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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古德)의 강종송(綱宗頌)

고덕(古德)이 임제종(臨濟宗)의 대강(大綱)을 노래함. 古德綱宗頌(此有訛舛) 고덕(古德)의 강종송(綱宗頌) (여기에 착오가 있다) 橫按鏌鎁烜赫光。 八方全敵謾茫茫。 龍蛇並隱肌鱗脫。 雷雨全施計略荒。 막야검(鏌鎁劒)을 마구 휘둘러 빛이 번쩍이거든 팔방의 모든 적(敵)이 한없이 겁을 내서[謾] 용과 뱀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살가죽과 비늘이 벗겨지며 번개와 폭우가 온통 내려치니 어찌할 바를 모른다네. 佛祖點為涓滴響。 江山結抹並芬芳。 回途索莫郊垧遠。 失舶波斯落楚鄉。 불조(佛祖)를 향해 물방울[涓滴] 울림으로 점철(點綴)되면 강산(江山)은 맺고 지움[結抹]이 모두 향기로울 것이로되, 거꾸로 가는 길은 삭막(索莫)하고 허허 벌판이라서 파사(波斯)로 향하는 배를 잃고 초향(楚鄉)에 떨어진다네.

벽암록(碧巖錄) 제35칙 문수전후삼삼(文殊前後三三)

어떤 것을 特定하면 形相도 그려내고 數도 헤아릴 수 있겠지만 一乘法은 不二法이라 東西南北도 凡聖, 龍蛇도 없어서 特定할 것이 없다. 그저 前三三後三三 서로 어우러져 因緣따라 成住壞空하는 實相法인 것이다. 垂示云。 수시(垂示) 定龍蛇分玉石。 別緇素決猶豫。 若不是頂門上有眼。 肘臂下有符。 往往當頭蹉過。 只如今見聞不昧。 聲色純真。 且道是皂是白。 是曲是直。 到這裏作麼生辨。 용사(龍蛇)를 정하고 옥석(玉石)을 가리거나 치소(緇素)를 분별하고 유예(猶豫*)를 결정함에는 정문(頂門) 위에 달린 눈이나 팔꿈치 밑에 감춘 부적이 있지 않다면 왕왕 그 자리에서 바로 어긋나버리지만 다만 지금의 보고 들음이 미혹하지만 않다면 소리와 빛깔[聲色]이 순수하고 참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이것이 검은가 흰가? 굽은 것인가 곧은 것..

벽암록(碧巖錄) 제34칙 앙산부증유산(仰山不曾遊山)

오로봉에 오르지 못한 자는 올라보게 해주는 것이 종사가(宗師家)의 마땅한 도리다. 팔만의 언어로는 오로봉에 오르게 할 수 없기에 선가에서는 통상 방(棒), 할(喝) 등의 정령(正令)을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파심에서 한 마디 건네 주었다가는 제방으로부터 '누두(漏逗)가 심했다', '눈썹을 아껴야 한다'는 따위의 갈등에 뒤얽힌다. 【三四】舉。 【제34칙】 앙산(仰山)의 '산을 다닌 적 없구나.' 仰山問僧。 近離甚處 (天下人一般。也要問過。 因風吹火。 不可不作常程) 僧云。廬山 (實頭人難得) 山云曾遊五老峰麼 (因行不妨掉臂。何曾蹉過) 僧云。不曾到 (移一步。 面赤不如語直。 也似忘前失後) 山云。闍黎不曾遊山 (太多事生。 惜取眉毛好。 這老漢著甚死急) 雲門云。此語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殺人刀活人劍。兩箇三箇。..

산당덕순(山堂德淳)의 임제종(臨濟宗) 요결(要訣)

要訣(山堂淳) 산당덕순(山堂德淳)의 임제종(臨濟宗) 요결(要訣) 因問黃檗西來。 痛與烏藤三頓。 遂往大愚打發。 親揮肋下三拳。 言下便見老婆心。 懸知佛法無多子。 奮奔雷喝。捋猛虎鬚。 迸開於赤肉團邊。 到處用白拈手段。 飛星爆竹。裂石崩崖。 氷稜上行。劍刃上走。 全機電卷。 大用天旋。 赤手殺人。單刀直入。 人境俱奪。照用並行。 明頭來。暗頭來。 佛也殺。祖也殺。 황벽(黃檗)에게 서래의(西來意)를 물음으로 인해 아프게 오등(烏藤;葛藤)과 삼돈방(三頓棒)을 맞고 마침내 대우(大愚)에게 가서 몰아세우면서 직접 옆구리에 세 주먹을 휘둘렀다가 말 끝에 문득 노파심(老婆心)이었음을 깨달아 불법(佛法)이 별것이 아님을 미루어 알고서 우레 같은 할(喝)을 떨쳐 맹호의 수염을 뽑고 심장[心臟;赤肉團] 주변을 흩어 헤쳤으며, 도처(到處)에 백념(白..

임제문정(臨濟門庭)_임제문(臨濟門) 의 뜰

臨濟宗者。大機大用。 脫羅籠出窠臼。 虎驟龍奔。星馳電激。 轉天關斡地軸。 負衝天意氣。 用格外提持。 卷舒擒縱殺活自在。 是故示三玄。三要。四賓主。 四料揀。金剛王寶劍。 踞地師子。探竿影草。 一喝不作一喝用。一喝分賓主。 照用一時行。 임제종(臨濟宗)이란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나롱(羅籠*)을 벗어나고 과구(窠臼*)에서 빠져나와 호취용분(虎驟龍奔*)하고 성치전격(星馳電激*)하며 천관(天關)을 굴리고, 지축(地軸)을 돌리려는 듯한 하늘을 찌르는 의기(意氣)를 등에 지고 격외(格外)의 제지(提持*)를 사용하매 권서(卷舒)와 금종(擒縱), 살활(殺活)이 자재해야겠기에 그래서 삼현(三玄), 삼요(三要), 사빈주(四賓主), 사료간(四料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 거지사자(踞地師子), 탐간영초(探竿影草), 일할부작일할용(一喝不作一..

남당정(南堂靜)의 십문(十門)

南堂辨驗十問 남당정(南堂靜)은 10문(問)으로 변험(辨驗)했다. 南堂示眾云。 夫參學至要。 不出箇最初與末後句。 透得過者。平生事畢。 其或未然。更與爾分作十門。 各用印證自心。 看得穩當也未。 一須信有教外別傳。 二須知有教外別傳。 三須會無情說法 與有情說法無二。 四須見性如觀掌上。 了了分明。 一一田地穩密。 五須具擇法眼。 六須行鳥道玄路。 七須文武兼濟。 八須摧邪顯正。 九須大機大用。 十須向異類中行。 남당원정(南堂元靜)이 시중하여 말했다. 대저 참학(參學)의 지요(至要;가장 중요함)는 어떤 최초(最初)와 말후(末後)의 구(句)를 벗어나지 않는지라 투득(透得)하여 넘으면 평생사(平生事)를 마치려니와, 혹 그렇지 못하거든 열로 나눈 문(門;科)을 너희에게 주리니, 각자가 써서 자심(自心)을 인증(印證)하고 간득(看得)하는 것이 온..

황룡3관(黃龍三關)_황룡선사의 세 관문

황룡혜남(黃龍慧南) 선사는 「生緣」, 「佛手」, 「驢腳」의 세 가지에 관한 질문으로 학인을 접인(接引)하였다 하는 바, 본인이 해득하기로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생연이 있다' 함은 업보(業報)와 윤회(輪迴)라는 인연법(因緣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요, '내 손은 왜 부처의 손과 같은가?'는 누구나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어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는 것이며, '내 다리는 왜 나귀 다리와 함께 가는가?'는 교화중생(敎化衆生)의 대승(大乘)정신을 뜻하는 듯하다. 南禪師問隆慶閑禪師云。 人人有箇生緣。 上座生緣在什麼處。 閑云。早晨喫白粥。 至晚又覺饑。 又問。我手何似佛手。 閑云。月下弄琵琶。 又問。我脚何似驢脚。 閑云。鷺鷥立雪非同色。 黃龍每以此三轉語。 垂問學者。 多不契其旨。 而南州居士潘興嗣延之。 常問其故。 ..

산에 머무는 것이 좋다[居山好]

〈종감법림(宗鑑法林)권62〉 운거홍각(雲居道膺弘覺)선사 장(章)에 「어느 중이 운거에게 "승가(僧家)가 필경 어찌해야 합니까?" 여쭈니, 홍각선사는 "산에 머무는 것이 좋다." 하였다. 그 중이 예배하고 일어서자 "네가 어떻게 알아들었느냐?" 하니, 그 중이 "승가는 필경 선악(善惡), 생사(生死)와 역순(逆順)하는 경계에서 그 마음이 산처럼 부동(不動)해야 하겠습니다." 하자, 운거가 한 방(棒) 후려치고서 "앞선 성인을 저버렸다가는 내 후손을 잃는 법이다." 하였다. 다시 옆에 있던 중에게 "너는 어떻게 이해했느냐?" 물으니, 그 중이 예배하고 일어나서 "승가는 필경 산에 머물러 눈으로 검고 누런[天地] 색을 보지 않고, 귀로는 사죽(絲竹;絃管)의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자, 홍각은 "앞..

잡동사니 2022.11.16

벽암록(碧巖錄) 제33칙 진조구척안(陳操具隻眼)_진조가 일척안을 지녔다

자복이 진조가 오매 일원상을 그어 맞아주었건만 진조는 자신이 여기 온 것도 무사(無事)가 되지 못하거니와, 일원상을 그은 것도 무사라 할 수 없다 하니, 자복이 대꾸를 못하고 방장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를 두고 설두가 '진조는 정문안(頂門眼;一隻眼)만 갖추었을 뿐이다', 즉 '감과(勘過)하는 안목만을 가지고 있을 뿐 부족했다'고 평했는지라 원오는 '당시에 어떻게 답하면 그런 말을 듣지 않겠는가?' 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垂示云。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東西不辨南北不分。 從朝至暮從暮至朝。 還道伊瞌睡麼。 有時眼似流星。 還道伊惺惺麼 有時呼南作北。 且道是有心是無心。 是道人是常人。 若向箇裏透得。 始知落處。 方知古人恁麼不恁麼。 且道是什麼時節。 試舉看。 동서를 해아리지 않고 남북을 분간하지 아니 하면서 아침에서 ..

벽암록(碧巖錄) 제32칙 정상좌 저립(定上座佇立)_정상좌가 우두커니 서다

이 공안은 「임제불법대의(臨濟佛法大意)」라고도 한다. 정상좌가 불법의 대의를 여쭈니, 임제는 일장을 날림으로써 답해 주었는데, 이에 정상좌가 대오하였다. 이 얼마나 갈등없는 신속한 수완인가? 垂示云。 수시(垂示) 十方坐斷千眼頓開。 一句截流萬機寢削。 還有同死同生底麼。 見成公案打疊不下。 古人葛藤試請舉看。 시방(十方)이 좌단되고 천안(千眼)이 몰록 열려서, 일구(一句)에 중류(衆流)를 절단하고 만기(萬機)를 종식(終息;寢削)시켜버린다면 동사동생(同死同生)할 자가 있겠는가? 견성공안(見成公案)이 꾸려지지 않거든 고인의 갈등(葛藤)을 예를 들테니 살펴보기 바란다. *一句截流萬機寢削; 禪林用語。 截流는 截斷眾流, 즉 分別妄想心을 截斷한다는 뜻이요, 寢削은 停止, 削除, 終息의 뜻이니, '一句만으로 일체의 분별망상을..