貪生,心共貪滅。
何以故?不斷貪故。
「어떤 것이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만일 어떤 범부가 탐심을 아직 끊지 못하고서
탐심을 수습(修習)한다면, 이런 사람은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마음이 탐과 함께 멸한 것이니라.
일체 중생은 탐심을 끊지 못하여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마음이 탐과 함께 멸하나니,
마치 욕계의 중생 누구에게나 초지미선(初地味禪*)이 있어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수시로 성취하게 되고
인연을 만남으로써 곧 얻는지라
 '인연이란 화재(火災)다'고 말하듯이,
일체 범부도 그와 같아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마음이 탐과 함께 멸하거니와,
그 이유는 탐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初地味禪; 禪에의 根本資質. 

 

「云何心共貪生不共貪滅?

聲聞弟子有因緣故,生於貪心,
畏貪心故,修白骨觀,
是名心共貪生不共貪滅。

復有心共貪生不共貪滅,
如聲聞人未證四果,
有因緣故生於貪心,
證四果時貪心得滅,
是名心共貪生不共貪滅。

菩薩摩訶薩得不動地時,
心共貪生不共貪滅。
「어떤 것을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성문 제자들은 인연이 있기에 탐심을 내고,
탐심이 두려워서 백골관(白骨觀*)을 닦으니,
이를 일러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또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마치 4과(四果)를 증득하지 못한 성문들이
어떤 인연으로 탐심을 내서
4과를 증득했을 때에 탐심이 소멸되는 것과 같은
이것을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고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이 부동지(不動地)를 얻었을 때
마음이 탐과 함께 나서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느니라.

*白骨觀(asthi-sajjñā); 九想觀 중의 骨想觀。
屍身이 흩어져 白骨만 깔린 不淨한 모양을 통해 無常을 觀하여 탐욕과 집착을 끊는 수행법으로
부처님의 弟子 우파니사타(優波尼沙陀)가 이 觀을 통해 成道하였다. 

 

「云何不共貪生共貪俱滅?
若菩薩摩訶薩斷貪心已,
為眾生故示現有貪,
以示現故,能令無量無邊眾生
諮受善法,具足成就,
是名不共貪生共貪俱滅。
「어떤 것이 탐과 함께 나지 않되 탐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미 탐심을 끊었다면
중생을 위한 까닭에 어떤 탐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려니와,
탐을 시현함으로써 무량무변한 중생으로 하여금
선법을 자문받고 구족히 성취하게 하니,
이를 마음이 탐과 함께 나지 않되 탐과 함께 멸한다 하느니라.

 

「云何不共貪生不共貪滅?
謂阿羅漢、緣覺、諸佛,
除不動地其餘菩薩,
是名不共貪生不共貪滅。
以是義故,諸佛菩薩
不決定說心性本淨、
性本不淨。
「어떤 것이 탐과 함께 나지 않고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인가?
아라한이나 연각, 제불(諸佛),
부동지를 제한 그 밖의 보살들을 말하니,
이를 탐과 함께 나지 않고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거니와,
이런 뜻에서 제불보살은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다거나
본래 부정하다고 결정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善男子,是心不與貪結和合,
亦復不與瞋癡和合。
善男子!譬如日月,雖為烟塵、
雲霧及羅睺羅之所覆蔽,
以是因緣令諸眾生不能得見,
雖不可見日月之性,
終不與彼五翳和合。
心亦如是,以因緣故,生於貪結。
眾生雖說心與貪合,
而是心性實不與合。
若是貪心即是貪性,
若是不貪即不貪性,
不貪之心不能為貪,
貪結之心不能不貪。
善男子!以是義故,
貪欲之結不能污心。
諸佛菩薩永破貪結,
是故說言心得解脫。
一切眾生從因緣故,生於貪結,
從因緣故,心得解脫。
「선남자야, 이 마음은 탐결(貪結)과 화합하지도 않고
진(瞋)이나 치(癡)와도 화합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일월(日月)이 비록 연기나 티끌,
구름이나 안개, 라후라(羅睺羅*)에 가려지면
그 인연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볼 수 없게 되지만,
비록 볼 수는 없더라도 일월의 성품은
결코 그 다섯 가지 장애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어떤 인연으로 탐결을 내거니와,
중생이 비록 마음이 탐과 화합하였다고 말하지만
이 마음의 성품은 실로 화합하지 않느니라.
만약 탐심이 곧 탐의 성품이거나
불탐(不貪)이 불탐의 성품이라면,
불탐하는 마음은 탐이 될 수 없고
탐결의 마음은 불탐일 수 없을 것이라,
선남자야! 이런 뜻에서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물들일 수 없다는 것이며,
제불보살은 탐결을 영파(永破)했으니,
그 때문에 마음이 해탈했다고 하는 것이요,
일체 중생은 인연을 쫓기 때문에 탐결을 내지만
또 인연을 쫓음으로써 마음이 해탈을 얻는 것이니라. 

*羅睺羅; 여기서의 라후라는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가 아니라,
《正法念處經》상의 四大阿修羅王 중의 하나인 라후아수라왕(羅睺阿修羅王)을 말한다.
라후아수라왕은 수미산처럼 廣大한 몸에 두른 보배구슬로 대광명을 놓는데,
天女를 보려고 손으로 日月의 빛을 가리면 일월식(日月蝕)이 나타나게 된다.
또 如影, 諸香, 妙林, 勝德 등의 네 淫女와 12나유타의 侍女를 거느리고
그녀들과 함께 娛樂하며 오천 세(인간 500세가 하루 밤낮) 내외의 수명을 누린다고 한다. 

 

「善男子!譬如雪山懸峻之處,
人與獼猴俱不能行。
或復有處,獼猴能行,人不能行。
或復有處,人與獼猴二俱能行。
善男子!人與獼猴能行處者,
如諸獵師,純以黐膠,
置之案上用捕獼猴。
獼猴癡故,往手觸之,
觸已粘手,欲脫手故,
以脚踏之,脚復隨著。
欲脫脚故,以口齧之,口復粘著,
如是五處悉無得脫。
於是獵師以杖貫之,負還歸家。
「선남자야! 예컨대 설산(雪山) 험준한 곳은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갈 수 없거나,
혹 어떤 곳은 원숭이는 가고 사람은 가지 못하거나,
혹 또 어떤 곳은 사람도 원숭이도 다 갈 수 있거니와,
선남자야! 사람과 원숭이가 갈 수 있는 곳은
만약 사냥꾼이 강한 아교(阿膠;黐膠)를
원숭이 다니는 길에 놓아 두거든
원숭이는 어리석은지라 가서 손으로 만지는데,
만지면 손이 달라붙고 손을 빼내려고
다리로 밟으면 다리도 달라붙고,
다리를 떼 내려고 입으로 갉으면 입이 또 달라붙어서
이렇게 다섯 곳이 다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그때 사냥꾼이 장대에 꿰어 지고서 귀가하느니라. 
雪山嶮處喻佛菩薩所得正道。
獼猴者喻諸凡夫。
獵師者喻魔波旬。
黐膠者喻貪欲結。
人與獼猴俱不行者,
喻諸凡夫、魔王波旬俱不能行。
獼猴能行,人不能者,
喻諸外道有智慧者,
諸惡魔等雖以五欲不能繫縛。
人與獼猴俱能行者,
一切凡夫及魔波旬
常處生死不能修行,
凡夫之人五欲所縛,
令魔波旬自在將去,
如彼獵師黐捕獼猴,
檐負歸家。
설산의 험준함은 불보살이 얻은 정도(正道)에 비유할 수 있고,
원숭이는 범부들에 비유할 수 있으며,
사냥꾼은 마왕 파순에,
아교는 탐욕이라는 번뇌에 비유하고,
사람도 원숭이도 갈 수 없다는 것은
범부들도 마왕 파순도 다 갈 수 없음에,
원숭이는 가되 사람은 갈 수 없다는 것은
외도(外道)들의 지혜 있는 자는
악마들이 오욕(五欲)으로도 얽맬 수 없음에 비유한 것이다.
사람도 원숭이도 다 갈 수 있다는 것은
일체 범부와 마왕 파순은
언제나 생사에 처하여 수행할 수 없거니와,
범부들은 오욕에 얽매여
마왕 파순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데려가게 하니,
마치 사냥꾼이 아교로 원숭이를 잡아
울러메고 귀가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國王安住己界,
身心安樂,若至他界,則得眾苦。
一切眾生亦復如是,
若能自住於己境界,則得安樂,
若至他界則遇惡魔,受諸苦惱。
自境界者謂四念處,
他境界者謂五欲也。
「선남자야! 마치 국왕이 자기 나라에 안주하면
심신이 안락하고, 남의 나라에 가면 여러가지로 괴롭듯이,
일체중생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자기 경계에 머물면 안락하고,
다른 경계로 가면 악마를 만나 여러 고뇌를 겪거니와,
자신의 경계란 사념처(四念處)를 말하고,
다른 경계란 오욕(五欲)이라 할 수 있다. 
云何名為繫屬於魔?
有諸眾生無常見常、
常見無常,
苦見於樂、樂見於苦,
不淨見淨、淨見不淨,
無我見我、我見無我,
非實解脫橫見解脫、
真實解脫見非解脫,
非乘見乘、乘見非乘,
如是之人名繫屬魔,
繫屬魔者心不清淨。
어떤 것을 마(魔)에 구속되었다고 하는가?
어떤 중생들은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보거나
상을 무상으로 보고,
고(苦)를 낙(樂)으로 보거나 낙을 고로 보기도 하고,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보거나 정을 부정으로 보며,
무아(無我)를 유아(有我)로 보거나 유아를 무아로 보고,
실로 해탈이 아니건만 멋대로 해탈로 보거나
진실한 해탈을 해탈 아니라고 보며,
탈 것[乘] 아닌 것을 승(乘)으로 승을 비승(非乘)으로 보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마에 예속되었다고 하거니와,
마에 예속되면 마음이 청정치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見諸法
真實是有,總別定相。
當知是人,若見色時,
便作色相,
乃至見識亦作識相,
見男男相、見女女相、
見日日相、見月月相、
見歲歲相、見陰陰相、
見入入相、見界界相,
如是見者,名繫屬魔。
繫屬魔者心不清淨。
또 선남자야! 만일 제법(諸法)에
진실로 일정한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 있다고 본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이 색(色)을 볼 때는
색상(色相)을 짓고,
나아가 식(識)까지도 식상(識相)을 지을 것이요,
남자를 보면 남상(男相), 여인을 보면 여상(女相),
해를 보면 일상(日相), 달을 보면 월상(月相),
세(歲)를 보면 세상(歲相), 음(陰)을 보면 (陰相),
입(入)을 보면 입상(入相), 계(界)를 보면 계상(界相)을 지으니,
이렇게 보는 자를 마에 예속되었다 하거니와,
마에 예속되면 마음이 청정치 못하느니라. 

*總相과 別相; 일체 유위법(有為法)은 總, 別의 두 상(相)이 있다.
무상(無常)이나 무아(無我) 같은 상(相)은 일체로 통하므로 총상(總相)이라 하고,
땅의 견고한 상(相)이나 물의 습한 상을 별상(別相)이라 한다. [智度論] 

復次善男子!若見我是色、
色中有我、我中有色、
色屬於我,
乃至見我是識、
識中有我、我中有識、
識屬於我,
如是見者,繫屬於魔,
非我弟子。
또 선남자야! 만일 나[我]가 색(色)이다거나,
색 가운데 아(我)가 있다, 아(我) 중에 색이 있다,
색은 아(我)에 속한다고 보고,
나아가 나[我]가 식(識)이라거나,
식(識) 중에 아(我)가 있다, 아(我) 중에 식이 있다,
식은 아(我)에 속한다고 본다면,
이렇게 보는 자는 마에 예속된 것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善男子!我聲聞弟子
遠離如來十二部經,
修習種種外道典籍,
不修出家、寂滅之法,
純營世俗在家之事。
何等名為在家事也?
受畜一切不淨之物,
奴婢、田宅、象馬、車乘、
駝驢鷄犬、獼猴猪羊、
種種穀麥,
遠離師、僧,親附白衣,
違反聖教,向諸白衣作如是言:
『佛聽比丘受畜種種不淨之物。』

是名修習在家之事。
선남자야! 나의 성문 제자가
여래의 12부경을 멀리하고
갖가지 외도들의 경전을 닦아 익히거나
출가(出家*)와 적멸(寂滅)의 법을 닦지 않고
순전히 세속 재가(在家)의 일을 영위하는 자가 있거니와,
어떤 것을 재가의 일이라고 하는가?
일체의 부정한 물건인
노비(奴婢), 전택(田宅), 상마(象馬), 차승(車乘),
낙타, 나귀, 닭, 개, 원숭이, 돼지, 양,
갖가지 곡식을 받아 모으거나
스승과 스님을 멀리하고 재가인들을 가까이 하여
거룩한 교지를 위반하면서 백의(白衣)들에게
『부처님께서 비구가 갖가지 부정한 물건 받아 모으는 일을
허락하셨다.』고 말한다면
이를 일러 재가의 일을 수습한다고 하느니라. 

*出家(pravrajyā); 가정생활을 떠나 沙門의 청정행을 專心으로 닦는 것.
유마힐(維摩詰)은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면 이것이 곧 출가다.」고 하였다. 

有諸弟子不為涅槃,但為利養,
親近聽受十二部經,
招提僧物及僧鬘物,
衣著食噉,如自己有,慳惜他家,
及以稱譽、親近國王及諸王子,
卜筮吉凶推步盈虛,
圍碁六博摴蒱投壺,
親近比丘尼及諸處女,
畜二沙彌,
常遊屠獵、酤酒之家,
及旃陀羅所住之處,
種種販賣、手自作食、
受使隣國通致信命,
如是之人當知即是魔之眷屬,
非我弟子。
以是因緣,心共貪生、
心共貪滅。乃至癡心,
共生共滅亦復如是。
어떤 제자들은 열반을 위하지 않고 이양만을 위해
12부경을 가까이 하여 듣거나
초제승물(招提僧物*)이나 승만물(僧鬘物*),
입는 옷과 먹는 음식이 자기 소유인 듯 남에게 인색하게 굴고,
국왕과 왕자들을 칭송하거나 가까이 하며,
길흉(吉凶)이나 추보(推步*), 영허(盈虛*)를 점치고,
바둑[圍碁], 육박(六博*), 저포(摴蒱*), 투호(投壺*)를 즐기며,
비구니나 처녀들을 가까이 하거나,
두 사미를 거느리고[畜二沙彌*],
늘 사냥한 고기와 술을 파는 집이나
전다라(旃陀羅)들이 사는 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것을 팔거나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인접국에 서신과 명을 전하는 사신이 되는
이러한 사람은 곧 마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님을 알아야 하거니와,
그 인연으로 마음과 탐이 함께 생기고
마음과 탐이 함께 멸하며, 나아가 치심(癡心)까지가
공생공멸(共生共滅)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招提僧物; 招提(Caturdeśa)는 「四方」의 뜻이니, 四方의 스님들 즉 '스님들 공유의 물건'을 말한다.
*僧鬘物; 對面物, 즉 면전에서 받은 보시물.
*推步; 천문(天文)을 보는 일.
*盈虛; 盛衰, 興亡.
*六博; 고대 놀이의 하나. 여섯 개의 검은 알과 여섯 개의 흰 알로 된 장기와 같은 놀이.
*摴蒱; 樗蒲.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 승부를 가리는 윷과 유사한 놀이.
*投壺; 청, 홍색 화살을 병에 던져 넣은 숫자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  

 

*畜二沙彌; 〈四分比丘尼戒本 註解〉 第2卷에
비구 우파난다[跋難陀釋子]에게 羯那(Karna)와 摩睺迦(Muhurja)라는 두 사미가 있었는데,
참괴(慚愧)를 모르고 서로 부정한 음행을 하면서 「우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음욕을 행하는 것이 도법(道法)에 장애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하는지라
다른 비구들이 듣고서 세존께 그 일을 아뢰니, 세존께서 비구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두 사미를 무수한 언사로 꾸짖으셨다 하였다.
이 일로 사미는 한 사람씩만 두어서 12개월을 가르치고 구족계를 주어서 내 보낸 뒤에
다시 다른 사미를 받아 들이도록 계율로 제정하셨다 한다. 

 

「善男子!以是因緣,
心性不淨、亦非不淨,
是故我說心得解脫。
若有不受不畜一切不淨之物,
為大涅槃受持、讀誦十二部經,
書寫解說,當知是等,真我弟子,
不行惡魔波旬境界,
即是修習三十七品,以修習故,
不共貪生、不共貪滅,
是名菩薩修大涅槃微妙經典,
具足成就第八功德。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마음의 성품은 청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나니,
그 때문에 내가 마음이 해탈한다고 말한 것이며,
만약 누가 일체의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모으지도 않고,
대열반을 수지(受持)하고, 12부경을 독송(讀誦)하며,
서사(書寫)하고 해설한다면 이들이 참된 나의 제자요,
악마 파순의 경계를 행하지 않는 것이며,
곧 이것이 37품을 수습(修習)하고 수습함으로써
마음을 탐과 함께 내거나 탐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거니와,
이를 일러 보살이 대열반 미묘경전을 닦아
제8의 공덕을 구족히 성취한다고 하느니라. 

 

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대반열반경 제25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