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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碧巖錄) 제40칙 육긍(陸亘) 천지동근(天地同根)

일체법이 나를 떠나 있지 않고 나를 떠나 일체법이 없으니 만물과 나는 한몸이요, 그 속에서 인연따라 생사를 윤회하니 모두가 하룻밤 꿈과 같은 허무함이다. 그렇다면 그 진실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자 하나 진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런 법에 있지 아니하니, 물위에 비친 달 그림자를 쫓지 말고 달의 냉정한 참모습을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하거니와, 이 일은 세상 천지에 너와 함께 해 줄 사람이 없고 오직 너 스스로 밝혀야 할 일이다. *陸亘; 宣州刺史 陸亘大夫(南泉願 法嗣) 南嶽下三世 垂示云。 수시(垂示) 休去歇去。 鐵樹開花。 有麼有麼 黠兒落。節。 直饒七縱八橫。 不免穿他鼻孔。 且道誵訛在什麼處。 試舉看。 (망상을)쉬고 또 쉬어 가면 소철(蘇鐵;鐵樹)도 꽃을 피우려니와, 있는 건가, 있..

조론(肇論) _後秦長安 釋僧肇 作

《肇論》 肇論序 小招提寺沙門 慧達 作 慧達率愚,通序長安釋僧肇法師所作《宗本》《物不遷》等四論。但末代弘經,允屬四依菩薩。爰傳茲土,抑亦其例。至如彌天大德童壽桑門,竝創始命宗,圖辯格致,播揚宣述,所事玄虛,唯斯擬聖默之所祖。自降乎已還,歷代古今,凡著名僧傳及傳所不載者,釋僧叡等三千餘僧、清信檀越謝靈運等八百許人,至能辯正方言、節文階級、善覈名教、精搜義理。揖此群賢語之所統,有美若人,超語兼默,標本則句句深達佛心,明末則言言備通眾教。諒是大乘懿典、方等博書。自古自今著文著筆,詳汰名賢所作諸論,或六七宗,爰延十二,竝判其臧否、辯其差當,唯此憲章無弊斯咎。良由襟情泛若,不知何係。譬彼淵海,數越九流,挺拔清虛,蕭然物外。知公者希,歸公採什,如曰不知,則公貴矣。 達猥生天幸,逢此正音,忻躍弗已,饗讌無疲。每至披尋,不勝手舞,誓願生生盡命弘述。達於肇之遺文,其猶若是,況《中》、《百》、《門》觀..

자료실 2023.02.23

벽암록(碧巖錄) 제39칙 운문화약란(雲門花藥欄)

화약란(花藥欄)들이여! 그대 안에 청정법신(清淨法身)이 있음을 모르고 그렇게 밖으로만 찾아 헤매서야 어찌 금모사자(金毛獅子)가 되겠느냐? 이 공안은 「운문화란(雲門花欄)」, 「운문금모사자(雲門金毛獅子)라고도 한다. 垂示云。 수시(垂示) 途中受用底。似虎靠山。 世諦流布底。如猿在檻。 欲知佛性義。當觀時節因緣。 欲鍛百鍊精金。須是作家爐韛。 且道大用現前底。 將什麼試驗。 도중(途中)에 수용하면 사호고산(似虎靠山*)이겠으나 세제(世諦)나 유포하면 여원재함(如猿在檻*)이거니와, 불성(佛性)의 의미를 알려면 당연히 시절인연을 봐야 하고, 순금을 단련(鍛鍊)하려거든 모름지기 작가가 녹여야 한다. 자 말해보라. 큰 작용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무엇을 가져다 시험하겠는가? *似虎靠山;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다. 「용이 물을 얻음..

벽암록(碧巖錄) 제38칙 풍혈(風穴)선사의 조사심인(祖師心印)

「풍혈철우기(風穴鐵牛機)」, 「풍혈철우(風穴鐵牛)」라고도 한다. 풍혈선사는 '조사(祖師)의 심인(心印)은 무쇠소[鐵牛]의 기(機)와 같아서 가면 도리어 머물고 머물면 도리어 깨진다'고 하였는데, 무쇠소는 고대 중국인들이 교량을 축조할 때 무쇠로 소 모형을 주조하여 교각을 설치할 물밑에 투하함으로써 교량이 튼튼히 오래가기를 기원했다 하니, 철우는 「부동(不動)」의 의미를 가진다. '가면 도리어 머물고 머물면 도리어 깨진다' 함은 어떤 모양을 지으면 오히려 그 모양과는 멀어진다, 즉 모양[相]이 없다는 것이다. 조사심인의 체(體)는 부동(不動)하고 용(用)은 무상(無相)하여 「아무런 흔적이 없이 마음으로 마음에 곧바로 찍어 전해지는 것이다」는 뜻이다. 垂示云。 【수시(垂示)】 若論漸也。返常合道。 鬧市裏七縱八..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명(明) 태조(太祖)가 당시 세간에 각 종가(宗家)마다 서로 다른 주석을 내놓아 육조의 구결과 상이한 해석들이 난무하니, 대중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고, 홍무(洪武) 10年에 당시의 고승 종륵(宗泐) 등에게 명하여 이 금강경을 위시하여 반야심경과 능가경의 세 경전을 주석하게 하고, 그로써 유통을 일원화시켰으니, 이를 신주(新注)라 하였다 이 신주가 여래의(如來意)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 여기고, 이를 토대로 나름의 주석을 붙여서 금강경을 많은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바라며 여기에 올린다. 여시아문 如是我聞。 일시 불 재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여 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 구 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은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벽암록(碧巖錄)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宏智禪師는 趙州의 四門이 發心, 修行, 菩提, 涅槃이라 하였다. 垂示云。 수시(垂示) 明鏡當臺。妍醜自辨。 鏌鎁在手。殺活臨時。 漢去胡來。胡來漢去。 死中得活。活中得死。 且道到這裏。又作麼生。 若無透關底眼轉身處。 到這裏灼然不柰何。 且道如何是透關底眼。 轉身處。 試舉看。 맑은 거울을 대에 걸면 곱고 추함이 자연히 판별되고, 막야검(鏌鎁劍*)을 손에 쥐면 죽이고 살리기를 때 맞춰 할 수 있거니와, 한인(漢人)이 가면 오랑캐가 오고, 오랑캐가 오면 한인이 가며,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고, 산 가운데서 죽는다. 말해보라. 이 속에 이르러서는 또 어찌 하겠는가? 관문을 뚫어낼 안목과 전신처(轉身處)가 없다면 여기에 이르러 분명 어찌 하지도 못할 것이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관문을 뚫어내는 안목이며, 전신처(轉身處;몸 굴릴..

벽암록(碧巖錄) 제36칙 장사(長沙) 방초락화(芳草落花)

추호의 도리(道理)나 계교(計較)를 짓지 않고 춘의(春意)인양 머뭄도 머물 곳도 없이 자유분방히 살아가는 것이 부질없이 가을 이슬처럼 연잎을 적시려는 것보다 낫다. 圜悟克勤之頌: 「落花芳草如鋪錦, 滿目春光入畫圖; 門外相逢親切處, 也勝秋露滴芙蕖。」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방초락화(芳草落花)를 송(頌)하여 「낙화(落花) 방초(芳草)가 비단처럼 깔리고 눈 가득히 봄빛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니, 문 밖에서 가까이 해야 할 것들을 만나는 것이 가을 이슬이 연꽃 적시느니보다야 낫다.」 하였다. 【三六】舉。 【제36칙】 장사(長沙)의 방초(芳草)와 낙화(落花) 長沙。一日遊山。 歸至門首 (今日一日。只管落草。 前頭也是落草。後頭也是落草) 首座問。和尚什麼處去來 (也要勘過這老漢。 頭過新羅) 沙云。遊山來 (不可落草。敗缺不少。 草裏..

추고(抽顧)

抽顧 추고(抽顧*) 師每見僧。以目顧之。 即曰鑒。或曰咦。 而錄者曰顧鑑咦。 後來德山圓明密禪師。 刪去顧字。但曰鑑咦。 故叢林目之曰抽顧。 因作偈通之。 又謂之擡薦商量。 偈曰。 相見不揚眉。君東我亦西。 紅霞穿碧落。白日繞須彌。 선사는 스님을 만날 때마다 눈으로 「고(顧)」하고 곧 「감(鑒)」하거나 혹은 「이(咦)」하였는지라 기록자들이 「고감이(顧鑑咦*)」라 하였다. 후에 와서 덕산원명밀(德山圓明密) 선사가 고(顧)자를 빼버리고 단지 「감이(鑑咦)」라고만 했으므로 총림(叢林)이 그것을 보고 「추고(抽顧)」라고 하였다. 그로 인해 게(偈;抽顧頌)를 지어 알렸으며, 또 이를 〈대천상량(擡薦商量*)〉이라고 하였다. 게(偈)에 이르되, 「서로 만나도 거들떠보지 말고 그대는 동으로 가라 나 또한 서로 가리라. 붉은 노을[紅霞]이 ..

운문삼구(雲門三句)

三句 운문삼구(雲門三句) 師示眾云。 函蓋乾坤。 目機銖兩。 不涉萬緣。 作麼生承當。 眾無對。自代云。 一鏃破三關。 後來德山圓明密禪師。 遂離其語為三句。 曰函蓋乾坤句。截斷眾流句。 隨波逐浪句 (圓悟曰。本真本空。 一色一味。 非無妙體。不在躊躇。 洞然明白。則函蓋乾坤也。 又云。本非解會。排疊將來。 不消一字。萬機頓息。 則截斷眾流也。 又云。若許他相見。從苗辦地。 因語識人。 即隨波逐浪也)。 운문이 시중(示眾)하여 이르되, "상자[函]와 뚜껑[蓋], 하늘[乾]과 땅[坤]이 서로 상응하는 이치를 한 눈에 미세한 곳까지 알아차리되[目機銖兩], (자유자재하여)삼라만상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不涉萬緣] 어떻게 올라가지겠느냐?" 하니, 대중들이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자기가 대신하여 "화살 한 촉으로 세 관문을 깨뜨려라[一鏃破三關]."고 하..

2. 운문종(雲門宗)

雲門宗 2. 운문종(雲門宗) 師諱文偃。嘉興張氏子。 受具遊方。 初參睦州陳尊宿。 發明心要。 州指見雪峯存禪師。 再蒙印可。初至靈樹。 開法嗣雪峯。 後遷雲門光泰寺。 其道大振。 天下學者。望風而至。 號雲門宗。 선사의 휘(諱)는 문언(文偃), 가흥(嘉興) 장씨(張氏)이다. 구족계를 받고 유방(遊方)하다가 목주진존숙(睦州陳尊宿*)을 초참(初參)하고서 심요(心要)를 밝히기 시작했는데, 목주가 설봉존(雪峯存)선사를 뵈라고 하여 재차 (설봉의) 인가(印可)를 얻었다. 처음에 영수사(靈樹寺)에서 설봉의 법을 이어 펼쳤고 후에 운문산(雲門山) 광태사(光泰寺)로 옮겼는데, 그의 도(道)가 크게 진동하여 천하의 배우는 이들이 그 기풍을 바라고 모여들었으니, 운문종(雲門宗)이라 부르는 것이다. *睦州陳尊宿; 黃檗希運 法嗣, 南嶽下四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